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 선생 말씀을 오마주하면 블로그질이라는 것은 배고픈 거지 하나 구원 못한다. 굳이 효용을 논하자면 알라딘 매출액에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미미한 부분을 제외하면 블로그질이란 도무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블로그질을 왜 하나. 바로 그 쓸모없음으로 인해서 비로소 (그 본연의 의미에 가장 충실한) '놀이'라고 하는 가치가 생기기 때문이다. 결과물이 타인에 의해 어떻게 전용되든 상관없이 적어도 나 자신에게 블로그질이란 그 자체로 순수한, 그 자체가 목적인 즐거운 놀이이다.

 

그러나 언젠가 미래의 배우자에게도 이 공간을 무람없이 개방해서 내 노는 모습을 구경하게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단지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도 침범할 수 없는 최소한도의 독자적인 영역을 보장받고 싶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가족 간에도 좌변기에 앉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에서 공개하고 싶지 않은 것일 뿐. 좌변기라는 표현이 너무 자학적인가. 그럼에도 나로서는 여전히 자꾸만 독서가 오입질로, 글쓰기가 배설행위로 느껴지는 걸 어쩔 도리가 없다. 둘 다 행하기는 행하되 그러면서도 늘 자랑스럽지 못하고 떳떳하지 못하고 매번 부끄럽다. 읽고 쓰면서 그렇게 항상 죄의식을 느낀다. 죄의식을 느끼기 때문에 쾌락이 배가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읽고 쓰는 일이라는 게, 현실적인 삶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하등 도움이 안 되고 나로서는 심지어 생활에 방해가 되는 측면까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즉각적인 쾌락을 주기에 절제해야겠다고 생각할수록 더 큰 유혹에 넘어가 자꾸만 탐닉하게 되는 것 같다. 지금도 이걸 쓰고 앉아 있느라고 퇴근을 늦게 할 판이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무래도 블로그질이 생활을 위기로 몰아넣지 않도록 윤리준칙을 세워야겠다- 도저히 잠자코 있을 수 없을 경우에만 간략하게 말할 것. 짧고 강하게 쾌락을 즐기려는 게 그 목적이다. 그렇다면 퇴근 시간을 미뤄가며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지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태인가. 뭐 꼭 그런 거 같지는 않은데? 역시 예상했던 대로 글러먹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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