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만 있으면 서울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신념하에 오늘 밤 급기야 청와대 진입을 시도했으나 아쉽게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전경이 길을 가로막지만 않았어도 나는 힘차게 페달을 밟고 청와대 집무실로 뛰쳐들어가 딱 정수기 물 한 잔만 얻어마시고 나올 참이었다. 전경의 말에 따르면, 이 길은 밤 여덟 시만 넘으면 대통령 말고는 아무도 못 지나다닌다는 것이었다. 나는 통행권을 보장받지 못한 서울 시민으로서 경악과 분노와 울분과 비애에 휩싸여 핸들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클레. 그러니까 내가 클레라는 재즈바를 발견한 것은 청와대 진입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 심적 공황 상태에 빠져있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클레는 삼청동 어느 후미진 골목 귀퉁이에 참으로 교묘하게 숨어 있었다. 간판은 손톱만 했고 입구는 담벼락의 일종으로 착각할 여지가 다분했다. 클레는 뭐랄까, 마치 보호색으로 위장한 애벌레 같았달까. 왠지 밤마다 무언가 은밀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재즈바였다. 과거 유신 시대에는 재야 지식인들의 비밀결사모임 장소로 애용되었으며, 90년대 말에는 사이비 종교 단체의 변태적인 제의가 벌어지곤 했습니다- 만약 클레의 역사를 궁금해하는 내게 재즈바 사장님이 다가와 이렇게 말해주었더라면 모조리 믿었을 것이었다. 

나는 청와대 정수기 물을 얻어먹는 대신, 은밀하고 불온하고 그래서 참을 수 없이 매혹적인 이 재즈바에 두 시간인가 앉아있다 왔다. 클레의 내부는 역시 짐작대로 좁고 어두침침했다. 좁은 정도로 말하자면- 오손도손 모여 앉아 음모와 모략, 비밀과 획책을 꾸미기에 더할 나위 없이 알맞은 면적이었고, 어두침침하기로 말할 것 같으면- 비행청소년들이 본드를 나눠마시며 삶의 애환을 나누기에 딱 좋은 정도의 조도였다. 삼삼오오 모여앉은 사람들은 다들 무언가를 은밀하게 공모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마치 비밀스런 범죄의 현장에 동참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이 몹시 좋았으므로, 어쩌면 나는 앞으로 클레에 종종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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率路 2009-05-13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좋게 생각한다면야 야밤에 청와대 앞길 경호원들이랑 눈 마주치는거 보다는 타의로라도 그냥 돌아오신게 결과적으로 더 나은 일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거기 분위기가 영 살벌해서-_-;;;;;

수양 2009-05-13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말로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쿨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