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상화 속에
그만 실수로 수염을 그려 넣어버렸으므로
할 수 없이 수염을 기르기로 했다.
문지기를 고용하게 되어 버렸으므로
문을 짜 달기로 했다.
2.
일생은 모두가 뒤죽박죽이다
내가 들어갈 묘혈(墓穴) 파기가 끝나면
조금 당겨서라도
죽을 작정이다.
정부가 생기고 나서야 정사를 익히고
수영복을 사고나면 여름이 갑자기 다가온다.
어릴 때부터 늘 이 모양이다.
한데
때로는 슬퍼하고 있는데도 슬픈 일이 생기지 않고
불종을 쳤는데도
화재가 발생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하여 개혁에 대해서 생각할 때도
바지 멜빵만
올렸다 내렸다 하고 있는 것이다.
-테라야마 슈우시(寺山修司), 나의 이솝 中에서
슬프다. 나의 무능이. 용기가 없다는 것. 매사에 언제나 두렵고 자신이 없기 때문에 결정적 판단을 타인에게 위임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려 든다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가장 큰 무능일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잘 살아가는 것 같다. 나름의 뚜렷한 신념과 주관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미추를 구분하며 기로에서 어느 하나를 명쾌하게 선택한다. 나는 늘 이도저도 아닌데. 언제나 우물쭈물하면서 겁에 질린 듯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사이에 있으려고만 하는데. 유보를 위해 유보하고 회피를 위해 회피하며 시간을 벌기 위해 시간을 쓰는 식으로... 욕망은 과하나 용기가 부족하다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가장 큰 무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