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발붙였다가는 금전적으로 패가망신할 만한 곳에 한 번 가보자.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작당하여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음식점에 가보기로 했다. 폭풍 검색 끝에 도착한 곳은 어둡고 조용하기가 중세 수도원을 방불케 하는 어느 일식당이었다.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기모노를 입은 아가씨들이 일제히 소프라노 목소리로 맞아주었다. 어찌나 친절하던지 내일이면 가부키 화장까지 할 태세였다. 메뉴판에서 가장 저렴한 축에 드는 스시 코스 요리를 주문. 이윽고 식사가 시작되었는데

 

아, 그것은 참으로

 

고독하고 탐미적이며 길고 긴 식사였다. 배를 채운다기보다는 구도하는 자세로 미각을 연구했다고 하는 편이 옳으리라. 셰프님이 흡사 선가의 화두와도 같은 스시를 한 점씩 건네주실 때마다 모종의 의식을 거행하는 기분으로 감격스럽게 받아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홀쭉해진 지갑을 어루만지며 좀 허탈했던 건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홀연히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유쾌함을 넘어선 깊은 감동을 음식에서도 느낄 수 있다니! 맛집을 유람하는데 월급의 대부분을 털어 넣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었다. 그들은 소풍 끝내는 날 천국에 가서 세상의 모든 진귀한 음식을 맛보았노라고 으스대며 말하겠지. 확실히 그건 정말 자랑할 만한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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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9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3-09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3-03-09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감격하는 기분으로 한점식 받아 먿는 것은 도무지 성에 차지 않는지라...^^

수양 2013-03-09 16:26   좋아요 0 | URL
글쵸... 역시 2차를 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