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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지역주의 주민들 의식속 내면화”
[한겨레 2004-08-26 17:58]
[한겨레] ‘황해문화’ 가을호
영남지역주의 해부

“권위주의, 성장 제일주의, 안보 지상주의, 대북 적대주의를 원형 그대로 간직”한 곳, “박정희 패러다임이 가장 전형적인 형태로 살아서 작동”(홍덕률 대구대 교수)하는 곳. 그런 곳이 대구·경북이다.

대구·경북 연고있는 교수들이 분석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주도하는 국가 정체성 논란의 이면에는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한 ‘박정희식 국가주의’와 ‘영남 지역주의’의 오묘한 결합이 있다.

“박근혜는 대구·경북 사람들이 돌아가고 싶어하는 과거를 표상하는 기표”이며, “한나라당의 반공주의와 대구·경북의 지역주의가 서로 볼모로 잡고 변화와 개혁에 저항”(김동춘 성공회대 교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해문화〉 가을호가 영남 지역주의를 본격 해부하며 그 핵심을 파고들었다.

김명인 편집장은 “이러다가 영남이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의 ‘왕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이번 특집을 마련한 이유라고 설명한다.

그 일은 “지역정서로부터 자유로운 인천에서 내는 전국 규모의 종합계간지 〈황해문화〉가 가장 적임”이며 “(정치권의 선거전략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적기”라고 덧붙였다.

대구·경북에서 태어난 김동춘 교수, 이 지역 대학에 재직중인 이윤갑(계명대)·홍덕률(대구대) 교수, 오랫동안 대구 지역 대학에서 봉직했던 최원식 인하대 교수 등이 여기에 기꺼이 참가했다.

이들이 보기에 현단계 영남 지역주의의 본질은 “권력엘리트와 보수언론이 유착해 20여년 이상을 형성한 결과, 지역주민의 의식 속에 내면화”(이윤갑)됐다는 데 있다.

이런 영남지역주의는 ‘대구·경북 지역주의’로 다시 집약된다.

박형준 한나라당 의원이 좌담을 통해 “지난 총선 때 부산에서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40%에 육박한 결과는 참 놀라운 변화”라고 평가할 정도로 부산·경남의 변모 양상이 뚜렷한 반면, 대구·경북은 “박근혜 대표가 방문하면 갓쓴 노인들이 길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권기홍 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후보)을 정도로 요지부동에 가깝다.

홍덕률 교수는 ‘내면화’된 대구·경북 지역주의의 핵심 이데올로기를 추출했다. 그것은 대구·경북이 나라의 중심이라는 ‘대구·경북 우월주의’ 또는 ‘소중앙의식’,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선호와 향수로 대표되는 ‘국가중심주의’, 그리고 남북화해 정책에 배타적인 ‘반공주의’ 등이다. 이는 ‘박정희 패러다임’의 핵심요소이기도 하다.

우월주의·국가중심주의·반공주의
지역주의는 특정 정당이 국회의원은 물론 지자체장과 지방의회까지 독식하는 일원적 정치구조, 지역의 언론·대학·종교는 물론 유난히 발달한 계(契) 형태의 자발적 소집단과 관변단체를 통한 보수 이념 확산 등을 통해 재생산된다. “오늘날 이 지역이 겪고 있는 정치·행정적 무능과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낙후”는 “기존 질서에 대한 맹목적 집착, 변화에 대한 저항, 현실 안주”의 결과다.

김동춘 교수는 대구·경북 지역주의가 “중앙권력을 싹쓸이하자는 패권적 지역주의로부터 힘을 결속해 장차 권력을 되찾자는 방어적·자기보호적 지역주의로 변해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 남부주민들과 닮았다
“경상도 정권의 혜택에 대한 역사적 기억”을 간직한 지역민들은 이제 “지역 기업이 망한 것도 경상도 죽이기라고 이해”하면서 “한국경제 침체 등 일반적 차원을 고려하지 않고 지역 경제의 위기와 개인의 고통을 지역주의라는 프리즘을 통해 읽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정서는 미국 남부 주민들의 그것과 닮았다. “열악한 경제적 처지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 정당인 공화당을 지지하고, (진보하는) 북부의 산업문명에 대한 피해의식을 갖고 있으며, 노예를 부리며 백인의 자존심을 지켰던 과거의 기억을 간직하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대구·경북 지역주의의 더 큰 문제는 그런 기억을 ‘간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안주’하며 ‘확장’시키려 한다는 데 있지 않을까.

영남은 원래 ‘저항’의 중심지
박정희정권뒤 대세 바뀌었다

영남지역주의 극복의 실마리는 ‘역사’에 담겨 있다. 이윤갑 교수는 근대 이후 이 지역의 ‘저항역사’를 살핀다. 영남은 동학이 창도되고 의병전쟁과 국채보상운동, 실력양성운동의 불씨를 지피는 등 ‘항일운동’의 중심지였다. 1930·40년대에는 사회주의 운동을 비롯한 좌익의 영향력이 다른 지역을 능가했다.

그 결과 해방정국에서는 건국준비위원회 및 좌익정당의 세력이 가장 강하게 뿌리 내려, 1946년 10월1일 대구의 ‘인민항쟁’으로 이어졌다. 1956년 대통령 선거 당시, 대구에서는 진보당의 조봉암이 10만여표를 얻어 3만8천여표를 얻은 이승만을 압도했다. 1960년 4월 혁명을 이끈 2·28학생시위와 교원노조운동이 일어난 곳도 대구였다. 박정희 독재시절 인혁당 관련자 대부분은 대구·경북 출신이었다.

그러나 박정희·전두환 정권을 거치며 ‘대세’가 바뀐다. “이북 출신 중심의 이승만 정권의 유산을 걷어내기 위해 박정희 정권이 신라를 상징조작의 대상으로 삼으며 영남 중심의 정체성을 확립”(최원식)했고, “정치적 지지기반이 없는 전두환 정권이 박정희 정권 때 탄생한 영남 출신의 권력 엘리트를 지역 연고주의에 이용”(이윤갑)한 결과다.

김동춘 교수는 이 지역의 문화전통에서 수구와 저항의 가닥을 동시에 길어올렸다. “지역맹주를 중앙권력에 진출시켜 집단의 이익을 도모했던 영남학파의 세도·붕당정치”가 그 시원이다. “독립운동가·사회주의자·무정부주의자가 많이 배출된 것도 조선 후기 사화를 거치며 중앙정치로부터 소외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유교문화는 대의명분을 추구하는 흐름과 씨족중심주의를 지키려는 흐름으로 이어져오다, 박정희 정부를 고비로 “대의명분 지향성은 사라지고 권위주의와 가부장주의만 창궐”하게 된다.

이윤갑 교수는 “동학·사회주의·진보당 등이 당대의 모순을 해결할 새로운 사상체계를 제시했듯이 보수적 지역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사상·문화운동이 필요하다”는 해법을 내놓는다. “시대적 모순에 맞서 보편적 평등과 자유를 추구한 (영남의) 진보적 전통과 건강한 잠재력”을 일깨울 이념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홍덕률 교수는 당면한 과제로 “정치·행정적 독점구조를 위에서부터 해소하고, 시민사회 내부의 지역주의·보수주의의 순환고리를 해체하는 ‘이중적 민주화’”를 제시했다. 특히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정치적 독점구조를 깨고 ‘다원적 정치경쟁 체제’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봤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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