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그동안 왜 네가 보낸 문자만 내 전화기가 놓쳐버리는지 알지 못했다. 혹시나 싶어서 고객센터에 물어봤는데 내가 너의 번호를 스팸등록해 두었기 때문이었다는 이유를 알고 나니 잠시 부끄럽더라. 나처럼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상담사는 스마트폰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실수로 이런 일을 겪는 사람들이 제법있다고 위로해 주었다.

 아빠가 겪은 일은 또 어떻고. 전원 버튼이 잘 눌러지지 않아 A/S를 받으러 갔다가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던 사진과 자료들을 다 날려버렸다. 역시 우리 가족은 아날로그형으로 살아야 하는데 수준에 맞지 않는 디지털형으로 살려고 하니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는구나.

 

 어쨌든 이젠  문자는 마음대로 주고 받을 수 있고, 시간만 잘 맞추면 통화도 할 수 있지만 우리의 대화가 이 디지털 세상에서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아쉬움이 마음에 남더구나. 그래서 사실은 너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다. 허나 네가 편지를 받을 수는 있지만 부치지는 못한다는 사실에 또 직면하면서 어느쯤에선가 절충을 해야했고 그래서 찾아낸 것이 오래 묵은 알라딘의 이 서재였다.

 

 선배들이 수능이 끝나던 12일 저녁부터 벌써 고3 대접을 받았다며 (학교 식당에서 가장 먼저 저녁밥을 먹었다며 신나했었지.) 즐거워하던 아이야. 고3이 쓰던 자습실로 옮기고, 주말 기숙사 귀가 시간도 앞당겨졌고, 집에도 한 달에 한 번 의무외박일에만 올 수 있다고 했지.(그래서 주말마다 너를 데리러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니 기뻐해야 하는건가). 본관 앞 디데이 표시판도 너희들의 입시 날짜를 기준으로 바뀌었더구나.

 

 어쩌면 지금이 가장 긴장되겠구나. 너의 시간들이 아직은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순간,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는 때가 오기 전이니.

 여름아. 우리가 여기까지 오면서 겪었던 일들을 생각해 보자. 네가 지금 여기 서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니. 고등학교 입시 방법을 거의 다 경험했던 파란만장했던 이 년 전이 떠오르는구나. 고등학교 입시 컨설턴트를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 일들이 우리에게 의미없는 시간들이 아니었음을 너도 나도 기억하고 있지?

 

 걸어온 길이 걸어갈 길을 만들더구나. 너무 멀리 꿈꾸지 말고 그저 오늘 하루를 살자. 하루치 걸음을 내딛고 난 다음에는 후회하지도 말고. 그렇게 가다보면 어느 순간 그 날이 우리 앞에 와 있을 거다.

 

어제 내린 눈이 한 낮의 햇볕에 다 녹아버렸더라. 바람은 차갑지만 햇살이 바람을 이기는 걸 보면서 너에게도 이 햇살 한 조각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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