파리에서 제일 오래된 어린이도서관의 이름은 즐거운 시간이란다. 이름도 참 이쁘다. 즐거운 시간... 나중에 파리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꼭 들러보려고 한다.
파리 最高 어린이전문 도서관
'즐거운 시간' 에즈라티쉬 관장
파리 아이들은 즐겁다.
'즐거운 시간'(L'heure Joyeuse)이 있어서다.
파리 한복판 프레트르 생 세브랭 거리의 '즐거운 시간'은 1924년 파리시가 세운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어린이 전문 도서관.
고서부터 명랑만화까지 방대한 도서목록은 물론, 음악CD까지 수천 장 갖추고 있고 따로 서류를 안써도 마음대로 책을 뽑아 읽을 수 있어 아이들에겐 '책 읽기 천국'이다.
부스스한 머리에 유머가 넘치는 '꺽다리 아줌마' 비비안 에즈라티쉬는 이곳 터줏대감이다. '즐거운 시간'에서만 15년, 도서관에서 일한 지는 25년 된 베테랑 사서! 그는 "날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좋은 책을 집어들 수 있게 진열할까, 하는 생각에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다"며 웃었다.
그가 설명하는 파리시의 도서관 운영 체계가 인상적이다.
서울의 5분의 1밖에 안되는 파리시에 시립도서관이 무려 50개. 그중 어린이 전문도서관이 13개다. 서로 네트워크가 잘 돼 있어 카드 한 개만 있으면 어느 도서관이든 출입이 자유롭다.
"'즐거운 시간'에서 찾지 못한 책은 바로 다른 도서관에 문의해 구해 볼 수 있지요. 파리 시내 도서관 지도가 따로 있어서 지하철을 타고 쉽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은 또 다채로운 문화공연을 하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매달 클래식 연주회, 미술 전시, 춤 공연이 마련되고 유명한 어린이책 작가들과 화가들을 초청해 대화하는 시간도 갖는다.
에즈라티쉬는 "파리 아이들도 책보다 TV나 컴퓨터를 훨씬 좋아해서 그 아이들을 도서관으로 오게 하려면 요리조리 재미있는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다"며 살짝 윙크했다.
직원 12명 중 가장 중요한 사람은 역시 사서다. 좋은 책을 골라 도서관에 들여오고 아이들에게 골라주는 역할을 해야 하므로 파리시는 엄격하게 시험을 치른다. 시험에 합격해도 1년 가까이 전문 사서 교육을 따로 받는다.
'올해의 좋은 책'은 이렇듯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각 도서관 사서들이 모여 엄밀하게 선정한다. "재미있다고 다 좋은 책은 아니지요. 가슴으로 느끼고 눈으로 볼 거리가 풍부해야 합니다. 다양성도 중요해요.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들, 다른 문화,다른 생활방식을 알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니까요."
덕분에 '즐거운 시간'의 1년 책 대여 권수는 7만권을 넘는다.
아이들만 오는 것도 아니다. 독서 교육에 관심이 있는 학부모와 학교 도서관 교사들은 '즐거운 시간'에 풍부하게 갖춰진 유아교육 전문서를 읽기 위해 찾아온다.
또 한 가지 특징은 도서 수만 권 중 자국인 프랑스 책이 차지하는 비율이 90%에 이른다는 점이다. "좋은 작가들과 화가들이 끊임없이 배출되고 있으니까요. 어린이 책이라도 정말 위대한 작품이 많거든요. 영·미권 도서 중에도 좋은 책이 많지만 우리 정서로 우리 이야기를 하는 책이 아이들을 더 파고드는 것 같습니다."
80% 가 수입 책이라는 한국 어린이책 현황을 듣고는 "그렇게 되면 곤란해요, 한국 작가들이 설 자리가 없잖아요"했지만, 그중에는 많은 프랑스책도 들어있다는 설명에 금세 밝은 얼굴이 됐다.
에즈라티쉬는 한 가지 부끄러운 고백을 하며 웃었다.
10 대의 두 딸은 책을 별로 안 좋아한단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엄마가 힘들어 보여서일까? 그렇다고 해서 딸들에게 책 읽기를 강요하진 않는다.
"집이든 도서관이든 아이 스스로 책을 읽고 싶어 달려오게 만드는 것이 사서와 부모의 역할입니다. 언젠가는 책의 중요성을 스스로 깨칠 날이 있다고 믿으면 되지요. 강요하면 그 기회마저 놓치게 됩니다."
김윤덕기자 sion@chosun.com
[조선일보] 2004-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