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틈틈이 눈발이 날린다. 아이들은 창 밖을 한 번 보다가 내 얼굴 한 번 보다가, 도무지 수업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 하긴 나 역시 집중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제대로 펑펑 내렸다면 나는 그까짓 수업 한 시간, 없는 셈 치고 운동장에 뛰어나가 아이들과 함께 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가끔 눈이 굵어지기도 했지만 이내 햇살이 비치고 눈은 녹아 운동장만 축축해졌다.

 

그러니까 40일 남았다.

한 일은 여행사의 패키지 상품에 계약금을 140만원 넣은 것 밖에 없다.

아직 남은 일은 산더미다.

 

그 중에 가장 큰 일은 봄이의 대학 수시 합격자 발표겠다. 결과와는 상관없이 우린 여행을 떠나겠다는 마음으로 에약했지만, 솔직히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떠나고 싶다. 수능 점수를 기대할 것 없는 우리로서는 정시는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있기에 수시 발표가 나는 12월 8일이 모든 것을 결정 짓는다. 아니, 3차 추가합격자 발표가 나는 18일까지 마음을 졸여야 하나?

 

수시 여섯 군데를 지원했던 지난 9월, 자소서를 다섯 개 썼다. 질문 세 개는 모든 대학이 같았으나, 네번 째 질문은 학교마다 달랐고, 앞 쪽 질문 세 개도 학교마다 조금씩 고쳐써야 했으니 나는 머리가 아팠다. 새벽까지 노트북 앞에 앉아 씨름을 했다. 아이가 대충 쓴 글을 내가 다시 다듬었으니 그건 '자소서'가 아니라, '엄마소서' 쯤 되는 글이었다.

그런데 다섯 군데 자소서를 냈던 학교는 모두 1차도 통과하지 못하고 불합격 소식을 들어야했다. 어이없게도 면접까지 보고 온 학교는 오직 생활기록부만 제출했던 학교였다. 심지어 과도 약간은 보험처럼 마지막에 부랴부랴 선정해서 지원했던 거였다. 사람 일은 모를 일이다. 이젠 그거라도 합격해주면 감사하겠다는 간사한 마음이라니...

 

알라딘은 봄이의 첫 그림책 '무지개 물고기'를 구입한 곳이다. '무지개 물고기'를 읽던 아이는 시를 쓰고, 자서전을 졸업 작품으로 내며 고등학교 삼 년을 마무리하겠다는 아이로 자랐다. '무지개 물고기'는 조카의 책장으로 이사를 한 지 오래다.

 

남미 여행은 갑작스런 결정이었다. 입시가 끝나면 여행 가자 했고, 겨울이라 추우니 따뜻한 곳이 좋겠다 했고, 호주나 뉴질랜드 항공권을 알아보려고 지난 영국 여행 항공권을 구입했던 여행사를 기웃거리다 남미 단체 배낭 상품이 새로 나옸다는 것을 알았고, 아이와 내 바램의 공통 분모가 많길래 덥석 계약했다.

우리는 밤하늘 쏟아지는 별이 보고 싶고, 추운 건 싫고, 자연이 아름다왔으면 좋겠고, 그다지 위험하지 않았으면 했고(그건 파리 IS테러가 일어나기 전 계약한 것이라 온 세상이 불안정한 지금의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는 조건이긴 하다...), 그런 사소한 꿈을 다 이룰 수 있는 여행이 있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 열두 시간, 거기서 페루의 리마까지 다시 열다섯 시간 비행을 견뎌낼 수 있을까. 두렵지만 닥치면 어떻게 되겠지. 작년 런던까지 열두 시간 비행도 어찌어찌 견뎠는데.

이번에는 비행시간만 두 배가 넘는다. 환승 시간도 여덟 시간이나 되고. 그래도 우리 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어쨌든 우리는 남미로 떠난다. 2016년 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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