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 오브 모나코
올리비에 다한 감독, 니콜 키드먼 외 출연 / 데이지 앤 시너지(D&C)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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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 키드만 주연의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를 봤다. 왕비 노릇도 쉽지 않은 모양. 쉬운 역할이 어디 있을까만은. 자유롭고 도전적인 열정이 청년의 미덕이라면 선택한 역할에 대해서 책임을 다 하는 것은 그러니까 노릇을 잘 해내는 것은 중년의 미덕인듯. 아니다, 바꿔말하면 노릇을 못 해내면 ㅈ되는 게 중년의 비애인가;; 쉽지 않다. 쉽지가 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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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
박찬경 감독, 김금화 외 출연 / 올라잇픽쳐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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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나 '이상한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참으로 박절한 것 같다. 그 '이상한 것들'이 때로 자기네 삶에 도움을 주더라도 그때 뿐. 그러나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고, 가련한 영혼을 쓰다듬고 위무할 수 있는 '위대한 자격'은 오로지 극도의 아픔을 통과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영광인지 모른다. 야속한 아이러니지만. 연극판에 있는 친구에게 들은 얘기로는 연극하는 사람들 중 무속에 관심 있는 이들이 많고, 실제로 무속제의 같은 것을 연구하는 이들도 상당하다고 한다. 이승의 궁극적 과업을 이루기 위해 모천(母川)으로 귀환하는 연어 떼처럼 그 또한 예인으로서의 일종의 귀소본능 같은 것인지 모른다.

 

영화가 끝날 즈음 '친구들이 굿보러 가자 해서 갔더니 영화를 하고 있더라'는 천경자 시인의 말이 자막으로 뜬다. 그리고 영화는 마치 주객이 화합하는 굿판의 마지막처럼 스탭과 배우들과 카메라 장비와 셋트장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기는 것으로 끝난다. 그제야 알았다. 이 영화가 김금화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들을 위한 애틋한 진혼굿이었음을. 엔딩곡으로는 무가(巫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부르는 이가 <어어부프로젝트>의 백현진이다. 무가와 백현진이라니, 어울린다.

 

영화 보는 내내 많이 울었다. 단지 종교적이고 초월적인 광경을 목도할 때 문득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게 되는 그런 심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간의 의지로는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무조건적이고도 폭압적인 절대자의 룰에 처절하게 순종해서 살아가면서도 그것이 마냥 패배적이고 수동적인 삶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가운데서도 고결한 미학적 삶의 완성을 이루어내는 김금화 할머니로부터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 같다. 깜깜한 영화관에서 눈물 닦으며 밖으로 나오니 세상은 온통 밝고 따사로운 초봄 햇살로 와글와글했다. 내가 크리스찬이었다면 아마도 이런 기분을 예배 마치고 나온 기분이라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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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Pierre Deladonchamps - Stranger By The Lake (호수의 이방인)(지역코드1)(한글무자막)(DVD)
Various Artists / Strand Home Video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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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상가에선 악기들만 파는 줄 알았지 '서울아트시네마'라는 영화관이 있는 줄도 몰랐다. 훌륭한 친구를 둔 덕분에 <호수의 이방인>라는 프랑스 영화를 거기서 봤다. 영화는 사실 평범했다. 에로스와 섹스, 폭력과 살인, 도주와 추격으로 흘러가는 전형적인 3류 스릴러. 그럼에도 이 영화가 결코 스테레오타입에 머물 수 없는 결정적 지점은 공간적 배경 설정에 있었다. 사건이 펼쳐진 호숫가는 남성 전용 누드비치로 등장인물들이 경찰을 제외하고는 모두 발가벗은 남자들이었던 것. 평범하다 못해 진부하고 식상하기까지 한 줄거리가 퀴어적 설정 아래 낯설고 신선한 이야기로 변모했다.

 

이 영화는 기존의 익숙한 성역할 체계가 전도된 가상 사회를 설정하여 가부장제 사회의 모순을 보여주는 페미니즘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게르드 브란튼베르그, 황금가지)을 연상시킨다. <이갈리아의 딸들>의 퀴어 버전 쯤 되려나.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을 고전주의적 구도로 잡아내되 그것을 점묘법이라는 새로운 화법으로 묘사함으로써 미술사에 길이 남을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낸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떠올려 보는 것도 좋겠다. 이 영화의 예술적 성취는 아마도 그 즈음이라고 생각된다.

 

호수의 이방인은 누구일까. 평화로운 호숫가에 난데없이 나타나 살인을 저지른 옴므파탈 사이코패스인가. 살인이든 동성 섹스든 누드비치 그 세계 나름의 질서에 권위를 위시하며 함부로 간여하는 경찰인가. 아니면,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기이하고 색다른 영화적 체험으로 받아들인 나 자신인가. 아, 솟구치는 질문들로 머릿속이 기분좋게 헝클어지는 이런 퀴어 영화가 앞으로 더욱 더 많이 나오기를. 모두가 식상해져버릴 때까지 계속해서 나오기를. 모두가 식상해져버리는 순간 퀴어 영화는 더 이상 장르로서의 의미를 잃고 사라져 버리겠지만, 사실상 퀴어 영화의 최종목표는 자기소멸, 바로 그 지점에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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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1985
정지영 감독, 이경영 외 출연 / 루커스엔터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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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를 보고나서 난데없이 소설 <칼의 노래>의 이순신이 떠올랐다. <남영동 1985>의 이근안과 <칼의 노래>의 이순신은 숭고미마저 느껴지는 극단적인 충직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놀랍게도 겹쳐진다. 그들(무인들이라고 해야 할까)은 근본적으로 세계를 부정하지 않는다. 데카르트처럼 회의하지도, 사르트르처럼 구토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세계 자체에 대해서 무심하다. 그것이 뼛속 깊은 무력감과 냉소를 동반하는 무심함이든, 순수한 무지에서 비롯한 무심함이든. 내가 왜 <칼의 노래>에 완전히 빠져들 수는 없었는지, 무사가 칼을 휘두르듯 쳐내려가는 그 짧은 호흡의 문장들이 왜 끝내 껄끄러웠는지, 오늘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확실히 알았다. 그들에게는 신경증자의 불안 같은 게 없다. 설령 있더라도 그것은 자기로부터 소외되고 억압된다. 아, 그러고 보면 불안이란 얼마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2 고문을 비롯한 신체형이 퇴조하고 그를 대신하여 감금형 및 노동형이 등장했던 게 근대 이후 유럽의 새로운 처벌 문화였음을 떠올려보면, 한국은 80년대에도 여전히 근대 세계에 진입하지 못한, 무늬만 근대인 나라였던 셈이다. 영화가 이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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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선
지민 감독, 지민 외 출연 / 이오스엔터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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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를 쳐도 네이버 연관검색이 되질 않는 비운의 EBS국제다큐영화제가 오늘 조용히 막을 내렸다. 몇 편 못 봤지만 그 중에서도 인상 깊은 작품은 지민 감독의 <두개의 선>. 영화는 동거 중인 커플 사이에 갑자기 아기가 들어서면서 벌어지는 삶의 새로운 국면들을 경쾌하게 그러면서도 문제적으로 보여준다. 결혼 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다큐이면서 동시에 감독 자신의 소중한 출산 기록이기도 한 이 작품을 본 소감이 마냥 개운치만은 않다. 자유롭게 상상력을 펼쳐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일수록 오히려 제도가 요구하는 표준적 삶의 형태로부터 벗어나기가 쉽지 않음을, '다큐'라는 매체가 '리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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