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 문학과지성 시인선 302
김명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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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미용실

                                              김명인

 

늦은 귀가에 골목길을 오르다 보면
입구의 파리바게트 다음으로 조이미용실 불빛이
환하다 주인 홀로 바닥을
쓸거나 손님용 의자에 앉아 졸고 있어서
셔터로 가둬야 할 하루를 서성거리게 만드는
저 미용실은 어떤 손님이 예약했기에
짙은 분 냄새 같은 형광 불빛을 밤늦도록
매달아놓는가 늙은 사공 혼자서 꾸려나가는
저런 거룻배가 지금도 건재하다는 것이
허술한 내 美의 척도를 어리둥절하게 하지만
몇십 년 단골이더라도 저 집 고객은
용돈이 빠듯한 할머니들이거나
구구하게 소개되는 낯선 사람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소문난 억척처럼
좁은 미용실을 꽉 채우던 예전의 수다와 같은
공기는 아직도 끊을 수 없는 연줄로 남아서
저 배는 변화무쌍한 유행을 머릿결로 타고 넘으며
갈 데까지 흘러갈 것이다 그동안
세헤라자데는 쉴 틈 없이 입술을 달싹이면서
얼마나 고단하게 인생을 노 저을 것인가
자꾸만 자라나는 머리카락으로는
나는 어떤 아름다움이 시대의 기준인지 어림할 수 없겠다
다만 거품을 넣을 때 잔뜩 부풀린 머리끝까지
하루의 피곤이 빼곡히 들어찼는지
아, 하고 입을 벌리면 저렇게 쏟아져 나오다가도
손바닥에 가로막히면 금방 풀이 죽어버리는
시간이라는 하품을 나는 보고 있다!

 

밤늦도록 불켜진 미용실은 짠하다. 꼭 조이미용실이 아니라도. 8년 쯤 전이겠다 나도 미놀타로 꼭 이런 미용실을 찍었었는데 뒤적뒤적 찾아보니 내가 찍은 우리 동네 미용실은 구찌미용실이로구나. 왜 밤늦도록 불켜진 미용실 상호는 조이 아니면 구찌인가. '변화무쌍한 유행을 머릿결로 타고 넘으며 갈 데까지 흘러'가 보기에는 그 상상력이 너무도 소박하여 자못 위태로운 상호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면 더 짠하다. 8년이 지난 지금 구찌미용실은 진즉에(당연히,라고 까지는 하지 않겠다) 망했고 미놀타 역시 급전을 마련하느라 팔아버린지 오래다. 하 수상하기도 하다 나도, 시간이라는 하품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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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6-30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년 전에 '급전' 마련을 이유로 미놀타를 팔았다는 사연은, 마치 영화의 한장면처럼 들리네요.

수양 2014-06-30 18:02   좋아요 0 | URL
크 그닥... 영화 같지는 않았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