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수수께끼 > 저승사자에 이끌려간 지옥의 형벌을 그린 그림들..
영혼의 여정 - 조선시대 불교회화와의 만남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 국립중앙박물관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절집을 찾으면 스님이 거주하는 요사채를 제외한 모든 불당(佛堂)에는 불화가 있다. 종류도 다양하지만 등장인물도 매우 다양하여 어지간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냥 알록달록한 그림이라 치부하고 지나쳐버리기 딱 알맞습니다.  더구나 신도가 아닌 관광객으로 사찰을 방문하는 이교도들의 눈에는 마치도 무당집으로만 비쳐질 것이다.

 이 책은 2003년 9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특별전으로 전시되었던 불화전의 도록이다. 양산 통도사와 김천 직지사의 성보박물관에 보관, 전시중이던 불화들과 남장사, 해국사의 불화, 그리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중이던 불화중에서 조선시대의 불화를 전시하며 "영혼의 여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불화를 "영혼의 여정"이라고 이름붙인것은 불교적 교리의 '윤회'의 의미를 말하기도 하지만, 불화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세계를 한 마디로 정의한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의 죽음이란 또 다른 삶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이기에 그 광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일들, 즉 저승사자에 의하여 이승에서 심판을 받으며 업보에 따라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불화에 담고 있으며 가장 성스러운 탄생인 연화생(蓮花生)의 모습까지도 표현하고 있다.

 도록중 도판은  '지옥' , '극락을 향하여','수행과 염원'이라는 세 개의 소주제로 나누고 있으며 논고로는 김승희, 정명희, 문동수, 천주현 등의 불화에 대한 연구 논문과 보존처리 조사보고서가 첨부되어 있다. '지옥'편에서는 인간이 이승을 떠나 저승사자의 손에 이끌려 저승세계의 왕들에게 나가서 살아생전의 업보에 대하여 심판을 받고 죄중에 따라 다양한 처벌을 받는다. 지옥에는 10명의 왕이 있어 이 왕들 앞에서 죄질에 따라 문초를 당하며 이승에서의 업보에 따르는 고초를 겪게 되는데 이러한 절차를 묘사한 불화가 바로 시왕탱(十王幀)이다. 이 시왕탱화는 모두 10명의 왕이 벌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 벌을 받는 인간의 모습은 제각각의 형벌대에서 고통과 낙담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불화는 현생을 사는 인간들에게 나쁜 업보를 쌓으면 죽어서도 무서운 형벌을 받으니 착한 일을 하라는 교훈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할 것이다.

 '극락을 향하여'편에는 '지옥'을 거쳐 새롭게 태어나는 구제된 인간이 극락을 향하여 자력과 타력의 수행을 통하여 화엄세계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가 갖는 원융(圓融)의 상징적 체계로 나타나며 지옥과 극락이 분리된 세계가 아닌 하나의 여정임을 감로탱(甘露幀)을 통해서 알수 있다. 이 불화는 영혼의 여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감로탱에는 여래와 보살, 지장과 관세음보살등 구제와 관련이 있는 불보살들이  영혼을 맞이하며 영혼의 여정을 이끄는 불보살의 주변에는 긴 구름의 꼬리가 하늘로 뻗어 천상의 세계, 극락정토에서 하강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지옥과 지상, 천상은 하나의 유기적인 순환체라는 것을 조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감로탱에서는 구제와 자비를 수행하는 불보살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는 감로, 즉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르면 어떤 대상에 대한 구별이 없는 만인평등의 구제임을 나타내고 있다.

 '수행과 염원'에는 인간의 윤회를 마무리 짓는 극락정토에서의 안착을 위한 수행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이 수행의 길은 모든 업보를 참회하고 고집멸도(苦集滅道)를 깨달아가는 어렵고도 먼 길을 그리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죽은자의 여혼을 위로하고 극락왕생으로의 인도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사찰에 불화를 모셨다. 이렇게 하므로써 망자가 지옥으로부터 구제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의 소산물로 불화가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도록의 도판은 우선은 전체 사진을 싣고, 중요한 세부 사진은 확대하여 상세히 설명하고 있으나 도록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여건의 제한임을 느낄 수 있다. 사실, 불화를 감상함에 있어 그 세부 묘사에 대한 자세한 감상은 필수조건임에도 도록이기에 어쩔 수 없는 제한된 공간에서의 만남이라는 안타까움을 담고 있다. 그러나 비교적 세부묘사의 중요성이 인정되는 지옥도는 인간의 형벌모습을 확대하여 담고 있다.

 券末부록에는 불화의 아랫쪽에  명기된 화기(畵記: 화기에는 누구를 위하여 누구의 발원에 의하여 초본은 누가 그리고 화공은 누구였으며, 언제 그렸다는것 등등이 담겨있다)를 싣고 있는데 이 화기는 불화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작자를 알 수 있는것은 물론이고 왜 불화를 그리게 되었는가에 대한 내용...그리고 가장 중요한것은 아직까지 정립되지 않은 화승(畵僧)의 계보를 파악하는 중요한 사료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비록 전시회는 한 달 남짓으로 끝났고 불화는 원래 불화가 걸려있던 사찰에 가면 다시 볼 수 있게되었지만 불화에 대하여 상세한 내용을 몰랐던 사람들에게는 도록이지만 절간에 걸려있는 불화에 대한 대략적인 조형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그 가치를 담고 있다 할 것이다.

 

조선인
얼마전 수원 용주사로 탱화기행을 갔어요. 원래는 브라이언 배리 선생님과 같이 가기로 했는데, 그만 일정이 어긋나는 바람에 문외한끼리 코끼리 다리 더듬느라 우스웠지요. 그러고보니 용주사 탱화가 김홍도 작이냐 아니냐에 대한 님의 의견도 듣고 싶네요. - 2004-11-11 05:15
 
수수께끼
용주사 후불탱화는 양분된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탱화 기법은 일반적인 동양화와는 다소 다른데 용주사 탱화가 서양화와 같은 음영기법을 적용한 최초의 작품 운운합니다. 탱화의 아랫부분에 보면 중앙에 붉게 경명주사로 마련된 공간이 있는데 이곳에 화기(畵記)를 기록합니다. 화기는 그림을 완성하고 마지막에 쓰는것이라 '발미'라고도 합니다만, 이 탱화는 발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탱화의 기법은 소위 보카시기법(태서법)을 사용하여 인물의 얼굴 표현등을 입체감이 살도록 한 그림인데, 그림의 잘잘못이나 또는 교리상의 도상형식이 맞는가 보다는 주로 김홍도의 작품이 맞다...틀리다로 논쟁이 일지요... 참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어느것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화가는 어떤 그림에서 "평생 단 한번"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소설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처럼 단 한편만 남을 수 있지만 그림은 유사한 여러 그림을 그려야만 접근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 탱화는 저로서는 딱 잘라 김홍도의 그림이 아니라고 말씀드립니다. 양식이나 접근방법에서 전혀 김홍도의 작품세계를 접할 수 없음에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일반 기록(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 나타난 내용을 확대해석하여 김홍도의 그림으로 판단하는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조가 김홍도를 용주사에 머물게 하였고, 또 "부모은중경"을 그리고 목판에 새긴것은 사실이나 김홍도의 감독하에 조성된 탱화가 반드시 김홍도가 그렸다고 말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그림에 관해서는 1편의 논문도 있는데 잘 모르고 논문을 본 분들은 김홍도의 그림으로....그러나 탱화에 대해 제대로 아는 분들은 아닌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말씀을 첨언합니다...김홍도의 그림으로 알려진것은 대웅전 바로 뒷편의 시방칠등각에 있는 3개의 탱화중 가운데 탱화도 있는데 화법이 상당히 다름을 알 수 있답니다......답변이 되었는지요? - 2004-11-11 07:29
 
수련
탱화작품은 어느것을 막론하고 한사람이 그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특시 조선시대는 주로 궁실화가들이 왕실원찰의 탱화를 그렸습니다. 그 당시에 김홍도 역시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중의 높은 직책에 있었던 한사람으로서 용주사 후불도제작시 도편수로서 탱화의 일부를 제작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조선시대와 구할말의 모든탱화들이 화승들이나 도화서 화원들의 팀웍에 의하여 제작된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제 의견으로는 김홍도가 용주사 후불탱화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는 볼 수 없고 도편수로서 작품제작의 감독정도로 도화서의 합동작이였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불화제작에 임하는 사람들은 각기 재능에 따라 초를 잘내는 사람, 바름질을 잘하는 사람, 영락을 잘꾸미는는 사람 등 이 있었고 현재도 그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저는 수수깨끼님께서 말씀하신 딱잘라라는 말에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군요.
하지만 화기가 없으니 모든 말들은 추측에 불과하겠죠. - 2004-11-11 10:09
 
수수께끼
탱화 제작에 있어 말씀하셨듯이 화기의 연화질에 기록된것과 같이 많은 화승이나 화원이 그리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답니다. 의외로 한분이 제작한 탱화가 많이 있습니다. 금호당 약효스님도 그랬고, 정연스님도 혼자서 제작하신 작품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보응도 마찬가지입니다.이런 내용은 "한국의 불화" 전집의 뒷편에 있는 화기편을 자세히 읽어보신다면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또 1800년대에 활동하셨던 홍안스님은 대부분의 작품을 혼자 그리셨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라기보다는 탱화를 작업하시는분들의 성향도 불화를 제작함에 있어 많이 좌우된듯 보이며, 저같은 경우라도 혼자 제작을 할 것입니다.왜냐하면 단순히 그리기만을 위한 작업이 아니라 교리적 내용을 녹아들게 하려면 자신이 불화 제작의 기능을 가졌다면 다른 사람의 힘을 구태어 빌리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랍니다.
말씀하신대로 김홍도는 용주사의 탱화제작에서 총책임을 맡았는데(이럴때는 도편수라고 하지 않습니다. 도편수는 영화 감독 같은 것이고 용주사에서의 김홍도의 역할은 제작자...정도입니다) 다만 책임을 맡았을 뿐이며 제작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왕실 화원의 특성상 "단원"이라는 낙관이 들어가는것은 필수임에도 화기조차 없다는 것은 이 작품이 김홍도의 작품이라는데 많은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서양의 기법 운운하지만 실제 그 당시에 바름질이라는 태서법이 들어왔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인하여 현재 용주사 탱화의 제작시기마저도 모호한 입장이며 일부에서는 그보다 더 늦은 시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보기도 합니다. 어떤 시대에 변화나 발전의 과정을 보이지 않으며 유일하게 나타나는 형태나 양식을 그 시대의 작품으로 평가한다는것은 상당한 위험을 가져오기에 용주사의 후불탱화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어 그냥 김홍도가 그렸다는 이야기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은중경'은 분명히 왕의 분부를 받들어 그렸고, 목판에는 다른 목공장이 각인을 하였기에 김홍도의 작품과 다를바가 없다 할것이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김홍도는 밑그림을 그린 것이며, 판각은 목조각장이 한것으로 구분을 해야 할것입니다. - 2004-11-12 01:35
 
balmas
엇, 주문하려고 봤더니 품절이네요.
다른 데서 주문해야지 ... - 2004-11-12 02:03 수정  삭제
 
수수께끼
이크!! 발마스님...제가 말씀드린대로 제가 읽는 책은 그리 많이 팔리지를 않나봅니다. 몇 권 가져다 놓았다가 팔리면 그만이고 그런 책들인지 번번히 발마스님이 찾으시는 책은 없군요...제가 그 빌미를 제공했으니 구해서라도 드려야 하는데...거참...문제네요... - 2004-11-12 05:54
 
조선인
오랜만에 알라딘에 와봤더니 이처럼 자세한 이야기가 논해지고 있군요. 김홍도작이냐 아니냐라는 지엽적인 궁금증을 가진게 무색해집니다. 사실 용주사 기행은 여러 모로 속상한 경험이었습니다. 회사일로 차일피일 미룬게 벌써 1달이 다 되어가네요. 후기 올리면 꼭 한말씀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
참, 발마스님, 지난달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팔고 있는 걸 본 적 있어요. 알라딘이나 웬만한 서점에서 다 품절로 나오는 도록도 박물관에서는 꽤 찾아볼 수 있더군요. - 2004-11-13 11:36
 
수수께끼
아...국립중앙박물관에는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은 중앙박물관이 폐관을 했기에 차라리 국립민속박물관에 가시면 구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김홍도는 당시 화원의 수장으로 '화성능행도'등을 제작하기 위하여 정조를 따라 융건릉에 자주 갔었습니다. 역대 조선의 임금중 가장 많이 화원들을 활용하여 그림을 남긴 임금이 정조임금으로 조선왕조실록에는 한달에 일곱차례나 화성에 행차를 했던적이 있었다 하니 그 수 차례의 능행을 보고 그림을 그린 왕궁 화원의 노력으로 "화성능행도"가 만들어진것입니다. 김홍도作이냐는 문제에 있어서는 단지 화원이라고 해서 불화를 그리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겠으나 한편으로는 화원이기에 불화를 그렸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것은 왕의 발원에 의하여 그린 불화에는 발미(화기)가 반드시 있어야함은 물론이고 그 내용중에는 왕의 발원에 의하여 그렸다는 내용이 반드시 포함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많은 불화중에는 임금, 또는 왕비나 대왕대비의 발원에 의하여 그림을 그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모은중경"의 판본에도 누가 그리고 누가 판각을 했다는 내용이 전혀 없어 김홍도가 그렸다는 것에 대하여 의문을 갖기도 하지만, 새겨진 글씨의 서체로 보아서는 김홍도의 필체로 판단이 되기에 김홍도가 그렸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며 이런 불명확함으로 인하여 대웅보전의 후불탱화가 수차례의 문화재위원회의 심의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 등재되지 못하였으며 "부모은중경판" 또한 국가지정문화재에 등재되지 못하고 경기도유형문화재 제 17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 2004-11-14 12:05
 
조선인
웅... 그건 좀 이상하네요. 김홍도작이어야만 국가지정문화재가 될 수 있는 건가요? 아니면 화원의 그림이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예술적 완성도 이외에도 그런 변수가 작용할 수 있다니 몰랐습니다. - 2004-11-15 02:15
 
수수께끼
죄송합니다. 오해의 소지를 남긴것 같군요. 국가지정문화재의 지정조건이 몇 가지 있습니다. 문화재보호법 제 2조의 정의에는 "자연적,인위적으로 형성된 국가적, 민족적,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 학술적, 경관적 가치가 큰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회화는 제1항에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큰것과 이에 준하는 고고자료"로 유형문화재로 명시되어 있습니다.또한 국보로 지정되기 위한 위원회의 규정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하여 문화재위원회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의 등재여부를 결정합니다. 물론, 결정전에는 문화재 조사위원의 선행조사와 문화재전문위원의 학술적 조사를 거치게 됩니다.
용주사의 후불탱화는 기법상에 있어서는 다른 불화에서는 찾을 수 없는 특색은 갖추고 있으나 제작시기나 제작자 등등 제반 요건을 갗추지 못했기에 지정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을 드리자면 안성의 '쌍미륵사'라는 사찰에 고려초에 제작된것으로 여겨지는 미륵불 2개가 있는데 보물 지정을 위한 여러차례의 위원회가 개최되었었으나 계속 보류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는 명확한 문헌자료가 없어 소홀히 그 형태나 양식만으로는 지정을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제 제가 그 사찰에도 다녀왔습니다만, 이 사찰은 미륵불을 주불로 하는 '법상종'의 본사인만큼 미륵불에 대한 가치가 어떻게 나오는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두 개의 미륵불에 대한 조사를 제가 했었기에 저도 지정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말씀하신것처럼 김홍도가 그려야만 국가지정문화재가 되는것은 아니며 국가지정문화재의 요건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예전의 '별황자총통'의 경우처럼 잘못 지정하여 망신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 2004-11-15 02:47
 
조선인
아항, 설명 잘 들었습니다. - 2004-11-15 06:27
 
balmas
ㅎㅎㅎ
수수께끼님, 조선인님, 이 책을 다른 서점에서 구입했답니다.
그런데, ㅋㅋㅋ 책 맨 앞에 나온 저승사자 그림을 보고 너무 웃었어요. 저승사자 콧구멍에 삐져나온 코털들을 봤기 때문이죠. 다른 그림들에는 없는데, 유난히 저승사자 그림에만 코털들이 그려져 있네요. 저승사자가 너무 바빠서 코털 소제할 시간이 없어서 그런 건가요, 아니면 다른 심오한(??) 뜻이 있는 건가요?^^
정말 지엽적인 질문이라, 좀 쑥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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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숨은아이 > 공무원노조에 대해

공무원노조 탄압을 멈추라 !!! 2004/11/08 21:00

 

공무원이 노조를 만들었다.

 

욕하는 사람도 많을 게다.

철밥통이 무슨 노조냐고, 뭘 잘하는 게 있냐고 말이다.

 

난, 앞의 것과 같은 비난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뒤의 것에 대해서는 비난하는 이유는 다르지만, 할말이 있다.

 

 

대다수 공무원들은 스스로 길들여져 왔다.

법과 제도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말과,

억울하면 소송을 해서 이기라는 말과,

이미 시작한 일이니 되돌릴 수 없다는 말과,

자기들은 위에서 시키는대로 한다는 말....

 

도대체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인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보겠다.

어떤 일로 서울 강서구청 담당 직원(6급)과 싸웠다.

대법원 판결을 들이밀면서 대법원 판결에 따르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자기들은 행정기관이므로 중앙정부의 지침에 따를 뿐이란다.

대법원의 판결은 대법원의 판결이며 행정기관이 꼭 따를 필요가 없단다.

행정기관을 상대로 소송이 들어오면 검찰의 소송지휘에 따를 뿐이란다.

거기다 꼭 덧붙이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가 곤란해진다고 한다.

 

결국 2개월이 지나서야 그 서류는 다른 행정기관을 통해 받아들여졌다.

이해당사자라며 내 주장을 받아준 행정기관을 상대로 누군가가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2년이 넘는 소송에 대해 결국 내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 그 공무원을 생각하니 화가 날 수밖에.

 

도대체 당신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냐고.

이게 옳으니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도 못하는 당신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냐고.

국가를 상대로 해서 소송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든 줄 아냐고.

어거지로 안되는 것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 근거를 명백히 밝혔지 않냐고.

전문성이 없으면 전문가한테 물어보기라도 해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당신이 그렇게 믿는 중앙정부가 잘못했는데 또 그럴 거냐고.

중앙정부 따르던 당신도 결국 잘못한 것인데 지금 기분은 어떠냐고.

 

참  !!

기분 더 나빠질까봐  화가 나긴 했어도 직접 화풀이를 하지 않았다. 

속으로 우라질 ~~ 우라질 ~~ 또 우라질 ~~~ 만 했을 뿐이다.

 

불친절 뭐 그런 것 다 그냥 넘어가자.

그런데, 절말로 이해 안되는 것은 바로 이런 말이다. 

"우리도 문제라는 것 아닌데, 법과 제도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왜 알면서 고치려고 하지 않느냐 이 말이다.

 

예를 들어, 연말이면 보도블럭 다 뒤짚는 일이

예산제도과 평가제도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아는 당신들은

왜 그렇게 오랫동안 가만히 있었느냐 이 말이다. 

 

난, 이런 이유로 공무원에게 할 말이 많다.

 

그렇지만, 공무원이 노조를 만드는 것을 찬성하지 않을 수 없다.

 

1. 노조 만들기는 기본권이므로 막아서는 안된다.

2. 노조를 통해 국민들과 의사소통의 길이 열릴 가능성이 커진다.

3. 공무원 사회의 부정부패를 견제할 장치로서 역할이 기대된다.

4. 노조 활동을 통해 스스로 변화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5. 정치권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분위기가 열릴 수 있다.

 

첫번째 이유만으로도 충분하지만,

그 이하 이유들대로만 됐으면 하는 바램은 가져볼만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공무원 노조의 요구는 노동3권의 완전한 보장이며,

교원에 대해 했던 것처럼 노조 활동을 막기 위해 특별법을 만들 것이 아니라,

공무원도 노동자니 모든 노동자들에게 적용될 노동관계법을 적용해 달라는 것이다.

법 논리적으로 너무나 상식적이기에 나무랄 것이 전혀 없는 주장이다.

 

노무현 정부가 노동자만을 위한 정부가 되길 바라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지극히 정당한 주장에는 귀기울이는 정부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

 

참여하려해도 참여할 수 없는 참여정부와 열려고해도 열리지 않는 열린우리당.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민주노총과 공무원노조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

귀기울이지는 못하더라도 뭔가 하겠다는데 막고 닫지는 말아야 할 게 아닌가 ?

총선 결과에 일말의 기대를 가졌던 나같은 사람의 기대마저 영영 저버릴 텐가 ?


   마주보며말하기 2004/11/09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은 "이번에 민주노동당과 공무원 노조가 발의한 법과 똑같은 안이 88년에 이미 발의된 바 있고, 그 대표 발의자가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이라며 "노 대통령은 당시 노동3권을 보장하는 일반법 추진이 아닌 수정안이 통과되자 이에 반대토론자로 나서기까지 했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평했다.

단 의원은 "15년전에 만들어졌어야 할 법안이 오늘 정부의 탄압속에서 좌절되고 있다"며 "역사가 후퇴를 해도 이렇게 후퇴할 수 있나. 그 당시의 요구도 지금과 똑같았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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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숨은아이 > 1년 계약직 노동자의 질문으로부터

1년 계약직 노동자의 질문으로부터 2004/11/16 18:52

 

 

오늘 내가 읽고 답해야 할 질문 중에도 이런 게 있다. 

 

보일러 기사다. 사실 보일러 기사면 늘 필요한 업무일 텐데, 1년 단위로 계약했단다. 2년차니까 작년에 계약서를 한번 더 썼고, 이번에 한번 더 쓰게될 것 같단다. 혹시 이번 계약을 사용자가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지 ? 세번째 계약서를 쓰면 정규직이 되는지  ?  두가지를 물었다.

 

그 노동자에게 어떤 선택권도 없다. 그 노동자가 자기는 1년 계약보다는 정규직을 원한다고 말한다는 것은 100%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계약직 노동자를 비롯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는 처음부터 사용자와 대등하지 않다. 근로기준법은 당사자간에 대등하고 자유로운 계약을 말하고 있지만, 그저 듣기 좋은 말일 뿐이다(이 때, 온전히 자기 결정으로 계약직이 된 경우, 엄격히 말해 비정규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답변부터 해 보자.

 

사용자가 계약을 거부하면 법적으로 다툴 길이 없다. 법원은 노동자의 선택권이 완전히 제약된 상태에서 체결된 계약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대등한 개인 사이의 계약을 규율하는 민법적 사고만으로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차이를 메울 수 없다는 생각에서 노동법이 생겨났다면,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계약에서는 당연히 노동법적 사고가 개입되어야 하지만, 한국 법원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물론, 계약이 형식적이다는 점을 밝혀 사실상 정규직이다라고 보는 경우도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일 뿐이다)

 

3번 계약서를 쓰면, 다시 말해 2년을 초과해 계속 근무하면 정규직이 되느냐고 물었다. 현행 파견법에 2년을 초과해서 파견노동자를 사용하면 그 회사에 고용된 것으로 본다는 규정이 있다. 아마 그 규정을 어디서 들었나 보다. 그런데, 그 규정은 파견노동자에 관한 것이고, 또한 파견노동자가 2년이 넘으면 정규직이 된다는 규정도 아니다. 다만, 그 회사에 고용된 것으로 볼 뿐, 계약직으로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정부의 태도이다. 그렇게 되면 그 규정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 다시 계약직이 되니 말이다. 그래도, 그 법은 "보호"라는 이름을 버젓이 달고 있다.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그게 무슨 보호인가 ? 없는 것 보다는 낫다 ? 아예 파견법을 안만들면 제대로 보호되는 것 아닌가 ? 그건 그렇고, 다시 질문에 답하면, 몇년을 사용해야 정규직이 된다는 법규정은 없다. 따라서, 답변의 결론은 "아니다"가 된다(물론, 장기간 반복이라면 계약이 위와 같은 예외적 적용을 말해 볼 수도 있지만, 역시 예외적이라는 점은 마찬가지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보자. 어떤 노동자가 있다. 일은 그런대로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임금을 좀 내리자고 했더니, 반대했다. 노조에 가입해서 사사건건 따진다. 뭐 좀 시켰더니 업무와 무관하다거나 강제노동이라며 협의해서 하자고 한다. 휴일에 좀 나오라고 했더니, 쉬겠단다. 이럴 때, 비록 그것들이 다 노동법에서 보장한 노동자의 권리이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사용자가 그를 계속 사용하려고 싶어 할까 ? 아니면 잘라 버리려고 싶을까 ? 그런데, 그를 잘라버려도 될 만한 잘못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법적으로 자를 수가 없다. 이 때 떠오르는 기발한 생각. 그렇다. 그는 1년 계약직이다. 파견나온 노동자다. 용역노동자다. 아하 ! 1년 후 계약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파견계약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용역계약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군. 다른 1년 계약직을, 다른 파견노동자를, 다른 용역노동자를 사용하면 그만이니까. 사용자라면 과연 어떻게 할까 ? 마음에 드는 노동자는 계속 반복해서 쓰면 되고, 그렇지 않으면 계약서를 쓰지 않으면 된다고 할 때 말이다. 노조가 없다면 그런 유혹을 떨칠 수 있는 사용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

 

내가, 왜 파견법이나, 기간제노동자법을 반대하는지, 그리고 왜 위와 같은 법원의 해석을 반대하는지, 여럿 있으나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전적으로 사용자에게 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이 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사용자는 충분히 업무 능력을 문제삼아, 업무 질서 위반을 이유로, 노동자를 충분히 해고할 수 있고, 또 법원도 그것을 거의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해고가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 참, 가증스런 거짓말처럼 들린다. 

 

지금도 그런데 이제 아예 법원의 심사마저 필요없는, 아예 법적 다툼을 하게 할 수 없는 정도로 법을 만들자는 것이기에, 지금의 입법을 반대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노동자 착취법이라고 할 파견법은 아예 없애야 한다. 업무상 필요성이 있는 경우, 그 필요성을 명시하고 또한 기간도 명시하여 사용할 수 있다. 충분히 그것은 파견법이 아니어도, 기간제법을 만들지 않아도 가능하다. 게다가, 기업 운영이 투명하면 노조와 조합원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다. 그런 신뢰 위에서라면 특히 기업이 어려울 때일수록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 진정한 대화와 타협은 자기 속내를 다 드러내놓고서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 내가 그렇지 않은 기업만을 상대해서 그런지 몰라도, 미리 공개하고 미리 대화하는 그런 곳은 보지 못했다. 그저 이것은 경영에 관한 사항이니 대들지 말라는 말만 주로 들었다. 그래놓고 노조나 조합원, 노동자들한테 뭘 기대할 수 있을까 ? 노동자도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파업하지 말라는 말과 동일시하지 말고, 같이 참여하고 같이 결정하는 말로 바꾸어 보라. 그래야 진짜 주인의식을 가지지 않을까 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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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비발~* > [퍼온글] 여러분의 도움을 청합니다

알라디너 중 soul kitchen이라는, 주로 쏠키로 불리는 분이 계십니다. 깊은 내공으로 인해 매니아 층을 확보하고 계신 분이지요(주소는.... http://my.aladin.co.kr/strangedays) 


그런데, 쏠키님의 큰언니가 지금 병원에 계십니다. 백혈병이래요. 아무리 의학이 발달했다 해도 암은 여전히 우리에게 공포스러운 질병이고, 암과 싸우는 것은 당사자는 물론이고 지인들의 고통과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그 싸움에 여러분들이 힘을 모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병이 병이니만큼 수혈을 여러번 받아야 하는데, 헌혈증이 있으면 도움이 되나 봅니다. 그래서... 비발샘님께서 헌혈증 모으기 운동을 벌이고 있거든요. 혹시 가지고 계신 헌혈증이 있으시면 비발쌤님 댁으로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게도 몇장 있을텐데 한번 찾아봐야겠어요. 이번 기회에 헌혈 한번 더 하구요.


주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편번호 120 - 847,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 3동 277-43 풍림 아트빌 501호 최아람

참고로 최아람은 비발쌤님의 아드님이시랍니다.


혈액증서를 최다로 모은 분에게는 비발쌤께서 풀빛 그림동화책 [핀두스 시리즈]를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복돌이님께서 브라질의 라틴 재즈 그룹 '템포 레이'의 [Instinto Tropical]앨범 두 장을 드린답니다. 저도 뭐 내놓을 게 없나 싶어서 보니까 적립금과 마일리지를 합쳐서 2만6천원 정도가 있네요. 이 금액만큼 책 보내드리겠습니다. 1등이 이 모든 걸 다 가지면 좀 그러니, 1등부터 원하는 걸 하나만 선택하시는 게 좋겠지요? 이런 게 없더라도 여러 분들이 잘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만, 그래도 감사의 뜻으로 드리는 거니 받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쏠키님에게 큰언니가 어떤 존재였는지, 쏠키님 서재에서 퍼온 글을 소개합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쓰신 건데, 읽다가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많이많이 도와 줍시다. 알라딘은 유난히 정과 사랑이 넘치는 공간이잖아요?


[제목: 큰언니 기다리기

작성자: 쏠키님


큰언니가 고1이었을 때,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나는 큰언니가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올 시간이 되면 항상 아빠의 자전거를 몰고 나가 큰언니의 무거운 책가방을 받아 싣고 오곤 했다. 큰언니가 고3이었을 때,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그때도 나는,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11시에 학교에서 나오는 언니가 기다리지 않게 항상 먼저 가 교문 앞에 서 있다가 가방을 자전거에 싣고 같이 왔었다. 큰언니가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도 어쩌다 밤늦게 도착하는 날이면 꼭 내가 역까지 마중을 나갔었다. 친구들과 노느라 기차를 놓쳤다고 하면 또 올 때까지, 또 다음 기차를 놓치면 또 올 때까지 그렇게 미련하게 새벽 서너 시가 될 때까지 언니를 기다렸다.


내가 고3때, 언니는 모스크바에 있었다. 내가 시험을 치르는 날짜에 맞춰 오지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직감으로 알았다. 아씨발, 나는 대학시험을 망치겠구나. 그리고 떨어졌다. 성적도 한참 남은 학교와 과였음에도 불구하고. 후기대를 칠 때는 마침 언니가 와 있었고, 붙었다. 등록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언니가 등록하랬다. 그래도 다녀 보라고.


아, 길게 쓸 기력이 없다. 나는 언제나 언니를 따라 다녔고, 언니의 세계를 동경했고, 언니를 좋아했고, 언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고, 언니와 함께 하고 싶었다. 우석이와 수희도, 그 자체로도 예쁘지만 큰언니의 아이들이기에 아마도 더 좋아하고 이뻐하는지도 모르겠다. 큰언니는 내게 엄마 같고, 선생 같고, 친구 같고, 연인 같고, 언니이면서 또 어느 땐 어린 동생인 것만 같고..그래, 그렇고....그렇고..


그런 큰언니가 지금, 종합병원 무균병동에, 보호자도 없이 혼자 누워 있다. 간밤에, 생일이라고 친구들과 술 한잔 하고 있던 나는, 집에서 급히 부르는 전화를 받고, 그 길로 바로 형부, 언니와 함께 콜택시를 불러 타고 경북대병원 응급실로 왔고, 밤을 새웠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우석이 운동회에서 저렇게 환하게 웃던 언니는 핏기 하나 없는 노랗게 뜬 얼굴로 응급실에서 수혈을 받다가, 우리가 병원에 도착한 지 12시간이 지난 오후 1시에 무균병동으로 옮겨 갔다. 교대로 대기실 의자에서 행려처럼 새우잠을 자던 형부와 나는, 언니가 벗어놓은 옷가지들을 챙겨들고, 두 개의 문이 가로막은 무균병동 너머로 언니의 얼굴을 보고 다시 5만 원을 부르는 콜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수희가 총총 뛰어나와 엄마는? 하고 물었다. 미역국을 먹고 세 시간 잠을 자고 일어나 앉아 울었다. 형부가 아직 확실한 거 아니니까, 골수검사를 끝낸 후 결과가 나올 때까진 아무 말도 마라고 해서 혼자 숨죽여 울었다.


"너랑 나랑은 전생에 부부였었나 보다. 전생에 내가 너한테 정말정말 잘 해서, 네가 그 은혜를 갚을려고 내 동생으로 태어난 거 아니겠나." 얼마 전부터 시난고난 앓던 언니를, 나 자신 환자이긴 하지만 뭐 좀 나일롱이고 어차피 백수도 된 터라 곁에서 좀 살펴줬더니 새삼스럽게 언니가 한 말이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마이페이퍼 링크 주소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548453]

 

덧붙임: 엇, 복돌님이 제안하신 건데... 다만 집에 주로 있는 사람이라 제 주소로 한 거구요. 약소하지만 비룡소 프란츠 시리즈(12권)도 추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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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1-14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 주인장 가족 한 분이 백혈병으로 투병중이시라는군요.

뜻있는 분들의 많은 도움이 있기를 ...
 

 

 

[오마이뉴스]

이걸 보고도 '파병불가피론'을 외칠 것인가
[신간] 손문상·김승일이 목도한 이라크 <바그다드를 흐르다>

홍성식(poet6) 기자   
▲ <바그다드를 흐르다>와 공저자 중 한 명인 손문상 화백.
ⓒ2004 권우성·바다출판사
91년 소련연방 몰락 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경찰국가'를 자처하게 된 미국. 과학기술의 최첨단을 달리는 미 군산복합체. 그들이 생산하는 토마호크-크루즈미사일. 하지만 이 차가운 쇳덩이 전쟁무기에는 여자와 아이들을 피해가는 눈이 달리지 않았다.

"인류를 파괴할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겠다" 혹은, "사담 후세인 독재로부터 국민들을 구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시작된 이라크전쟁. 종전이 선언된 1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이라크의 노약자들은 시시때때로 감행되는 미군의 폭격과 총격에 무방비상태로 놓여있다.

지난 11월 9일 시작된 미군의 팔루자 공습은 이미 이라크인 6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작전을 수행하는 미군의 명분이야 "살아남은 테러리스트 잔당을 소탕한다"는 것이지만, 이미 이라크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안다. 조지 부시 미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폴 울포위츠 등 대아랍 강경파의 진짜 목적은 '안정적인 석유자원의 수급'에 있다는 걸.

팔과 다리가 날아가고 머리가 깨어진 눈 맑은 이라크 어린이의 시체를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약소국 시민의 무력감. 2004년 오늘, 세계는 여전히 야만이 지배하고 있다.

부산일보에 만평을 연재하는 손문상 화백과 같은 신문사 취재기자인 김승일의 공저 <바그다드를 흐르다>(바다출판사)는 이 무기력과 야만의 시대를 거부하려는 작지만 의미 있는 몸짓으로 읽힌다.

2003년 미군 항공모함 위에서 부시의 멋들어진(?) 승전 선언이 있은지 1년 후인 2004년 봄. 손문상과 김승일은 '전쟁 이후에 드러나는 비극은 전쟁이 진행될 때보다 더 참담하다, 그 상처를 가감 없이 보고 보여줌으로써 대체 전쟁이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말해주고 싶다'는 매운 각오를 품고 이라크로 향한다.

지구의 반대편으로 날아간 두 사람은 화면이 아닌 자신의 눈을 통해 예상했던 비극보다 더 크고 아픈 비극과 만났다. 가족과 친구의 죽음 앞에 망연자실 눈물을 떨구던 검은 차도르의 여인과 까맣게 여윈 아이들, 미군 폭격기가 지배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는 겁에 질린 사람들의 눈망울, 거리에 넘쳐나는 실업자들의 의욕 잃은 창백한 얼굴.

손문상과 김승일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야망이 초래한 전쟁의 아픔과 서러움을 젖은 눈망울로 확인했다. 비단 인간만의 비극이 아니었다. 인류문명이 출발한 곳의 하나로 지목되는 바그다드의 티그리스강은 인간의 욕망이 추동한 추악한 전쟁 앞에 그 흐름을 멈추고 통곡했다. 그 누가 있어 파괴된 메소포타미아의 수천 년 유물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인가.

인간과 역사, 문명이 파괴된 현장을 그림과 글로 기록

두 사람의 글과 그림은 바로 이 파괴된 인간과 역사, 그리고 문명의 처참함을 더하고 뺌이 없이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다. 비록 그것이 초라할지라도 진실, 혹은 사실이 주는 감동은 가장 위대한 픽션이 주는 감동까지도 넘어서는 법.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혁명을 이끈 일리치 레닌은 이런 테제를 남겼다. "예술은 언제나 프롤레타리아의 중심에 그 굳건한 뿌리를 내려야한다."

손문상이 이라크로 떠나기 전 남긴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예술은 나 스스로가 인정할 수 없다"라는 말은 100년 가까운 세월을 뛰어넘어 레닌의 그것처럼 우리의 가슴을 흔든다. 그렇다. 그것이 그림이건, 음악이건, 소설이건, 모름지기 예술이란 '뜬구름 잡는 허영'이 아니라 '지상에 발 딛고 선 현실의 반영'이 아니던가.

아래 손문상이 이라크에서 목도한 현실을 화폭에 옮긴 그림을 붙인다. 이에 덧붙여 기자는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한 '파병불가피론자'들에게 묻는다.

"이 그림을 보고도 우리의 젊은이들을 전쟁의 불구덩이 속으로 던질 것인가? 그럴 것인가?"

ⓒ2004 바다출판사

ⓒ2004 바다출판사

ⓒ2004 바다출판사

ⓒ2004 바다출판사

ⓒ2004 바다출판사

ⓒ2004 바다출판사

2004/11/12 오후 3:17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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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4-11-13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프군요.

이라크에 두 번 가봤는데, 거기 아이들은 진짜 이뻐요. 그 이쁜 눈망울들. 걔네들한테서 눈물 빼내는 저 미국놈들은 대체 무얼까. 바그다드의 책시장에서 제 카메라 앞에 포즈 잡아주던 어린 여자아이, 껌 한통 들고 쫓아오던 아이 얼굴이 생생히 떠올라요. 그리고 티그리스가 보이는 호텔방에서 울고 있던 나, 지금은 먼 과거의 일처럼 텔레비전을 보면서 혀를 찰 뿐인 나. 미국놈들이 이라크를 저모양 저꼴로 만든 생각을 하면 다 때려죽이고 싶습니다.

balmas 2004-11-13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렇죠 ...

오늘 신문 보니까 이번 미군의 공격으로 팔루자에서 벌써 600명 이상이 죽었다는 기사가 있더라구요. 말이 쉬워서 600명이지 ...
저는 무엇보다 아무것도 모른 채 커다란 눈을 뒹굴리는 아이들 사진을 보면 더 가슴이 아프더라구요.

딸기 2004-11-14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저는 '이라크전쟁', 그리고 '파병'이라는 문제를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답니다. 국익, 에너지 수급의 안정성, 대미관계... 이런 말 하면 하나도 모르겠고요, 그렇게 똑똑해야 할 필요도 느끼지 않습니다. 힘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죽인다, 물건을 뺏는다- 남을 죽이는 것은 나쁜 짓이다, 남이 살인을 저지르도록 돕는 것도 나쁜 짓이다, 나쁜 짓 하면 안된다. 이렇게 말이죠. 예전에 어떤 사이트에서 이라크전과 파병 문제로 논란 아닌 논란이 붙었는데, 한 사람이 엄청 유식한 말들을 쏟아내면서, 스스로는 '근거'를 댄다면서 말을 막 해버리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했더군요. "유식해지는게 그렇게 냉혹해지는 건지 몰랐다, 나는 무식하게 걍 반미할란다..." 그 말이 맞다고 봅니다.

balmas 2004-11-14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런저런 논리를 끌어들여서 이라크 파병을 정당화하려는 사람들 보면 좀 딱하더라구요. 특히 노무현 정권과 이런저런 연을 맺고 있는 지식인들 중에서, 우리 사회의 상류층 직업에 종사하면서, 인도주의와 현실주의를 동시에 동원하면서, 어쩔 수 없지 않냐고 핏대 세우는 사람들 보면, 참 ...

그런데 부시 얘들은 별로 고맙지 않답니다. 사립학교법도 개정하지 말라는군요. 이제 좋은 명분이 생겼으니, '소위' 개혁입법들은 철회해도 될 것 같군요.

숨은아이 2004-11-14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식해지는 게 그렇게 냉혹해지는 건지 몰랐다, 나는 무식하게 걍 반미할란다..." 저도 그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