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엔 한국영화들이 제법 괜찮은 흥행 성적을 올렸나보다. 단지 반짝 추석 관객몰이용으로 만든 영화들도 있었지만 입소문을 타고 롱런을 할듯 보이는 영화들이 있으니 <타짜>와 <라디오 스타>가 그렇다.
단지 박중훈과 안성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는 <타짜>를 보러 갔다. 먹고살기 위한 힘겨운 노동을 마치느라 진이 빠진 퇴근길, 쓸데없이 긴 말들로 질질 늘어져 퇴근 시간에서 한시간이 넘게 끝난 짜증나는 회의의 뒤끝을 털어버리며 나는 사람들로 붐비는 시내 한복판의 극장을 찾았다.
<타짜>를 본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구땡이 뭔지 파토가 뭔지 모른다. 하지만 그걸 모른다고 영화를 보는 동안 답답하거나 뭔가 이해가 안가는 구석은 없었다. 화투를 잘안다면 더 즐겁게 봤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무척이나 술이 땡겼다. 심지어 2003년에 끊어버린 담배 마저도. 이 영화는 인생의 파도를 제대로 겪어본 사람들을 이렇게 또 흔들어 놓는 힘을 가진 영화다. 파도는 커녕 미풍이나 가끔 불어온 말랑한 인생 경험만 있는 사람들에겐 아닐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짧은 시간동안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목숨을 걸만큼 뭔가에 미쳐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지독한 일이다. 그게 도박이건 무엇이건 간에 말이다. 사는게 소금 안친 계란부침 마냥 밍밍하고 커피에 미원 탄것 처럼 끔찍한 맛이라서 그런가? 이놈의 영화, 다가가서 확 멱살을 잡고 쥐어 흔들다가 놓아주고 포장마차로 끌고 가 맑고 차가운 소주 한 잔, 입에 탁 털어놓으며 씨익 웃어주고 싶다.
조승우, 그에게선 확실히 배우 냄새가 난다. 그 이전의 어떤 역할에서보다 더 그러하다. 마지막에 아귀와 둘이 대사를 치는 장면에서 나는 그가 진정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눈에 힘주고 악쓰거나 목소리를 낮게 깐다고 연기가 되는게 아니라는 너무 뻔한 사실을 꽤 많은 배우들이 놓치고 있지만 그는 아니었다.
내 인생의 파도를 되짚어보니 오, 이런 나는 이미 23살에 죽어 있었다.
다시, 태어나야겠다.
# <눈물>의 조감독, <범죄의 재구성>의 감독이 만든 영화란걸 조금 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야 알았다. 아하, 역시 그랬구나 싶어서 고개가 끄덕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