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소설가 만들기
오에 겐자부로 지음, 김유곤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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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는 일생의 세부적인 부분들을 모두 인용으로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책 읽기를 소중한 요소로 삼았다고 고백하며 이런 말을 적고 있다. “본래 말이란 타인의 것이다ㅡ 이러한 단언이 지나치게 과격하다면, 적어도 그것을 타인과 공유하는 것이다ㅡ. 말의 바다의 공유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소쉬르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랑그’는 생각할 수도 없고, 개인에 의한 구체적인 발어로서의 ‘파롤’도 있을 수 없다.” 

실제로 오에는 타인의 말에 중독됨으로써 자신이 그 사람으로 대체되는 경지(그래서 자신의 대부분이 타인의 것으로 ‘인용’되어질 수 있는 경지), 심지어는 자신이(또는 자신의 문체가) 완전히 그 사람의 것(또는 그 사람의 문체)으로 잠식되어버리는 경지까지도 긍정적으로 보는 듯하다. 

오에 자신도 소설을 쓰는 내내 3년을 단위로 하여 탐독의 대상을 교체해 왔다고 하면서 그의 경우에는 대상이 블레이크, 단테, 사르트르, 엘리엇 등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오에는 탐독의 대상이 교체되면서 정서의 기조라든지 소설 문체상에 변화가 오는 점에 대해서도 별다른 거리낌 없이 말하고 있는데, 타인의 문체에 영향 받는 것을 의식적으로 기피하던 나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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