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근거있는 실사구시적 비판을 기대한다"

 

[김태경 기자의 비판에 대한 반론] "내부이견 심각하지 않다"

  2004-08-24 오후 5:06:21

 

  파병반대국민행동 정책사업담당 기획위원인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이 24일 프레시안에 오마이뉴스 김태경기자가 최근 <월간 인물과 사상> 9월호에 기고한 글에 대한 반박글을 보내왔다. 김기자는 '노정권과 시민단체들, 유착 혹은 상생?'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메이저 시민단체들을 비판한 바 있다.   

이에 최근 비판의 대상이 된 민언련이 오마이뉴스에 반박글을 실은 데 이어, 김기자 글에서는 직접적으로 거명되지 않았으나 파병반대국민행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참여연대의 이태호 실장이 본지에 김기자에 대한 반박글을 보내오기에 이르른 것이다.
  
  본지는 지난 21일 김태경기자의 글 전문을 게재한 바 있기에, 이번에 이태호 실장의 글도 전문을 게재하기로 했다. 앞으로 김태경기자가 재반론을 전개할 경우 그 글도 실을 예정이다. 편집자주
  
 

 김태경 기자의 <인물과 사상> 기고에 대한 반론
  -파병반대운동에 대한 근거 있는 실사구시적 비판을 기대한다

  

  오마이뉴스 김태경 기자는 최근 월간 인물과 사상 9월 호에 “노정권과 시민단체들, 유착 혹은 상생?”이라는 제하의 글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김태경 기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파병반대 의지나 움직임이 느려지는 것이 눈에 띄었고 지난 6월 23일 김선일 씨가 피살된 후 벌어진 일련의 촛불시위에서는 문제가 심각했다.... 이른바 주류 또는 이름있는 시민단체들이 현 정부의 잘못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과감하게 비판하기보다는 미국 탓, 수구세력 탓, 또는 정부 안의 친미라인 탓으로 돌리며 변죽만 울린다고 느껴졌다. 이는 노 정권을 직접 겨냥하지 않으려 했던 주류 시민단체가 파병반대운동을 읍소형 운동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은 정확한 사실에 기초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의도된 결론을 이끌어내려 한 나머지 비약과 과장, 사실검증 없는 불충분한 추론으로 점철되어 있다. 김태경 기자의 기사 외에도 이런 추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어 적절한 반론이 필요하겠다고 판단하여 몇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인터뷰 요청도 하지 않고 취재하기 어려웠다니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한가지 먼저 밝혀둘 것이 있다. 필자는 참여연대 정책실장으로 지난 10개월간 파병반대국민행동 정책사업단 간사를 맡아왔고 시민단체 측 연락을 담당하는 상황실 업무도 맡아왔다. 또한 김태경 기자와는 지난 5월 이후 오마이뉴스-파병반대국민행동 공동캠페인을 위해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던 경험이 있음을 밝힌다. 오마이뉴스와 필자는 언론과 시민단체라는 경계에 구애받지 않고 어떻게 하면 파병철회 운동을 확산시킬 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믿는다. 이 관계는 김선일 씨 사건 이후에도 지속되어 오마이뉴스측과 필자와는 기사기획이나 집회 생중계 등을 위해 전화쯤은 수시로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였었다. 필자는 오마이뉴스 기획팀의 일원이었던 김태경 기자와도 그런 관계였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그 때 이후 지금까지, 김태경 기자가 작성한 기사의 문제의식과 관련된 사전 언급이나 비판적 지적, 혹은 우려를 전해들은 바 없었다. 게다가 필자의 10개월 활동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고, 심지어 내 말을 인용한 기사를 내보내면서 내게 정식 인터뷰 요청조차 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그러면서도 기사에서는 정부기관 취재하는 것 보다 더 힘들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납득하기 힘들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은 주요 행동방침을 결정하는 비상시국회의도 매번 공개해 왔다. 국민총투표 제안이 부결되던 회의, 노무현 퇴진 구호를 둘러싸고 논쟁이 일었던 7월 1일 회의도 모두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 운영위원회 논의도 진지하게 물었다면 감출 이유가 없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이나 시민단체 내부의 움직임에 대해 김 기자가 부당하게 취재를 거부당한 사례가 있다면 공개해 주기 바란다.
  
  과연 노무현 정권 퇴진이 쟁점이었는가?
  
  파병반대국민행동은 파병에 반대하고 그 결정을 철회시키기 위해 모인 360개 단체의 연대체이다. 연대체에서 파병을 근거로 노무현 퇴진 구호를 내걸 때에는 우선 소속단체들의 정세인식이나 위임한 실천범위에 합당한 것인가? 내건 구호를 관철시킬 수 있는가? 를 면밀히 따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대운동이 실없어 지거나 목소리 높은 소수의 정파적 운동으로 축소, 왜곡되고 만다. 말하자면 연대단체는 노무현 퇴진이 좋으냐 나쁘냐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 퇴진을 내거는 것이 파병철회운동을 고조시키는데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로 판단한다. 김태경 기자도 기사에서 언급했듯이 노무현 퇴진 구호는 운동 기술적으로도 문제가 적지 않은 구호였다. 주지하듯이 대통령 탄핵은 간단치 않은 일이다. 쟁점이 파병이냐 아니냐를 넘어 탄핵이냐 아니냐, 친노냐 반노냐로 확장되는 것이 파병반대운동에 실익이 있는지도 전술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노무현 퇴진 문제를 일부 단체가 제기하긴 했었다. 그러나 파병반대 운영위 소속 대다수 단체들이 동의하지 않았다. 김태경 기자의 가설처럼 시민단체만 반대한 것이 아니다. 민주노총, 민노당, 민중연대, 통일연대 등 대다수 민중단체들이 동의하지 않았다. 운영위원회 대다수 단체가 노무현 정권 규탄이 적절한 구호라고 입장을 밝혔다. 노무현 정권에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라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실현가능성 없는 노무현 정권 퇴진보다 노무현 사과, 노무현 규탄 등을 외치는 것이 적절한 수준이라고 본 것이다. 회의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던 유일한 단체인 ‘사회진보연대’도 노무현 퇴진이 공통의 구호가 될 수 없는 조건과 정세에 공감했다.
  
  운영위원회에서 세 차례나 이 문제가 거론되었던 것은 노무현 퇴진을 주장하는 단체가 있어서가 아니라 회의석상에서는 다들 동의해 놓고 집회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퇴진을 주장하는 이들이 공동구호를 외치는 최소한의 공동행동의 순간에도 자신들의 퇴진 구호를 외치는가 하면 주체를 명시하지 않은 노무현 퇴진 손피켓을 집회장에서 무차별적으로 배포한 데 대해 상황실에서 문제제기 하고, 이에 대해 소수 그룹이 선동의 자유를 지도부가 가로막는다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논쟁이 격렬해진 것이다. 그리고 이 논쟁은 주로 민중연대 소속단체들간에 이루어졌다. 필자가 해프닝이라고 표현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흔히들 파병반대국민행동 지도부를 비판하는데 연대기구에 지도부가 따로 있을 리 없다. 매 회의의 결정사항을 공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의사결정회의는 운영위원회다. 운영위 구성단체에는 민중단체가 더 많다.
  
  한편, 김태경 기자는 마치 노무현 사과를 요구한 것이 노정권을 직접 겨냥하지 않으려는 주류 시민단체의 읍소형 운동에 연유하는 것인 양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 예를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한 대목에서 찾고 있다. 노무현 사과를 요구한 것이 잘못인가? 노무현이 책임지라고 주장하는 것과 노무현은 사죄하라고 주장하는 것 사이에 김기자가 지적하는 그토록 중대한 차이가 있단 말인가? 집회장에서는 노무현 정권 사과하라! 노무현 정권 책임져라! 노무현 정권 규탄한다!가 함께 외쳐졌다. 필자는 이런 소모적 논쟁이 정말 안타깝다.
  
  사실 김선일 사건 이후 정부의 조직적 은폐의혹이 밝혀질 경우, 노무현 정권의 진퇴문제를 거론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였다. 열린우리당 386의원들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압박하는 사이버 캠페인을 공동기획한 것도 오마이뉴스와 필자였다. 김태경 기자가 이런 정황을 애써 무시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사족이지만 한가지만 더 언급하기로 하자. 파병반대 촛불집회에서 시민단체 사회자가 “노무현 대통령님 파병을 철회해주십시오.”라고 읍소했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간혹 접한다. 프레시안과 부안독립신문 창간호에도 이와 유사한 기사가 실렸었다. 그 뒤로 파병반대운동을 읍소형 운동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간간이 있다. 실제로 6월 26일 집회 말미에 수차례 반복된 이 멘트는 필자가 보기에도 집회분위기에 적절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는 여기지 않았다. 집회장에 가면 감정에 복받쳐 이러저러한 말실수나 분위기에 맞지 않는 멘트도 더러 나오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 날은 김선일 씨 유해가 귀국해 빈소에 안치된 날로서 추모와 규탄의 안배가 만만치 않았던 까다로운 집회였다. 따라서 읍소형 멘트는 사회자 나름대로 파병철회의 절절함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었지 말 그대로 ‘읍소’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예컨대 파병반대 전쟁피해자 전국도보순례에 참여했던 정신대피해자 할머니도 청와대 앞에서 청와대에 절을 하며 파병철회를 읍소했지만 모두가 감동을 받았을 지언정, 왜 노무현에게 읍소하냐고 비난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 날 집회 사회자는 시민단체인사가 아니라 여중생 촛불집회 사회자로 잘 알려진 민노당 관계자였다.
  
  시민단체들은 “자주파 : 친미수구”의 구도에 동의하는가?
  
  김태경 기자는 시민단체가 미국, 친미 커넥션, 수구언론 등을 문제 삼으면서 정작 노무현 정권은 문제삼지 않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일 소속단체일뿐인 민언련 최민희 총장의 발언을, 그것도 진의를 왜곡하여 말꼬투리를 잡는 방식으로 인용하고는 다른 시민단체들도 대동소이하다고 싸잡아 비난하는 식으로 자신의 가정을 강변하고 있다. 이는 논리적 비약이자 왜곡이다. 좋은 기사작성 방법이 아니다.
  
  김태경 기자는 한국의 파병에 친미커넥션이나 수구언론, 미국의 압력 또는 영향이 없다고 보는가? 최민희 총장이 노무현 정권과 함께 그들에 대해서도 문제제기 하자고 주장한 것이 틀렸다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김 기자는 최민희 총장이나 시민단체가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는 문제제기하지 않으면서 미국이나 친미커넥션만 문제삼았다고 주장하는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김 기자는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이름으로 노무현 정권 대신 다른 대상에게 책임을 돌리자고 주장한 글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파병반대국민행동에서 나온 모든 성명과 논평은 파병반대국민행동 사이트나 참여연대 사이트에 대체로 올라가 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에서 발표하는 성명이나 논평 대부분의 작성을 맡았던 사람은 김 기자가 그토록 비판하는 ‘시민단체’ 정책실장인 필자였다. 또한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주된 정책의견서도 역시 관련 사이트에 업데이트 되어 있는데, 이 역시 시민단체 주변의 정책전문가들로 구성된 정책사업단에서 발간한 것이다. 우리는 파병반대국민행동의 결성 목적에 충실하게 “노무현 정권의 이라크 파병방침을 비판하고 이를 철회시키기 위한” 정책조사활동을 왕성하게 전개했다. 그 활동 내용은 김태경 기자도 잘 알 것이다. 정책사업단은 모든 조직 운동 세력들이 탄핵 촛불집회에 나서고 있던 지난 2-3월에도 일관되게 이라크 현지 모니터 작업, 파병찬성 낙선리스트 작성 작업을 전개했으며 새 국회가 열리자마자 준비된 정책의견서를 쏟아내었다. 이 정책의견서에 경제국익론 비판도 있고 북핵빅딜론 비판도 있다. 그 당시 우리는 농담 삼아 "대통령이 탄핵되건 말건 세상에는 파병찬성론자와 반대론자 두 종류의 인간밖에 없다"고 말하곤 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NSC 내 자주파 : 친미수구 식의 대립등식은 조선일보가 만들어 낸 거다. 내가 아는 한 이른바 ‘잘 알려진 시민운동 단체’ 중 이런 구도에 동의하는 단체는 없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많은 시민단체들이 노무현 정부가 내건 협력적 자주국방이 미국 추종적 군비확장 노선이라고 비판해왔고, 파병문제에서도 북핵과 파병을 바꿀 수 있다는 노무현 정권의 주장을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강력하게 비난해왔다. 이 결정을 주도한 NSC에 대해서도 비판을 우회한 일도 없다. 김태경 기자가 기사 중반에 삽입해 넣은 이러저러한 에피소드는 시민단체의 파병관련 활동과는 실제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NLL월선 사건 역시 비교적 구체적 쟁점이었던 바, 참여연대를 비롯하여 국방부를 모니터 하는 평화단체들은 대체로 입장을 발표했었다. 일부 시기를 놓친 것이 있다면 파병반대운동으로 인해 실무적으로 어려워서였지 김태경 기자가 기대하는 그 무슨 ‘유착상황’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김태경 기자도 잘 알다시피 노사모 관련 단체들은 파병에는 반대하면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결정은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혹시 김 기자는 시민단체와 노사모를 혼동한 것은 아닌가? 아니면 그런 혐의를 두고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취재도 없이 사실을 왜곡하고자 하는 것인가?
  
  김선일 씨 사건이 난 직후 서프라이즈, 국민의 힘 등 이른바 노사모 웹사이트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파병 강행방침을 비난하는 주장이 본격화되면서 매우 심각한 정체성 논란이 일고 있었다. 한편, 김선일 사건 직후 오마이뉴스 편집진에서도 개탄했듯이 파병여론은 50:50의 평행을 긋는가 하면 심지어 찬성 여론이 강화되는 경향도 일부 있었다. 오마이뉴스와 파병반대국민행동이 함께 진행하던 온라인 서명도 예상보다 확산되지는 않았다. 이 사정은 누구보다도 김태경 기자가 잘 알 것이다. 이 상황에서 패닉 상태에 빠진 노사모 들의 촛불집회 참여를 독려하자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이 6월 26일 집회에서 발언한 내용을 인용해 보자.
  
  "탄핵을 막아냈던 그 촛불이 다시 200만, 300만이 모여야 파병을 철회시킬 수 있습니다. 노사모와 국민의 힘 등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들은, 정말 당신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한다면 촛불을 다시 들어야 합니다. 열린우리당에서 개혁파로 불리는 분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당론 바꿀 생각이 없으면 차라리 의원 그만 두십시오."
  
  내가 기억하기에 최 총장의 발언은 그 날 발언 중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발언이었다. 김태경 기자는 이 발언에서 읍소형 운동을 발견했는가? 필자는 정세에 걸맞는 대중연설의 생생한 사례를 보았다.
  
  추론과 가정에 기초한 근거 없는 논리비약
  
  이 소제목은 청와대가 공개한 대외경제정책보고서에 대한 파병반대국민행동의 반박보고서 제목과 동일하다. 이 보고서는 파병 결정 시 경제위기론 등을 내세우며 파병의 필요성을 주장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었다. 시민단체들은 청와대가 근거 없이 경제위기를 들이대면서 국민을 협박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김태경 기자의 기사에는 ‘알려진 시민단체’들을 비판하면서도 구체적인 사례나 근거는 거의 인용하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로 말하면 파병반대국민행동 제안단체이자 파병반대운동 내내 정책분야를 담당했던 중심단체인데 기사 첫머리에 이름만 인용해놓고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김태경 기자가 비판하는 ‘주류 시민단체’에 참여연대가 포함되는 것인지 아닌지 도무지 알아 볼 수가 없다. 김 기자가 유일하게 언급한 것은 참여연대가 운영위원회에서 노무현 퇴진에 반대했다는 내용인데, 이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대다수 민중단체들도 같은 입장이었다.
  
  김 기자 기사에는 여성연합이 자주 거론되는데 여성연합에 대한 비판은 다소 엉뚱한 내용으로서 본 주제인 파병반대운동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김기자 기사에는 여연 소속 단체로서 여연을 대표해 파병반대국민행동의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은 평화를만드는여성회가 얼마나 열심히 파병반대운동에 참여했는지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없다. 또한 여성운동 진영의 파병반대운동에 대해서 구체적인 평가나 지적도 없다. 만약 여연이 왜 전적으로 파병반대에만 몰두하지 않았냐고 비판하려면 동일한 잣대를 전교조, 전농, 보건의료연합 같은 민중단체들에도 적용해야 마땅하다. 민언련이 왜 노무현 퇴진 구호를 내거는데 반대했냐고 비판하려면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이 왜 노무현 퇴진 구호를 내걸지 않았는지도 함께 거론해야 한다.
  
  안타깝지만 탄핵반대 집회에는 20만명이 모였는데 파병반대 집회에는 최대 15000명이 모였다. 이 상황이 누구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파병반대운동을 전개했던 운동주체 자신이다. 그러나 20만명을 시민단체의 힘으로 모은 것이 아니었듯이 파병철회에 대중 동력이 실리지 못한 정세적 한계를 특정 시민단체의 노무현 편향 탓으로 돌리는 것도 상황을 과장하는 것이다.
  
  평화운동 역량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때
  
  지난 주말, 파병반대국민행동 상황실은 10개월만에 처음으로 벼르고 벼르던 나들이를 동해바다로 다녀왔다. 우리는 바닷가에서 마치 미친 사람들처럼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고 아직 태풍의 뒤끝이 가시지 않은 동해의 거친 파도 속으로 뛰어들어 뒹굴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너무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운영위원회, 기획단과 정책사업단, 상황실의 활동 중 부족한 점도 많았다. 논쟁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10개월 내내 민중단체 시민단체, 정당과 정파를 초월하여 파병반대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밤샘작업을 마다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달려왔다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다. 아직 1차전 밖에 끝나지 않았지만 참으로 힘겨운 싸움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형성된 서로에 대한 신뢰는 확고하다. 이 신뢰는 모든 문제를 토론과 합의로 풀어온 파병반대국민행동의 운영방식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김 기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파병반대국민행동 내에 이견이 심각한 것은 아니다. 나는 사소한 차이를 강조하기보다 아직 취약한 평화운동 역량의 강화를 위해 서로를 보듬고 단결할 때라고 믿는다. 김기자가 지적한 것처럼 11월 연장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되거나 파병 부대에 사상자가 나오는 등 진정으로 단결된 힘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태호/참여연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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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8-30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교양서 쓰면 손가락질 당해…원서 사용 오히려 증가
진단_과학 교양교재 출판의 현황과 과제

2004년 08월 30일   권기호 과학칼럼니스트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물질세계는 양방향성을 강화해 가고 있으며, 이것은 삶의 모든 분야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상품화와 보편화를 주도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물질세계를 기반으로 하는 정신세계나 지식세계의 한편에서는 양방향성이 약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과학 커뮤니케이션이다.
미셸 푸코의 말처럼 아는 것이 힘, 곧 권력이므로 먼저 많이 알고 독점하려는 자가 있게 마련이다. 20세기에 들어서 과학?기술은 드디어 권력을 쥐게 되었고 세계는 치열한 과학기술 전쟁을 벌여 왔다. 권력에는 부와 명예가 따르므로 급격히 늘어난 과학기술자들은 무한 경쟁 속에서 선취권과 독점주의에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

젊은 교수들일수록 원서 의존도 높아

더구나 우리나라는 서구의 과학기술을 산업 발전의 원동력으로만 받아들여 ‘지식인’이 아닌 ‘전문가나 기술자’만 양산하고 그들을 이용하는 데 골몰해 왔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철학과 역사 같은 근본 문화가 없는 사상누각이며, 과학기술자들에게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동참하라고 하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과학기술자들은 그러한 근본 문화를 제대로 교육받은 적이 없을뿐더러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할 의지도 시간도, 능력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수리물리학자 앨런 소칼은 인문학자들의 ‘지적 사기’를 신랄하게 꼬집었지만, 사실 그러한 지적 사기를 야기한 데에는 자연과학자들의 잘못이 크다. 많은 자연과학자들은 발견하거나 발명한 사실을 책이나 강연을 통해 쉽게 설명하기보다 현학적 아우라를 씌워 고답적인 것으로 포장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할머니에게 설명할 수 없다면 진정으로 정통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난해함은 단절과 오해와 왜곡을 낳는 법이다.
우리나라에서 과학 출판을 비롯한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침체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잘못된 국가 정책이다. 과학기술을 이 시대 문명과 생활의 일부로서 인식하지 않고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한, 과학기술은 교과서와 실험실의 장벽을 허물고 세상과 소통할 수 없다. 편향된 교육 제도는 말할 것도 없다. 과학기술이 인간의 학문인데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주체인 인간을 빼고 나머지만 가르친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과학기술이나 그 산물을 통해 철학적 사유를 하거나 사회와 문화를 해석하는 일 따위에 관심이 없다.
이제는 많은 교수와 학생이 그 못된 타성에 젖어 있다. 유학파 젊은 교수들일수록 원서와 외국어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며, 학생들은 마지못해 또는 환상에 젖은 채 따라가고 있다. 자연히 우리말로 된 교재나 교양서는 줄어들고, 범람하는 새로운 용어와 개념들이 번역되지 않은 채 고착화되는 현상도 폭증하고 있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 언어의 문제로 이어진다. 언어는 인식의 출발점이므로 언어 자체가 혼란스럽거나 난해할 경우 커뮤니케이션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우리 후손은 외국어에 대한 엄청난 부담을 안은 채 과학기술을 더 기피할지 모른다.

‘수준 낮은 독자’ VS ‘역량 부족 저자’

최근 과학 교양서 번역물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몇몇 소장파 과학 저자들이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해 왔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과학 교양서 시장의 성장을 논하기는 이르다. 우선 번역물의 경우, 교양서의 종수는 늘었지만 평균 판매 부수는 줄어들었고, 과학기술 발전의 기초가 되는 교재나 학술서도 원서 사용의 증가로 오히려 줄었다. 국내 저술의 경우도 초·중·고교생을 위한 에듀테인먼트 내지 부교재만 늘었지 대학생이나 일반인을 위한 고급 교양서는 여전히 드물다.
읽을 만한 과학책이 없어 못 읽는다는 독자와, 읽어 주는 독자가 없어 과학책을 못 내겠다는 저자나 출판사 중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야 한다면 지금은 독자의 편에 가깝다. 재미있고 쉽게 또는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쓸 만한 지식 인프라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저자나 출판사의 외침은 공허하다. 왜냐하면 저자나 출판사가 독자의 수준과 기호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책을 펴낼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수준 낮은 독자’ 탓만 하는 저자가 있는가 하면 ‘역량 부족인 저자’ 비난만 하는 독자도 적잖다.
또한 교수나 전문가 집단에서 ‘대중을 위한 책’을 펴내는 것이 ‘딴전’을 부리는 것으로 낙인찍히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진지한 순문학 작가의 조금 경쾌한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그 작가가 문학적 순수함을 잃은 것으로 내몰리듯, 대중을 위한 교양서를 쓰면 학문적 순수함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손가락질당하는 풍토는 과학 교양서 출판 활성화에 큰 걸림돌이다.
그렇다면 얼핏 대학출판부에 기대를 걸어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대학출판부는 대학 부설 편집·인쇄소나 다름없다. 대학출판부장이라는 자리도 대개 교수들이 번갈아 가며 임기만 채우기 때문에 눈여겨 볼만한 출판 콘텐츠가 별로 없다. 우리나라는 정부 지원 부족, 도서관 부족, 불법 교재 복제 같은 눈앞의 주요 장애가 먼저 해소되고 과학 교육이 혁신되어야만 과학 교양서 출판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권기호/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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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4-08-30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엿듣기로는 인문학 교수들은 오히려 교양서 써서 잘 팔리면 우쭐하는 분위기던데요^^

balmas 2004-08-30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문학 교수들과 자연과학 교수들이 성향이 좀 다르겠죠.
그런데 (이런 말 해도 되나 모르겠네) 사실은 교양서 잘 쓸 수 있는 사람도
드문 편이죠.
그러니 우쭐해 할 만합니다.^^
 
 전출처 : mannerist > [펀글] 고종석 선생, 대놓고 욕설 쓰다.

[이런 생각] 신기남 사태의 미적 효과
고종석 논설위원

신기남 의원의 여당 의장직 사퇴가 일차적으로 야기한 ‘미적’ 효과는 코믹함이다.

긍정적 함의만 담긴 것은 아닌 ‘탈레반’이라는 별명을 기꺼이 받아들였을 정도로 윤리적 원리주의를 뽐내던 그가 무슨 대단한 정치적 과오가 아니라 개인 윤리 문제로 낙마했으니, 쓴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맥락이 다르기는 하나, 그저께 이 난에서 강병태 논설위원이 지적했듯 신 의원은 제가 던진 부메랑에 맞은 셈이다.

원리주의라는 기준으로 보자면, 특히 언어 차원의 원리주의라는 기준으로 보자면, ‘탈레반’은 신 의원에게 사뭇 어울리는 별명이다.

민주당 분당을 선동하며 “호남에서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야 영남에서 표를 얻을 수 있다”는 과격한 언사로 지역주의 타파의 챔피언을 자임한 이래, 그는 현실의 복잡다단한 매듭을 선명한 언어의 칼날로 단번에 베어내며 한국 정치의 주관적 해결사 노릇을 해 왔다.

신 의원의 급진적 말버릇이 어떤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된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한국 정치의 오묘한 파동방정식에 힘입어 여당의 대표까지 되었다.

지적해야 할 것은 신 의원의 언어적 원리주의가 극에서 극으로 치달았다는 사실이다.

지난 1월 윤영관 당시 외교부 장관 낙마를 전후해 “숭미주의(崇美主義) 사고로 가득한 외교부 대미 라인 간부들을 즉각 경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그는 6개월 뒤 미국을 방문해서는 “미국말고 우리에게 동맹이 어디 있느냐”며, 김선일씨 살해 위협을 무시하고 이라크 추가 파병 원칙을 재확인한 정부의 ‘결단’을 잘한 일이라고 추켜세워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이런 언어 수준의 반미 원리주의와 친미 원리주의 사이의 왕복은 노무현 대통령이 이미 보여주었거니와, 신 의원의 어지러운 행보 역시 그의 언어적 원리주의가 기회주의적 원리주의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기회주의적 원리주의자가 여당 의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여권이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과는 달리, 그가 일본제국 군대 헌병의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선친의 과거를 숨기고 외려 미화했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과거의 친일 세력을 보호하기 위해 총궐기한 수구ㆍ보수 담론에서 주로 나왔다는 사실은 그 지적의 옳고그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내전 당시 빨치산 토벌대장이었다는 선친의 경력을 자랑스레 내세우는 신 의원의 천박한 역사인식을 비판할 수는 있을지언정, 친일 행위자의 후손이라는 사실 자체가 어떤 개인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설령 여러 증언대로 신 의원 선친의 일제 협력 행위가 사뭇 ‘악질적’이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신기남 사태의 미적 효과는 단지 코믹일 뿐인가? 오마이뉴스는 의장직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하고 고향으로 선친 묘를 찾은 신 의원을 취재해, 그와의 인터뷰 기사에 곁들여 그의 선친 묘역 사진을 큼직하게 실었다.

한 눈에도 호사스럽게 조성된 이 묘역과 고인의 비문 뒤에 이름을 새긴 자녀들의 면면은 신기남 사태의 미적 효과가 단지 코믹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씁쓸히 보여주었다.

코믹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교수 겸 무대예술가, 국회의원 겸 변호사, 의학박사 등으로 잘 장성한 자식들이 선친의 묘비에 구태여 제 미끈한 직함들을 밝혀놓은 데서는 어떤 ‘봉건적’ 촌스러움이 느껴졌고, 그것은 코믹의 한 영역이라 할 만했다.

그러나 고인의 자식들이 해방 뒤 어려운 상황에서 저렇게 버젓하게 자란 것이 오로지 재능과 노력 덕분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그리고 민족해방운동에 헌신한 이들의 후손들이 이 나라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에 대해 생각이 미치자, 이 봉건적 촌스러움은 더 이상 코믹하지만은 않았다.

거기에선 한국 현대사를 관통해온 지랄 같은 비극의 냄새가 배어나왔다. 글피가 아흔네 번째 맞는 국치일(國恥日)이다.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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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제외하고 내가 이제까지 접한 고종석 선생의 글에서 나온 감정섞인 가장 과격한 표현은.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에서 대머리 XXX 전통을 가리켜 '파시스트 두목'이라고 쓴 것이다. 지랄 같은 비극의 냄새. 선생이 수위가 한계까지 올라간 만큼, 저 작자들이 판치는 한국은 비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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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TK지역주의 주민들 의식속 내면화

“TK지역주의 주민들 의식속 내면화”
[한겨레 2004-08-26 17:58]
[한겨레] ‘황해문화’ 가을호
영남지역주의 해부

“권위주의, 성장 제일주의, 안보 지상주의, 대북 적대주의를 원형 그대로 간직”한 곳, “박정희 패러다임이 가장 전형적인 형태로 살아서 작동”(홍덕률 대구대 교수)하는 곳. 그런 곳이 대구·경북이다.

대구·경북 연고있는 교수들이 분석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주도하는 국가 정체성 논란의 이면에는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한 ‘박정희식 국가주의’와 ‘영남 지역주의’의 오묘한 결합이 있다.

“박근혜는 대구·경북 사람들이 돌아가고 싶어하는 과거를 표상하는 기표”이며, “한나라당의 반공주의와 대구·경북의 지역주의가 서로 볼모로 잡고 변화와 개혁에 저항”(김동춘 성공회대 교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해문화〉 가을호가 영남 지역주의를 본격 해부하며 그 핵심을 파고들었다.

김명인 편집장은 “이러다가 영남이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의 ‘왕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이번 특집을 마련한 이유라고 설명한다.

그 일은 “지역정서로부터 자유로운 인천에서 내는 전국 규모의 종합계간지 〈황해문화〉가 가장 적임”이며 “(정치권의 선거전략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적기”라고 덧붙였다.

대구·경북에서 태어난 김동춘 교수, 이 지역 대학에 재직중인 이윤갑(계명대)·홍덕률(대구대) 교수, 오랫동안 대구 지역 대학에서 봉직했던 최원식 인하대 교수 등이 여기에 기꺼이 참가했다.

이들이 보기에 현단계 영남 지역주의의 본질은 “권력엘리트와 보수언론이 유착해 20여년 이상을 형성한 결과, 지역주민의 의식 속에 내면화”(이윤갑)됐다는 데 있다.

이런 영남지역주의는 ‘대구·경북 지역주의’로 다시 집약된다.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이 좌담을 통해 “지난 총선 때 부산에서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40%에 육박한 결과는 참 놀라운 변화”라고 평가할 정도로 부산·경남의 변모 양상이 뚜렷한 반면, 대구·경북은 “박근혜 대표가 방문하면 갓쓴 노인들이 길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권기홍 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후보)을 정도로 요지부동에 가깝다.

홍덕률 교수는 ‘내면화’된 대구·경북 지역주의의 핵심 이데올로기를 추출했다. 그것은 대구·경북이 나라의 중심이라는 ‘대구·경북 우월주의’ 또는 ‘소중앙의식’,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선호와 향수로 대표되는 ‘국가중심주의’, 그리고 남북화해 정책에 배타적인 ‘반공주의’ 등이다. 이는 ‘박정희 패러다임’의 핵심요소이기도 하다.

우월주의·국가중심주의·반공주의
지역주의는 특정 정당이 국회의원은 물론 지자체장과 지방의회까지 독식하는 일원적 정치구조, 지역의 언론·대학·종교는 물론 유난히 발달한 계(契) 형태의 자발적 소집단과 관변단체를 통한 보수 이념 확산 등을 통해 재생산된다. “오늘날 이 지역이 겪고 있는 정치·행정적 무능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낙후”는 “기존 질서에 대한 맹목적 집착, 변화에 대한 저항, 현실 안주”의 결과다.

김동춘 교수는 대구·경북 지역주의가 “중앙권력을 싹쓸이하자는 패권적 지역주의로부터 힘을 결속해 장차 권력을 되찾자는 방어적·자기보호적 지역주의로 변해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 남부주민들과 닮았다
“경상도 정권의 혜택에 대한 역사적 기억”을 간직한 지역민들은 이제 “지역 기업이 망한 것도 경상도 죽이기라고 이해”하면서 “한국경제 침체 등 일반적 차원을 고려하지 않고 지역 경제의 위기와 개인의 고통을 지역주의라는 프리즘을 통해 읽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정서는 미국 남부 주민들의 그것과 닮았다. “열악한 경제적 처지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 정당인 공화당을 지지하고, (진보하는) 북부의 산업문명에 대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으며, 노예를 부리며 백인의 자존심을 지켰던 과거의 기억을 간직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구·경북 지역주의의 더 큰 문제는 그런 기억을 ‘간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안주’하며 ‘확장’시키려 한다는 데 있지 않을까.

영남은 원래 ‘저항’의 중심지
박정희정권뒤 대세 바뀌었다

영남지역주의 극복의 실마리는 ‘역사’에 담겨 있다. 이윤갑 교수는 근대 이후 이 지역의 ‘저항역사’를 살핀다. 영남은 동학이 창도되고 의병전쟁과 국채보상운동, 실력양성운동의 불씨를 지피는 등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다. 1930·40년대에는 사회주의 운동을 비롯한 좌익의 영향력이 다른 지역을 능가했다.

그 결과 해방정국에서는 건국준비위원회 및 좌익정당의 세력이 가장 강하게 뿌리 내려, 1946년 10월1일 대구의 ‘인민항쟁’으로 이어졌다. 1956년 대통령 선거 당시, 대구에서는 진보당의 조봉암이 10만여표를 얻어 3만8천여표를 얻은 이승만을 압도했다. 1960년 4월 혁명을 이끈 2·28학생시위와 교원노조운동이 일어난 곳도 대구였다. 박정희 독재시절 인혁당 관련자 대부분은 대구·경북 출신이었다.

그러나 박정희·전두환 정권을 거치며 ‘대세’가 바뀐다. “이북 출신 중심의 이승만 정권의 유산을 걷어내기 위해 박정희 정권이 신라를 상징조작의 대상으로 삼으며 영남 중심의 정체성을 확립”(최원식)했고, “정치적 지지기반이 없는 전두환 정권이 박정희 정권 때 탄생한 영남 출신의 권력 엘리트를 지역 연고주의에 이용”(이윤갑)한 결과다.

김동춘 교수는 이 지역의 문화전통에서 수구와 저항의 가닥을 동시에 길어올렸다. “지역맹주를 중앙권력에 진출시켜 집단의 이익을 도모했던 영남학파의 세도·붕당정치”가 그 시원이다. “독립운동가·사회주의자·무정부주의자가 많이 배출된 것도 조선 후기 사화를 거치며 중앙정치로부터 소외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유교문화는 대의명분을 추구하는 흐름과 씨족중심주의를 지키려는 흐름으로 이어져오다, 박정희 정부를 고비로 “대의명분 지향성은 사라지고 권위주의와 가부장주의만 창궐”하게 된다.

이윤갑 교수는 “동학·사회주의·진보당 등이 당대의 모순을 해결할 새로운 사상체계를 제시했듯이 보수적 지역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사상·문화운동이 필요하다”는 해법을 내놓는다. “시대적 모순에 맞서 보편적 평등과 자유를 추구한 (영남의) 진보적 전통과 건강한 잠재력”을 일깨울 이념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홍덕률 교수는 당면한 과제로 “정치·행정적 독점구조를 위에서부터 해소하고, 시민사회 내부의 지역주의·보수주의의 순환고리를 해체하는 ‘이중적 민주화’”를 제시했다. 특히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정치적 독점구조를 깨고 ‘다원적 정치경쟁 체제’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봤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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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상처 속에 쟁여 둔 아름다움-이정록 관련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풋사과의 주름살>><<버드나무 껍질에 세들어 살고 싶다>> 이 세 권의 시집을 두고 우리는 90년대 적인 새로움을 얘기하기는 힘들다. 젊은 시인이 과히 새롭지 않다는 것은 그다지 즐거운 소리는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정록이 전통적인 시쓰기의 양식을 지키며 관찰을 통찰로 바꿔나가는 과정을 통해 시읽기의 즐거움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이정록의 시에 처음 주목한 것은 그렇게 문학사적인 이유나 보편적인 문학의 문제를 보는 시각 때문은 아니었다. 시를 보는 눈을 현혹시키는 수많은 시인들의 감수성의 광휘와 개성의 숲을 피해가다보니 평범한 사람의 눈높이에서 갈고 닦은 성실한 시가 어떻게 빛날 수 있는지를 밝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내가 이정록의 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시쓰기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어 그의 기본기를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말하자면, 시를 쓴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세기말에도 변함 없는 목소리로 말해주는 시인의 목소리가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이정록의 시들은 상처를 이야기한다. 그의 상처는 특별한 천재의 표식으로서의 상처가 아니다. 우리는 첫 시집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의 '서시'를 통해 그가 말하는 상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서시> 전문

 

 

그는 자신의 몸에 상처가 적음을 반성한다. 상처란 인간 사회 속에 파고들 때 생기는 성실성의 증표다. 그는 상처 없이 해탈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상처란 자신이 살아온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여 주는 바로미터이기에 그것을 온 몸에 품고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의 상처에 대한 이해는 두 번째 시집 <<풋사과의 주름살>>의 첫 시 '자두나무'에서 다시 등장한다.

 

개망초 꺽으며 너에게 간다

짱짱, 햇살을 쟁이는 푸른 자두들

 

바닥에 때 이르게 물러 떨어진

열매들, 모두 벌레 먹은 녀석들이다.

 

벌레가 들자, 성한 놈 제쳐둔 채

온 몸으로 단물을 올려주고

씨알 여물게 해준 자두나무

 

낮술에 골아떨어진 호주에게

부채를 부쳐주던 여자가, 저 자두나무

그늘에 쪼그리고 있었다

 

늙은 몸통, 갈라진 홈마다

붉은 눈물 솔아 있다

 

땅바닥 쪽으로 쏠려 있는

한 여자의 오래된 눈길

 

<자두나무> 전문

 

위 시에서 시인은 벌레 든 자두에 먼저 단물을 올려주는 나무를 바라본다. 그러고는 '늙은 몸통, 갈라진 홈마다/붉은 눈물 솔아' 있는 모습을 '오래된 눈길로' 내려다 보고 있다. 상처에 대한 이정록의 꾸준한 시선은 '풋사과의 주름살'에서 한 정점을 이루는 것 같다.

 

어물전 귀퉁이

못생긴 과일로 탑을 쌓는 노파

 

뱀 껍질이 풀잎을 쓰다듬듯,

얼마나 보듬었는지 풋사과의 얼굴이 빛난다

더 닳아서는 안 될 은이빨과

국수 토막 같은 잇몸과, 순전히

검버섯 때문에 사온 낙과

신트림의 입덧을 추억하는 아내가

떫은 핀잔을 늘어놓는다

식탁에서 냉장고 위로, 다시

세탁기 뒤 선반으로 치이면서

쪼글쪼글해진 풋사과에 과도를 댄다

버리기에 마음 편하도록 흠집을 만들다가

생각없이 과육을 찍어올린다

떫고 비렸던 맛 죄다 어디로 갔나

몸 안을 비워 단물 쟁여났구나

가물가물 시들어가며 씨앗까지 빚었구나

생선 궤짝에 몸 기대고 있던 노파

깊은 주름살 그 안쪽,

가마솥에도 갱엿 쫄고 있을까

낙과로 구르다 시든 젖가슴

그 안쪽에도 사과씨 여물고 있을까

 

주름살이란 것

내부로 가는 길이구나

연 살처럼, 내면을 버팅겨주는 힘줄이구나

 

<풋사과의 주름살>

 

노파와 쪼글쪼글해진 풋사과의 주름살의 연결이 놀라울 정도로 평이한 진술 속에서 이루어져 있다. 풋사과의 쟁여놓은 '단물'이 노파의 '가마솥' '갱엿'이 되고 주름살이 '내부로 가는 길'이 되는 이 인식의 힘. 결국 '인간의 내면을 버팅켜주는 힘줄'이 주름살 혹은 상처인 것이다. 이 상처에 대한 시인의 오랜 시선은 결국 흔하지만 누구도 거부하지 못하는 어머니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 번째 시집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에서 '눈사람의 상처'를 보자.

 

삽날에 잘린 눈사람을 어루만진다

살집 속에 결을 만들어놓은 흙 부스러기

때문에 삽날이 지나간 자리가 꽃등심처럼 곱다

아름다운 것이 이렇게 무서울 수가 있구나

등을 찍혔는데도 무늬를 보여주는 눈사람

저 흙길을 따라가면 서걱서걱 기저귀 얼어 있던 안마당

또 배가 불러오던 어머니를 만날 것 같다

마음 짠해서 어둠을 밝히는 눈송이들

왱이낫이 박힌 옹이 많은 옛길을 덮는다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겹겹 붕대를 두른다

삽날이 지나간 눈사람, 그 흙밥의 나이테를 어루만진다

 

<눈사람의 상처>

 

'삽날에 잘린 눈사람'이 아름다우면서도 무섭다고 했는데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시인이 생각하는 어머니의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배가 불러오던 어머니'가 '마음 짠해서 어둠을 밝'힌다는 '눈송이'란 이 시인의 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세 권의 시집을 통해서 시인의 상처에 대한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그 인식은 첫 시집의 상처 없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에서 시작해서, 상처란 내면의 단물이며 버팅기는 힘이라는 인식으로 한 봉우리를 보여주고 , 다시 상처를 아름답고도 무서운 어머니의 기억으로 내면화시켜내고 있는 듯하다. 나는 이 시인의 이러한 내면의 흐름을 사랑한다. 그것을 따라가는 것은 행복한 시읽기의 길이다. 이러한 서정성과 인식의 깊이를 함께 가진 시인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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