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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또 만나자 ㅣ 과학은 내친구 13
히로노 다카코 그림, 사토우치 아이 글, 고광미 옮김 / 한림출판사 / 2001년 8월
평점 :
어릴 적에 길 건너서 백미터 정도 걸어 올라가면 할머니 집이 있었습니다.
바쁜 엄마와 학교에 간 언니들 대신 한 살 어린 사촌 여동생과 세 살 어린 제 여동생, 거기에
울 작은 방에 세를 살았던 동갑내기 친구..이렇게 넷이서..
손에 손을 잡고 할머니 집을 뻔질나게 드나들었지요.
예닐곱살 정도 였을거예요.
가는 길엔...호박덩굴과 방앗간의 시끄러운 소리와 멀리 보이는 바다와 기와집과..
할머니 옆집의 빨간 동백꽃이 있었지요.봉숭아 흐드러진 화단도,,채송화두요.
할머니 집 뒷켠엔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옆으로 배나무,무화과 나무,부추밭...그리고
이 책 표지에 보이는 커다란 머윗잎이 많이 있었지요....
그리고, 그 뒷켠에서 우리의 모든 모험이 이루어졌지요. 한낮에 시원한 그 곳은...네 사람의 아지트였습니다.그 곳에서 소꿉놀이도 했구요. 이웃집에서 훔쳐온 봉숭아꽃으로 엉성하게 서로의 손톱에 물도 들여주었구요. 나비도 애벌레도, 가끔은 뱀까지도 보곤 했었지요.
배가 고프면 할머니 몰래 따먹는 배와 그 떫은 땡감에 여름이면 따도따도 풍성하던 무화과.
봄이면 할아버지와 사촌오빠만 주던 그 맛나던 딸기도 ..살짜기 서리해서 먹고요.
달팽이와 개구리와 사금파리와 모든 것이 지천이었씁니다.
콩꽃과 감자꽃과 고추꽃과 제가 지금도 무척이나 사랑스러워 하는 참깨꽃이 주렁주렁 매달린 곳이었지요.
가끔은 우렁도 잡으러 가고, 올챙이도 보러가고, 거미도 보러가고,
그때 우리 넷은 무적이었습니다.
학교에 들어가면서 친구가 이사를 했습니다. 그이의 아버지가 공무원이셨거든요.
부임지가 바껴서 이사를 갔지요. 사촌동생도 이사를 갔습니다.(그리 먼곳으로 간 것도 아닌데 그 이후론 서로 참 멀어졌지요.아쉽게도)
그리곤 다시는 그런 편안한 모험은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저도 학교생활 하느라 바빴고, 친구들 대신 책에 흥미를 느꼈으니까요.
지금도 아련한 그 추억을....이십년이 넘는 동안 깊이 잠겨있던 기억들이
진/우맘님의 그림을 곁들인 리뷰 덕에 떠올라 덜컥 샀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보여주지도 않고 혼자서 며칠을 끙끙대고 보았답니다.
화면에서 보다는 그림이 선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편안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느껴지는 농촌의 풍경은
이제는 익숙하지 않은 그저 그런 풍경이 되어버린 내 아이들에게 ...체험을 하게 하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지요. 올해도 친정에 가게 될 지 모르지만, 제가 할 수 있는한...
아이들에게 자연을 보게 하고 싶습니다..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마지막 장의 논을 바라보고 서있는 빨간 우비의 소녀와 같이 제가 바라 본 것은..
그 논도 그 뒷편의 한창 자라고 있는 가지나무도 아닌 추억이었답니다.
"나 다시 돌아갈래" 하고 돌아갈 수 있는 한 시점이 있다면 아마...제겐 이때가 아닌가 합니다.
아이는 우비와 장화를 신고 나가는 여자아이가 너무나 부럽다고 합니다.
비만 오면 감기 걸릴까 단속하기 바쁜 저를 반성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