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은 꽃받침이 없다. 잔털도 가시도 없다. 꽃잎은 층층이 여러 겹이 아니라 딱 암수술을 감싸 보호할 수 있을 정도로만 거느린다. 거추장스런 꾸밈을 삼가고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로만 형태를 구비하여 꽃의 보편적 본질에 충실하기로 작정한 듯하다. 줄기는 고구마 대처럼 곧고 힘차며 밑으로 갈수록 굵어져 아래쪽은 어른 새끼손가락 정도가 된다. 아무튼 귀족적 미니멀리즘의 미학이랄까, 그런 게 이 꽃한테는 있다. 며칠 전 꽃집에서 진홍빛 튤립 세 송이를 데려와 화병에 꽂아놓았다. 한껏 부풀어 오른 개화 직전의 꽃봉오리는 풉 터지려는 웃음을 애써 참고 있는 모양새다. 그동안 몹시 굶주렸던지 첫날 밤 셋이서 물을 1/4컵 가까이 마시더니 이틀 만에 깔깔대며 나란히 활짝 피었다. 그러나 튤립에게 '활짝'이란 아무리 과해도 밥공기만큼 만이다. 시들어갈 때조차도 각각의 꽃잎들은 암수술을 향해 둥글게 오므린 자세를 유지한다. 생의 마지막까지 절도를 잃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