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감방 같은 곳에 갇혀 있다 퇴근하면 언제나 지하철보다 버스를 타고 싶다. 밖을 구경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버스를 타면 내려서 꼬박 한 시간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날마다 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정말, 간절하게 창밖을 구경하고 싶은 날에만 버스를 탄다. 그런 날은 버스를 타는 내내 고개가 창밖으로 휙 돌아가서 내림 버튼을 누를 때까지 돌아오질 않는다. 창밖을 보며 내가 주로 하는 일은 거리에 나붙은 간판 글씨를 읽고, 건널목을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관찰하고, 어스름한 저녁 하늘의 미묘한 색조를 감상하는 것이다. 이 모두가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한 활동이다.
406번. 간절한 그날이면 내가 타는 버스이다. 이 버스는 시청이 가까워져 오기 시작하면 고가도로로 진입해서 명동에 이를 때까지 하늘을 난다. 탑승객으로서는 이 지점이 가장 흥분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가뿐하게 지상을 초월한 버스 안에서 조심스레 창밖을 굽어보면 도시는 이미 도시의 형상을 벗어나 있다. 그것은 차라리 신이 그린 만다라라고 해야 할까. 쉴 새 없이 깜빡이는 색색의 네온사인에서, 꼬리를 문 차량의 전조등에서, 거리 구석마다 촘촘히 박힌 가로등에서- 일제히 솟구치는 불빛, 불빛, 불빛!
넋놓고 불빛들을 구경하고 있다보면 그런 생각도 든다. 이 도시에서 밥 벌어먹고 사는 수많은 시지푸스들의 노동이 밤마다 찬란한 불빛으로 점화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그렇지 않다면 도시의 밤이 이다지도 눈물겹게 아름다울 이유가 없잖아. 그렇다면 아무래도 아까 했던 말을 조금 수정해야겠다. 이 밤을 화려하게 수놓은 도시의 무늬들은 신이 그린 만다라라기보다는 시지푸스의 바위가 굴러간 자국 같은 것이라고. 퇴근 후 피곤에 절어 406번 버스를 타고 고가 도로를 날 때면 문득 뭉클해진다. 오늘 나의 사소한 피곤 또한 갖가지 색깔의 피곤들과 한데 어우러져 저 멀리서 작게 반짝이고 있는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