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원고는 알라딘에서 기획해서 조만간 출간 예정 중인 [서양철학 로드맵]에 실릴 "자크 데리다" 소개글입니다.

 

제가 다른 원고를 모두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국내 인문학 독자들에게 서양철학에 관한 좋은 안내서가

 

되어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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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철학 로드맵-자크 데리다

 


I. 저자 이력 간략 정리

 

자크 데리다는 1930년 알제리 엘 비아르에서 태어났으며,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한 뒤 후설에 관한 논문으로 졸업했다. 모교인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오랫동안 가르쳤고 예일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등에서도 가르쳤다. 1987년부터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연구주임으로 재직했다. 1967년 데리다는 󰡔목소리와 현상󰡕,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 󰡔문자기록과 차이󰡕 등 세 권의 저서를 발표함으로써 일약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떠올랐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정치 및 사회 문제에 관한 오랜 침묵에서 벗어나 유럽 공동체와 주권, 마르크스주의와 국제법, 탈식민주의, 인권과 민주주의 등에 관해 폭넓은 저작을 발표했으며, 현실 정치의 문제들에도 적극 개입했다. 󰡔법의 힘󰡕, 󰡔마르크스의 유령들󰡕, 󰡔불량배들󰡕이 후기 데리다의 윤리ㆍ정치 사상을 대표하는 저작들이다. 2004년 파리에서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II. 저자 사상 간략 정리

 

데리다에 따르면 서양의 형이상학은 진리의 생생한 현존으로서 로고스를 추구해왔으며, 이러한 로고스는 음성을 통해서, 대화를 통해서 현존하는 그대로 드러난다고 간주해왔다. 이는 플라톤이나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오래된 철학자들만이 아니라 루소나 후설, 하이데거 같은 근대 철학자, 그리고 소쉬르나 레비스트로스 같은 20세기의 인문과학자들의 작업에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음성을 로고스를 생생하게 구현해주는 본래적인 매체로 특권화하고 대신 문자나 기록 일반은 이러한 음성을 보조하는 부차적인 도구로 간주하는 이론에서는 어디서든 로고스중심주의와 음성중심주의가 나타난다. 이 때문에 데리다는 초기 저작에서 서양의 로고스중심주의를 해체하면서 문자기록을 복권하고 텍스트의 복잡성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1980년대 하이데거와 나치즘의 연관성이 폭로되고 데리다와 가까운 동료였던 폴 드 만의 초기 극우파 논설이 발굴되면서 데리다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무엇인지 좀 더 분명히 해명해야 할 필요성을 자각하게 된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는 것과 거의 같은 시기에 발표된 󰡔법의 힘󰡕과 1993년 출간된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데리다는 ‘해체는 정의다’라고 선언하면서 전통적인 메시아주의와 구별되는 메시아적인 것의 해방적 이념에 기초하여 유령론의 정치를 제창한다.


III. 1STEP : 2~3권, 8매, 초급 (󰡔입장들󰡕, 󰡔에코그라피󰡕, 「상징적이고 실재적인 자살」)


데리다 사상에 입문하는 가장 좋은 통로는 그의 여러 대담집이다. 데리다는 현대 철학자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대담을 남긴 철학자이며, 그의 대담은 그의 사상에 좀 더 간명하게 접근하기 위한 장소다. 데리다 초기 사상은 󰡔입장들󰡕(1972)에 수록된 세 편의 대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앙리 롱스와의 대담인 「함의」는 데리다 초기 저작의 문제의식을 쉽게 소개하고 있으며, 줄리아 크리스테바와의 대담인 「기호학과 그라마톨로지」는 기호학과 그라마톨로지의 관계를 궁금하게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유용하다. 한편 마오주의적 입장을 견지하는 󰡔텔켈󰡕의 편집인들과 나눈 「입장들」이라는 대담은 마르크스주의와 탈구축의 긴장 관계를 이해하기 아주 좋은 텍스트다. 


  로고스중심주의와 음성중심주의에 대한 데리다의 탈구축은 서양 형이상학의 지배 구조에 대한 전복의 함의를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1960년대 후반 파리 사상계를 지배하던 급진 좌파 사상 및 운동과 공명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데리다는 음성중심주의에 대한 탈구축 작업, 곧 그라마톨로지의 기획을 변증법적 유물론의 문제설정으로 포섭하려는 󰡔텔켈󰡕 편집인들의 시도에 완강하게 저항한다. 그것은 그들이 말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이 물질, 모순, 실천, 역사 같은 개념들에 대한 충분한 탈구축이 없는 가운데 관념에 대한 물질의 우위를 주장하고 여러 차이들을 중심적인 모순으로 환원하고 결정적인 실천의 중요성을 강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데리다에게 이는 또 하나의 형이상학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탈구축의 실천적인 함의는 무엇일까? 그것은 마르크스주의를 쇄신하거나 재구축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1993년 출간된 󰡔마르크스의 유령들󰡕은 이 오랜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데리다 후기 사상은 그의 제자이자 기술철학자인 베르나르 스티글레르와 나눈 대담집인 󰡔에코그라피󰡕를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에코그라피󰡕는 텔레비전으로 대표되는 현대 매체 기술에 관한 데리다의 견해를 가장 풍부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데리다 사상은 처음부터 기술에 대한 사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문자기록은 음성이라는 자연적 매체를 통한 현존의 생생한 전유가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꿈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차연은 시간과 공간의 질서가 항상 이미 지연과 차이화의 작용의 결과라는 점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데리다의 기술론은 구성적 기술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인간의 삶뿐만 아니라 자연적 시공간 자체가 항상 이미 기술에 의해 매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기술은 그 자체로 긍정적인 것인가? 여기에서 데리다의 탈전유(exappropriation)라는 신조어가 중요해진다. 기술을 원칙적으로 거부하고 무소유를 주장하는 비전유(exppropriation)와 기술의 도구적 효용만을 중시하는 전유(appropriation) 사이에서 유한한 전유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바로 이 개념이다. 


  2011년 9ㆍ11 테러 이후 이루어진 「상징적이고 실재적인 자살」이라는 제목의 대담에서는 자기면역(autoimmunity) 개념이 대담의 중심을 차지한다. 자기 자신과 외부에서 들어온 물질을 확실하게 구분하지 못해 면역 세포가 외부 물질이 아니라 주인 세포를 공격하여 발생하는 질병을 가리키는 생물학적인 용법을 비틀면서 데리다는 자기면역 개념을 이중적인 의미로 탈구축한다. 이는 먼저 외부(이슬람 세력 같은)의 침입에 맞서 자신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민주주의를 지연시키려는 서양 민주주의의 경향을 가리킨다. 데리다에 따르면 이는 곧 민주주의의 자기 파괴, 자살로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자기면역의 또 다른 의미를 활용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는 민주주의의 구조 자체 속에 함축되어 있는 “자기”의 논리, 곧 주권의 논리를 약화시키고, 그 속에 이질성, 타자성의 여지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자기면역은 민주주의의 원칙 중 하나인 무제한적인 자기 비판을 가리킨다. 이러한 끊임없는 자기비판을 통해서만 민주주의는 폐쇄적인 일자로 고착되지 않고 무한정한 개선을 이룩할 수 있다.


IV. 2STEP : 2~3권, 8매, 중급 (󰡔목소리와 현상󰡕, 󰡔글쓰기와 차이󰡕,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우리가 중급으로 분류한 󰡔목소리와 현상󰡕, 󰡔글쓰기와 차이󰡕(국역본에는 이처럼 번역되어 있으나 좀 더 정확히 번역한다면 󰡔문자기록과 차이󰡕라고 해야 한다),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는 세 권 모두 1967년 출간된 데리다의 초기 대표작들이다. 따라서 이 책들은 난이도의 정도가 덜하다는 의미에서 ‘중급’이 아니라, 데리다의 다른 저작들을 읽기 위한 이론적 전제가 된다는 의미에서, 그의 대담들을 제외하면 먼저 읽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중급에 놓을 수 있다. 󰡔목소리와 현상󰡕은 후설 현상학에서 기호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글쓰기와 차이󰡕는 주로 20세기 프랑스 사상가와 작가의 텍스트에 대한 탈구축적 독서 모음집이고,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는 소쉬르, 레비 스트로스, 루소에게서 문자기록(écriture)의 문제를 다루는 책이다. 


 이 세 권의 책에는 서양 형이상학의 로고스중심주의와 음성중심주의에 대한 데리다의 탈구축이 집약적으로 담겨 있다. 이 때문에 여러 주석가들은 이 세 권의 책을 데리다의 가장 중요한 책으로 꼽기도 한다. 국내 독자들의 불운은 세 권의 책 중 한글로 읽을 만한 책은 󰡔목소리와 현상󰡕 정도라는 점이다. 3종의 번역본이 있는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는 국역본으로는 독서가 불가능할 만큼 심각한 번역의 문제점을 지니고 있으며, 󰡔글쓰기와 차이󰡕는 그보다는 번역 상태가 조금 낫지만, 그래도 이 번역본으로는 데리다의 논지를 이해하기 어렵다. 국내에서 초기 데리다 작업에 관한 논의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데리다의 문제의식이 가장 체계적으로 표현된 책은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다. 데리다가 보여주려는 것은 플라톤에서부터 루소를 거쳐 레비-스트로스에 이르는 서양 형이상학의 역사에서는 에크리튀르, 곧 문자기록을 폄하하고 음성이나 말을 중시하는 태도가 지속적으로 되풀이되어 왔다는 점이다. 이 사상가들은 모두 진리 내지 로고스는 말 속에서, 생생한 대화 속에서만 표현될 수 있으며, 문자기록은 진리와 거의 관계가 없는 단순한 보조 수단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더욱이 문자기록은 아주 위험한 도구다. 왜냐하면 문자기록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생생한 대화 및 기억 능력을 퇴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이처럼 진리 내지 로고스와의 관계에서 배제되고 억압된 문자기록이 사실은 로고스 자체를 성립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렇다면 데리다는 결국 음성에 대해, 로고스에 대해 문자기록이 우월하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은 것일까? 데리다는 기존의 위계적 지배 질서를 전복시켜 그 중 열등한 위치에 있던 것을 새로운 지배자로 구성하는 것은 여전히 기존 질서를 되풀이하고 재생산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따라서 해체의 일반 전략은 단순히 기존의 질서를 전복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위계 구조 자체의 탈구축을 시도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엄밀한 의미의 탈구축이란, 가령 문자기록을 음성에 대해 우월한 것으로 확립하거나 서양의 알파벳 같은 표음문자에 대해 표의문자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 요컨대 “음성 중심주의”를 대체하는 “기록 중심주의”을 주창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데리다가 말하려는 요점은 모든 언어는 일종의 문자기록이라는 점이다. 곧 문자기록은 언어 그 자체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이다. 하지만 이것은 문자언어가 구술언어보다 역사적으로 선행했다는 주장이 아니라, 로고스 중심적 전통이 문자기록에게만 부여했던 이차적 매개의 성질을 언어 그 자체가 지니고 있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매체든 간에 생생한 현존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는 없으며, 모든 매체는 항상 재-현적이고 매개적인 지위를 갖는다. 더 나아가 “생생한 현존”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생생한 현존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차이들의 체계의 산물이며, 그러한 체계를 통해 성립하고 재생산되는 것이다.


  데리다는 󰡔목소리와 현상󰡕에서 후설 현상학에서 기호의 문제를 분석하면서 후설에게서도 음성중심주의적인 태도가 나타남을 보여준다. 특히 문자라는 외재적 기호 없이 “자신이 말하는 것을 스스로 듣기”(s'entendre parler)는 주체성이 성립하기 위한 가장 원초적인 조건임을 드러낸다. 데리다가 보기에 가장 엄밀한 철학 중 하나인 후설의 현상학도 이처럼 음성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그라마톨로지의 문제설정의 필요성이 입증된다.


V. 3STEP : 2~3권, 8매, 고급 (󰡔법의 힘󰡕, 󰡔마르크스의 유령들󰡕, 󰡔정신에 대해서󰡕)


󰡔법의 힘󰡕, 󰡔마르크스의 유령들󰡕, 󰡔정신에 대해서󰡕는 이른바 데리다의 ‘정치적 전회’ 내지 ‘윤리적 전회’를 대표하는 저작들이다. 사실 데리다는 1980년대 중반까지 정치적인 문제들에 대해 거의 발언을 하지 않았으며, 시사적인 문제나 정치적 쟁점에 관해 발언할 때에도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가운데 신중한 유보의 태도를 보였다. 이 때문에 그는 허무주의자라거나 공적인 문제에 무관심한 채 사적 유희를 즐기는 유미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1989년 강연의 형태로 처음 발표되고 1992년 영어로 먼저 출간된 󰡔법의 힘󰡕은 저작이 미친 사상적 충격이라는 점에서는 데리다의 수많은 저작들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효과를 발휘한 책이다. 실제로 󰡔법의 힘󰡕은 여러 차례 학술지의 특집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미 학계에서 해체론의 수용 양상을 뒤바꾸어 놓았다. 그 이유는 이 책의 첫머리에서부터 데리다가 “해체는 정의다”라고 선언하고, “결국 해체는 규정된 맥락에서 정의, 정의의 가능성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기존의 규정들을 넘어 서 있는, 항상 충족되지 않는 이러한 호소에서만 자신의 힘과 운동, 자신의 동기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리다가 그 이전까지 전개된 탈구축의 문제설정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데리다는 모든 언어가 이미 오염된 언어이며 2차적 매개로서 문자기록이라고 주장했듯이, 정의와 법의 관계, 정초적 폭력과 보존적 폭력의 관계도 “차연적 오염”의 관계임을 역설한다. 법이 정의에 근거를 두어야 하는 것이라면, 다른 한편으로 정의는 법 바깥에서는 최악의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에, 법 안에서, 법을 통해 자신을 구현해야 한다. 벤야민의 「폭력의 비판을 위하여」에 대한 탈구축적 독서의 한 가지 논점이 이것이다.


  이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제시되는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적인 것이라는 개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편으로 메시아적인 것은 역사적으로 나타난 여러 종교적 메시아주의들로부터 독립적인 해방의 보편적 형식을 가리킨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메시아적인 것은 구체적인 해방의 운동이나 경험들과 분리되어서는 안 되며, 그 속에서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 또한 그러한 역사적 경험들을 통해 자신을 변형하고 쇄신해야 한다.


  그렇다면 데리다가 유령론의 관점에서 마르크스의 저작들을 재독해하는 것은 두 가지 함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이는 생생한 현실과 가상, 물질과 이데올로기(곧 유령)를 집요하게 대립시키는 마르크스 사상에 함축된 현존의 형이상학을 해체하기 위함이다. 이는 기호적 매개와 독립적인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 초기 작업의 연속이다. 둘째, 이러한 대립은 마르크스가 추구하는 공산주의 내지 사회혁명의 동력을 이루는 것이 대중의 해방의 열망, 곧 메시아적인 것이라는 점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유령론은 초기 저작에서 수행되었던 서양 형이상학의 탈구축 작업을 계승하면서 확장하는 문제설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 사상에서 정신 개념의 함의를 분석하는 󰡔정신에 대해서󰡕는 󰡔법의 힘󰡕이나 󰡔마르크스의 유령들󰡕과는 다소 성격이 다른 저작이며, 스타일상으로는 오히려 초기의 탈구축 저작들과 더 유사성이 있다. 데리다는 하이데거의 여러 저작들에 나타난 정신 개념의 계보를 추적하면서 그의 사유가 어떻게 서양 형이상학의 한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면서도 여전히 그 용어법 및 사유에 오염되어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하이데거의 나치즘 연루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출간된 1987년은 데리다가 하이데거와 폴 드 만과 관련하여 파시스트라는 비난을 받던 시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책은 보기보다 훨씬 더 정치적인 의미를 지닌 책이다. 더욱이 이 책은 데리다의 탈구축적인 독서의 묘미를 한글로 제대로 맛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역본이라는 점에서도 추천할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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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창녀 2014-06-30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일본에서 먼저 쓴 번역어이기는 하지만 역시 "解體"보다 "脫構築"이 더 나은 번역어로 보인다.

데리다는 해경 해체를 주장하지 않았다. 물론 해경 탈구축도 주장하지 않았지만```
 

이 글은 올해 안에 창비에서 출간 예정인 [현대프랑스철학사]에 수록될 원고입니다.

 

[현대프랑스철학사]는 앙리 베르그손에서부터 자크 랑시에르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을

 

소개하는 일종의 철학사 교과서입니다.

 

이 책은 한국프랑스철학회 회원들이 공동 집필하는 책인데, 저는 알뛰쎄르 편을 맡아 집필했습니다.

 

이 원고는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고 수정과 보충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공적인 매체에서 인용하거나 토론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댓글이나 기타 여러 방식으로 조언을 주신다면, 원고를 완성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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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알뛰쎄르

 

 

1. 생애와 저서

 

  루이 알뛰쎄르는 20세기 후반 대표적인 맑스주의 철학자 중 한 명이었으며, 현대 인문사회과학의 주요 인물들인 자크 데리다, 에티엔 발리바르,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슬라보예 지젝, 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주디스 버틀러, 안토니오 네그리 등의 작업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현대 프랑스 철학자다. 알뛰쎄르는 1918년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비르망드레이스에서 태어났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8살 때 마르세이유로 옮긴 뒤, 리옹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1939년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학기가 시작되기 전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된 후 포로로 잡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독일에서 포로생활을 했다. 전후 고등사범학교로 돌아와 바슐라르의 지도 아래 󰡔헤겔에서 내용의 개념󰡕(La notion du content chez Hegel)이라는 논문을 쓰고 졸업했다. 1948년 고등사범학교 조교가 되었으며 동시에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했다. 


  고등사범학교에서 가르치면서 1960년부터 본격적으로 맑스주의 연구에 착수하여 1965년 󰡔맑스를 위하여󰡕(Pour Marx), 󰡔자본을 읽자󰡕(Lire le Capital)(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랑시에르, 피에르 마슈레, 로제 에스타블레와 공저)를 출간함으로써 일약 국제적인 맑스주의 이론가로 부상했다. 이 두 권의 저작에서 알뛰쎄르는 스피노자와 정신분석, 프랑스 과학철학 등의 이론적 자원을 활용하여 맑스주의를 개조하려는 작업을 수행했다. 그 핵심은 헤겔 변증법과 구별되는 맑스주의 변증법의 고유성을 밝혀내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인식론적 절단, 과잉결정, 구조인과성 같은 개념들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적 쇄신의 노력은 여러 가지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로제 가로디를 비롯한 프랑스 공산당의 지도부는 알뛰쎄르의 작업이 맑스주의 인간주의에서 벗어난 편향을 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한 1968년 5월 혁명이 벌어진 이후, 고등사범학교 출신의 마오주의 제자들은 알뛰쎄르가 스탈린주의적인 프랑스 공산당과 결별하지 않고 결과적으로 공산당의 정치적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이러한 비판들에 대한 대응으로 알뛰쎄르는 초기의 작업이 이론주의적 편향을 범했다는 자기비판을 제기한 뒤, 󰡔레닌과 철학󰡕(Lénine et la philosophie)(1969)에서 이론 내에서의 계급투쟁으로 철학을 재정의하려고 시도했다. 또한 이데올로기 국가장치 개념을 도입하고 스피노자와 라캉의 이론을 기반으로 이데올로기 개념을 쇄신함으로써 전통적인 토대-상부구조론 대신 재생산의 문제설정에 따라 맑스주의를 개조하려고 했다. 이는 자본주의의 재생산에서 이데올로기가 수행하는 역할을 해명하고 자본주의의 변혁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시도였다. 1976년 프랑스 공산당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폐기하고 유로코뮤니즘 노선을 채택한 것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맑스주의의 위기가 도래했음을 선언했다.


  알뛰쎄르는 청년 시절부터 앓았던 정신 질환으로 인해 평생 고통을 겪었으며, 이론적인 작업도 끊임없이 중단과 재개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알뛰쎄르가 여러 차례에 걸쳐 야심찬 이론적 계획을 세우고도 이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데에는 정신 질환이 큰 장애물로 작용했다. 급기야 1980년에는 정신착란 상태에서 고등사범학교 학생 시절부터 충실한 반려자였던 부인 엘렌 리트망을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그 뒤 재판에서 면소 판결을 받고 연금 상태에서 풀려난 알뛰쎄르는 여러 정신병원 및 파리 20구의 아파트에서 요양생활을 하다가 1990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972년 작성한 󰡔마끼아벨리와 우리󰡕(Machiavel et nous)라는 원고와 더불어, 주로 정신병원 요양 시절에 썼던 우발성의 유물론 및 마주침의 유물론에 관한 사상이 담긴 유고집이 사후에 출간되면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알뛰쎄르는 1960~70년대 국제 맑스주의 이론계를 주도했던 대표적인 이론가 중 한 명이었으며, 현대 인문사회과학의 주요 인물들인 데리다, 발리바르, 라클라우, 지젝, 바디우, 랑시에르, 버틀러 등의 작업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영미권의 분석 맑스주의와 비판적 실재론(critical realism)이 형성되는 데도 촉매 역할을 했다.

 

2. 맑스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

 

  알뛰쎄르는 1950년대 몇 편의 글과 더불어 󰡔몽테스키외: 정치와 역사󰡕(Montesquieu, la politique et l'histoire)(1959)라는 단행본 저서를 내고, 포이어바흐의 글들을 편역한 󰡔철학 선언󰡕(Manifestes philosophiques)(1960)을 펴냈지만, 그의 본격적인 이론적 활동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에 들어서였다. 맑스주의에 관한 알뛰쎄르의 첫 번째 주요 논문은 「청년 맑스에 대하여」(1961)라는 글이었다. 이 글은 1950년대 이후 맑스주의와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 닥친 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고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비판이 이루어지면서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서는 탈스탈린주의 운동이 시작된다. 이론적으로 이는 교조주의적인 맑스 이해에서 벗어나 청년기 저작에서 맑스 사상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시도로 표현되었다. 청년 맑스의 저작에는 후기 저작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맑스 사상의 인간주의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그 핵심은 소외론이었다. 왜냐하면 소외론은 자본주의에서 일어나는 인간 노동력의 착취와 인간성의 상실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며, 맑스주의는 비인간적인 자본주의에 맞선 인간 해방의 사상이라는 점을 납득시켜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년 맑스의 소외론에 입각할 때 우리는 󰡔자본󰡕의 철학적 메시지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이러한 인간주의적인 맑스 이해에 맞서 알뛰쎄르는 맑스 사상에 대한 새로운 시기 구분을 제안한다. 그가 보기에 맑스 사상은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것이 아니었으며, 연속성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맑스는 엥겔스와 공동으로 집필한 󰡔독일 이데올로기󰡕(1846) 무렵부터 이전의 관점과 인식론적 절단(coupure epistémologique)을 이룩한 이후 비로소 자기 자신의 이론을 세울 수 있었다. 󰡔독일 이데올로기󰡕가 절단의 징표가 되는 이유는 이 저작에는 청년기 저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맑스 자신의 고유한 개념들, 곧 생산양식이나 이데올로기 같은 개념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맑스 사상의 정수는 헤겔과 포이어바흐의 문제설정에 사로잡혀 있는 청년기 저작이 아니라 󰡔자본󰡕을 중심으로 한 후기 저작에 담겨 있다.


  하지만 알뛰쎄르가 인식론적 절단을 주장한다고 해서, 절단 이후의 맑스 사상이 동질적이거나 완결되어 있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알뛰쎄르의 논점은 절단을 이룩한 이후에도 맑스 사상은 여전히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불완전하고 불균등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맑스주의 내에서 스탈린주의나 인간주의 같은 여러 가지 이론적 편향들이 발생하며, 다시 이는 정치적 오류 및 맑스주의 자체의 위기를 낳게 된다. 따라서 알뛰쎄르가 보기에 불완전한 상태로 남겨진 맑스 사상을 개조하고 좀더 완전한 상태로 발전시키는 것은 이론적이고 정치적으로 중요한 과제였다.


  이러한 목적에 따라 알뛰쎄르는 ‘맑스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라는 이론적 슬로건(이것은 두 권의 책의 제목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아래 맑스 사상을 개조하는 작업에 착수하는데, 그 핵심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맑스주의 철학, 곧 변증법적 유물론을 재정의하는 것이다. 알뛰쎄르는 인간주의적 맑스 해석이 나타나는 이유는 철학적으로 볼 때 그것이 경험론적 입장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경험론은 철학사 연구에서 흔히 말하는 영국 경험론보다 훨씬 포괄적인 관점을 가리킨다. 그것은 객관적 현실이 인식 주관 바깥에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인식이란 관찰과 추상을 통해 이 현실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뜻한다. 인간주의적 해석에 따르면 사회의 객관적 현실의 본질은 바로 생산의 주체로서의 인간이며, 자본주의에서는 이 주체가 자신의 생산물인 자본에 의해 소외되고 억압되는 일이 일어난다. 따라서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란 자본주의의 변혁을 통해 소외된 인간의 본질이 회복된 사회, 인간의 자유가 가장 온전하게 실현되는 사회를 뜻한다. 알뛰쎄르는 이들에 맞서 이론적 반(反)인간주의를 옹호한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인간은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구조적인 작용에 의해 규정되는 역사 속의 주체이며, 따라서 역사에 대한 과학적 이해는 인간이 아니라 구조와 그 모순을 설명해야 한다.


  인식론적으로 이론적 반인간주의는 스피노자의 세 가지 종류의 인식론을 원용한 세 가지 일반성 이론으로 표현된다. 일반성 I은 인식의 소재가 되는 각종 이데올로기적 표상들을 가리킨다. 인간은 일차적으로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표상들을 접하며 그것들을 통해 사고한다. 반면 일반성 II는 과학적 개념들을 뜻한다. 역사유물론의 경우에는 맑스가 발견한 과학적 개념들, 곧 생산양식이나 잉여가치, 이데올로기 같은 개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일반성 III은 일반성 II를 수단으로 하여 생산된 새로운 과학적 인식을 가리킨다. 따라서 알뛰쎄르에 따르면 인식은 외부 현실과 무관하게 사고 과정 내부에서 수행되는 작용으로, 인식론적 절단을 통해 형성된 기초적인 과학 개념들을 수단으로 이데올로기적인 표상들을 과학적 인식으로 변화시키거나 개조하는 과정이 곧 인식이다.


  알뛰쎄르는 이러한 인식 과정을 ‘이론적 실천’이라고 불렀다. 이론적 실천은 비판가들이 주장하듯 현실적 실천 내지 정치적 실천을 대체하기 위해 제시된 개념이 아니라, 당 지도부의 정치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 명령으로부터 이론 작업의 자율성을 옹호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알뛰쎄르는 이론 작업의 자율성이 유지될 때 정치적 실천도 더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는 철학을 이론적 실천의 이론으로 재정의한다. 각각의 분과 학문이 각각의 영역에서 수행되는 이론적 실천 작업이라면, 철학은 이러한 이론적 실천들 전체의 역사와 구조를 다루는 이론이라는 뜻이다.


  두 번째 중심 작업은 헤겔의 변증법과 구별되는 맑스 변증법의 독창성을 해명하는 것이다. 알뛰쎄르는 프로이트에게서 용어를 빌려온 과잉결정(surdétermination) 개념을 독자적으로 이론화함으로써, 두 변증법의 차이를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이것은 특히 역사적 이행의 가능성을 설명하기 위해, 곧 왜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나라인 러시아에서만 혁명이 가능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변증법의 차원에서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알뛰쎄르의 논점은 사회주의 혁명과 이행을 사고하기 위해서는 역사의 ‘좋은 측면’에만 의지해서는 안되고 ‘나쁜 측면’을 고려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 또는 자본과 임노동 사이의 모순이라는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모순만 사고해서는 혁명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사고할 수 없으며, 모순을 그것이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모순을 상황 속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모순이 전개되는 외적 조건이나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 모순을 상황들과 하나를 이루고 있어서 단지 이 상황들을 통해서만 그리고 이 상황들 속에서만 포착되고 식별되고 작동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을 뜻한다. 1917년 당시 유럽의 가장 ‘후진국’인 러시아는 자본주의적인 모순 이외에도 봉건적 착취체제의 모순, 자본주의적ㆍ제국주의적 착취의 모순, 식민지적 착취와 전쟁의 모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발전 정도와 농촌의 중세적 상태 사이의 모순, 지배 계급 내부의 모순이 응축되어 있었으며, 이로 인해 지배 계급의 세력이 약화되어 혁명이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알뛰쎄르가 말하는 과잉결정은 자본주의적인 모순은 결코 그 자체로, 단순한 모순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존재하는 조건들 및 그러한 모순이 지배하는 각각의 심급들과 분리될 수 없고, 모순 그 자체가 그러한 심급들의 작용에 의해 규정된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과잉결정 개념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는 ‘구조화된 복합적 전체’라는 개념과 ‘지배소를 갖는 구조’라는 개념이다. 항상 이미 주어진 구조화된 복합적 전체라는 개념은 헤겔식의 기원과 목적의 변증법과 달리 유물 변증법에는 순수하고 단순한 기원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전체 역시 하나의 동질적 본질로 환원되지 않은 이질적인 요소들로 구성된 복합적 전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지배소를 갖는 구조라는 개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회적 전체는 다양한 심급들(instances) 내지는 요소들 간의 위계적 결합관계에 따라 구조화되어 있음을 뜻한다. 사회적 전체를 지배소를 갖는 구조에 따라 파악하는 것은 막연한 다원주의를 넘어서 구조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 사이의 위계관계, 또는 불균등한 접합관계를 인식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이렇게 되면 최종 심급에서 경제의 결정이라는 관념을 새롭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왜냐하면 이제 최종 심급에서 결정하는 경제는 모든 생산양식에서 직접 다른 심급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각 생산양식에서 지배소의 역할을 담당하는 심급들을 결정하는 기능만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는 경제가 지배소의 역할을 담당한다면, 다른 생산양식에서는 정치나 이데올로기, 또는 다른 심급이 지배소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세 번째는 󰡔자본󰡕이 이룩한 이론적 혁명의 성격이 무엇인지, 곧 맑스주의 과학으로서 역사유물론의 특성은 어떤 것인지 밝히는 일이다. 여기에서 알뛰쎄르는 정신분석, 특히 라깡의 정신분석과의 이론적 동맹을 추구한다. 알뛰쎄르는 「프로이트와 라깡」(1964)에서 역사유물론과 정신분석은 진정으로 새로운 두 개의 과학이며, 라깡이 자아심리학을 비롯한 사이비 정신분석으로부터 프로이트 사상의 진수를 보호하고 그것을 개조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각종 이데올로기적 위협으로부터 맑스주의 과학을 보호하고 그것을 개조하는 것이 맑스주의자들의 중요한 과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고로 출간된 이 당시의 미발표 원고들이 보여주듯이 알뛰쎄르는 그와 동시에, 정신분석을 역사유물론의 한 부분으로 포섭할 수 있는 이론적 길을 찾기 위해 암중모색했다.


  미완의 상태로 남겨진 역사유물론을 발전시키기 위해 알뛰쎄르는 특히 새로운 인과성 이론을 제안한다. 그는 인과성에는 세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 인과성은 데까르뜨가 제안한 기계적 인과성(causalité mécanique)으로, 이는 부분들 사이의 외재적인 관계만을 설명할 뿐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두 번째는 라이프니쯔 및 헤겔이 발전시킨 표현적 인과성(causalité expressive)으로, 이는 전자와는 반대로 각각의 부분들 속에서 전체의 표현을 발견할 뿐, 부분들 각각이 지닌 자율성을 사고하지 못한다. 세 번째 인과성은 스피노자가 개념화한 구조적 인과성(causalité structurale)으로, 알뛰쎄르는 이러한 인과성만이 맑스가 이룩한 이론적 혁명, 곧 역사유물론의 독창성을 잘 표현해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구조적 인과성은 구조는 자신의 부분들 바깥에 있거나 그것을 초월하여 존재하지 않고 그 부분들에 내재해 있음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구조는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 사이의 독특한 결합과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 따라서 구조라는 원인은 그 효과들의 결합일 뿐 그것들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실체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부재하지만, 또한 그 효과들 각각에 대하여 원인으로서 작용한다는 점에서 부재하는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조적 인과성 개념은 토대와 상부구조 사이의 직접적이고 단순화된 인과 작용에 따라 역사와 사회의 변화를 설명하고, 상부구조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법, 이데올로기 등)의 역할을 경시하는 전통 맑스주의의 결함을 정정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인과성에 의거할 경우 사회는 여러 가지 상이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복합적 전체로 이해되며, 각 심급들 내지 부분들은 다른 부분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규정되지 않고 서로 상호 규정하기 때문에, 역사적 변화를 좀더 현실성 있게 설명할 수 있다.

 

3. 자기비판과 이데올로기론

 

  1965년 두 권의 저작을 통해 일약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 알뛰쎄르와 그의 제자들은 계속 후속 작업을 시작하게 되지만, 곧바로 다양한 비판과 장애에 직면하게 된다. 우선 소련의 노선을 따르는 프랑스 공산당에서 알뛰쎄르의 작업을 편향된 것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또한 주로 알뛰쎄르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마오주의 좌파 운동가들은 알뛰쎄르가 보수적인 프랑스 공산당과 단절하지 못하고 그 노선을 추종한다고 반대쪽에서 비판을 가했다. 특히 이들은 알뛰쎄르의 작업은 이론주의적 편향에 빠져 있으며, 위로부터 대중들의 자발적인 운동을 통제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의 비판은 1968년 5월 혁명을 경험하면서 훨씬 더 거세진다. 더욱이 알뛰쎄르 자신은 두 권의 책을 출간한 뒤 심각한 우울증이 발병하여 장기간 치료를 받게 된다.


  이러한 곤경에 처하여 알뛰쎄르는 󰡔맑스를 위하여󰡕와 󰡔자본을 읽자󰡕에서 제시된 이론적 실천의 이론으로서 철학이라는 정의가 이론주의적 편향을 범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철학을 새롭게 정의한다. 이제 철학은 “이론 안에서의 계급투쟁”(󰡔레닌과 철학󰡕)으로 재정의된다. 이러한 새로운 정의는 우선 철학과 과학의 엄격한 구별을 함축한다. 알뛰쎄르가 이전에 철학을 ‘이론적 실천의 이론’으로 정의할 때, 철학은 과학과는 구별되지만, 어쨌든 여전히 하나의 이론으로 규정되었다. 하지만 철학에 대한 새로운 정의에서 철학은 더 이상 독자적인 이론이 아니라 계급투쟁이라는 하나의 실천으로 정의된다. 이론 안에서의 계급투쟁으로서 철학의 실천의 핵심은 경계선을 긋는 데 있다. 철학이란 과학과 이데올로기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 활동일 뿐, 독자적인 대상을 갖는 이론이 아니다. 오직 과학만이 자신의 고유한 대상을 지니고 있다. 철학은 각각의 과학, 특히 맑스주의의 경우 역사유물론이라는 새로운 역사과학 내부에서 이데올로기적 표상들과 과학 개념들 사이에 경계선을 그음으로써 과학적 인식을 촉진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는다. 


  따라서 유물론과 관념론이란, 서로 상이한 학설을 가진 두 개의 철학 진영을 가리키는 명칭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옹호하고 이를 통해 기존의 사회질서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는 철학(관념론)과 과학적 인식을 옹호하고 프롤레타리아의 입장에서 사회의 변혁을 위해 활동하는 철학(유물론)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철학사란 사실은 유물론과 관념론 사이의 투쟁의 역사를 나타낼 뿐,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닌 역사, 하나의 독자적인 역사로 간주될 수 없는 역사에 불과하다. 그것은 관념론과 유물론 사이의 영구적인 선긋기의 반복의 역사다. 문제는 철학의 역사가 아니라, 철학 안에 존재하는 역사, 곧 철학 안에서 이루어지는 계급투쟁이다.


  따라서 철학에 대한 새로운 정의는 알뛰쎄르의 이론 작업의 중심이 계급투쟁의 문제로, 곧 사회 구조의 재생산이냐 변혁이냐의 문제로 전위되었음을 말해준다. 이렇게 보면, 알뛰쎄르가 1970년대 내내 재생산의 문제 및 이데올로기의 문제에 전력을 기울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알뛰쎄르의 이데올로기론이 집약돼 있는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1970)이라는 글은 원래 독립된 글도 아니고 완성된 논문도 아니었다. 이 글은 󰡔상부구조에 관하여: 이데올로기, 국가, 법󰡕이라는 미완성 원고(이 원고는 󰡔재생산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유고로 출간되었다)에서 발췌된 두 부분으로 조합된 글이다. 첫 번째 부분은 맑스주의 상부구조 이론의 난점을 재생산이라는 문제설정에 따라 개조하는 부분이고, 두 번째 부분은 예속적 주체 형성의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이데올로기 개념을 개조하는 부분이다.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의 첫머리부터 알뛰쎄르는 재생산 문제설정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맑스가 말했듯이, 만약 하나의 사회구성체가 생산을 함과 동시에 생산의 조건들을 재생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1년도 존속할 수 없다는 사실은 어린아이조차 알고 있다. 그러므로 생산의 최종적인 조건은 생산조건들의 재생산이다.” 생산조건들의 재생산이라는 문제는 생산조건을 구성하는 생산력의 재생산과 생산조건의 재생산의 문제로 구분되는데, 알뛰쎄르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후자의 문제다. 그런데 생산관계는 생산력을 조직하는 기술적 관계와 더불어 착취관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생산관계의 재생산이라는 문제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거쳐 우회해야 하며, 이는 다시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역사유물론의 고전적인 장소론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한다.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장소론이 갖는 의의는 역사의 변화 동력을 관념이나 정신적인 것 또는 정치나 법제의 변화에서 찾지도 않고, 사회경제적인 구조의 변화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곧 역사에 대한 설명에서 유물론적인 관점을 도입한다는 데에 바로 토대-상부구조 장소론의 의의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장소론의 한계는 상부구조의 반작용이나 상대적 자율성 같은 막연한 해명 이외에는 정치와 법, 이데올로기가 수행하는 역할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알뛰쎄르의 대안이 바로 (생산과) 재생산의 문제설정이다.


  그는 우선 맑스주의 국가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다. 국가는 국가권력만이 아니라 국가장치로 이루어져 있으며, 더 나아가 국가장치는 억압적 국가장치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 이루어져 있다. 고전적인 맑스주의에서 국가장치는 억압적인 장치와 동일시되었지만, 이러한 개념만으로는 국가가 수행하는 계급 지배의 메커니즘이 정확히 해명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국가는 계급 지배를 재생산하기 위해 단지 강제와 폭력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헤게모니를 동원하기 때문이다. 억압적 국가장치와 구분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는 교육적인 장치와 가족 장치, 종교적인 장치, 법적인 장치, 정치적인 장치, 노동조합 등이 포함된다.


  억압적 국가장치는 이른바 ‘공적 영역’에 속해 있으며, 국가 권력을 장악한 지배 계급의 이익을 보존하기 위해 비교적 질서정연하게 조직되어 있다. 반면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는 이른바 ‘사적 영역’에 속하는 것들로, 뚜렷한 통일성을 유지하지 않은 채 때로는 서로 갈등과 모순을 빚을 수도 있다. 이처럼 사적 영역에 속하는 것들로 간주되는 여러 제도들을 국가장치라고 부르는 이유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구분하는 자유주의-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다. 자유주의적인 관점에서 따르면 정치와 권력은 항상 공적인 영역에서만 작동하며, 사적인 영역은 개인들 사이의 관계가 문제되는 영역일 뿐 정치나 권력을 위한 자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또 그래야 마땅하다. 반면 알뛰쎄르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라는 개념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부르주아의 계급 지배는 단지 공적인 영역에서 억압적 국가장치를 장악하고 활용함으로써 안정되게 재생산될 수 없으며, 사적인 영역이라고 불리는 개인들의 생활 공간까지 장악하고 지배해야 비로소 안정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문제는 권력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적인 영역의 개인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계급 지배가 관철되고 있고, 더 나아가 개인들의 정체성 자체가 어떻게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에 의해 형성되는지 설명하는 일이다.


  이것이 이데올로기론의 두 번째 측면인데, 알뛰쎄르는 우선 이데올로기 개념을 새롭게 정의하는 데서 출발한다.

“인간들”이 이데올로기 안에서 “표상/재현/상연”(se représentent)하는 것은 인간들의 현실적인 실존조건들, 그들의 현실 세계가 아니며, 이데올로기에서 그들에게 표상/재현/상연되는(représenté) 것은 그들이 이 실존조건들과 맺고 있는 관계다.(「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

 

이 정의에서 현실적인 실존조건이란 계급적 조건을 뜻한다. 자본주의를 비롯한 계급사회에서 모든 인간, 개인은 계급의 한 성원으로 존재하지 추상적인 개인이나 인간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데올로기 속에서 어떤 계급에 속한 사람은 어떤 계급의 성원으로 나타나지 않고(재벌, 노동자, 농민, 지식인 ...) 인간으로서, 개인으로서 나타난다. 곧 이데올로기 속에서 계급 성원으로서 x는 추상적인 개인 x로서, 계급적인 조건과 무관하게, 그러한 조건에 앞서 그 자체로 성립하는 개인으로서 상상적으로 표상/재현/상연된다. 이러한 상상적 표상/재현/상연은 가상적이기는 하지만 전혀 환상적이거나 공상적인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대부분의 자본주의 사회는 법적 체계를 통해 모든 사람을 법적 주체,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 주체로 규정하고 있으며, 제도적 차원에서 그렇게 전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 사회에서 각 개인은 계급이라는 현실적인 존재조건에 따라 규정됨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는 이러한 계급적 조건에 선행하는 추상적인 개인 x로 나타나며, 또한 이데올로기적 제도 속에서 그렇게 규정되어 있다.


  이렇게 이데올로기 속에서 개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얻는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해 알뛰쎄르는 호명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을 주체들로 호명한다.”(idéologie interpelle les individus en sujets) 호명의 첫 번째 논점은 우리가 이데올로기나 권력의 작용 이전에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하고 있는 개인들이 사실은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곧 호명 개념은 개인들 내지 주체들이 바로 그 개인들 내지 주체들로서 존재하는 양식이 사실은 계급 지배의 메커니즘과 내재적으로 연루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간의 개인적인 실존 양식, 개인성 그 자체가 계급 지배 및 권력에 대한 예속을 전제로 한다면, 맑스주의 이론은 생산양식에 대한 분석을 넘어서 이데올로기적 분석을 필수적인 요소로 포함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근대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호명 개념은 근대 주체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제기를 함축한다. 주지하다시피 칸트 이래로 주체라는 범주는 근대철학의 핵심 개념으로 존재해왔다. 근대 철학의 기본 범주로서 이해된 주체는 무엇보다 인식과 실천의 원리, 곧 인간의 모든 인식 및 도덕적 실천의 토대로 기능하며, 따라서 그보다 상위의 원리에 종속되지 않는 자율적인 존재자로 간주된다. 하지만 호명 개념에서 주체는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 질서를 재생산하기 위한 메커니즘의 파생물로서, 이데올로기의 산물로서 제시된다. 이렇게 되면 주체는 정의상 예속적인 주체인 셈이며, 근대철학의 가정과는 달리 본질적으로 ‘예속화’(assujettissement)의 산물인 셈이다. 근원적으로 자율적인 존재자로 간주되는 주체가 사실은 예속화의 산물이며 주체의 자율성 주장은 사실은 이러한 예속화의 메커니즘을 은폐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면, 근대성의 원칙 자체가 근원적인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예속화를 넘어서는 해방적인 주체는 어떻게 가능한가? 알뛰쎄르는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이나 그 글의 모체를 이루는 󰡔재생산에 대하여󰡕에서 호명에는 항상 계급투쟁이 작용하고 있음을 지적하지만, 예속화와 구별되는 해방적인 주체화 작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알뛰쎄르는 랑시에르나 영국의 맑스주의자들에서부터 지젝에 이르기까지 해방적 주체를 사고하지 못했다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알뛰쎄르가 이데올로기나 주체에 관해 전적으로 부정적인 관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알뛰쎄르는 상상계에 관한 스피노자의 이론에 기반하여 이데올로기를 실정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이데올로기는 단순히 가상이나 기만 또는 왜곡으로 규정되지 않고 무엇보다 생활세계, 세계 그 자체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결코 의식의 한 형태로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세계”의 한 대상인 것처럼, 자신들의 “세계” 자체인 것처럼, 그렇게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살아간다.””(「맑스주의와 인간주의」, 󰡔맑스를 위하여󰡕) 따라서 이데올로기의 실정성은, 이데올로기가 단순히 부정적인 것, 곧 지배하고 예속시키고 기만하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자립적인 영역이며 능동적인 정치적 활동의 장소이자 지주라는 점을 사고할 수 있게 해준다. “상상계에 의한 현실계의, 그리고 현실계에 의한 상상계의 과잉결정 안에서 이데올로기는 원칙적으로 능동적이며, 이는 이 상상적 관계 자체 내에서 인간들이 자신들의 실존 조건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강화하거나 변형한다. 이로부터 이 활동은 결코 순수하게 도구적일 수 없다는 점이 따라 나온다.”(같은 글)

 

4. 우발성과 마주침의 유물론

 

  알뛰쎄르가 부인을 살해하고 면소 판결을 받은 이후, 그의 적대자들만이 아니라 그와 가까운 동료나 친구들까지도 모두 철학자 알뛰쎄르의 삶은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90년 알뛰쎄르가 사망하고 난 뒤 출간되기 시작한 알뛰쎄르의 유고들에는 그의 생전의 저작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새로운 사상의 요소들이 담겨 있었다. 이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알뛰쎄르 사상 전체를 새로운 시각에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도 알뛰쎄르 사상의 온전한 일부로 평가받을 만한 것이다.


  말년의 사상은 보통 알뛰쎄르 자신의 표현을 따라 우발성의 유물론 및 마주침의 유물론이라고 불린다. 이 새로운 유물론은 서양 철학의 흐름에 대한 포괄적인 재평가에 기초하여 유물론의 핵심을 새롭게 정의하려고 시도한다. 정통 맑스주의에서는 의식에 대한 물질의 우선성을 유물론과 관념론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제시하며, 알뛰쎄르 자신은 사회의 재생산에 봉사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는 철학이냐 아니면 프롤레타리아의 입장에 기초하여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과학적 인식의 발전을 옹호하느냐 여부를 관념론 철학과 맑스주의 철학의 차이로 제시한 바 있다. 반면 유고에서는 세계에 확고한 기초나 근거가 존재한다고 보는 입장과 세계는 원자들의 우발적인 마주침을 통해 형성된다고 보는 우발성의 유물론 사이에 경계선이 그어진다. 이 새로운 구분에 따르면, 단지 플라톤이나 데까르뜨 또는 헤겔만이 아니라 맑스와 엥겔스의 사상 일부까지 포함하여 세계에 대하여 확고한 근거를 긍정하는 철학은 모두 관념론적인 철학에 포함된다. 반면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같은 고대 원자론에서 발원한 우발성의 유물론에는 마끼아벨리와 홉스, 스피노자만이 아니라,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들뢰즈, 데리다 같은 철학자들이 포함된다.


  이러한 관점은 알뛰쎄르 생전의 철학과 확연한 대조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몇 가지 측면에서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 우선 우발성의 유물론은 1980년대의 유고들에서 비로소 자신의 명칭을 얻고 있지만, 이미 1960년대의 과잉결정이나 1970년대의 과소결정 개념에서도 표현된 바 있다. 또한 우발성의 유물론의 관점에 따라 마끼아벨리의 사상을 재고찰하는 󰡔마끼아벨리와 우리󰡕는 1972년에 작성된 저작이다. 따라서 우발성의 유물론은 알뛰쎄르의 사상이 단순히 구조적인 맑스주의일 뿐만 아니라 또한 상황과 정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정세의 맑스주의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려 준다.


  우발성의 유물론에서 그가 고심했던 문제는, 어떤 체계 속에 존재하지만 그 체계로 환원되지 않는 요소, 그 체계의 재생산 과정 속에 포함되어 있고 또 그러한 재생산을 통해서만 실존할 수 있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 재생산에 대해 이질적으로 남아 있는 요소, 따라서 그 체계의 바깥에 있는 요소를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라는 문제였다. 좀 더 분명히 말한다면 이것은, 프롤레타리아 또는 프롤레타리아로 실존하는 대중(masses)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구성적인 요소로서 그 체계의 재생산 과정 속에서 실존할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그 체계의 재생산과정 속으로 환원될 수는 없으며, 환원되어서도 안 된다는 알뛰쎄르의 지속적인 이론적 입장의 표현이다.

 

 

 

용어 해설

 

과잉결정(surdétermination), 과소결정(sousdétermination):

프로이트에서 용어를 빌려와 알뛰쎄르가 이론화한 과잉결정 개념은 왜 유럽에서 가장 낙후된 나라인 러시아에서만 혁명이 가능했는가라는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곧 자본주의 사회의 변혁을 사고하기 위해서는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 또는 자본과 임노동 사이의 모순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그 모순이 다양한 요인들(이데올로기, 법, 봉건적인 잔재, 제국주의와 식민지 갈등 등)에 의해 과잉규정되는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 러시아는 여러 가지 모순이 복합적으로 응축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배 계급의 힘이 약화되었고 이로 인해 혁명이 가능할 수 있었다. 반대로 과소결정은 변혁을 위한 객관적 조건들이 존재함에도 혁명이나 이행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조건들에 의해 모순이 규정되어 있는 것을 가리킨다. 알뛰쎄르 자신의 표현을 따르면 이는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면 혁명이 유산되고 혁명적 운동이 지체되거나 사라지며, 제국주의가 부패 속에서 발전하게 되는, 결정의 문턱”을 뜻한다.

 

인식론적 절단(coupure epistémologique):

알뛰쎄르는 바슐라르와 스피노자 철학에서 영감을 얻어 맑스 초기 사상과 후기 사상 사이에는 단절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자르다’라는 프랑스어 단어 couper의 명사형인 coupure, 곧 ‘절단’이라는 말이 표현하듯이, 이러한 단절은 매우 급격하고 확연한 것이다. 초기 사상이 헤겔 및 포이어바흐의 이데올로기 세계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면, 󰡔독일 이데올로기󰡕 이후로 맑스는 그와 무관한 자신의 독자적인 이론적 문제설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이러한 절단이 완전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으며, 후기 맑스 사상이 동질적인 완성체라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절단 이후에도 맑스 사상에는 여전히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이 잔존해 있으며, 따라서 지속적인 개조 작업만이 그러한 절단의 효력을 지속시킬 수 있다.

 

장소론(topique):

 ‘토픽’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장소론은, 어떤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공간적 비유법을 가리킨다. 가령 데까르뜨가 철학을 설명하기 위해 나무라는 비유를 사용하는 것이 한 사례다. 데까르뜨는 형이상학은 뿌리에 해당하고 자연학은 줄기에 해당하고, 기계론, 의학, 도덕은 각각 나무의 줄기에 해당한다는 비유를 제시한다. 또한 맑스가 사회의 구조를 건물의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비유로 설명한 것이나, 프로이트가 무의식, 전의식, 의식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정신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꿈의 해석󰡕에서 제시한 공간적 비유도 장소론의 일종이다.

 

 


참고문헌

 

 

알뛰쎄르, 루이. 󰡔맑스를 위하여󰡕, 이종영 옮김, 백의, 1997(Pour Marx, François Maspero, 1965).
       외. 󰡔자본을 읽자󰡕, 진태원 외 옮김, 그린비, 2015(Lire le Capital, François Maspero, 1965).
      . 󰡔입장들󰡕, 김동수 옮김, 솔, 1991(Positions, Éditions sociales, 1976)
      .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권은미 옮김, 이매진, 2009(L'avenir dure lontemps, Stock/IMEC, 1992).
      . 󰡔철학과 맑스주의󰡕, 서관모ㆍ백승욱 옮김, 새길, 1995(Écrits philosphiques et politiques, vol. 1~2, Stock/IMEC, 1994)
      . 󰡔재생산에 대하여󰡕, 김웅권 옮김, 2007(Sur la reproduction, PUF, 1995).

엘리어트, 그레고리. 󰡔루이 알튀세르. 이론의 우회󰡕, 이경숙ㆍ이진경 옮김, 새길, 1992.
윤소영 엮음, 󰡔알튀세르와 라캉󰡕, 공감, 1995.
진태원 엮음, 󰡔알튀세르 효과󰡕, 그린비, 2011.
Balibar, Étienne, Écrits pour Althusser, La Découverte, 1991.
Callari, Antonio & Ruccio, David F., eds., Postmodern Materialism and the Future of Marxist Theory: Essays in the Althusserian Tradition, University Press of New England, 1996.
Kaplan, E. Ann & Sprinker, Michael, eds., The Althusserian Legacy, Verso, 1993.
Lahtinen, Mikko, Politics and Theory: Niccolò Machiavelli and Louis Althusser's Aleatory Materialism, Brill, 2009.
Montag, Warren, Althusser and His Contemporaries: Philosophy's Perpetual War, Duke University Press,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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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창녀 2014-06-30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자본은 읽자>

2015년에 나오기나 할까? 꽤 예전부터 나온다고 했는데```

어쩌면 번역본이 나오기 전에 내가 관 속에 들어갈 지도 모르겠다.

2015년 12월 31일에 나와도 2015년에 나온 거다.
 

한겨레 2014 기획연재 "다시, 변혁을 꿈꾸다-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12회 존 롤스 편입니다.

 

신문에 실린 글은 아래 주소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64349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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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창녀 2014-06-30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2002년에 6월에 故人이 된 미선이와 효순이를 기억하던 촛불은 온데간데 없다.

정말 슬픈 현실이다.
 

한겨레 기획연재 "다시, 변혁을 꿈꾸다-정치적인 것의 사상사" 11회차 원고 한나 아렌트 편입니다.

 

 

신문에 실린 기사는 아래 주소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6413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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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창녀 2014-06-30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솔직히 말해 난 아렌트를 싫어한다. 독일이나 소련은 전체주의고 미국은 그렇지 않다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 아닌가? 나치즘 (또는 파시즘) 볼셰비즘은 그 구성원리가 다르다. 그걸 왜 하나로 묶어?
 

지난 번 공지드린 대로 이번 주 토요일인 6월 7일 오후 3시 시민행성에서

 

"내가 살고 싶은 나라"라는 주제 아래 시민 집담회가 열립니다.

 

 

이 집담회에는 고병권 선생과 진은영 선생, 김정한 선생께서 패널로 참여해주시고

 

제가 사회를 맡게 됐습니다.

 

이번 집담회의 취지를 소개하기 위해 몇 마디 안내글을 써봤습니다.

 

이 안내글은 며칠 전 경향신문에 세월호 참사에 관해 기고했던 글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집담회 안내 및 시민행성 약도는 아래 주소로 가보시기 바랍니다.

 

http://citizenplanet.tistory.com/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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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세월호 참사가 남긴 슬픔과 고통은 여전히 유가족들과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었습니다. 그냥 운이 나빠 즐거운 수학여행 날 겪게 된 작은 사고일 수 있었습니다. 온 몸이 물에 젖어 춥고 아끼는 물건이 못쓰게 돼 속상하고 구조를 기다리는 순간 잠깐 조바심을 내고 걱정하는 부모님의 목소리에 괜히 미안해지기는 해도, 그냥 아무 일도 아닐 수 있었습니다. 수학여행이 취소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 그렇게 모두 집에 돌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그냥 살아가면서 어쩌다 한 번씩 겪는 재수 없는 일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게 재수 없는 사고로 끝날 수 있었을 일이, 그냥 불운(不運)한 수학여행의 안 좋은 추억으로 끝날 수 있었을 일이, 아, 어쩌다 이렇게 큰 불의(不義)의 참사로 변할 수 있었을까요?

 

얼마 전 촛불집회에 나온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지금까지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되씹어봐도 티끌만큼도 잘못한 것 없이 제 아이는 제 앞에 없고 저는 이 자리에 있다”면서 “아직도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배를 탔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 그 아이들이 왜 이토록 참혹한 불의의 희생자가 됐을까요? 한 달이 더 지났지만, 아직도, 안타깝게도, 이런 질문을 계속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의문들의 중심에는 국가에 대한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인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제34조 6항에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참사에 국가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이 귀여운 내 아이가 차가운 바다 속에 잠겼다는 비보를 접하고 팽목항으로 내달려온 맨 몸뚱이의 가족들과 곁에서 그들을 위로하고 보살피는 자원봉사자들, 시간이 지날수록 안타까움과 분노, 슬픔과 미안함에 눈시울을 적시며 한 달 넘도록 하루빨리 한 사람의 시신이라도 더 수습하기를 애타게 지켜보는 많은 국민들만이 있었습니다.

 

아니, 국가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구해달라는 애타는 신고를 접하고도 사태 파악을 못하고 침몰하는 배를 보고도 배 안에 갇힌 승객을 외면한 것이 국가였고, 사고 가족들의 애타는 호소와 항변이 있어야 마지못한 듯 수색작업을 전개하고 혹시 불순분자들이 섞여 있을까 수백 명의 사복 경찰을 풀어 가족들의 행태를 감시한 것이 국가였으며, 혹여 대통령에게 해가 될까, 지방선거에 피해가 갈까 언론 통제에 전력을 다한 것이 국가였습니다.

 

그러니 마치 떠밀리듯 TV 앞에 나와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국민과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여러 가지 사고 예방 대책을 내놓는 대통령의 담화가 진정성 있게 들릴 리가 없습니다. 대통령이 진정으로 이번 참사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면, 우선 이번 사고의 진상 규명을 위해 유가족과 시민이 주도하는 진상조사단을 만드는 게 일차적인 대책이 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과 청와대를 포함한 정부는 이번 참사의 책임자 중 하나가 아닙니까?

 

고귀하고 무고한 어린 생명들을 속절없이 떠나보내고 새삼 들게 된 의문 중 하나는 우리에게 과연 공동의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가끔 우파 쪽 학자나 지식인들을 만나면 늘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좌파 쪽 사람들은 부정사관에 사로잡혀 대한민국이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는지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6. 25 전쟁 이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나라가 불과 수십 년만에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는데, 좌파들은 이 대단한 업적을 이룬 그동안의 정부, 기업, 엘리트 등의 노력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불만이죠.

 

아마도 그것은 대단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업적은 정부, 기업, 엘리트만이 이룬 것이 아니라, 수많은 평범한 국민들의 재능과 헌신과 열정을 동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수십 년 동안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정언명령으로, 나라의 유일한 최고 가치로 지배해온 것과 이번 참사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까요?

 

촛불집회에서 사고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은 “대한민국도 세월호처럼 침몰하고 있다. 영원히 살고 싶은 나라로, 소생시켜야 한다. 그래서 이 자리에 나온 것이다. 앞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번 참사로 딸을 잃은 유가족 중 한 분은 다음과 같이 호소한 바 있습니다. “제가 30대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어요. 사연 들으면서 많이 울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뒤로 제가 한 일이 없는 거에요. 10년마다 사고가 나는 나라에서 제도를 바꾸려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서 제가 똑같은 일을 겪었어요. 지금 SNS하면서 울고만 있는 젊은 사람들, 10년 뒤에 부모 되면 저처럼 돼요. 봉사하든 데모하든 뭐든 해야 돼요.”

 

세월호는 이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철학자들이 말하듯 사건은 그것을 어떻게 상속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결정됩니다. 세월호의 참사가 계속 되풀이되어왔고 또 앞으로 되풀이될 또 다른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될지 아니면 새로운 민주주의의 건설을 위한 출발점이 될지 그것은 살아남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런 취지에 따라 시민행성에서는 시민들이 함께 하는 집담회를 마련했습니다. 이번 집담회는 명망 있는 지식인들이 나와서 시민 대중에게 세월호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국가란 무엇인가,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강연하는 자리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정치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또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성원들로서의 시민들, 국민 그 이상의 성원으로서의 시민들이 저마다의 의견을 밝히는 자리입니다.

 

이번 집담회의 주제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로 잡았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우리는 늘 국가를 이미 주어져 있는 것으로, 우리에게 주민등록증을 주고 병역 의무를 주고 세금을 걷어가고 선거의 기회를 주는 어떤 것으로 여겨 왔습니다. 그것은 늘 우리 가까이에 있지만, 또한 우리가 거역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우리가 감히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우리 앞에, 우리 이전에 주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단단한, 아마도 가장 단단한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자명한 것이라고 믿었던 국가, 나라가 사실은 너무나 허망한 어떤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늘 그것이 우리 곁에 있다고, 우리의 편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지만, 사실 그것은 커다란 공백, 검은 구멍이었습니다.

 

세월호가 우리들 각자에게 질문하는 것, 우리들 각자에게 대답해보도록 호명하는 것은 바로 너희가 욕망하는 나라는 무엇인가, 너희가 원하는 나라는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만약 국가라는 것이, 나라라는 것이 정녕 검은 구멍일 뿐이라면, 우리 각자에게 남은 길은 그것을 함께 들여다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 구멍을 함께 살펴보고, 그 구멍을 함께 나누는 것, 아마도 그것이 그 구멍을 줄이는 한 가지 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시민행성 집담회에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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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창녀 2014-06-13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용 토지의 80%를 1%의 인간들이 소유하고 있는 위대한 나라가 있다.

그 국가의 이름은 "한국(韓國)" 이라고 한다.

프랑스혁명 당시에는 5%가 35~40%를 토지를 소유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혁명이 일어났다.

한국이라 불리는 이곳은 가만히 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평화롭게 잘들 살고 있다.

관대하고 착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이 곳이다. 월드컵 때 나라 이름이나 외치고 있는 위대한 인간들이 많은 곳.

국가 없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휴대전화와 인터넷 없이도 인간이 살 수 있는 것처럼```

결과적으로 국가 안에 갇혀 산다고 해도 그 상상력이 냉철하게 국가를 바라보게 만들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한다. 국가 없이 살아가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국가 없는 정치적 상상들은 무수하게 많을 수 있으며
실현 가능하다.

그것은 무정부도 무질서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