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 1] 불복종운동의 새로운 발견

 

순응을 거부하며...합법적 불법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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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아 
7월 14일 1만5천여 명이 서울로 운집한 한미 FTA 반대집회에서 경찰의 물리력을 넘어 광화문 사거리를 뚫고 청와대로 가기위해 싸웠던 그 시위대는 정작 미대사관 앞에서 조용히 마무리 집회를 끝내고 흩어졌다. 공식적인(?) 광화문 사거리까지의 행진 이후, 프로그램의 부재는 각각의 운동진영이 알아서 분노의 수위를 조절해가며 행사를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정리되었다. 그 현장에서 느끼는 막막함과 답답함은 참여자로서 나 스스로 어떤 실천이 가능한지 되묻게 했다.

‘집회로 인해 교통체증을 느끼는 시민들에게 직접 찾아가는 운동의 기획은 힘들까? 차벽 안에 갇힌 집회의 자유를 넘는 시위는 어떻게 가능할까? 많은 사람의 동의와 지지를 얻는 운동의 전략은 무엇일까?’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으로 ‘불복종 운동’을 떠올렸다. 불복종 운동은 많은 사람들의 ‘참여’ 속에서, 광범위한 ‘동의’를 확보하는 가운데, ‘직접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실천전략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또한 ‘합법’의 테두리에 순응하지 않으면서도 경계를 뛰어넘는 운동의 기획과 실천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다. 특히 민주주의 법치국가라는 틀에서 ‘적법 절차’를 가장해 권력자들이 남용하는 자의적이고 부정의한 권력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한다. 역사적으로 나타난 ‘불복종 운동’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서 지금 여기서 우리가 검토해야할 운동의 전략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불의의 하수인’이 되기를 거부하라

자유인의 피난처가 되기를 자임하던 나라에서 전체 국민의 6분의 1이 노예상태에 있고 그 국가가 멕시코를 점령해 군법으로 지배할 때, 저항을 일깨운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시민불복종』을 통해 ‘불복종 운동’의 영감을 오늘까지 전파하고 있다.

소로우는 “우리는 모두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며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역설했다. 그 가운데 그는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이 중지되도록 호소했다. 소로우는 많은 사람들이 노예제 폐지와 멕시코와의 전쟁중지 라는 소신을 가져도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불의가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불의의 하수인이 되라고 요구한다면 그 법을 어기라”고 강조하며 “당신의 생명으로 하여금 그 기계를 멈추는 역마찰이 되도록 하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자신의 생각에 대한 실천의 방법으로 도망치는 노예를 캐나다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1847년 멕시코 전쟁에 반대해 세금을 납부하지 않아 감옥에 수감되기도 했다. 소로우의 『시민불복종』은 노예제를 반대하며 다양하게 저항을 일구어온 퀘이커교도와 평화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탄생되었고 이들의 노고는 1830년대 노예제 폐지론자들의 전술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대중적인 불복종운동을 보여준 간디, 마틴 루터 킹

영국 식민통치의 부도덕성을 전 세계에 알리고 대중적인 불복종운동을 기획하고 실천한 간디는 소로우의 불복종을 새로운 면모로 탄생시켰다. 소로우가 불복종 운동을 의로운 개인의 결단으로 시작했다면 간디는 소수에 의한 영국 식민통지에 대한 저항을 다수 인도 민중의 불복종 저항운동으로 발전시켰다. 특히, 1930년 3월 소금세 신설에 반대하여 사티아그라하(진실에의 헌신) 운동을 시작했다. 영국 통치에 대한 간디의 불복종 운동 중 가장 성공적이었던 이 운동에서 무려 6만 명 이상이 투옥되었다.

대중적 불복종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준 간디<출처; www.temple.edu>


간디에게 있어서 불복종은 법을 초월하는 가치체계이며 불복종의 힘은 진리추구에서 나온다. 간디는 법에 매몰되지 말고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하고 실천하라고 주문한다. 간디에게 있어서 악법은 인간이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강요하는 법이거나 마땅히 할 것을 억지로 금하는 법으로, 도덕과 정의의 원칙을 위반한 법을 구분해내고 필요하다면 그것에 불복종하는 것은 ‘시민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주장했다.

그 의무는 어디에 근거하는가? 간디는 악의 존재 자체는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자의 책임이기도 하다고 한다. 악법이 존재하는 이유는 악법을 만든 사람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법에 의해 고통 받는 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 그래서 악법에 대한 저항은 불복종으로 협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간디는 불의와 부정의에 협조하지 않는 불복종을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로 규정하며, 대중의 힘으로 지배 집단에 항거하는 수단으로 불복종 운동을 실천하면서 혁명적인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실천은 억압받는 전 세계 민중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흑백분리주의에 협력을 거부한 버스안타기운동

불복종 운동의 대중적인 힘을 보여준 또 다른 사례는 미국 몽고메리에서 불붙었다. 1955년 12월 1일 로사 파크스 씨는 버스에 올라타 백인전용좌석 바로 뒤에 앉아있었다. 조금 후에 백인남성이 타자 운전사는 그녀에게 뒤로 가라고 명령했으나 그녀는 거부했고 결국 흑백분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당시 미국 남부에서는 백인전용으로 지정된 좌석에 백인들이 모두 앉아 있는 상태에서 백인이 더 승차할 경우 운전사는 백인전용석이 아닌 좌석에 앉아있는 흑인에게 양보하라고 요구할 수 있었고 이런 명령을 따르지 않는 흑인은 체포됐다.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명령에 불복종한 혐의로 연행된 로사 파크스<출처; en.wikipedia.org>


로사 파크스 씨의 불복종을 계기로 흑인사회에서는 흑백분리주의에 대한 광범위하고 대중적인 버스안타기운동이 전개되었다. 흑인들은 집에서 학교, 일터까지 2-3시간이 걸리더라도 걸어서 가거나 자전거, 카풀 등 대체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버스안타기운동은 흑백을 분리하는 사악한 제도에 협력을 거부하는 행위였다. 마틴 루터 킹은 항의할 권리가 있음을 알렸고 항의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법률을 바꾸어 내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마틴 루터 킹은 두 번이나 감옥에 수감되고 협박, 폭파 등 일상적인 테러의 위협에 시달렸으나 불복종 저항을 고수했다. 불복종 저항운동의 한복판에서 마틴 루터 킹은 끊임없이 대중들과 소통했고 반차별 인식의 저변을 확산시켰으며 불복종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연대했다. 마침내 1956년 11월 13일 미연방최고법원이 흑백분리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고 12월 21일 흑백통합버스가 몽고메리를 달렸다.

불복종운동의 인권법적 정리

저항운동의 역사 속에서 실천적으로 발전해온 불복종운동은 일부 인권법 학자들에 의해 학문적으로 정리되기도 했다. 자유주의 법학자 존 롤스는 ‘불복종이란 정부의 정책이나 법률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려는 의도를 가지고 일반적으로 법에 반대해서 행해지는 공적이고 비폭력적이며 양심적인 행위’라고 정의했다. 그는 정의의 원칙에 입각해 자신의 판단에 따라 부정의한 법률에 불복종한 시민의 정치적 권리를 도덕적 의무로 강조했으며 시민불복종이 성립되기 위해서 △불복종 행위가 심각한 부정의에 대한 항의 행위이고 △가능한 충분한 법적 수단을 강구한 이후 △불복종 행위가 헌법질서의 기능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쉴러 슈프링고룸은 불복종을 ‘공적으로 선언되고 윤리적·규범적으로 근거 지워진 상징적 항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의 의식적인 법 위반’이라고 보았다. 그는 시민불복종이 성립되기 위해서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행위가 의식 있는 법 위반으로 나타날 것 △공공성을 띌 것 △비폭력행위일 것 △정치ㆍ도덕적 동기에서 비롯된 행위일 것 △중대한 불법에 항의하는 행동일 것 △항의수단이 목적과의 관계에서 상당성을 지닐 것을 제안했다.

자유주의적 불복종운동의 한계를 넘어

서구의 자유주의적 법학자들은 저항운동의 일부로 성장해온 불복종운동을 법 중심적으로 해석하면서 또다시 법의 테두리 속으로 가두려 하고 있다. 존 롤스의 주장처럼 불복종 행위는 어디까지나 ‘헌법질서의 기능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충분한 법적 수단을 강구한 이후’에만 가능하다거나 쉴러 슈프링고룸처럼 기준이 불명확한 ‘중대한’ 불법에 항의하는 행동이 ‘법’ 위반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모두 불복종운동의 요건으로 ‘비폭력’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비폭력’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인 개념일 수밖에 없으며, 특히 서구 자유주의 진영의 ‘비폭력’ 개념은 일정 정도 제한적인 개념으로서 저항운동과 긴장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다.

"법을 넘어선 저항은 민주주의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정확한 핵심이다"<출처; www.organizedresistance.org>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정책이나 법률이 항상 옳다는 관념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법학자들이 일정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정부의 정책이나 법률이 위법하거나 민주주의의 원칙에 위배될 때 이에 저항하는 것을 ‘저항권’이라는 인권의 이름으로 규정했다. 저항권은 자연법사상을 통해 근대시민혁명을 가로질러 나타나 봉건질서를 타도하는 혁명적 힘을 가진 근대시민혁명의 이론이었지만, 혁명 이후 저항권은 ‘엄격한 제한’을 통해 점차 형식화 되었다. 근대국가에서 저항권은 ‘극히 예외적이고 한정적’이며 ‘극도의 불법’을 교정하기 위한 조치로서만 승인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저항권은 그 어떠한 부당한 제한으로 가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복종운동 역시 대중운동의 역동적인 상황을 고려했을 때 어떠한 특정한 조건으로 가둬질 수 없다. 오히려 저항운동 중에서 불복종운동은 △기존의 주류 권력 질서에 대한 저항으로 △예상되는 불이익을 감수하려는 의지를 갖고 △의도적으로 위반 행위를 하는 것으로 적극적으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현실 속에서 불복종운동은 어떠한 틀거리에 갇히지 않고 대안적인 질서를 ‘향하는’ 운동으로 움직여왔음을 떠올린다. 오히려 불복종운동은 ‘복종에 대한 거부’를 넘어 ‘주류적인 권력 체제를 넘어서고자 하는 운동으로의 변화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주류 권력 질서와 이를 지탱하는 구조에 대한 일상에서의 저항은 불복종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불복종의 권리는 헌법뿐 아니라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국제인권기준에서도 인정되고 있는 ‘인권 옹호를 위한 권리’이다. 세계인권선언은 ‘폭정과 억압에 대항하는 마지막 수단’으로서 저항권의 행사를 인정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전문에서 밝힌 저항권은 인간의 권리를 억압하고 폭력으로 체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한 저항을 인권의 이름으로 옹호한 것이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 열린 뉘른베르크 전범(戰犯)재판은 아무리 자국의 법률과 명령이 행위의 이유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근거로 전쟁범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원칙을 확립함으로써, 부당한 법률과 명령에 불복종하는 저항권의 행사를 국제법상 권리이자 의무로까지 승격시킨 바 있다. 이어 세계인권선언 제정 50주년 해인 1998년 유엔 총회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인권 및 기본적 자유를 증진, 보호하기 위한 개인·단체·기관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선언문'(결의안 53/144, 이하 인권옹호자 선언문)을 채택했다. 인권옹호자 선언 12조는 모든 사람은 인권침해에 '평화적으로 저항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모든 사람에게 인권옹호 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국내법에 의해 보호할 의무가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비록 형식적으로 민주적인 법과 질서가 있다고 해도 그 과정이 지속적인 이해와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하기 위해서, 불복종 운동은 ‘더 나은 질서를 향한 호소’로 작동한다. 이것이 때로는 ‘실정법을 향한 도전’으로 때로는 ‘합법적인 불법’으로 등장한다. 불복종의 권리는 빼앗긴 인권을 되찾고 새롭게 만들어질 인권의 지도를 그리게 한다.
인권오름 제 17 호 [입력] 2006년08월17일 0: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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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18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짝 얻어 가옵니당^^

balmas 2006-08-18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그러세요. 이미지 귀엽네요. ^^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149576.html

 

시계추 거꾸로 돌린 헌법재판관 인선

 

사설

한겨레
앞으로 6년 동안 헌법재판소(4기)를 이끌 새 소장과 재판관 후보 다섯 사람이 확정됐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헌재 소장에 전효숙 현 재판관이 지명된 것이다. 첫 여성 헌재 소장일 뿐아니라 기존의 서열 위주 인선 관행을 벗어난 적잖은 파격이다. 전 내정자는 재판관 시절 양심적 병역거부자나 노동권 문제에서 전향적인 소수 의견을 낸 반면, 국가보안법이나 이라크 파병 위헌 다툼에선 다수의 합헌 의견을 따랐다. 보수색이 뚜렷한 헌재 구성을 감안할 때,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균형과 소신을 갖춘 것으로 평가한다. 현 재판관 중에서 처음으로 내부 승진한 것도 독립적인 헌법 기구로서 헌재의 위상을 확립하는 데 긍정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번 인선에서 ‘인적 구성의 다양화’라는 시대적 흐름은 오히려 크게 후퇴했다. 재판관 내정자들은 모두 주류 법조인 출신으로, 재야와 학계 등 외부 인사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나마 과거에는 퇴직 법조인이나 변호사 출신이 한둘 있었지만, 이번에는 철저히 현직에 있는 고위 판·검사 출신들로만 채웠다.

대법원장 추천 몫은 대법관 탈락자들을 배려하는 데 활용됐고, 관행적으로 이어져온 검찰 몫도 유지됐다. 꽉 막힌 헌재의 폐쇄적 구조를 개혁하자는 요구와 정반대로 정통 법조인 중심의 충원 구조만 더 공고해진 것이다.

헌재의 보수적 색채 역시 한층 강화됐다. 유일하게 개혁적 성향의 후보로 물망에 올랐던 재야 변호사는 막판 검찰 몫에 밀려 탈락했다고 한다. 법조계 내부에서조차 얼마 전 대법관 인사 때보다 다양성과 이념적 균형성 측면에서 훨씬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이처럼 성역화한 ‘그들만의 사법부’가 광범위한 사법불신의 주된 이유임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기본권을 적극적으로 구제하고 이를 침해하는 위헌 법률들을 제어할 막중한 권한과 책임이 있다. 그러나 헌재는 그동안 폐쇄적인 구조와 이념적 편향, 나아가 왜곡된 사법 만능주의 탓에 이런 소임에 충실하지 못했다. 건강한 헌법 정신과 인권 감수성, 다양한 이해 관계에 귀기울일 줄 아는 헌재 재판관들의 자질과 태도가 절실한 이유다. 국회 인준 과정에서, 보수냐 진보냐라는 이념적 성향을 떠나 국민들이 위임한 소임과 헌법 정신을 제대로 실현할 인물인지 철저히 검증해야 할 것이다.

기사등록 : 2006-08-16 오후 06:23:50 기사수정 : 2006-08-16 오후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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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엇갈리는 양쪽 대리…잦은 ‘양다리’ 시비

 

진로 법정관리·SK 경영권분쟁 등 구설수

김앤장 “로펌 대형화따라 선진국 기준완화 추세”

 

 

한겨레 김인현 기자 최혜정 기자
» 새로운 권력 ‘김앤장’ - (하)‘쌍방대리’ 논란
[관련기사]
[새로운 권력 ‘김앤장’ - (하)‘쌍방대리’ 논란]

진로 법정관리 · SK 경영권분쟁 등 구설수
김앤장 “로펌 대형화 따라 선진국 기준완화 추세”

김앤장은 그동안 몇차례 ‘쌍방 대리’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쌍방 대리란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당사자 양쪽을 모두 대리하는 행위다. 변호사법 31조는 수임한 사건의 상대 쪽에서 맡기는 같은 사건의 수임을 금지하고 있다. 또 변호사 윤리장전 17조 1항은 현재 맡은 사건과 이해가 저촉되는 사건을 맡는 것을 포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김앤장은 이 문제와 관련해 2003년 대한변협에 진정을 당하고 형사고발이 된 적이 있다. 진로는 1997년 법원에 화의신청을 하면서 김앤장을 대리인으로 선임해 다음해 화의 결정이 내려졌다. 그런데 진로의 채권 일부를 인수했던 골드만삭스가 2003년 진로의 법정관리 신청을 냈다. 쌍방 대리 논란은 골드만삭스의 법정관리 신청 대리를 맡은 김아무개 변호사가 법정에 제출한 문서가 김앤장한테서 팩스로 받은 문건임이 밝혀지면서 시작됐다. 진로 쪽은 “진로의 화의와 구조조정 업무 등을 대리·자문하는 김앤장이 김 변호사를 앞세워 진로에 적대적인 골드만삭스를 사실상 대리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라며 “이는 쌍방 대리일 뿐 아니라 업무상 배임”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앤장은 쌍방 대리 사실을 강력히 부인하면서 “김 변호사에게 보낸 팩스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문제가 있었던 김 변호사와 골드만삭스와의 연락을 도와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 사건은 그 뒤 검찰과 변협에서 무혐의로 처분됐다. 당시 징계심의를 맡았던 변협 관계자는 “진로 쪽에서 김앤장이 골드만삭스를 대리하는 데 동의한다는 문서가 제출돼 무혐의 처분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동의서에 대한 김앤장과 진로의 설명은 서로 다르다. 진로 쪽은 당시 쌍방 대리 문제가 불거진 뒤 김앤장 쪽에서 “골드만삭스와의 화해를 주선할테니 동의서를 써달라”는 제의가 와 ‘화해를 주선하는 범위 안에서 김앤장이 골드만삭스를 대리하는 것을 동의한다’는 취지로 써준 것일 뿐, 그 전에 김앤장이 골드만삭스를 대리한 것까지 동의하는 취지는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김앤장은 “당시 진로를 대리하고 있던 법무법인 쪽에서 ‘화해를 주선해 달라’고 요청해 동의서를 받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를 대리하지 않았다면서도 왜 동의서를 요구했는지에 대해서는 “자꾸 쌍방 대리라며 시비를 걸어와 귀찮아서 ‘시비를 걸지 않겠다는 동의부터 하라’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진실이 어느 쪽이든 쌍방 대리 논란이 불거진 뒤 김앤장의 요구로 동의서가 작성됐고, 이 동의서가 김앤장에 유리한 증거로 작용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김앤장은 2003년 에스케이와 소버린자산운용의 경영권 분쟁 때도 쌍방 대리 시비를 불렀다.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된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의 변호를 맡았던 김앤장이 소버린의 주식취득 신고를 대행해 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당시 소버린은 에스케이 지분을 14.99% 사들였다. 15%가 되면 에스케이가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분류돼 에스케이텔레콤에 대한 의결권이 축소되는 상황이었다.

김앤장은 “당시 소버린의 주식취득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으며, 다만 소버린이 주식을 다 산 뒤 주식취득 신고만 대행해달라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버린이 에스케이와의 경영권 분쟁을 자문해준 별도의 법무법인을 놓아두고 굳이 김앤장쪽에 주식취득 신고 대행만 요청했다는 점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이에 김앤장은 “우리가 보기에도 소버린이 단지 행정적 절차만 우리에게 맡긴 게 이상하지만 소버린이 허술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해관계가 갈리는 세 당사자를 김앤장이 모두 대리하다 당사자들 사이에 분쟁이 생겨 문제가 된 경우도 있다. 97년 제이피모건은 동남아 외환관련 파생 금융상품을 개발해 에스케이증권을 판매간사로 국내 증권·투신사 등에 팔았고, 이 과정에서 국내 은행들이 지급보증을 섰다. 그러나 동남아 외환위기로 타이 바트화 등이 폭락하면서 이 파생 금융상품을 매입한 회사들이 큰 손실을 입었고, 결국 다음해 소송 사태로 번졌다. 김앤장은 애초 판매자인 제이피모건과 매입자인 증권·투신사, 지급보증을 한 은행들까지 모두 대리해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랬다가 계약상의 지급보증 범위 등을 둘러싸고 3자 사이에 다툼이 생긴 것이다. 이에 대해 김앤장은 “정형화된 거래 때는 당사자 모두의 동의를 받아 계약서를 작성해주는 경우도 있다”며 “동의를 받은 만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이 밖에 97년 기아자동차의 화의를 대리한 김앤장이 다음해 기아자동차를 인수하려는 포드를 자문한 것도 문제가 됐다. 화의를 대리하면서 알게 된 기아차의 정보를 포드를 위해 이용할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김앤장은 “법률적인 문제만 검토했을 뿐이므로 쌍방 대리라고 생각지 않는다”는 태도다.

김앤장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재매각과 관련해서도 사려는 국민은행과 팔려는 론스타를 함께 자문하고 있다. 김앤장은 “양쪽의 동의를 받아 국내 은행법에 관한 해석 등 지극히 중립적이고 제한적인 업무만 수행하고 있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김앤장 쪽은 “쌍방대리 문제는 사안에 따라 치밀하게 따져봐야 할 전문적이고 복잡한 문제로, 단순히 정서적이거나 획일적 논리로 비판할 성질이 아니다”라며 “최근 기업과 로펌의 대형화, 글로벌화에 따라 선진국에서도 그 기준을 완화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한다. 김앤장은 또 “그동안 불거진 쌍방 대리 논란은 소송 과정에서 상대방의 변호인을 공격함으로써 소송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며 “소송이 아닌 자문 과정에서는 의뢰인의 동의가 있고 법무법인 내 변호사들끼리 소통을 막는 정보 차단벽(차이니스 월)을 치면 쌍방 대리가 허용되는 것이 국제적인 관례”라고 말했다.

김인현 최혜정 기자 inhyeon@hani.co.kr



기사등록 : 2006-08-15 오후 07:42:42 기사수정 : 2006-08-16 오전 09: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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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꼬 2006-08-16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련기사 중 "구성원들의 소득도 국내 최고를 자랑한다. 2005년 6월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연 소득 6억960만원(월 소득 5080만원) 이상인 150명의 변호사 가운데 76%인 114명이 김앤장 소속이었다." 꽥~

수퍼겜보이 2006-08-16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앤장은 법적으로 하나의 법률 회사가 아니라, 여러 사업자(변호사 개인)의 조합으로 활동하는 거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김&장은 국내 최대 로펌 순위 등에는 들어가지 않을 걸요. 사실상 '로펌'이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쌍방대리가 아닐지도... 좀 어이없지요.

balmas 2006-08-17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림님/ ㅋㅋㅋ 오랜만에 오셔서 괜한 걸로 충격받으시는 듯 ... ^^;
수퍼겜보이님/ 그런 꼼수가 또 있군요.
 

 

누가 영국 무슬림 청년들을 트로이목마로 만드나?

 

 

한겨레 이본영 기자
» 서유럽 무슬림 인구
영 무슬림사회 청년들 나날이 급진화
알카에다와 무관한 ‘자생조직’ 번성
서구사회 ‘무슬림 급진화’ 본격 성찰

영국 무슬림 청년들의 여객기 공중폭파 음모가 들통난 뒤, 무엇이 어마어마한 일을 꾸미게 만들었는지를 두고 영국 정부와 무슬림 공동체 사이에 책임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서구 언론과 정부는 무슬림 청년들의 급진화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루스 켈리 영국 공동체·지방정부 장관은 14일 무슬림사회 지도자들과 만나, 청년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영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무슬림 지도자들은 이슬람 공동체를 존중하는 정책을 펴라고 요구했고, 양쪽은 “솔직하고도 날카로운 논쟁”을 벌였다고 한 관리가 전했다.

언론들이 조명하는 일부 무슬림 청년들의 대담함은 “영국이 바로 테러기지”라는 말이 나오게 할 정도다. 테러조직들은 국립공원에 훈련캠프를 차리는가 하면, 대학 사무실을 음모를 꾸미는 데 쓰기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브루넬대 앤서니 글리스 교수는 지난 15년간 이슬람 극단주의 학생조직 20개가 활동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적발되는 테러 음모들은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수행했다기보다는, ‘자생적 테러세력’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위기감을 더욱 높인다. 이웃의 성실하고 수줍은 무슬림 청년이 어느날 ‘트로이 목마’ 속의 적병으로 표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알카에다가 일부 영향을 준 점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가담자 대부분은 알카에다를 접촉한 적이 없다. 알카에다가 이제 ‘사회운동’이 됐다거나, 사실상 이름만 빌려주는 식의 ‘프랜차이즈 조직’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알카에다를 박멸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대테러 전략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영국 사회 주류는 테러리즘이나 순교를 영예로 여기는 광신적 태도가 문제라는 입장을 보인다. 하지만 160만명 규모의 영국 무슬림사회가 나날이 급진화하는 가운데, 이런 접근법으로는 문제를 풀기 어렵다는 지적도 강하다.

일간 〈가디언〉은 극단주의자들이 청년들을 꾀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이번 음모로 체포된 청년 여럿이 다니던 체육관 관장 말을 전했다. 그는 “지난해 7·7테러 뒤 긍정적 방향으로 젊은이들을 이끌려는 취지의 행사에 수백명을 모았는데, 급진적 단체 사람들이 접근해 왔다. 극단주의자들은 어디에서나 무시받는 무슬림 청년들을 파고든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처참하게 죽은 레바논 어린이 사진 등이 전자우편으로 돌아 무슬림사회를 술렁이게 만들기도 했다. 한 이슬람 인권단체 관계자는 “영국 정부는 폭발장치로 이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엠피3를 기내에 휴대하지 못하게 하면서, 다른 편에서는 레바논을 강타할 폭탄을 미국이 스코틀랜드 공항을 통해 나르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적, 종교적 배경 외에 다른 영국 청년들에 견줘 두 배 이상인 무슬림 청년들의 실업률이 보여주는 사회경제적 처지도 불만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 미국행 항공기 테러음모 혐의로 체포된 파키스탄계 영국인 타이브 라우프(왼쪽)가 체포 몇시간 전인 지난 10일 영국 버밍엄의 식품 도매점을 찾은 모습이 이 상점 폐쇄회로 텔레비전에 찍혔다. 버밍엄/AP 연합

영·미 무슬림사회 왜 다른가

영 ‘파키스탄계 밀집형…우애돈독’ - 미 ‘구심없는 산개형’

52명이 숨진 지난해 7·7 런던테러를 비롯해 영국에서는 해마다 무슬림 청년들에 의한 테러 기도와 실행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알카에다가 기획한 9·11사건 말고는 영토 안에서 미국인 무슬림들에 의한 별다른 이상동향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시사주간 〈타임〉은 두 나라 무슬림들의 정착 형태가 차이나는 게 그 원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만~300만명으로 인구의 1% 가량을 차지하는 미국 무슬림들은 한 곳에 모여살기보다는 뿔뿔이 흩어져 그들만의 문화를 유지하거나, 서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만들 기회가 별로 없다는 분석이다.

이에 반해 160만명으로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 영국 무슬림들을 비롯한 유럽 무슬림들은 따로 모여사는 경우가 많다. 동부에 무슬림들이 많이 사는 런던은 이슬람 국가 이름에 많이 쓰이는 ‘스탄’(땅)이 붙은 ‘런더니스탄’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또 영국 무슬림 인구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75만명이 파키스탄 출신이기 때문에 유대관계가 한결 돈독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국적과 종교 중 어느 것이 우선하는 정체성인가’를 묻는 국제 설문조사에서 영국 무슬림의 81%가 종교를 들었다고 보도했다. 파키스탄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파키스탄계의 신앙심과 종교적 유대감이 깊다는 얘기다.

이본영 기자



기사등록 : 2006-08-16 오전 07:4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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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 vs 미국, 이제는 實戰이다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186> 쿠바의 장래와 안보리 진출

 

  2006-08-15 오전 11:52:49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대외적인 행보가 그 어느 때보다 빨라지고 있다. 그동안 설전으로 일관하던 미국과의 대립관계를 외교적인 행동을 통해 확실하게 제압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잰 걸음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는 차베스의 최근 대외적인 활동을 살펴보면 오는 12월 대선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과의 외교전에서 기선제압을 목표로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물론 차베스는 14일(현지시간) 공식적으로 오는12월3일 치러지는 차기 대선에 후보로 등록을 마치기는 했다. 하지만 대선 유세보다는 쿠바문제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에 더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안보리 진출, '반제국주의를 위한 캠페인'
  
  차베스가 외교적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대상은 크게 나누어 두 가지다. 우선 오는 10월 치러지는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표결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과테말라를 따돌리기 위해 외교력을 총동원하는 것과 카스트로의 중병으로 공백이 생긴 쿠바의 후계구도 설정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자신의 입지를 한층 강화하는 것이다.
  
  차베스는 자신의 이런 행보를 놓고 '반제국주의를 위한 캠페인'이라고 명명했다. 이미 시작된 미국과의 외교전을 통해 라틴아메리카는 물론 전세계를 향해 자신의 역량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미국의 힘이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막겠다는 각오다. 이런 맥락에서 차베스는 지난달 미국에 비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온 국가들을 차례로 순방해 자신의 지지세를 확실하게 이끌어 내기도 했다.
  
  유엔안보리 이사국 진출을 놓고 총력을 경주하고 있는 베네수엘라 정부는 최근 "반미 성향이 강한 중남미에서는 일단 우리 정부가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분석하고 "미국에 우호적인 일부 중남미 국가들도 과테말라가 중남미에서 가장 혹독한 인권유린국가라는 점을 들어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지만 그렇다고 과테말라를 지지하는 건 생각해볼 문제'라는 이중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고 밝혔다.
  
  과테말라는 지난 36년간 2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정부군에 의해 살해당한 쓰라린 과거를 안고 있는 등 인권문제에 있어 사각지대나 마찬가지인 국가 라는 것이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차베스 측근들은 이어 "중남미에서의 확실한 승기에 이어 러시아와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들 중 일부의 지지를 확보, 과테말라보다는 우리가 약간 우세한 입장"이라면서 베네수엘라의 안보리 진출을 확신했다.
  
  2년 임기의 유엔 안보리 이사국 선출은 192개 회원국들의 비밀투표로 3분의 2 이상의 득표를 해야 선출이 확정된다.
  
  '쿠바와 카스트로를 위한 차베스의 생일선물'
  
  미국과의 대립구도에서 차베스가 결코 물러설 수 없는 또 다른 한판의 승부수는 쿠바의 장래와 관련된 문제다. 카스트로 이후 쿠바의 민주화 또는 체제 유지 여부를 놓고 미국과 차베스가 첨예한 대립의 각을 세울 거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지난13일 오후 80회 생일을 맞은 카스트로를 전격 방문한 차베스는 "아메리카의 영웅에게 최상의 생일선물을 전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차베스가 쿠바와 카스트로를 위해 마련한 선물보따리는 통상적인 생일선물이 아니라 쿠바의 고질적인 가난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 "차베스, 자네가 내 동생 라울과 쿠바 국민들을 내 대신 잘 챙겨주게." ⓒ 일간<그란마>(쿠바)

  미국 정부는 8000만 달러 상당의 예산을 긴급편성해 쿠바의 민주화에 기여하겠다는 복안이지만 차베스는 이번 카스트로의 생일축하 방문에서 쿠바 전체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실질적인 선물 보따리를 풀어 미국과 차별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차베스는 지난13일 쿠바로 떠나기에 앞서 자신의 측근들에게 쿠바 해안에 매장돼 있는 해저유전에 대해 언급했다. 현재 쿠바의 기술과 자금력으로는 해저유전 탐사와 발굴작업이 무리일 수 있으나 베네수엘라국영석유(PDVSA)와 이 부분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브라질국영석유(PETROBRAS)를 공동참여 시킬 계획이라면서 측근들에게 이 프로젝트의 추진을 급히 서두르라고 지시해 놓은 상태다.
  
  이를 위해 차베스는 브라질 정부와도 이미 합의를 끝낸 상황이며 탐사비용 역시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또한 베네수엘라와 쿠바, 브라질 정부가 이 프로젝트에 대한 공동참여지분 문제 등 세부적인 조율만 남겨놓고 있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카스트로 이후의 쿠바체제의 변화를 위해 각종 지원계획을 준비하고 있는 미국 정부의 의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차베스가 꺼내든 회심의 카드인 셈이다.
  
  또 카스트로 이후에 등장할 쿠바의 지도자가 누가됐든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자신의 힘을 과시함으로써 쿠바 내부에서 자신의 지지도를 강화해 향후 있을지도 모르는 미국정부의 쿠바 내정간섭을 완벽하게 봉쇄하겠다는 의도다.
  
  쿠바정부와 차베스는 쿠바 연안 걸프만에 대규모 유전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는 상태다.
  
  차베스를 통해 오일달러의 막강한 힘을 체험한 쿠바 지도자들과 국민들이 카스트로가 부재중임에도 불구하고 차베스의 쿠바방문을 열렬히 환영하고 있는 것도 예사롭지가 않아 보인다. 평소 차베스와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했던 라울 카스트로 역시 차베스를 향해 최상의 의전을 베풀고 평소와는 다르게 몸을 한껏 낮추어 차베스를 영접 하기도 했다.
  
▲ 13일 쿠바를 전격 방문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라울 카스트로와 대화하고 있는 모습. ⓒ 베네수엘라 대통령궁

  현지 외교전문가들은 "카스트로 이후 쿠바의 장래를 놓고 벌이는 미국과 차베스의 외교전 역시 현재로선 차베스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차베스는 이번 쿠바방문을 통해 조건 없는 무제한적인 지원과 쿠바 국민들과 카스트로를 향한 애정을 앞세워 쿠바 내에서 반미 감정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예상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현지언론들은 카스트로 이후 대 쿠바 전략을 세우고 있는 미국정부의 모습은 마치 지난 1961년 피그만 침공 때를 연상케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은 4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쿠바 정국의 실상을 그만큼 오판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편 병상에 누어 장래를 기약할 수 없는 상태가 된 카스트로는 자신을 방문한 차베스와 3시간이 넘게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는 임시대행 체제를 맡고 있는 라울 카스트로가 배석했으며 카스트로는 차베스를 향해 동생인 라울과 쿠바 국민들을 자신을 대신해서 잘 챙겨달라고 간곡히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서 차베스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준비한 진짜 선물보따리(쿠바 연안의 해저유전 개발프로젝트)를 풀어 보였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쿠바의 장래가 미국 정부의 영향을 받는 게 아니라 차베스 손에 달려 있다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영길/프레시안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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