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나의 성향을 확실히 모르겠다. 정치나 사회 돌아가는 것을 볼 때는 꽤 진보적인 성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유시민의 글보다는 진중권의 글에 더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공주 출신 국회의원보다는 여공 출신 국회의원을 더 신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성향을 모르겠다는 것은, 내가 원칙을 꽤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나는 보수적이다. (보수는 자기 것 빼앗기지 않고 지키겠다는 것이라고 어느 사주 좋은 사람이 말했는데, 난 별로 빼앗길 것도 없는 사람이다.)
남편과 만날 때, 내가 이 사람에게 반했던 가장 큰 이유는 운전하면서 규정속도를 준수한다는 점이었다. 시골길에 시속 40km로 가라고 쓰여 있으면 이 사람은 40km로 갔다. 이 길을 40이라고 지정해 둔 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단다. 마을 앞이거나, 학교 앞이거나, 위험한 길이거나... 고속도로에서 100km라고 되어 있으면 아무리 뻥 뚫린 직선도로라도 이 사람은 100km로만 달렸다(이 사람의 엘란트라가 10년 넘게, 17만킬로를 뛰고도 고장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나는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가능하면 법에 호소해서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진행하고 싶어한다. 물론 평범하게 살아온 내가 크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본 적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토요일, 학교는 아무래도 좀 풀어지게 마련이다. 고학년이 되면, 한 학기에 한두 번 교실에서 비디오를 보는 모양이다.
그런데 어느 반에서는 투모로우 를 보고 있다고 하고, 또 어느 반에서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를 보고 있다고 한다.
우선, 학교라는 공간에서, 가장 원칙에 충실해야 할 공간에서, 불법으로 다운받아 구운 시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난 참 싫다. 아직 상영되기도 전의 영화를, 혹은 상영중인 영화를 구워오는 아이가 인정받는 것, 선생님은 거기에 동조해서 수업시간에 틀어주고 보게 하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옳지 않다.
또 한 가지. 작년에 보니 야한 영화만 아니라면 연령제한도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15세 이상인 공포물 혹은 폭력물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본다. 뿐만 아니라 18세 이상이었던 야인시대의 세트장을 체험학습으로 가는 학교도 있었다(우리 학교는 아니었다).
영상물등급제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일단 영상물 등급제가 만들어져서 국가적으로 시행되고 있다면 학교에서는 그것을 지켜야 한다. 영상물에 등급을 두는 것은 분명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영상물 등급제가 괜한 간섭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이들과 함께 그것을 철폐하거나 개정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학교에서 할 일이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여러 가지 도덕 중에,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이 법 아닐까. 아이들이 그것을 학교에서 배웠으면 좋겠다. 난 보수적인 사람이 맞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