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otoven > 권대하 * 야경


 


빙고~!!
권대하 작가의 그림 느낌 좋고..

아주 선명한 색감을 쓰는 그의 명확함이 가슴을 파고 드는군..

비온 후에 느낌을 그린 그림들..
눈에, 맘에, 뺨에 그 감정들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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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motoven > 하얀 장미


Masao O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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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motoven > 하얀 조개꽃 이야기



크고 투박한 꽃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꽃을 백합이라 불렀다.

꽃은 날마다 꿈을 꾸며 님이 오기만을 바라고 또 바랬다.
하지만 나비와 벌은 백합을 지나쳐
알록 달록한 다른 꽃들로만 이동을 하였다.

하루, 이틀, 사흘.. 그리고 백일..
백합은 기다림에 지쳐 곪을 대로 곪아 있었다.

그런 크고 투박한 꽃에게서 안으로부터 형용할 수 없는
독향 (毒香)이 퍼졌다.

그 독향은 곧 슬픔의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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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부터의 영성
안셀름 그륀 지음, 전헌호 옮김 / 분도출판사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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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네가 하느님을 알고 싶으면 먼저 너 자신에 대하여 알도록 해라> "자신이 처해 있는 구체적인 현장을 아는 것, 더 나아가서 자신의 무의식 세계까지 살펴봄으로써 하느님께 나아갈수 있다."  책 서두에 지은이가 말하는 봐다. 이런 의식이 책을 관통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을 설명하는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래로부터의 영성은 이러한 것에서 훨씬 더 나아가 우리 스스로가 지닌 가능성의 한계에 부딪쳤을때, 바로 그곳에서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기 위한 마음의 문을 열어 나갈 수>있는 것을 뜻한다.

저자는 겸손, 자신의 낮춤등을 거론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의미를 말하는 사람은 아니다. 저자는 사람을 그리 아름답게 보지않지만 따스하게 보고 이것을 지적하고 이끌려한다. 사람은 어떤 거창한 목표와 종교적지침으로도 삶을 살아갈수는 있지만 그것의 문제가 만만치 않음지적하고 또 그것이 가지고 있는 위선과 문제점을 짧지만 깊게 지적한다.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 문득 생각났는데 귀한것은 천한것에 본이있고 높은것은 낮은것에 기초한다는 말이 그것인데..저자는 아래라고 지칭하는 인간의 현실적, 가장 치열하고 모든것이 뒤엉켜 있는 바닥을 주시한다.

<더 이상 내려갈곳이 없는 막다른 곳인 지옥, 모든 친교가 단절된 곳, 아무것도 더 이상 할 수 없는 곳, 철저히 고립되어 극심하게 외로운곳, 바로 그곳에서 회개가 시작되고, 그곳에서 예수가 사람들의 손을 잡아 삶의 영역으로 끌어올린다.> 그러고 보면 저자는 어떤 회심이나 회개를 말하면서도 삶을 계속 하나님과 살아가는 것을 염두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 고단한 삶에 어떤 표어처럼 가지고 있는 삶의 기조나 신조가 아닌 매순간 일어나고 그것 한가운데 지금있는 사람의 현실을 보고 거기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말하니 말이다.

<높은 이상적 요소들을 추구하면서 자신을 높은 수준으로 들어높이고 시도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어두운 부분과 대면하게 되>는 것이 저자가 지적한대로 사실이라면 어두운 부분, 언급하기 꺼리는 권력,돈, 성,자기중심성등을 일단 피하지 말고 보게 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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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와 신화
루돌프 불트만 지음, 이동영 옮김 / 한국로고스연구원 / 199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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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 사조가 큰물결로 서구를 흔들리고 있을때 신학쪽에서는 자유주의신학이 등장한다. 그것은 분명 어울리는 만남이었다고 말할수 있다.

그러나 알다시피 세계대전이 지나고 난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이 증명되었는가... 그것은 인간에 대한 철저한 불신이 아니었나 싶다. 신학에서도 여러반성과 새로운 물결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는 칼바르트(K.barth)로 대표되는 변증법적 신학이 아닌가 싶다. 하나님의 침묵하심과 자유주의신학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난관론등은 철저히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바르트의 신학은 지금의 한국신학과 교회에도 상당히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신학자요 목사라고 볼수있다. 장로교의 신전통주의에 기본을 받치고있는 신학의 밑거름이라 할까.. 한국의 장로교를 이해하고 하는 사람은 이사람의 저자를 읽은것이 중요하리라 본다.

하지만 바르트의 입장에서 언어학적, 역사비평적 입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불트만이라 생각한다. 그에 따른 논점은 많지만 우선적으로 지적하자면 성서해석학에 관한 문제인 비신화론이고 여러비평적 성과로 새로 지적된 역사적 예수에 관한 문제제시였다.

이건 다시 성경의 해석을 비신화화와 실존적 해석이란 결론에 이르고 있다.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 신약성서의 세계관이 신화적인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성경의 이야기가 말이되는 것이냐 하는 지적을 이렇게 해결했다고 할까..신화의 세계관과 이야기를 해석할때 어떻게 해야할까..그것이 실존론적 해석이다.

그는 책에서<교회의 설교에서 보존되는 지나가버린 시대의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는 성서의 세계관을 제거해 버리자는 것이다.> 그리고 <설교는 케리크마, 즉 오성을 향해서라 아니라 한 개체적 자아로서의 청중을 향하여 외쳐진 하나의 선포인 것이다.> 고 말한다. 이런 인간중심적 신학이 가지는 장점과 단점..그리고 한국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실존철학이 놓치고 있고 가지고 있는 단점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고 볼수 있다. 실존이외에 신학에서는 여러가지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불트만은 이것을 간과한다는 비판이 있다. 하지만 그의 신학적 연구가 이렇게 간단히 정리할만큼 깊이가 없는 것도아니며 성서연구에 돌이킬수 없는 흔적을 남긴것을 말하자면 내 ?은 지식으론 한없이 모자란다.

얼핏느끼다시피 그는 학문적 냄새도 많이 나고 기존의 믿고 있던 것에 반기를 든 사람쪽에 있다. 한국에서는 이런 그가 환영받기에는 척박하고 인기가 없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의 큰 생각이 대략적으로 정리된 책으로, 신학의 큰 줄기의 한부류인 것으로 이 책은 서문적인 책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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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의꿈 2008-02-28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지만 바르트의 입장에서 언어학적, 역사비평적 입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불트만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읽어보고 쓰신 글 맞습니까? 불트만은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은 수용하면서도 자신의 역사비평적 방법을 철저화하는 과정에서 비신화화의 케리그마 신학이라는 실존론적 접근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오즈 2008-03-01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군요. 불트만이 수용하면서는...바르트의 초기에 <로마서 강해>때까지가 정확한 지적같습니다. 더 정확한 표현은 바르트로 주목되는 변증법적 신학을 공유하는 시기에 같이 있었다는 것일겁니다. 하지만 곧 불트만은 바르트의 언어학적, 역사비평적 수용방식에 대해 지적하거나 비판합니다. 이과정은 님은 <자신의역사비평적 방법을 철저화하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당시의 신학의 큰 흐름과 달리 걷게 되는 1928년 이후의 불트만의 모습을 굳이 <받이들이지 못하는>이라는 표현으로, 그것도 대표적인 사람중에 하나라고 표현한 이유는 제 리뷰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연관되어 있다고 눈치챌 거라 봅니다.
바르트, 불트만,등 수많은 신학자가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대부분 각자가 연구해서얻은 결론이 아니라 님의 말처럼< 한 것을 알고 있는> 현대신학개론, 기독사상등의 책이나 신학을 가르치는 대학에서 평신도는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맞습니까?>라는 우려와 한국에서 못나게 뿌리내린 종교권력의 나르시즘등등으로 짜집기해서 이 리뷰를 쓴 것입니다. 제가 불트만을 <내 마음속 깊은속에서만 신학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까?>라고 질문을 다시 받는 다면..<그렇게 생각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족이지만..주위에 신학을 공부한 좋은 분들이 많아서 운이 좋다고 생각이 들지만 다른한편으론 평신도인 입장에서볼때..
하나님이란 절대적인 존재를 내세워 획일적인 <해석학>을 강요하고 힘든일은 평신도에게 전가시키며 타인의 단점으로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 시키는, 잘못된 한국의종교문화에 수혜를 톡톡히 누리는 사람도 적지 않아...위의 식으로 쓴 겁니다.
그리고 늘 염두해 두는 봐지만...저또한..이런 생각들이 삶에서 무슨 가치가 있나라는 깊은회의감으로 돌아보기도 합니다.
님의 생각이 많이 공개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