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것.. 어느순간 떠오르는 생각이라기 보다는 서른 고개를 넘으면서는 그냥 서서히 물들듯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아, 이런게 늙어간다는 것이구나 하는 것. 20대 중반에는 늙는다는 표현 대신에 나이가 든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렸다. 하지만 30대를 넘어서게 되자 나이가 든다기 보다 확실히 늙는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우리 어머니는 대학 졸업하자 마자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셨으니 지금의 내 나이에 이미 학부형이고도 남으셨다. 아마도 나 역시 25~6세에 결혼해서 아이를 바로 가졌더라면 지금 낼모레면 애가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확실히 늙었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것보다 더 무서운건 나의 지난 시절을 돌아보니 20대 후반에는 어떨것이라는 생각과 대강의 그림이 있었을 뿐 그 이후에 대해서 미래의 내 모습은 아무런것도 없었다. 그 과정에서 너무나 처절한 암흑기가 몇번이나 있었으니 머리 속이 백지로 변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 40 언저리의 나를 그려낼수가 없다. 어떠한 그림도 떠오르지 않는다. 미래를 생각해볼 수 없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40언저리는 물론이거니와 40 이후의 그 너머의 나도 모르겠다. 내가 마음에 품은것 조차도 알 수가 없다.

 

직장 생활 같은것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터라 아직도 지금의 내가 낯설기 짝이 없다.

참 오래도록 내 옷이 아닌 것을 입고 묵묵히 그 불편함을 견디는 이런 기분. 팔은 너무 짧아 보기 흉하게 손목위로 올라오고 바지는 길어서 땅에 끌리며 허리는 지나치게 조여와 숨쉬기 곤란한..

 

문제는 이 옷을 벗어던지면 당장은 남루한 속옷차림으로 비바람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이 옷 대신에 내 몸에 잘 맞는 편안한 옷을 입기 위해서는 좀더 인내해야 한다.

 

나는 스무살 무렵, 앞으로 자기가 뭘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어떻게 저따위로 살아가는 것일까.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거나, 혹은 뭘 하고 싶은지는 알아도 그냥 알기만 하고 흘러가듯 생을 허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 나는 그 경멸의 대상, 중심에 서 있다. 일전에도 쓴바 있지만 스물의 내가 서른둘의 나를 경멸하고 있어서 나는 무척 부끄럽고 또한 불편하기 그지없다.

저 시선, 좀 거두어 주면 좋겠는데 그러기에는 내가 참으로 무능력하고 한심하다.

 

늙는다는 것은 점점 더 단단해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세계가 더 단단해져서 다른 무엇이 들어오기가 힘들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물렁해지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물렁해져서 그만 이것저것 마구 섞여 들어오고 그걸 제대로 솎아내지 못해 덤벙거리며 우왕좌왕 하는게 지금의 나다.

 

늙는다는 것이 두렵거나 불편한 이유 중 하나는 아무래도, 결국 또 외롭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외로운 게 제일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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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28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프레이야 2006-02-28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으로부터 십년쯤 후에도 비슷한 심리양상이랍니다. 저도 이십대엔 전혀 몰랐어요. 하지만 전 아직 외로운 감정이 정말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철이 안 들었다는^^

이리스 2006-03-01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 네.. -_-;
배혜경님 / 우와, 외로움을 초월하신게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