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그랬다.
피하지 마. 두렵고 아파도 똑바로 쳐다봐. 그걸 극복하지 못하면 너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어. 지금은 힘들어도 이게 더 나아.
독하게 나 자신을 몰아 세워 두 눈을 크게 뜨고 환부를 들여다보는 훈련을 했다. 잔인하고도 무식한 방식이었다. 그 덕분에 어느 정도 단단한 심장을 갖게 되었다고 자부했다.
한동안 내가 너무 미련스러웠던 게 아닐까 싶어 저런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 까닭에 요즘의 나는 속수무책으로 어느 부분에 대해서 무너지고 있다.
결론은, 잔인하더라도 역시나 심장은 강하게 단련시켜야만 한다는 것. 그것이 나 자신을 위해서도 내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도 더 좋을 거라는 거.
그래서?
나는 그의 결혼사진을 한참 바라보았고, 활짝 웃고 있는 신랑과 신부의 모습을 최대한 무덤덤하게 바라볼 때까지 흐릿한 시야를 닦아 내고 또 닦아 내고 있다. 그 한 장의 사진에 무수한 배경들이 시간의 강을 따라 흘러 가고 또 흘러 간다.
이게 미친 짓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부서져 버릴 것 같다.
의외로 지금 이런 것들만 빼고는 사는 재미가 제법 난다. 깊이 박힌 미세한 조각들이 움직일 때마다 끔찍하게 아프지만, 그것 때문에 못살 정도는 아니다.
왜, 못살겠는가. 누군가는 몸 안에 수술 가위나 거즈, 혹은 못이나 칫솔을 넣고도 잘만 살지 않나? 마음 안에 바윗덩이가 있더라도 사는 건 사는 거다.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살아갈 것. 그것이 지금까지의 삶을 이끌어 오면서 한 무수한 선택에 책임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