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화예술, 악의 꽃에서 샤넬 No.5까지 한길컬처북스 24
고봉만 외 지음 / 한길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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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잡탕 같은;; 모양새이기는 하지만 프랑스 문화 예술 전반에 관련된 태그 수집 용도로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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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에릭 로메르 감독, 마리-크리스틴 버럴트 외 출연 / 무비스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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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앙리 레비와 프랑수아 지루의 대담집 <남자와 여자, 사랑에 관한 같고도 다른 말들>(일레인 사이올리노의 <프랑스 남자들은 뒷모습에 주목한다>에서 재인용- 뒤늦게 원서 번역본과 대조해보니 뉘앙스가 많이 다르긴 하나 고치자니 애매해서 그대로 둠)에서 레비는 예쁜 여자보다 못생긴 여자들을 유혹하기가 더 어렵다는 주장을 펼친다. “예쁜 여자는 유혹에 익숙하죠. 경험도 있고 머리 회전도 빨라요. 유혹하는 수법이나 절차에 대해서도 훤합니다. 작업이 들어올지 말지 금방 알아채죠. 반면 못생긴 여자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에 허둥대며 당황스러워합니다. 그리고 일단은 못 믿겠다는 듯이 의혹의 눈길을 보내면서 자기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것이고 누군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려 한다고 중얼거리죠.” 이에 대한 프랑수아 지루의 현답이 명쾌하다. “매력 없는 여자를 유혹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진정한 난봉꾼다운 행동이고 난봉꾼에게 가장 중요한 모험이겠군요.”

마찬가지로 팜므 파탈에게 있어서는 경직된 도덕주의자를 유혹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팜므 파탈다운 행동이고 팜므 파탈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모험이겠다. 이 영화에서는 모드라는 매력적인 여자가 고지식한 카톨릭 신자인 주인공 장 루이와 한 방에서 밤을 지새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결국 모드의 유혹은 실패로 끝난다. 아름다운 모드가 발가벗고 누워서 그윽하게 쳐다보는데도 장 루이는 끝내 자신이 정한 도덕률을 지킨다. 짐짓 평온하고 냉정한 척하면서, 그러면서도 모드의 심기를 건드리지는 않으려고 애써 눈치를 살피면서- 온몸에 담요를 둘둘 말고 뒤뚱거리는 장 루이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눈물겹다. 

영화 초반에 장 루이의 친구 비달은 이런 얘기를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역사가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에 아주 회의적이야. 그렇지만 내기를 한다면, 나는 역사에 의미가 있다는 것에 걸어. 그러니까 나는 파스칼적인 상황에 처해있는 거야. <가설a: 사회와 정치에는 의미가 없다>, <가설b: 역사에는 의미가 있다>. 나는 a보다는 b가 더 맞을 거라고는 전혀 확신하지 않아. 그 반대가 더 맞을 거야. b가 참이 될 확률이 10% 정도이고, a가 참이 될 확률이 90% 정도라고 가정을 해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b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 왜냐하면 역사에는 의미가 있다고 하는 그 가설만이 나로 하여금 제대로 인생을 살게 만들거든. (...) 나는 내 인생과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b를 선택해야만 해. 내가 틀릴 확률이 90%이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아.”

비달과 같은 많은 이들이 ‘나로 하여금 제대로 인생을 살게 만드는’ 쪽에 배팅할 것이다. 참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실존적 선택과 그 선택에 대한 충실성만이 중요할 뿐. 유혹 앞에서의 결단 역시 마찬가지일 터. 설령 그러한 선택이 보기에 따라서는 우스꽝스런 자기기만이며 허위와 위선에 불과할지라도- 장 루이는 그날 밤 ‘나로 하여금 제대로 인생을 살게 만드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주관적 신념이 있었고 내적 갈등 속에서도 결국에는 그것을 거스르지 않는다. (장 루이가 보여주는 이러한 자기기만적 태도는 영화 말미에 모종의 반전 속에서 또 한번 등장한다) 신념을 고수하는 인간은 고수한다는 그 자체로 충분히 존중받을 만하다. 온몸에 담요를 둘둘 말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양새가 다소 폼은 안 날지언정. 보는 이를 피식거리게 만들면서도 그것이 결코 조소로 이어질 수는 없는 어떤 애처롭고도 고귀한 지점이 장 루이에게는 분명, 있다.

 

▲ 아름다운 모드. 물론 세상에 그냥 웃는 여자는 없다.   


앞서 재인용한 책에서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인생은 유혹이죠. 문명화는 유혹입니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건 유혹입니다. (...) 프랑스인들은 유혹에 대해 좀 더 많이 생각하고 문학 속에서 탐구하죠. (...) 프랑스에서는 관계를 최대한 에로틱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사람이든 정치든 일이든 상관없이 모든 관계가 에로틱해집니다. 미묘하게 야릇해지죠. 그렇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이런저런 책을 들춰봐도 확실히 ‘유혹’은 프랑스 문화에 있어서 핵심적인 키워드인 듯. 꼭 연인 사이가 아니라도 이성 앞에서 누구나 유혹을 시도하고 유혹을 당하면서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모든 남녀 사이에 끈끈하고 농밀한 ‘밀당’의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이 이 나라 사람들의 특징인가 보다. 성을 무식하게 억압하기보다는 이렇게 적당히 윤활유처럼 흘러다니도록 하는 편이 차라리 더 자연스럽고 지혜로운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들이 우리를 보면 얼마나 화들짝 놀라려나. 이 무슨 승려들의 나라인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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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디자인 - 미의식이 만드는 미래
하라 켄야 지음, 이규원 옮김 / 안그라픽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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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디자인>에 이어 읽었다. 여기서도 하라 켄야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디자인은 정신을 구현하는 강력한 시각적 수단이며 우리는 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사상을 깨우치고 미의식을 확장할 수 있다는 것. 원제가 <일본의 디자인>인 만큼 이 책에서는 섬세, 공손, 세밀, 간결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일본 고유의 감각 자원이 갖는 미래적 가치에 주목하고 이를 어떻게 산업화하여 운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주로 모색하고 있다. 자국의 문화예술적 전통을 가능케 한 독자적 미의식이 세계적 문맥 속에서 창조적 가치를 낳을 수 있는 중요한 원천 기술임을 자각하고 그 구체적 활용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나라 디자인 업계 종사자들에게도 충분히 자극이 될 만한 내용이겠다. 부러운 일이다. 일본에 이런 디자이너가 있다는 건.

 

한때 조선이라는 나라에 빠져들어 그 나라의 문화, 역사, 예술, 사상, 전통, 생활사 등등 각 방면의 책을 열심히도 읽었었다. 늘 그렇듯 얼마 지나지 않아 주마간산으로 끝나버리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그때 분명히 느꼈던 것 한 가지는, 잘은 몰라도 조선이라는 나라가 보통 나라(?)는 아닌 것 같다는 실로 막연한 충격이었다. 잘은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이 나라에는 뭔가가 있다. 함부로 가늠할 수 없는 묵직함이 있다. 심오한 깊이가 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어쩐지 근대화의 폭우 속에서 사라져버린 비운의 아틀란티스 제국처럼 느껴졌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라 켄야의 제안처럼 우리도 우리의 과거에서 얼마든지 오래된 미래를 발견해내어 이를 현대적으로 세련되게 응용해 볼 수 있을 텐데. 제국은 여전히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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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는 아파트 옥상에서 누가 투신자살을 했다. 경찰차가 도착하고 시신이 수습되는 동안 산 자들의 호들갑으로 주변이 잠시 떠들썩하였으나 이내 모든 상황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게 되었다. 어딘가를 향해 그토록 맹렬한 속도로 돌진해본 것은 그로서는 아마도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리라. 그가 온몸을 내던져 지구상에 최후의 방점을 찍은 곳은 놀이터 구석이었다. 한때 시신이 누워있던 그곳에서 이제는 꼬마들이 깔깔대며 논다.

 

흔히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허락한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거야말로 선뜩한 얘기가 아닌가. 신의 매서운 눈길에 의해 우리 각자 심신의 내구력이 정밀하게 측량되어 최고치의 형벌이 저마다에게 고유한 값으로 주어진다니, 이 얼마나 잔혹한 놀이의 법칙인가. 자살은 이 가혹한 놀이판을 스스로 걷어차 버리는 일이다. 초유의 결단이다. 대-우주적 반칙이다. 궁극의 저항이다. 신을 향해 인간이 지어보일 수 있는 가장 매서운 비웃음이다.

 

상황이 불리할 경우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시작된 이 잔혹한 놀이를 자진하여 종결시켜 버릴 수도 있다는 하나의 가능성을, 아울러 우리가 처한 이 세계라는 것이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얼마든지 퇴장할 수 있는 열린 계(界)라는 사실을, 그날 아침 그가 내 앞에서 명쾌하게 실증해 보였다.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뎌라. 여의치 않으면 죽어라. 죽음은 금기가 아니다, 라고 하얀 천에 덮인 그의 죽음이 선언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어떤 의미에서 영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는 위엄 있게 이 놀이를 거부한 것이니까. 죽음으로써 신 앞에 당당히 의사 표현을 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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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4 19: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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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4 23: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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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9 18: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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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구경 - 엿보고 싶은 작가들의 25개 공간
행복이가득한집 엮음 / 디자인하우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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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생활하는 물리적 공간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단순히 환경미화 차원을 넘어선. 공간은 그곳을 점유한 집단의 가치와 철학과 사고관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되려 사람을 포박하고 지배하기도 한다. 우리는 생각하는대로 살기도 하지만 사는대로 생각할 때가 더 많고, 그런 면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곧 어떤 방식으로 구축된 물리적 환경 속에서 어떤 동선에 따라 움직이며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최근 살펴본 인테리어 관련서 중에서 자극을 가장 많이 받은 책이다. 인테리어에는 정답이 없고, 다만 일상의 미의식을 유지하며 각자의 삶의 방식과 취향에 따라 소신있게 고유의 양식을 개척해나가면 될 뿐이라는 걸, 25인 예술가들의 작업실 풍경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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