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6년 동안 헌법재판소(4기)를 이끌 새 소장과 재판관 후보 다섯 사람이 확정됐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헌재 소장에 전효숙 현 재판관이 지명된 것이다. 첫 여성 헌재 소장일 뿐아니라 기존의 서열 위주 인선 관행을 벗어난 적잖은 파격이다. 전 내정자는 재판관 시절 양심적 병역거부자나 노동권 문제에서 전향적인 소수 의견을 낸 반면, 국가보안법이나 이라크 파병 위헌 다툼에선 다수의 합헌 의견을 따랐다. 보수색이 뚜렷한 헌재 구성을 감안할 때,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균형과 소신을 갖춘 것으로 평가한다. 현 재판관 중에서 처음으로 내부 승진한 것도 독립적인 헌법 기구로서 헌재의 위상을 확립하는 데 긍정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번 인선에서 ‘인적 구성의 다양화’라는 시대적 흐름은 오히려 크게 후퇴했다. 재판관 내정자들은 모두 주류 법조인 출신으로, 재야와 학계 등 외부 인사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나마 과거에는 퇴직 법조인이나 변호사 출신이 한둘 있었지만, 이번에는 철저히 현직에 있는 고위 판·검사 출신들로만 채웠다.
대법원장 추천 몫은 대법관 탈락자들을 배려하는 데 활용됐고, 관행적으로 이어져온 검찰 몫도 유지됐다. 꽉 막힌 헌재의 폐쇄적 구조를 개혁하자는 요구와 정반대로 정통 법조인 중심의 충원 구조만 더 공고해진 것이다.
헌재의 보수적 색채 역시 한층 강화됐다. 유일하게 개혁적 성향의 후보로 물망에 올랐던 재야 변호사는 막판 검찰 몫에 밀려 탈락했다고 한다. 법조계 내부에서조차 얼마 전 대법관 인사 때보다 다양성과 이념적 균형성 측면에서 훨씬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이처럼 성역화한 ‘그들만의 사법부’가 광범위한 사법불신의 주된 이유임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기본권을 적극적으로 구제하고 이를 침해하는 위헌 법률들을 제어할 막중한 권한과 책임이 있다. 그러나 헌재는 그동안 폐쇄적인 구조와 이념적 편향, 나아가 왜곡된 사법 만능주의 탓에 이런 소임에 충실하지 못했다. 건강한 헌법 정신과 인권 감수성, 다양한 이해 관계에 귀기울일 줄 아는 헌재 재판관들의 자질과 태도가 절실한 이유다. 국회 인준 과정에서, 보수냐 진보냐라는 이념적 성향을 떠나 국민들이 위임한 소임과 헌법 정신을 제대로 실현할 인물인지 철저히 검증해야 할 것이다.
기사등록 : 2006-08-16 오후 06:23:50
기사수정 : 2006-08-16 오후 08: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