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에 지다 - 상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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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날이 추운 탓이 아니야, 할복이 힘든 것은.
나리의 말대로 푸욱 배를 찔러 죽고 싶어도 나는 할복의 예법을 모르오이다. 고향에서는 지도 사범 대리까지 지냈던 내가 배 가르는 방법을 모른다는 건 참으로 우스운 소리요만.
아무도 내게는 할복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소. 왜냐하면 나는 사무라이인지 농사꾼인지 알 수 없는 천한 말단 사무라이였는지라, 혹시라도 배를 갈라 죽을 일은 없을 것이다 하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거지요.-30쪽

거 어딜 가든 그런 인간이 한 사람쯤은 꼭 있잖아. 무엇이건 빠지는 거 없이 다 잘하고 가만 따져보면 참 훌륭한 인물인데, 암만해도 그렇게 훌륭한 사람으로는 안 뵈는 그런 사람.-62쪽

그래, 그게 무사라는 거야. 속내와 껍데기가 항상 달라. 사무라이는 그야말로 괴물이지. 우리는 모두 무사도라는 귀신에 씌였던 거야. -90쪽

"공자님 말씀에, 부귀는 모두가 원하는 것이나,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그곳에 머물지 않느니라. 빈천은 모두가 싫어하는 것이나, 그것이 비록 정당하게 얻게 된 것이 아닐지라도 부당한 방법으로 벗어나려 하지 않느니라."-103쪽

인간은 말야, 그저 강하기만 해서는 안 돼. 그 강한 것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지혜가 있어야지.-107쪽

말뚝처럼 멀뚱하니 선 채로 부르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더라니까. 그자는 그 힘줄 불거진 손으로 자식들 머리를 쓰다듬고 마누라를 품고 사람을 칼로 베었어. 똑같은 손 하나로 무슨 짓이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내란 참 고생스런 것이지. 요시무라의 손은 손가락이 길쭉길쭉해서 참 다정스럽게 보였어.-118쪽

농사꾼만의 세상이었다면 나는 애초부터 검술도 학문도 하지 않고 열심히 밭을 갈았으리라. 사람 죽이는 일도 없이, 배를 가르는 일도 없이.-135쪽

다른 이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나는 더이상은 싫다. 전투는 죽기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까 전투를 하는 것이다. 죽고 싶지 않아 남을 베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군께서 군세를 다시 정비하실 시간을 벌어주려는 사석(捨石) 노릇은 나는 사양하겠소.
높으신 분들이 한결같이 말단 무사에게 죽어라 죽어라 다그치는 것은 스스로 죽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던가. 전장에서 죽는 것이야말로 무사의 영예라니, 대체 어느 누가 그런 바보 같은 말을 시작했단 말인가.
내 나름대로 사서오경을 배우며 뼈에 사무치게 생각한 바가 있었다. 공자님은 그런 말씀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주군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라고는 하셨어도 충효를 위해 죽으라고는 하지 않으셨어.
그렇다면 번교의 자제들에게 무어라 가르쳐야 하는가. 살아남는 것이 무사라고, 살아서 있는 힘껏 충효를 다하고 다다미 위에서 곱게 죽는 것이 무사의영예라고, 나는 그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르치고 싶었다.
(중략)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다시 한번 난부의 아이들에게 일러주고 싶구나.
이번 전쟁에서는 관군이고 적군이고 그런 거 상관없느니라. 전장에서 죽어서는 안 되느니라.
도쿠가와 세상이건 사쓰마 조슈 세상이건 상관없느니라. 살아라, 어떻게든 살아서 백성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무사의 영예니라.
(중략)
너희만은 부디 알아다오.
요시무라 선생은 추호도 존왕양이의 뜻을 이루기 위해 탈번한 것이 아니니라.
그저 살기 위해 고향을 버렸느니라.-236-238쪽

"쓰러지더라도 검은 떨구지 마라! 아무렇게라도 좋으니까 휘둘러. 숨이 차거든 상대의 허리에 들러붙어. 숨이 차거든 상대의 허리에 들러붙어. 검술이 서로 죽고 죽이는 일이라는 거, 잊지 마라!"-267쪽

뭐야, 이것들은, 이라니, 그건 우리가 할 소리예요. 신판 후다이 사무라이들이 주가의 위급을 어떻게 그렇게 남의 일처럼 수수방관하고 있는지, 참 신기할 정도였어요. 지체 높은 사무라이란 게요, 여차하면 그런 겁니다. 배 터지게 좋은 밥 먹고 살던 놈들은요, 제 안위밖에 생각을 못 해요.
그런데 우리는요, 배 쫄쫄 곯던 말단 사무라이하고 벼락사무라이들로만 모인 부대여서 오히려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고 있었어요.-369-370쪽

요시무라 선생님, 마누라를 얻었어요. 별로 예쁘지는 않아도 얼굴 꼴사나운 내게 안겨준 마누라에요.
요시무라 선생님, 아들이 생겼어요. 손자가 태어났습니다. 새 가게를 내 손으로 냈습니다.
요시무라 선생님, 내 손으로 돈을 벌어 세금을 듬뿍듬뿍 내고, 주제넘게 기부 같은 것도 했더니만 도쿄 시장님께서 감사장을 주셨네요.
요시무라 선생님, 저는요, 인간입니다. -395-396쪽

우리를 역적으로 몰아세운 모든 분들께 한말씀 드리리다. 근왕파도 막부파도, 무사도도 충군도, 그런 시시한 것이야 어찌됐건 좋소이다.
돌을 깨고 피어나려는 꽃을 어찌하여 원수 보듯 하시오. 북풍을 향해 피어나려고 애쓰는 꽃을 어찌하여 불의라 하시오.
그것이 아니라면, 그대들은 빈천을 악이라 하시는 것이오? 부귀를 선이라 부르짖는 것이오?
그렇다면 나는 긍지 높은 빈과 천을 위해 싸우겠소이다. 단연코 한 걸음도 물러설 수 없소이다.-412쪽

칼에는 두 개의 힘이 머물고 있소이다. 하나는 상대를 죽이겠다는 의지의 힘. 또 하나는 살해될 것이라는 두려움이지. 두 개의 힘은 항상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칼 속에 머물러 있소. 기량이 팽팽한 자들끼리 검으로 맞섰을 때, 자칫하면 서로에게 머문 두 개의 힘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달리는 일이 있소. 맞아,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에 끌려가는 것처럼 마구 달리게 돼.-4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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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룸 2005-08-27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가락 분질러지는줄 알았슴당!! 단편이랑 밑줄긋기 덕분에 학교때도 안늘던 타자실력이 점점 늘고 있어요...헐...TㅂT

어룸 2005-08-27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네, 알겠슴당, 지금 가겠슴당^^

돌바람 2005-09-05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우선 땡스투 먼저 눌렀어요. 인사도 못 드렸는데, 담에 와서(지금은 여우가 없어서리...) 천천히 인사올릴 게요.^^*

어룸 2005-09-05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 반가워요, 돌바람님!! (^^)(__) 다른분서재에서도 자주 뵈었는데 직접 인사드리는건 첨이옵니다...(꾸벅~) 저도 종종 찾아뵙겠사옵니다!! ^ㅂ^ ㅎㅎㅎ땡스투까지해주시다니 너무나너무나 고맙숨당!!
 
칼에 지다 - 하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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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무라 간이치로
껑충 큰 키에 구부정한 뒷모습, 난부 사투리의 친근한 말투, 베시시 웃는 잘생긴 얼굴, 허리춤의 낡은 수건, 추운 날씨에도 언제나 같은 홑겹의 옷, 오래된 야윈 칼, 진심으로 가르침을 베푸는 진정한 스승이지만 한편으로는 백정으로 불리울 수 밖에 없는 운명, 돈을 얻기 위해서라면 안쓰러울 정도로 무엇이든 하는 남자, 고향을 그리워하는 남자, 몇년동안 얼굴도 못 본 가족자랑에 행복해하는 남자, 처음 만난 순간부터 한결같이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 하나뿐인 딸을 떠올리며 모든 고통을 잊는 아빠, 아버지의 예쁜 손가락을 물려받은 큰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따르고 평생 얼굴한번 못본 막내는 아버지의 이름과 뒷모습을 물려받는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한다. 몸안의 피는 모두 가족에게 베풀고 자신을 위해선 눈물 한방울을 남긴 평범하다기엔 너무 착하고 바른 사람. 그런 그가 탈번을 한 것은 그것이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간이치로가 아름다운 건 그 사람이 그럴듯한 거창한 대의명분이 아니라 오직 가족들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義士라고 불러도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쇼군이니, 번이니, 막부니, 신센구미니, 뭐가 지명이고 인명인지도 헷갈리는 나같은 사람이 읽어도 금세 분위기가 파악되는 서글서글한 글솜씨. 문장 하나하나는 소박해보이지만 그 소박한 문장들이 모여 만들어진 책이 주는 감동이 거...참...! 솔직히 내 취향이라기엔 너무나 감상적으로 꽉 조여진 소설이지만 감동받지 않았다고는 말 못하겠다. 이런 얘기는 뻔하다구~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으...리뷰를 쓰기가 너무 힘들다. 내가 대체 뭔 얘길 하려고 하는 지도 모르겠다...으...불쌍해서 울고, 슬퍼서 울고, 슬픈 인간들이 안타까워서 울고, 그 안타까움이 화가 나서 울고...어찌나 울어댔는지 눈은 퉁퉁 붓고 열심히 풀어댄 콧속엔 물집까지 생겼다(아, 쓰라려~). 읽은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문득 떠올리면 마음이 울컥 치밀어오르고 호흡이 거칠어진다. 그래서 그게 억울해서, 이런 신파 특히나 남자들만의 신파, 좋아하지 않지만 절대 내취향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을 다섯개 줄 수 밖에 없다. 이 못된 아사다 지로의 소설은 다시는 안읽을테다! 흥! 흥! 흥!(진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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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룸 2005-08-27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럼에도불구하고 읽어보심 진짜 후회는 안하실꺼예요!!

미완성 2005-08-27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이 책 정말 좋죠?

어룸 2005-08-27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맞아요!! ^^

2005-08-27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룸 2005-08-30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글케말씀하심...재주없어도 쓴 저는 어떡하라구...ㅠ.ㅠ
어서 쓰셔욧!!!! >.,<
 
바람의 그림자 2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구판절판


미켈 몰리네르는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플랫폼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펜으로 글을 쓰는 몸짓을 보냈다.
"알았어. 도착하자마자 편지 쓸께." 훌리안이 대답했다.
"아니. 책을 쓰라고. 편지 말구. 나를 위해 소설을 써. 페넬로페를 위해서도."-70쪽

"모자라는 사람들은 이야기를 하고, 겁쟁이들은 침묵하며, 현명한 이들은 이야기를 듣지."-92쪽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를 괴물로 묘사하려고 작심을 했을 땐 둘 중 하나란다. 즉 그가 성자(聖者)이거나, 얘기하는 사람들이 사건의 전모를 다 알지 못하든가 말이다."-97쪽

나는 아버지를 말 없이 지켜보았다. 숱이 없는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어 있었고 얼굴 피부는 이미 광대뼈 주위의 단단함을 잃기 시작했다. 예전엔 강하다고, 거의 무적(無敵)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에게서 아버지의 연약함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꺾여버린 모습을 보았다. 아마도 우리 둘 다 꺾였으리라. 나는 몸을 기울여 아버지가 몇 년 전부터 자선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말해온 그 담요로 아버지를 덮어주었다. 그리고 나와 그 좁은 집, 그리고 내 추억으로부터 아버지를 떨어뜨리고 있는 보이지 않는 줄로부터 아버지를 보호하려는 듯이 그의 이마에 입 맞추었다. 마치 그 입맞춤으로 시간을 속일 수 있고, 그 시간으로 하여금 우리를 그냥 지나치고 지난날과 지난 삶을 되돌리도록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100-101쪽

"어떻게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지, 우리가 그들을 필요로 하거나 그들을 빼앗길 때까지 우리가 행하는 경멸의 비열함을 깨닫지 못하는지 참 희한해. 우린 그들을 빼앗기지. 왜냐하면 한번도 우리의 소유였던 적이 없었으니까......"-188-189쪽

"때때로 우린 사람들이 복권 같은 거라고 생각하지. 우리의 말도 안 되는 꿈을 이뤄주기 위해 거기에 있는 것으로 말야."-190쪽

"일하는 동안에는 인생을 똑바로 보지 않아도 되거든요."-201쪽

그 낯선 남자는 내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어. 훌리안 카락스는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미소를 갖고 있었어. 그리고 그것이 그에게 남아 있는 전부였지.-203쪽

"돈을 벌기만 하는 건 어려운 게 아냐." 그는 이렇게 한탄했지. "인생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게 어려운 거지."

(그러게...)-215쪽

"이제 그것이 우리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 됐어요. 알죠? 추억 말예요. 사람은 살면서 많은 실수를 하지요. 그런데 아가씨, 그걸 늙어서야 깨닫게 된단 말이오."-300쪽

"무슨 병인데요?"
"심장이 좋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를 죽게 하는 건 고독이에요. 추억은 총탄보다도 나쁘지요."-303쪽

몇 년이 평화롭게 흘러갔어. 세월은 공허할수록 더 빨리 지나가지. 의미 없는 삶들은 너의 역에 서지 않는 기차들처럼 너를 스치고 지나가는 법이거든. -308쪽

푸메로 같은 인간은 결코 증오하는 걸 포기하는 법이 없으니까. 그의 증오에는 의미도 이성도 없지. 그저 숨쉬듯 증오할 뿐.-310쪽

언젠가 훌리안은 이야기란 작가가 다른 방법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쓰는 편지라고 내게 말한 적이 있지. -328쪽

훌리안의 모든 글 중 언제나 내 마음에 가장 와 닿았던 것이, 사람은 기억되는동안에는 계속 살아 있는 거라는 말이지. ...나를 기억해줘, 다니엘, 비록 한 귀퉁이에 숨겨서라도. 나를 떠나보내지 말아줘.

(추억은 아무 힘이 없다는 말, 나는 믿지 않는다.)-331-3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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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겐 2005-07-26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의 그림자 참 시적인 표현도 많지요...

어룸 2005-07-26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오랜만에 푸욱 빠져서 읽은 소설이었어요!!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1
알렉산더 매콜 스미스 지음, 이나경 옮김 / 북앳북스 / 2004년 6월
절판


잊혀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음마 라모츠웨는 생각했다.
사람의 머리는 작을지 모르지만, 그 속에는 하늘에 벌떼가 가득하듯이 수천가지의 기억과 냄새와 장소, 그리고 문득문득 떠올라 스스로의 모습을 일깨워 주는 언젠가 겪었던 사소한 일들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프레셔스 라모츠웨, 보츠와나 국민으로 광부였다가 숨을 못 쉬게 되어 돌아가신 오베드 라모츠웨의 딸이다. 아버지의 인생은 기록된 바 없다. 보통 사람들의 삶을 누가 적어 놓는단 말인다?-23쪽

어떤 사람은 신이 백인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옛날 선교사들이 그렇게 가르쳐서 사람들 마음속에 정착된 것이지 싶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백인과 흑인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으니까.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어쨋든 선교사들이 오기 전에도 신은 이곳에 계셨다. 그때는 그분을 다른 이름으로 불렀을 뿐이다. 신은 유대인의 땅에만 사시는 것은 아니었다. 그분은 이곳 아프리카의 바위와 하늘, 그분이 좋아하시는 곳에 살고 계셨다. 사람이 죽어서 다른 곳으로 떠나면 신은 그곳에도 계실테지만 그분에게 특별히 가까이 갈수는 없을 것이다. 그분이 그것을 원하실 리가 있는가?-27-28쪽

누구나 어떻게든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 법이었다. 가족에게서 뚝 떨어져 나와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61쪽

이 남자는 너무나 자신만만했다. 그녀가 무엇을 하든지, 그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녀의 돈이고, 그녀의 장래다. 게다가 자기 바지 지퍼가 열린 것도 모르는 주제에. 여자가 어쩌고 운운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확 말해버릴까보다.-71쪽

이곳은 건조한 땅이었다.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바싹 말라빠진 나미브 사막까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누런 땅, 칼라하리가 있었다. 하얀색 미니밴으로 간선도로에서 뻗어 나가는 도로 중 하나를 타기만 하면, 오육십 킬로미터도 채 못 가서 차바퀴가 모래 속으로 빠져 들어가 꼼짝 못하고 헛돌기만 할 것이다. 나무나 풀이 서서히 줄어들어 사막처럼 보일 것이다. 드문드문 헐벗은 곳이 보이고 회색빛 바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것이며 사람이 사는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단단한 갈색의 이 거대한 마른 땅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바츠와나 사람들의 운명이었고, 바로 이 때문에 그들은 농사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짓게 되었다.
칼라하리로 가면, 밤에는 사자 울음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사자들은 거기, 광활한 풍경 속에 여전히 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포효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면서. 음마 라모츠웨는 젊었을 때 친구와 함께 멀리 있는 소 사육장을 찾아 그곳에 본적이 있었다. 그곳은 칼라하리 쪽으로 소들이 갈 수 있는 한계 지점이었고, 그곳에서 그녀 사람이 없는 장소에서 느끼는 외로움의 정수를 맛보았다. 이것이 바로 보츠와나 정서의 핵심, 조국의 본질이었다.-150-151쪽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화가 나거나 못마땅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고백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다 써 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당분간은 더 할 말이 없기 때문이었다.-171쪽

그녀는 울고 있었다. 자기 아이 때문이기도 했다. 그토록 빨리 사라져 버린, 이 낯선 세상에 머무르려고 기를 쓰던 순간, 너무나 짧은 그 순간, 그녀의 손가락을 잡았던 그 조그만 손이 기억났다. 아프리카에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 많아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냥 지나쳐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절대 그럴 순 없다.-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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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5-04-01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이 책 읽고 싶었는데...............읽어야지...^^

어룸 2005-04-01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꼭 읽어보셔요!! 큰 사건같은건 없지만 은근한 재미가 쏠쏠하답니다^^

어룸 2005-04-02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ㅂ^ 여자주인공으로는 보기드물게 몸매적으루다가 맘에 쏘옥듭지요!!
ㅋㅋㅋ근데 캐릭터들의 의견은 분분하잖아요, 기억이 가물가물하긴한데 2편에서 마테코니씨네 가정부는 뚱뚱하다고 그러고 음마라모츠웨네 가정부는 '더 찌워야햐~여자 몸매가 너무 말랐어~' 그랬죠 아마? ^^;;;;;

mira95 2005-04-09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어룸 2005-04-09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도 머리가 아니라 마음에 남는 책이었어요^^ 두루두루 사랑스럽죠?!!
 
살인자들의 섬 밀리언셀러 클럽 3
데니스 루헤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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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긴장하며 힘들게 읽고있는 중이었기때문에, 마침내 모든 상황이 파악되는 순간에는 정말이지 작가를 찾아가 목을 졸라버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책을 덮었을땐, (죽일때죽이더라도) 찐하게 뽀뽀한번 쪼오오오옥~ 해주고 싶었지요^^ 어쨋거나 마음에 남은 느낌은 '슬픔'이랍니다, 테디때문이기도했지만 처크때문이기도했어요. 마지막에 처크가 고개를 가로저을때 눈물이 또옥...ㅠ.ㅠ (아아, 역시나 스포일러가 될까봐 편하게 못쓰겠네요^^a) 저는 개인적으로 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라고 믿기때문에 더 마음이 아팠어요. 이제는 어느정도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뇌이지만 그곳에서 만들어진 정신세계는 언제나 오리무중이라는 것이 신비롭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건 '신비'라는 편리한 환상이 아니라며 저를 각성하게 해주는군요. 

굳이 힌트를 드리자면 처음 레스터 시핸박사의 일기에 모든 단서가 다 들어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 책을 작가와의 두뇌싸움으로 받아들여, 반전에만 너무 신경쓴다면 놓치는게 많을 거란 말도 드리고 싶어요(제가 그런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읽었기때문에 더 편하게 모든걸 받아들일수 있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책은 결코 즐기기만하는 오락이 아니라는걸 다시금 깨닫게 해준 책이었답니다. 진정 이 책을 즐기고 싶다면 반전은 잊으세요.

어쩌면 저에게 auto-buy 작가가 될 것같은 이사람, 우선 미스틱리버(영화는 무지하게 실망스러웠지만)를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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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4-12-07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헤.. 제가 추천했어요..ㅎㅎ 저 책 재미난가요? 많은 분들이 읽으시는 거 같은데.. 미스틱 리버는 저도 보고 싶은데 번역에 좀 문제가 있다고 어쩌고 저쩌고를 들으니 읽기도 싫고.. 영화는 저도 좀 거시기했어요. 뭐 좋다는 사람도 많더군요. 아마 클린트이스트우드에 미리 점수를 준 게 아닌가 싶어요. 숀팬과 팀로빈스의 연기는 압권이지만.. 아무래도 전 클린트이스트우드(헤.. 길다..)랑은 잘 안 친해지네요.^^

로드무비 2004-12-07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풀님. 깜짝 놀랐잖아요. 제목 보고...

그런데 전 <미스틱 리버> 재밌게 봤는데......

로드무비 2004-12-07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금붕어님.

영화가 좀 메슥메슥했죠?^^

어룸 2004-12-07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붕어님^^ 어마나~추천을요?!! 감사감사감사합니다~>ㅂ< 재미도 있고 책장도 빨리 넘어가지만 마음편하게 읽히지는 않아요(제가 폐쇄공포증 증세가 약간 있어서 더 손에 땀을 쥐며 읽었어요^^;;;). 오..미스틱리버의 번역이 별로래요?!! 이잉...안되는데...ㅠ.ㅠ 음, 이책도 번역이랑 오타 몇군데 걸린답니다(ㅋㅋ절대 만족못함^^;;;;) 저도 클某씨(ㅎㅎ짧게!!!)랑 안친해요...=_= 너무 힘을 주니까 배우들 훌륭한 연기들이 제자리에 안맞고 남아도는 느낌이랄까...암튼 그 사람 영화가 대부분 그런데, 그 영화는 특히 그랬어요.

로드무비님, ㅋㅋㅋ제목이 좀 그렇죠? ^^a 근데 정말 제심정이 딱 그랬답니다^^;;; 엇..님은 미스틱리버를 재밌게보셨다니 제가 실망스럽다고 하셔서 실망하셨겟어요...에궁 죄송해라...^^a

날개 2004-12-07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밌다는 얘기를 계속 들어서.. 저도 넘 보고 싶네요..

반전이 뭘까 기대도 되고..^^*

어룸 2004-12-07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너무 기대하셨다가 실망하심안되니까 기대는 쬐꼼만~쬐꼼만해주세요...^^;;;;; 전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제가 어지간해서는 별을 다섯개 다 안주거든요(얌체^^;;)

물만두 2004-12-07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미스틱 리버는 이 책만큼 기대하지 마시고 보세요...

어룸 2004-12-07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앗!! 글쿤요...ㅠ.ㅠ

어룸 2004-12-07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그쵸?!! 윽흑흑...T~T 참 맘에 드는 녀석인데, 쯧, 맘 많이 상했을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