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사회, 혁명운동 그리고 변증법

[이상한제국의앨리스](9/10) - Richard Levins의 세계
홍실이 
한 달에 한 차례 글을 올리기로 편집부와 철썩 같이 약속했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지난달을 거르게 되어 (별로 기다리진 않으셨겠지만) 독자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굳이 변명하자면, 레빈스 교수의 쿠바 체류 때문에 약속 일정이 미뤄져서...

떨어진 신뢰 회복을 위해 이번 회는 양(!)으로 승부할 생각이니,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시고 스크롤 압박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주시길 바랍니다. (^^)

레빈스의 수업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가 급진적 생태주의자이면서 (저야 잘 모르지만) 명성 높은 마르크스주의자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글들을 읽고 강의를 들으면서, 어렸을(?) 적 앵무새처럼 암기나 했던 변증법의 핵심 원리들이 저의 연구 작업과 세계 인식에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해야만 하는지를 깨닫고 새삼 놀랐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알게 된 그의 이력에도 놀랐고....

이번에 그를 만난 것은, 참세상 독자들에게 과학, 사회, 변혁 운동에 대한 ‘고수’의 이야기를 전해주고픈 마음과 더불어, 저의 연구 주제와 자기정체성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다는 개인적인 동기가 함께 작용한 것입니다. 이전 글들에 비추어 볼 때 매우(!) 길고 다소(?) 딱딱하지만 포기하지 말고 즐겨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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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열한 번째 테제로 살아가기(1)

레빈스는 미국 뉴욕 출신으로, 여성 실업자 평의회와 1930년대 뉴욕의 의류노동자 파업을 이끌었던 공산주의자 할머니, 1919년 청년 공산주의자 연맹의 창립회원이었던 아버지를 둔 3대째 공산주의자 집안에서 자라났다. 그의 아버지는 사회주의 노동자라면 우주론, 진화, 역사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믿었으며 어린 레빈스가 글을 깨우치기 전부터 마르크스주의 과학자들의 저작을 읽어 주고는 했다.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할머니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것을 배우되, 그것을 모두 믿어서는 안 된다고 타일렀으니, 1930년대 독일에서 비롯된 인종주의적 우생학과 이윤 착취에 복무하는 기존 학문의 위험성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레빈스는 노동절이면 학교를 빼먹고 존 리드 클럽이나 여성 평의회 등이 주관하는 행진에 참여했으며, 과학자이자 운동가가 되는 것을 인생의 당연한 행로로 생각하게 되었다.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한 레빈스는 1950년대 한국 전쟁과 매카시 열풍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던 시절, 푸에르토 리코 출신인 아내와 함께 1951년 푸에르토 리코로 이주했다. 그 곳에서 그는 공산당 활동과 함께 농민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FBI의 입김 때문에 대학에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선택한 삶의 방편이기도 했다. 중간에 4년 동안 뉴욕에서 대학원 학업을 계속한 뒤 푸에르토 리코에 돌아갔을 때에는 정치적 억압이 다소 완화되어 있었고 그는 ‘푸에르토 리코 대학’에서 생태학 교수 자리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정치 활동 - 특히 1965년부터 본격화된 베트남 반전 운동 - 은 계속되었고 1966년 종신 교수직 심사를 앞두고 FBI 끄나풀이 주도한 언론 공작에 의해 ‘무능함’을 이유로 재임용에 탈락하기에 이른다.

1967년 미국으로 돌아와 이후 시카고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직을 갖게 되었다. 한편 쿠바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64년, 혁명 현장을 돌아보고 집단 유전학 개발에 자문을 하기 위해 쿠바를 방문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생태 농업과 생태적 경제 개발을 향한 쿠바의 투쟁과 노력에 깊이 관여해왔고 오늘날에도 이는 지속되고 있다.

학문적으로, 그는 변증법에 토대를 둔 진화생물학자로서 근대 서구 과학의 생물학적 환원주의를 배격했을 뿐 아니라 합 목적론 혹은 기능주의적 진화론, ‘자연의 조화’라는 이상주의적이고 목가주의적인 생태 운동을 비판해왔다. 평생의 학문적-정치적 동지인 르원틴과 함께 『변증법적 생물학자(Dialectical Biologist)』(2)를 저술했으며, 절친한 동료였던 스티븐 굴드의 세계를 조망한 먼쓸리 리뷰(Monthly Review)의 ‘급진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도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스스로의 평가에 따르면, 푸에르토 리코 독립 운동 참여를 통해 반제국주의자, 국제주의자로서의 자각을 얻을 수 있었고 이는 제국의 이해에 복무하는 학계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부인의 날카로운 노동계급 페미니즘은 엘리트주의와 성차별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었으며, 쿠바와의 지속적인 작업을 통해 경쟁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착취적인 사회에 또 다른 대안이 있음을 생생하게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연구실이 조만간 보수공사에 들어간다고, 배경이 영.. ㅜ.ㅜ 마스터 제다이의 풍모가 느껴지지 않는가? (요다 말고, 오비완 커노비)

1. 과학과 사회


★ 제가 미국에 와서 진짜 충격 받았던 게, ‘진화론 대 지적 설계론’ 논쟁(3)이었어요.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 지적 설계론 가르친다는 나라는 지구상에 미국 하나밖에 없지 않을까요? 나중에 보니까, 미국인의 절반이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고 하던데, 이게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일이예요? 21세기에 이게 뭔 일이래요? (녹취한 걸 들어보니 막 따지고 있음 ㅡ.ㅡ)

☆ 이렇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미국사회의 뿌리 깊은 반(反) 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를 들 수 있다. 미국에 처음으로 정착이 시작되었을 때, 이주자들은 대개 교육받지 못한 이들이었고 상식과 근면한 노동만 있으면 충분한 살아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자본이 축적되고 은행이 생겨나고 수탈이 본격화되면서, 이들 압제자들 - 교육 받은 동부 해안의 자본가와 은행가들, 그리고 지식인들 - 에 대한 분노와 반감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강력한 경향으로 자리 잡았다.

두 번째로는 현재 미국의 우파들이 두 가지의 다른 커뮤니티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선 부유한 기업가 집단 - 이들은 진화론이나 낙태 문제나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윤만 낼 수 있으면 된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이들은 정치적 기반 확대를 위해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힘을 키워왔었다. 당혹스럽게도, 지금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것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

★ 관련된 이야기인데, 현재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지형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참 난감해요. 우선 미국의 근본주의자들은 극렬 반대하잖아요. 여태까지 프로테스탄트 원칙이 자본의 이해와 완벽하게 조화를 이뤄왔던 걸 본다면 참으로 기이한 일이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것이 마치 인류를 질병에서 구원할 것 같은 엄청난 기대에다 이윤 창출의 노다지라는 생각 때문에 기업과 국가가 연구 개발에 왕창 몰려들고... 여기다 한국에서는 ‘국가 경제 발전’이라는 민족주의적 열기까지 더해져... 어이없게 들리겠지만, 줄기세포 연구의 윤리문제를 비판하면 친미적 배신행위로 비난 받기도 했다니까요. 이런,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현상들을 어떻게 종합하고, 좌파 고유의 비판적 관점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 이건 좀더 큰 문제, 과학의 근본에 관한 질문이다. 과학은 보편적이면서도 일국적이다. 어떤 측면에서 전체 인류를 위한 지식을 심화시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관계를 가진 지식 산업의 산물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학 자체가 상품화되면서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과학을 하는 상황이 출현했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가난하게 산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다른 상품들을 취급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과학을 다루고 있다. 상품은 일단 생산되고 나면 빨리 시장으로 이동해야 하고, 똑같은 이유로 과학에서도 이윤과 관련된 특허권을 빨리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결과를 날조하거나 과장하게 된다. 매년 출시되는 의약품의 1/3에서 절반이 유해효과 때문에 5년 내에 시장에서 퇴출되고 있는 현상은 이와 관련 있다. 5년 후에 퇴출된다고 해도 그 동안 이윤을 챙길 수 있다면, 그것이 중요하지 않겠나? 그래서 과학에서의 부패는 제도화되어가고 있다.

또한, 과학자 자체가 프롤레타리아화되어 가고 있다. 기업들이 과학자를 학술 ‘인력’으로 고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18세기 영국의 직조공들이 경험했던 소외를 과학자들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들은 이 사실을 안타깝게 여기거나 자신을 노동자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노동조합을 건설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이제 과학은 상품이 되었기 때문에 그 초점은 소유주의 관심에 따를 수밖에 없다. 모든 지식이 다 상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화학 살충제는 매년 농민들에게 팔 수 있지만, 함께 심음으로써 토마토를 해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작물은 매년 팔 수 있는 게 아니다. 책에 한 번 쓰면 끝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매우 불균등한 과학 발전이 일어난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줄기세포 연구는 과거에 휴먼게놈 프로젝트처럼 모든 질병에 대한 치료를 가능하게 만드는 보증수표처럼 인식되고 있다. 급진주의자들은 이러한 모든 인기 영합주의를 거부해야 하며, 또한 과학을 과학 외부로부터 조종하려는 어떤 것도 거부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나는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허용을 지지하지만, 그게 모든 질병을 치료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과학 연구의 자유를 위해서이다.

우리는 언제나 두 개의 전선에서 싸워야 한다. 모든 것을 자료로 바꾸려고 하는 과학주의 (이를테면 비용-효과 분석), 그리고 또한 과학의 신비화에 대항해서 말이다. 현재 부시 정부는 이중 관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그들은 과학적 근거 - 그들의 정치적 관점을 합리화시켜줄 과학적 근거 (이를테면 기후변화 문제가 결코 심각한 게 아니라는)를 요구하고, 한편으로는 신비화를 진행하고 있는데, 바로 여기에서 지적 설계론 같은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이 대두하고 있는 거다. 이는 우리의 싸움이 매우 복잡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과학을 방어하고 과학을 비판해야 한다. 또한 지식 산업의 상품화된 산물을 비판해야 하고, 과학의 의제를 변화시키려는 투쟁을 해야 한다.

★ 한국에서 최근에 있었던 스캔들은 알고 계시죠? 일단 진실이 밝혀지고 나니까 그야말로 무수한 학자들과 사회비평가들, 언론 매체들이 너나없이 우려를 표명하고 나름의 처방을 내놓고 있어요. 대부분 동의하는 것은, 과학적 진실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 이를테면 과학진실성 위원회(ORI)나 기관윤리심의 위원회(IRB)를 설치하고 강화하는 방법이죠. 한편 연구자들은 그동안 ‘진실 추구자’로서의 존엄성과 자존심을 손상 받은 데 대해서 크게 낙심한 거 같아요. 그래서 과학자의 양심과 자율성 회복을 강력히 호소하고 있지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이런 논의에 중요한 문제가 빠진 게 아닌가 싶어요. 우선, 전문가 위원회 말고, 과학 생산 과정에 대한 대중이나 과학기술 노동자의 ‘사회 민주적 통제’에 대한 고려가 없어요. 또, 세분화와 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되고 있는 학술 노동의 소외와 분절화를 어떻게 다룰 건지도 이야기가 전혀 없구요. 사실 이거야 말로 과학사기를 가능하게 하는 좋은 토양 아닌가요?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체계에 의해 조건 지워진 연구자들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학이 정치나 이데올로기, 사심어린 이해의 ‘나쁜’ 영향으로부터 떨어져 홀로 설 수 있다는, 이건 그저 신화 아닌가요? 이런 문제에 대처하는 좌파적 대안은 어떤 게 되어야 할까요?

☆ 우선, 대학 연구로부터 이윤을 획득하는 구조부터 없애야 한다. 과학자들이 연구비를 받지 않고도, 특허를 획득하지 않고도,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상품과는 무관한 장기적인 지적 문제들을 풀어나갈 수 있는 학문적 자유의 기반이다. 기업이나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자율성을 유지해나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를테면 정년 보장 교수라고 해도 대학원생들을 지원해야 하는 문제가 남고, 또 학생들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첨단유행의 연구를 수행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자신이 자율성을 갖고 있다고 믿지만, 어떤 분야가 유망할지는 다른 이들이 이미 결정해 놓은 것들이다.

☆ 또한, 과학 내부에서, 환원주의를 극복하는 의제들을 스스로 요구해야 한다. 환원주의적 접근은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DDT로 말라리아를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몇 년에 불과했다. 모기들이 금방 저항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항생제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전염병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세균이 그에 반응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틀렸는지, 왜 실수를 저질렀는지 살펴보면, 환원주의적 틀에 따라 문제를 너무 협소하게 제시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의사들은 수의학자나 농학자와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염병의 재창궐은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는 식물, 야생 동물, 가축에게 모두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다.

지적 협소화는 과학의 상품화가 가져온 결과 중 하나다. 학생들은 공부를 하기 위해 많은 등록금을 내야하고, 이걸 빨리 보상할 수 있고 일자리를 구하기 쉬운 학문 분야를 공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중 운동이 학술 연구의 의제를 상당히 변화시키기도 했다. 이를테면, 지역사회 여성들이 자녀들이 비슷한 병을 앓는 것을 보고 연구자들에게 조사를 요구하기도 했고, 소수인종 그룹이 자신의 동네에 버려지는 유해 폐기물들과 질병 발생의 관련성에 대해 연구를 요구하기도 했다. 환경 운동과 건강권 운동은 기존의 학문들이 정립해놓은 경계를 넘어서는 연구들을 요구했으며 때로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특히 정치정당과 밀착해 있을 경우에는...

☆ 우리는 좌파 정당들이 협소한 현실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지적 독립성을 발전시키는 방식에서 진정 민중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과학 발전의 의제를 그들의 프로그램에 포함시키도록 요구해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앞서의 답변 - 과학은 보편적이면서도 일국적이라는 명제로 돌아가게 된다. 모든 관점과 위치는 그가 속해 있는 사회로부터 비롯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모든 위치는 자체의 통찰력과 무지의 요소가 있기 마련이며, 우리는 우리의 과학이 어떤 측면에서 통찰력이 있고 어떤 점에서 무지한지 자문해야 한다. 농민들과 함께 일해 보면 주변 환경과 경험에 대해 그들이 매우 상세한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비교에 근거한 지식, 눈으로 보이지 않는 미세한 것들에 대한 지식이다.

내가 쿠바에서 배운 것을 예로 들어보자. 그 곳에는 농민들 왈, 나무들이 바람 쪽을 향해서 자란다는 계곡이 있다. 그런데 식물생리학에서는 바람이 잎을 마르게 하기 때문에 그 반대편으로 더 잘 자란다고 나온다. 실제로 그 계곡에 가보면 정말로 나무가 바람 부는 쪽을 향해 자라고 있다. 태양광이 비치는 곳과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같은 방향인데, 태양의 효과가 바람의 효과보다 크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자, 보자. 현지 주민은 보다 정확하고 상세한 관찰을 했지만, 일반화에는 약하다. 하지만 우리처럼 외부에서 추상적 과학을 통해 접근하는 사람들은 특정한 구체적 사실에는 어둡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호 이해를 위해 함께 작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일반성과 특수성의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과학은 일반화를 할 수 없다. 또한 다른 사회적 목표는 다른 종류의 요구를 낳고 연구 의제의 우선순위가 달라진다.

석유가 나지 않는 나라는 대안적인 에너지 생산에 보다 관심이 많을 것이고, 미국처럼 땅이 넓은 나라는 광범위한 농업생산에 대한 전략을 가지려고 할 것이다. 한국처럼 산이 많은 지형의 농업 문제는 한국 농업학자들에게 중요하지, 북미 학자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보편적인 지평을 포기하지 않고도 사회 고유의 맥락과 과학적 전통을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 중 하나는, 대부분의 학술 출판이 몇몇 중심 저널이 주도하는 영어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학자들은 경력을 만들기 위해, Lancet 같은 저널에 출판하기 위해 실제 요구와는 다르게 행동해야 한다. 그래서 쿠바에서 논의한 것 중 하나가 라틴 아메리카의 고유한 독립적인 학술 저널을 출판하는 것이었다.

또한 좌파 정당들은 우리의 개발이 경제적인 발전과 함께 지속가능한 것이어야 함을 주장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형태의 개발이,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우호적이면서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질병들이 노동현장과 관계있다. 특정한 화학물질이 암을 발생시킬 수도 있지만, 노동의 조직화 방식 자체가 질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노동자가 책임만 무겁고 자율성이 부족한 상황은 불안과 심장병을 일으킬 수 있고, 무관심, 우울, 자살률과도 관계있다. 한국에는 아주 놀라운 경제적 성과를 보여준 기업들이 많이 있다. 개발의 목적이 사람들에게 복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좌파 정당이라면 어떠한 것이 진정으로 사람들의 필요를 만족시키고 건강을 증진시키는 과학적 의제가 되어야 할지 정해야 한다.

그리고 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공동 노력에 의해 태어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한 번은, 캐나다에 육가공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퀘벡 대학의 연구자들을 찾아가 손에 사마귀가 많이 생긴다고 털어놓으면서 이 원인을 좀 밝혀 달라고 했다. 부탁을 받은 연구자들을 당신들을 ‘위해’ 연구할 수는 없다 - 다만 ‘함께’ 해결책을 찾아나갈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육가공 사업장에서는 장갑을 끼고 일하는데 그 장갑들은 손상을 예방하기 위해 금속섬유로 강화처리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장갑이 꼭 맞지 않으면 오히려 장갑이 손에 찰과상을 일으킬 수 있고 그로 인해 바이러스 감염이 쉬워진다. 이런 공장의 실온은 매우 낮고, 그러면 피부 표면의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못하고 면역 체계가 약화된다.

이렇게 두 가지 요인이 합쳐져 감염이 쉽게 일어나고 특히 냉동 육류를 다루는 노동자에게서 이런 문제가 빈발하고 있었다. 함께 공동의 노력을 기울였을 때에만 특정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 다시 이야기하자면, 민중 운동이, 노동 운동이 과학 의제를 정하도록 해야 하고, 과학은 그 스스로의 통찰력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 학술 운동과 대중 운동, 노동운동의 결합해야 한다는 것은 인정해요. 그런데, 존 스노우 연구소(4) 같은 경우만 해도, 처음에는 지역 주민들의 참여에서 비롯되었지만 현재로서는 별 차별성 없는 전문 컨설팅 회사로 변해 있잖아요.(5) 한국에서도 지역사회에 토대를 둔 참여연구센터 운동(6)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 어떤 종류의 보호 장치를 마련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우선, 비전문가를 의사결정기구에 포함시키는 방법을 들 수 있다.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 했을 때 문제점은 그들이 측정한 자료들의 신뢰도가 낮고 기술적 오류의 가능성도 높다는 점이다. 하지만 장점이라면 이들이 서식지(habitat)의 좀더 폭넓은 상황, 역사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이며 이는 전통적인 역학자들이 갖지 못한 것이다. 과학자와 지역사회 주민들이 실제 운영위원회에 포함되고, 노동조합들이 여기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또한, 기업과 연계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러려면 독립적인 재원조달 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그 방법 중 하나는 정부가 이러한 자율적 연구기관들을 지원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 자율 대학 지원을 위한 고정예산 편성 촉구 운동이 있었다.

예산의 일정 분율을 확보해놓으면, 정치인들이 어떤 대학이나 어떤 연구에 지원할지 결정하는데 영향을 받지 않아도 된다. 이런 것을 독립 연구소에도 적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이게 쉽지는 않다. 예산은 언제나 빠듯하고 기업의 연구비를 받으려는 유혹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대목에서는 강력한 헌신과 결의가 필요하기도 하다. 특히나 연구 결과가 특정 기업의 상품과 관계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연구 윤리에 관해서라면 개인의 결단도 중요하지만 집단적인, 조직적인 동의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독립 연구 센터들은, 주민의 불만이나 요청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기보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해야 한다. 저널리스트와 학자로서의 결합이 필요하기도 하다는 소리다.

★ 근데, 여기 미국에도 노동조합 형태의 학술 연구자 조직이 있나요? 한국에는 과학기술 노조가 있는데... (사실, 영문 이름이 기억 안나 대충 얼버무림 ㅡ.ㅡ).

☆ 노동조합은 아니지만 핵무기 확산에 반대하여 세워진 의사들의 조직 Physicians for Social Responsibility, MIT 출신 연구자들이 닉슨정부의 군사 프로그램에 저항하면서 설립한 Union of Concerned Scientists, 대학의 군사연구 지원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던 ‘Science for the People’ 등을 들 수가 있다. 과학 산물의 이용과 관련하여 과학자와 노동자들의 계급 이해를 통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는 ‘누가 과학자가 되느냐’도 중요한 문제다. 쿠바가 강력한 과학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시민 전체가 인재 모집의 원천이 되었다는 점이다. 무상 교육에, 인종 간, 성별 간 차별을 극복하면서 누구나 과학자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 사회의 구성이 바뀌어, 흑인이, 여성이 지도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게 되었다.

내가 속한 (쿠바) 기관과 연구소들만 해도 여성이 대표로 있거나 비중이 절반이 훨씬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과학자는 일부 기득권 계층 출신인 경우가 많으며, 이 경우 자신의 출신 배경에 따른 정치적 태도를 가지기 마련이다. 형제 중 한 명은 의사요, 하나는 농장 소유주, 또 다른 형제는 상원의원...

★ 맞아요. 한국에서 지금 바로 그런 문제가 벌어지고 있지요. 대학 등록금은 자꾸만 비싸지고, 교육이 계급을 영속화시키는...

2부 : 쿠바 이야기


★ 요즘에도 매년 겨울마다 쿠바에 가시잖아요?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신지 좀 소개해주세요.

☆ 여러 가지 다른 일들을 하고 있다. 생태 농업으로의 이행을 성공시키기 위한 작업을 농림부와 함께 진행 중이고, ‘생태 및 시스템 연구소’에서 생물다양성 보존을 개발 전략의 일환으로 확립시키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 하바나 대학의 ‘건강과 안녕 센터’에서 보건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고, 그 밖에 ‘열대의학 연구소’, ‘복잡성과 변증법을 위한 철학 연구소’에도 관여하고 있다. 서로 동떨어져 보이지만, 이들은 서로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 모두는 사회주의적 개발 (socialist development)을 의식적으로 가능하도록 만드는 전체 전략의 부분이다.

★ 쿠바의 ‘생태적’ 개발 성공 사례는 유명한데... 사실, ‘환경’이니 ‘지속 가능성’이니 하는 것들은 선진국들한테나 해당하지 당장 먹고 사는데 급급한 개발 도상국가들한테는 요원한 이야기로 들리잖아요. 쿠바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또, 가장 어려운 문제는 어떤 게 있었나요?

☆ 쿠바 혁명이 일어나고 나서, 계급 갈등이 아니라 비전의 차이 때문에 투쟁이 벌어졌다. 어떤 식의 발전을 할 것인가? 쿠바에서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성공을 거두려면, 완수 가능한 임무가 주어져야 한다. 성취 불가능한 요구는 당혹과 절망감만을 낳을 뿐이다. 당시에는 지식을 축적하고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매우 급박한 문제였다. 쿠바사회의 무지와 비효율, 경직성은 굉장히 심각했다. 러시아에서 원조 물자로 타자기 리본을 대거 보내줬는데,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읽을 줄 몰라서 이걸 파자마 고무줄로 사용했다. 또 농림부 관료가 봐달라고 해서 가보니 독일로부터 들여오는 종자가 사실은 농사용이 아닌 빵 만드는 재료인 적도 있었다. 우리가 회의석상에서 DDT의 건강 유해성을 문제 삼으니까 한 사람이 일어나서 소련에서도 만드는데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이런 예는 무수히 많다. 진정한 변화가 필요했다.

정치의식이 일정 지점에 이르렀을 때 이를 실행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지적 자원이 필요하다. 필요가 발명을 낳는다는 말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필요는 절박감을 낳고 이는 때로 지름길을 쫓다가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진실을 말하자면, ‘필요’와 ‘훌륭한 생각’이 만났을 때만이 긍정적인 변화를 낳을 수 있다. 소련과 유럽의 사회주의 정권이 망하기 전에 이미 우리는 대안적 농업개발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쿠바에서 생태혁명이 가능했었던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소련의 패망 때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필요’보다, 그동안 내부에서 발전 전략을 두고 투쟁하며 준비해왔었기 때문이다.

★ 많은 사람들이 쿠바의 보건의료 시스템의 성과에 놀라워하죠. 더구나 최근에 베네수엘라의 보건 프로젝트인 ‘바리오 아덴뜨로’ 사업을 지원함으로써 또 다른 찬사를 얻고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미국 웹 사이트를 찾아보니까, 쿠바 보건의료 체계의 ‘진실’을 폭로한다는 것들이 꽤 있더라구요. 질 높은 의료 서비스는 다 외화벌이를 위한 거라서 외국인 환자들만 이용하고 일반 시민들은 이용할 수 없다더라. 공공 보건의료 기관들은 기본 의약품도 없고, 진짜 끔찍한 수준이라더라 등등... 전형적인 미국의 악선전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본다면 우리(?)도 너무 긍정적인 부분만 바라보고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쿠바 보건의료의 실체, 성공과 실패를 이야기해주세요.

☆ 어디에나 문제는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과에 대한 통계들을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보건의료 체계는 실제로 작동하고 있고 현재도 문제 개선을 통해 꾸준히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의약품 부족 같은 문제는 분명한 사실이다. 무역 봉쇄조치 때문에 심각한 물자 부족현상을 경험하고 있으며, 필요한 의약품이 1천이라면 국내에서 조달 가능한 것은 겨우 5-600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쿠바 의료 시설의 일정 부분은 의료 관광객을 위해 쓰이고 있다. 어떤 병원은 10%의 병상을 여기에 할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 10%가 병원 전체를 먹여 살리고 나머지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할 수 있는 재원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 의사들은 어떤가요? 베네수엘라 같은 경우 의사들이 바리오 아덴뜨로 사업에 반대하고 참여도 안 하잖아요.

☆ 상황이 다르다. 혁명 당시 30%의 의사들이 쿠바를 떠났다. 남아 있는 의사들은 사회에 대한 헌신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더구나 새로운 교육을 받은 새로운 의사 세대가 성장하고 있지 않나. 많은 의사들이 돈을 버는 것 보다 사회적 책임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물론 쿠바에도 다른 사회와 마찬가지로 의사들이 대부분 수도 하바나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교육과 수련 과정에서 오지나 빈곤 지역에서의 활동을 경험하고 있다. 의학 교육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세계 역사에 대한 광범위한 이해, 자연, 문학을 포괄하는 기본 교육과 함께 의학 윤리 교육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 한국 같은 경우 의사들이 대개 부유한 집안 출신이라... ㅡ.ㅡ

☆ 쿠바도 옛날에는 그랬다. 지금은 아니지만.... 베네수엘라의 경우에도 지금 쿠바와 New Medical School에서 새로운 의학교육이 진행되고 있으니 10년 안에 수천 명의 젊은 의사들이 배출되고 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의 구세대 의사들은 결단을 내려야할 것이다. 미국의 마이애미 부촌으로 옮겨가서 개원을 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의 변화를 인정하고 자국에 남아 있을 것인가.

3. 삶과 운동


★ 개인적인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미국에서, 그리고 이 하버드에서, 마르크스주의자로 산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이었나요? 어떻게 ‘생존’해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 내 평생, 한 번도 학계에서 흔히 말하는 ‘성공적인 이력’을 열망해본 적이 없었다. 나의 정체성을 학계의 공식적인 보상과 인정 체계에서 찾으려 하지 않았고, 교수 사회의 상식을 공유하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이것은 나에게 폭넓은 선택의 자유를 주었다. 1974년 국립학술원 (National Academy of Science) 회원으로 선출되었을 때 (베트남 전에 대한 학계의 협력을 비판하며) 이를 거부한 것도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그리 어려운 선택이 아니었다. 그저 정치적 결정이었을 뿐이다. 또한 나는 정치적으로 항상 소수자의 위치에 있었다.

이러한 것들이 가능하려면 학계 외부에 급진적 커뮤니티를 갖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물론, 대학에서도 의견을 함께 하는 좋은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버드의 S는 정치적으로 보수적이지만, 원자론적 환원주의에 함께 반대했고, D의 경우 공해의 건강 영향 문제에 관심이 많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고 철학에는 관심이 없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통합하려는 N과도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특히 T같은 경우 그녀의 지나친 민족주의적 성향만 뺀다면 과학과 정치에서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과 따뜻한 인간적 유대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 관계들이 완전한 것은 아니다.

너도 대학 사회에서 누군가와 모든 면에서 견해가 일치하거나 친밀한 관계를 가지려고 할 필요는 없다. 만일 어떤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면, 왜 그렇게 느끼는 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왜 다른 사람들이 그렇지 않게 생각하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또한 네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분명한 인식을 하고 이를 헤쳐 나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나도 학교에서 인간 생태학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위해 여러 번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보수적인 철학적 지향, 원자론적 환원주의에 대한 선호, 정치적 보수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대학의 원칙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 자체를 바꾸는데 너무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기본적으로, 하버드는 지배계급의 기구다.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지만,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는 사람들을 ‘어떻게’ 죽이는지 가르치고, 하버드는 ‘누구를’ 죽여야 할지 가르친다고 한다. 대학의 경우 교원을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한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이해득실을 따진다. 연구 성과가 좋거나 교육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면 정치적 문제를 좀 일으키더라도 문제 삼지 않지만, 그 수위가 점점 높아져 정치적 긴장이 심화되면 이를 다시 고려하기도 한다. 안정된 상황에서라면 다양성을 가진 게 학교의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50년대 매카시 광풍에도 하버드는 극소수의 교수만을 해직시켰다. 내가 하버드에 처음 왔을 때, 마침 경제학과에서는 마르크스주의자를 쫓아낸 참이었다. 아마도 대학 당국이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정치적 관점이 별 문제가 안 될 걸로 생각했던 거 같다. 당시 진화생물학 분야를 이끌었던 우리 셋 - 나, 스티븐 굴드 (Stephen J Gould), 르원틴 (Richard Lewontin) - 모두 마르크스주의자 아니었나.

★ 요즘 한국의 진보 운동은 매우 힘든 시기를 맞고 있어요. 뭐 제가 이러쿵저러쿵할 입장은 아니지만,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가야 하나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지요....

☆ 우리에게 주도권이 없는 시기, 혁명주의자들의 주된 임무는 의식을 바꾸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진 이념은 서로를 강화하면서도 모순하는, 개념의 전체적인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건 이념뿐 아니라 느낌에서도 마찬가지다. 토론을 통해, 경험을 통해, 그러한 면밀한 관찰을 통해 이에 대한 도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테면 우리가 베트남 전에서 고엽제의 위험성 문제를 제기했을 때, 미국 정부의 첫 번째 반응은 그저 부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더 이상 힘들어지자 전쟁 자체가 비극이고, 양쪽 모두의 잘못이라고 둘러대기 시작했다. 나중에 이것마저 먹혀들지 않자 우리의 과실(mistake)이라고 인정했는데, 이들이 인정한 것은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이지 전쟁 자체가 아니었다. 이 문제는 현재 이라크 전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군인들이 저지르고 있는 학대에 대해서는 이제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이 상황에 처하면 너희라고 다를 줄 아냐고 발을 빼기도 한다. 하지만 누가 적군이고 아군일지 알 수 없는 전쟁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도시 자체를 점령하고 파괴하는 것이다. 이거는 분명 잘못된 전쟁이다. 전쟁이 저지른 잘못의 경험으로부터 우리는 전쟁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을 인식하도록 의식을 전환시켜야 한다.

특히 좌파에게 마르크스주의 교육은 굉장히 중요하다. 문제는 교조적인 슬로건화를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전 세계 좌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다.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곳에 각자 다른 방식으로 끌어들여 해석하고 있다. 또한 이런 시기일수록 운동의 방식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저항이 폭력적일수록 급진적인 것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자포자기의 행동일 수도 있다. 어떤 계획을 세울 때, 과연 우리가 지지를 끌어내고자 하는 대상, 우리의 상대편, 그리고 우리 운동 내부에서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우리의 행동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인가 비판적으로 성찰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사회 전체를 조망하는 운동을 건설해야 하며, 엄격한 국제주의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이 모든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듭 강조하지만 과거에 걸어온 길에 대해 스스로 비판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과오를 이해할 때만이 이를 피할 수 있다. 운동이 열망하는 바와 실제로 하고 있는 것 사이에는 항상 간극이 있어왔다. 기독교인들도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 왜 사람들이 일요일에 교회에서 듣는 이야기를 주중에 실천하지 않을까? 우리 급진주의자들은 여기에 더 나은 답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변증법적 유물론자로서 과거로부터의 유산 - 우리 자신을 포함한 - 을 가지고 미래를 건설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가 건설하려고 하는 사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사회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며, 우리 삶을 이에 따라 미리 형상화하려고 하지만 완벽할 수는 없다. 내가 처음으로 공산당 활동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공산당 활동을 하는 건 좋은데 ‘공산당’과 ‘공산주의 사회’를 절대 혼동하지 마라. 만일 당이 공산주의적 삶을 보장해준다면, 굳이 혁명이 필요 없을 거다. 이미 자본주의 안에서 그렇게 살 수 있다는 소리 아니겠냐!”

또 다른 중요한 원칙은 민중에 대한 정직성을 그 어느 순간에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혁명 운동의 장기적 목적은 결국 민중의 역량을 강화하고 그들 스스로의 미래를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단기적인 정치적 이득을 위해 대중 조작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노조 총회에서 정치적 분파들끼리 특정 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얼마나 싸우나. 하지만 많은 경우, 평 조합원들한테는 그런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도 하고, 지도부와 평 조합원 사이의 간극, 냉소주의를 조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민주주의는 현재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전체 노동계급이 스스로 통치하는 민주주의 사회를 꿈꾸지 않는가? 그것은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은 바보가 되는 사람들, 그리고 그렇게 만드는 사람들 모두에게 해롭다.

쿠바의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전국 의회에서 무언가를 의결한다고 할 때, 이는 이미 지역 공동체와 조직에서 수많은 논의를 거친 것들이다. 그래서 최종 결정 단계에서는 그리 큰 논란이 벌어지지 않는다. 한 번은 생태학자들 모임에서 내가 ‘외계인이 우주선을 타고 와서 내려다본다면, 여기가 사회주의 국가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했더니만 답변이 ‘모든 사람이 다 회의에 가 있는 거 보고 알지’였다. 모든 운동은, 그것이 얼마나 강력하고 성공적이든 상승과 하강 국면이 있기 마련이다. 상승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강기에 얼마나 더욱 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준비하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운동의 힘이 약한 시기에 일어나는 가장 큰 논쟁 중의 하나는 제휴 (coalition) 문제다. 누구와 손을 잡을 것이냐... 만일 우리가 어떤 제휴에 대해 완벽하게 만족한다면, 그건 그 제휴가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휴 내에는 반드시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공통의 기반을 찾고, 견해가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서 상호작용하고 서로 배워야 한다.

내가 비록 무신론자이기는 하지만, 평화운동의 상당부분이 종교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유물론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전통적으로 영국의 정치경제학, 프랑스의 사회주의, 독일의 철학을 마르크스주의의 세 가지 원천이라고 이야기했다면, 오늘날의 혁명 운동은 생태운동, 민족해방운동, 페미니즘에서 그 자양분을 얻고 있다. 운동은 이러한 생각들에 개방되어 있어야 하며 서로 제휴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는, 운동에서 변증법적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 네.... 오랜 시간 동안 좋은 말씀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나중에 시간이 되면 쿠바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자세하게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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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글 읽느라 지친 독자들을 위한 보너스

레빈스의 진짜 매력은 평생에 걸친 이런 이론적, 실천적 단호함과 어려움 속에서도 풍자와 웃음을 잃지 않았다는 점! 이사도르 나비 (Isadore Nabi)라는 가공의 과학자를 만들어내서 그럴 듯하지만 황당하기 그지없는 궤변을 늘어놓아 학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풍자 넘치는 편지글과 광고로 사람들에게 지적 즐거움을 주고 있다. 그 중 하나, 이사도르 나비 인력회사의 모집 공고를 일부 소개한다.

“우리 회사의 과거 성공 사례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나자렛 출신의 10대 미혼모를 탁월한 신앙 드라마의 주연으로 만든 것. O. bin L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비정부 기구의 대표로 채용한 것. 텍사스 기름 장수의 그저 그런,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맹한 아들을 위해 일류 일자리를 찾아준 것. 우리 회사는 현재 역사상 가장 도전적인 과제에 직면해 있는데, 바로 UniverseTM의 새로운 지적 설계자를 찾는 것이다...”

이사도르 나비 인력 회사의 모집 공고



(1) 2005년 7월, 캐나다에서 열린 ‘생물학의 역사, 철학, 사회학 국제 학회’에서 발표한 글의 제목 - 마르크스의 “포이에르바흐에 대한 테제” 11번째를 지칭한다(‘철학자들이 세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해왔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2) 먼쓸리 리뷰 서평 참조:http://www.monthlyreview.org/0505clarkyork.htm

(3) 진화론은 그저 하나의 이론(theory)일 뿐이기 때문에 대안 이론(alternative theory)도 가르쳐야 한다면서, 일부 지역의 교육위원회에서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을 생물시간에 가르치도록 하여, 재판 붙고 난리 났던 사건 (현재 진행형!). 지적 설계론의 옹호자들은 진화 자체는 인정한다면서, 다만 생명체라는 것이 너무나 오묘해서 우연히 발생하는 진화의 결과라기보다 무언가 고도의 우월한 존재가 설계한 진화의 경로를 따라온 것이라고 주장. ‘창조론’이라는 이름을 버림으로써, 종교가 아닌 과학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과학자들 - 특히 진화생물학자들은 완전 어처구니없다는 반응.

(4) 존 스노우(John Snow)는 19세기 런던 콜레라 대유행 당시, 역학 조사를 통해 오염된 상수 공급이 콜레라 발생의 원인이라는 걸 밝혀낸 역학계의 전설적(!) 인물. 1970년대, 매사추세츠 워번 지역 주민들은 어린이의 백혈병 발생률이 유난히 높다는 걸 자각하고 그 원인을 규명해달라고 국립보건원과 질병통제센터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하버드 연구자들과 공동으로 자체 역학조사를 수행, 기업의 폐기물에 의한 식수원 오염이 원인이라는 것을 밝혀내었다. 소송을 통해 피해보상과 함께 관련 법규를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이 활동에 참여했던 연구자들과 주민들은 전설적인 존 스노우의 이름을 딴 연구소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연구소 홈페이지: http://www.jsi.com/JSIInternet/ )

(5) (부시 행정부의 아프리카 의료 인프라 지원 사업에는 Lockheed Martin, Northrup 같은 군수회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데, 존 스노우 연구소가 Northrup과 손을 잡았다는 뉴스가 보도된 바 있음)

(6)시민참여연구센터 (홈페이지 :http://www.sciencesho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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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를 보니 무영님이 방명록에 질문을 남긴 게 2월 2일인데, 거의 한 달이 다되어서 몇 줄 안되는

답변을 올리게 되어,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네요.

사실은 며칠전에 올리려고 했는데, [입장들] 불어본을 찾을 수가 없어서 그만 더 늦어지고 말았답니다.

집안 구석구석을 다 뒤져도 없더니, 역시 도둑 맞은 편지처럼, 책은 가까운 곳에 있더군요. ㅜ_ㅜ

(ㅎㅎㅎ 이게 변명이 되나요?)

어쨌든 조금이나마 궁금증이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질문하신 걸 보니까 상당히 꼼꼼하게 읽으신

것 같습니다. 그 대목을 읽다보면 누구나 한번쯤 궁금하게 생각할 내용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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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님의 질문


책을 읽다 궁금한 대목이 있어 여쭙습니다. 선생님이 번역하신 책은 아닙니다. 데리다의 『입장들』이라는 국역본 대담집 중 「함의」 부분 입니다.


1) 앙리 롱스가 차이(差移) 개념에 대해 데리다에게 묻는 대목인데요. 데리다는 차이(差移)가 경제 자체라고 말한 후, "우리의 언어를 특징짓는 개념들의 이항 대립 …… 의 요소"(32)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대립들이 알려지는 동일자(이는 동일한 것과 구분됩니다)의 요소"(같은 쪽)라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차이(差移) 개념이 왜 '동일자'의 요소인지, 그리고 이것이 어떻게 '동일한 것'과 구분되는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2) 데리다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차이가 차이(差移)를 유한하게 결정짓는 것이라 보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존재사유의 차이(差移) 은폐는 "예를 들어 수많은 '음성적' 비유들에 대한 의미심장한 우위나 늘 '진리의 실행'으로서의 예술로 연결되는 예술에 대한 성찰 속에서 인지"(34)된다는 것이 데리다의 생각입니다. 요컨대 하이데거는 진리의 실행이 예술 속에서 일어난다고 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로고스나 음성과의 …… 연계"(같은 쪽)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데리다는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이데거에 의하면 모든 예술들은 '예술의 본질'인 시의 공간이나 '언어'와 '말'의 공간 속에 펼쳐진다는 사실은 이렇게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는 "건축과 조각은 말하기와 명명하기의 통로 속에서만 일어나며 그에 의해 지배되며 인도된다"고 말합니다. 낭독법(혹은 발성법)과 노래에 매우 고전적으로 부여된 탁월한 가치나 문학에 대한 경멸은 이런 식으로 설명됩니다. 하이데거는 "낭독법을 문학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같은 쪽)


저는 이 말들이 재구성이 잘 안 되는데요. 우선 1) 하이데거는 모든 예술들이 '말(=음성)'의 공간 속에서 펼쳐진다고 보았다. 2) 이것은 시라는 문학예술 이외에 건축/조각예술의 경우―어쩌면 예술 일반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이렇게 요약하면, 그 다음에 나오는 "문학에 대한 경멸"은 오히려 엉뚱하게 들리거든요. 그럼 시와 문학은 서로 다른 범주인 것인지, 아니면 문학에'만' 적용되었던 낭독법이라는 가치는 다른 예술들에까지 펼쳐놓아야 하기에 경멸스럽다는 건지, 하이데거의 존재사유가 문학에 대한 철학의 일반적인 경멸을 오히려 정당화해준다는 건지, 어쨌든 이해가 안 됩니다 T.T


3) 그래서 자연스럽게 다음의 논의도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어요. 앙리 롱스는 데리다의 해체론적 작업이 문학과 맺는 친화적인 관계를 언급합니다. 여기서 데리다는 "'문학적' 실천"(35)이라는 말에서 '문학적'이라는 부분에 인용부호를 붙이며, "왜 문학적이란 말에 인용부호를 붙여 사용하는지 그리고 어떤 애매모호함을 여기서 제거해야 하는가를 이해"(같은 쪽)하라고 설득합니다. 그렇다면 데리다가 말하는 '문학적' 실천이란, 어떤 특이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즉 그가 말하는 것처럼 "이러한 새로운 실천은 문학예술의 역사를 형이상학의 역사에 연결시켰던 것과의 어떤 단절을 가정"(같은 쪽)합니다. 여기서 "문학예술의 역사를 형이상학의 역사에 연결시켰던 것"은, 문맥으로 볼 때 대표적으로 하이데거적 예술관을 가리키는 것 같은데요. 이러한 예술론의 음성중심주의적 성격에 반대하는 '문학적' 실천이 가지는 함의란, 차이(差移)로서의 기록을 부각시키는 예술론을 지지한다는 말인가요? 저는 이렇게 단순화시켜서만 말할 수밖에 없네요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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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에 관한 답변


역자가 “동일성”과 “동일한 것”이라고 번역한 원어는 각각 “du même”와 “l'identique”입니다. 그런데 이 두 단어는 하이데거가 쓰는 두 개념에 상응하는 불어 단어들이죠. 하이데거는 “Selbigkeit"와 "Gleichheit 또는 Identität”를 구별하지요. 전자가 차이를 포함하고 있는 동일성이라면(하이데거는 “나누어 놓으면서 묶음Zusammenhalten im Auseinanderhalten” 이라는 식으로 뜻을 풀이합니다), 이 후자는 차이와 대립하는 동일성을 가리키죠. 따라서 데리다는 하이데거 식의 구분을 받아들이면서 이야기를 한다고 봐야겠죠.

 

다만 différance는 “동일성의 요소이기도 하다”고 말할 때 데리다는 “공통된 근원으로서”라고 한정을 하고 있죠. 이것은 différance가 이것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실 데리다는 그 이전에 이미 différance는 첫째로 “유예, 위임, 연기, 이송, 우회, 지연, 유보 등에 의하여 지연시키는 데 있는 움직임”이라고 규정하고 있지요.


(2)에 관한 답변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하기가 어렵지만, 맥락은 이런 것 같습니다. 번역본에서 “낭독법”이라고 되어 있는 것은 불어로는 “diction”, 독어로는 “Dichitung”의 번역입니다. “Dichitung”은 원래 “시(詩)” 또는 “시작(詩作)”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이데거는 후기 사상에서 (특히 횔덜린의 시를 숙고하면서) 근원적인 사유를 “Dichtung”, 곧 “시작”과 동일시하지요. 시인들만이 주관과 객관의 구별에, 학문의 논리적 규범에 사로잡히지 않고서, 세계 또는 존재의 근원적인 시원을 사유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따라서 불어로 번역한다면 “poésie”가 됩니다.

 

그런데 데리다는 “Dichitung”은 어원상 “diction”, 곧 “구술하다/말로 불러서 받아 적게 하기”와 연결되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사실 하이데거 자신이 “Dichtung”과 “Diktat”를 결합해서 사용합니다. 시는 시인이 혼자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목소리를 경청함으로써 씌어진다는 것이죠). 다시 말해 시작에 대한 하이데거의 특권화는 음성에 대한 특권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반면 “문학”, 곧 “littérature” 또는 독어로는 “Literatur”는 어원상 “littera”, 곧 “문자”, “글자”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따라서 데리다는 “시”와 “문학” 또는 “Dichtung”과 “Literatur”를 분리하고 전자를 후자보다 우월한 것으로 생각하는 하이데거의 관점에는 음성 중심주의, 로고스 중심주의적인 시각이 담겨 있다고 보는 셈이죠.


(3)에 관한 답변


세 번째 질문은 두 번째 질문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조금 다른 내용과 관련된 것이죠. 데리다는 “문학적”이라는 말에 따옴표를 쓰고 있고, 그 이유를 "이러한 새로운 실천은 문학예술의 역사를 형이상학의 역사에 연결시켰던 것과의 어떤 단절을 가정"한다고 들고 있습니다. 여기서 문학예술의 역사와 형이상학의 역사의 연결, 양자의 연루는 반드시 하이데거와 관련되는 것은 아니고, 그보다 좀더 넓은 맥락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겁니다. 문제는 우선 문학적인 것을 이른바 “belles lettres”로 이해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문학적인 것”을 시와 수사학, 미학 또는 비평이론 같이 순수한 또는 고급한 예술에 속하는 것으로 한정하는 태도를 경계하려는 것이죠. 이러한 태도는 “belles lettres”야말로 좀더 고귀하고 본질적인 어떤 내용을 표현하거나 재현하고, 따라서 진리에 좀더 근접해 있다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죠. 또는 시가 소설보다 아니면 소설이 시보다 좀더 본질적인 문학적 형태, 문학적 장르를 이룬다는 태도도 마찬가지겠죠.

 

  데리다가 (당대의 텔켈 그룹을 포함하여) 말라르메나 바타이유, 아르토 같은 전위 문학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그들이 이러한 종류의 구분법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가령 황지우(나 오규원) 같은 시인들이 80년대 초에 “시”가 아니라 “시적인 것”에서 출발하자고 하면서, 이것과 비슷한 제안을 한 적이 있죠. 그리고 구체적으로 신문의 “사람을 찾습니다”에 난 문안을 그대로 시로 옮겨적거나 글자의 크기를 달리 하거나 연의 배열을 파괴하는 등의 실험을 했던 적이 있죠. 이런 것들은 문학의 장르에 속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전통적인 의미의 문학적인 규범과 규칙 속에 포함시키기 힘든 것들인데, 데리다는 여기에서 형이상학의 울타리에 포섭되지 않는 문학적 실천의 가능성을 보고 있는 것이죠.

 

* 좋은 질문에 비하면 좀 부족한 답변인데, 혹시 추가 질문이 있으면 더 말씀해주세요.

이번에는 빨리 답변을 드릴게요.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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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lesas 2006-02-28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넘 감사드립니다. 불어와 독어까지 덧붙여주시니까 확 들어오네요! ^-^
다음에 또 질문 거리 생기면 또 올릴께요. 너무 감사드려요~

balmas 2006-03-01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o^

cplesas 2006-03-02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의>부분을 다시 읽다 보면서 자잘하게 놓쳤던 의문이 다시 한 둘 떠오릅니다.
우선 저번 질문의 연장선에서 첫번째 답변해주신 부분인데요,

1) 차이를 포함하고 있는 동일성 그리고 차이와 대립되는 동일성이 구분되는 주장은, 왠지 하이데거의 책인 <동일성과 차이>에 담겨있을 것 같은데요. 여기에 대해서 더 힌트를 주신다면 어떤가요. 복잡하다면 제가 찾아서 책을 읽겠습니다. ^^

2) 3번의 답변에 대한 질문도 있는데, 이건 제가 생각을 조금 가다듬어 다시 여쭐께요;;

3) <함의>의 번역본 바로 첫 페이지에 나오는 구절들이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특히 대담자인 앙리 롱스가 <기록과 차이>의 각주에 있다고 하는 구절을 말하면서 이어지는 말라르메의 책(Livre)에 대한 데리다의 언급까지가요;

4) 이건 좀 찾아보고 안 여쭤보려 했는데, 크리스테바와의 대담에 또 나오는 듯 보여서, 그리고 제 무능력으로 인해 그냥 여쭙습니다. 앙리 롱스가 옐름슬레우의 '표현실질'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은, 내용은 이해되는데 정작 표현실질과 기표/기의 관계란 어떻게 다른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각주를 봐도 잘 모르겠네요;;

balmas 2006-03-03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에 대한 답변

예, 하이데거의 󰡔동일성과 차이󰡕를 보면, 두 가지 개념의 구별이 나옵니다. 그렇게 어려운 구별이 아니니까 한번 읽어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3)에 대한 답변

롱스는 “문제점을 이동시켜놓는 작업은 틀림없이 어떤 체계를 이룬다.”는 데리다의 말을 인용하면서 사실은 당시에 데리다가 출간한 세 권의 책, 곧 󰡔목소리와 현상󰡕, 󰡔기록과 차이󰡕,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죠. 이 세 권의 책은 서로 상이한 주제, 상이한 대상을 다루고 있지만, “문제점을 이동시키는 것”, 또는 좀더 불어에 가깝게 표현하면 “하나의 질문을 계속 전위(轉位)시키는 것”(ce qui reste le déplacement d'une question)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결국 하나의 체계를 이루는 게 아니냐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대해 데리다는 “그것들은 물론 어떤 체계를 이루지만 이동으로서 그리고 문제점을 이동시키는 작업으로서 이러한 체계는 자신의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불확정적인 수단을 향해 어딘가에서 열려 있는 체계입니다.”라고 답변하지요. 또는 약간 고쳐서 번역해본다면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겠죠. “그것들은 분명 어떤 체계를 이루지만, 전위로서, 그리고 하나의 질문의 전위로서 이러한 체계는 이 체계를 작동시키는 어떤 결정 불가능한 원천을 향해 어떤 부분이 열려 있는 체계입니다(un certain système ouvert quelque part à quelque ressource indécidable qui lui donne son jeu).”


곧 데리다의 답변의 요점은, 세 권의 책이 체계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이 체계는 어떤 결정 불가능한 원천에 의해 작동되는 체계이고, 따라서 이 원천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는 체계, 말하자면 자신의 타자 또는 자신의 외부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성립하는 체계라는 뜻입니다.


4)에 대한 답변

음, 이 질문은 사실은 대답하기가 좀 곤란한데요. 옐름슬레우의 이론을 설명하자면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 ... ;;;

그리고 저같은 문외한이 어쭙잖게 설명하는 것보다 전문가들이 비교적 알기 쉽고 명쾌하게 해설해놓은 글들이 있으니까, 그것들을 참조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박인철 교수가 쓴 글들이 도움이 될 것 같네요.

박인철, [옐름슬레우], 김치수, 박인철 외, 󰡔현대 기호학의 발전󰡕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8.

박인철, 󰡔파리 학파의 기호학󰡕 민음사, 2003 중, 1장 2절, 63-99쪽.

(참고로 책값은 위의 책이 훨씬 싸고, 내용 설명은 아래의 책이 좀더 간명합니다. ^^)




cplesas 2006-03-03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감사합니다. ^^ 그런데 선생님이 다시 번역하신 대목들은 왜 이렇게, 좋죠?;;;
 
 전출처 : 릴케 현상 > 마호멧 만평 사태의 본질

마호멧 만평 사태의 본질
종교적 갈등을 넘어 다차원적 접근 필요
엄한진(성균관대) 
상대적으로 일국 차원의 현상이었던 프랑스 소요사태나 국제정치경제적 차원에서 어느 정도 설명되었던 9.11테러와 달리 만평사태는 매우 많은 요인들이 연관된 현상이다. 우선 유럽-이슬람 관계의 역사, 유럽 내 무슬림들의 문제, 제2차 이라크전쟁 이후의 중동정세와 유럽-아랍의 정치적 관계, 극우주의 및 유대인문제와의 연관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이번 사태에는 최근 유럽을 포함해 전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종교와 사회의 갈등, 특히 “종교 관련 사항을 세속법 차원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먼저 이번 사태의 전개과정을 되짚어 보자. 2005년 9월 30일 덴마크 보수일간지 율란트-포스텐(Jyllands-Posten)에 이슬람을 창시한 예언자 마호멧을 테러리스트로 풍자한 그림 등 12장의 만평이 게재되었다. 처음에는 덴마크 내에서만 문제가 되었다가 2005년 12월 경 중동 등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이렇게 만평문제가 세계적인 사안이 되자 2006년 1월 10일 노르웨이의 한 일간지 매거지넷(Magazinet)이 12장 그림 전체를 게재하였고 주로 언론간 연대 차원에서 2월 1일 프랑스 일간지 프랑스 수아(France Soir), 그리고 이어서 독일(Die Welt), 스위스(Tribune de Geneve, Le Temps) 등 여러 유럽국가들에서 신문 게재가 이어졌습니다. 아랍 등 이슬람국가들에서도 만평이 유럽처럼 몇몇 언론에 게재되었었다. 만평사건이 세계적인 문제로 비화한 후에는 예상되었던 대로 각지에서 이슬람신자들의 격한 대응이 잇따랐고 그 과정에서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1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이슬람권 국가들의 작품, 그리고 그 배경에는 유럽의 개입 증대가

우리는 여기에서 이번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만평이 처음 게재된 지 2달이 넘게 지난 2005년 12월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그 때는 마침 57개국 정상들이 모인 이슬람회의(Organisation of Islamic Conference, OIC)가 사우디의 메카에서 열리고 난 직후였다는 점에서 이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실제 이 회의를 결산하는 성명서에 덴마크의 만평문제가 언급되었고 이슬람권 국가들의 정부 차원의 노력이 만평문제가 본격화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번 만평에 표현된 마호멧과 테러리즘의 연관성은 이 만평이 있기 오래전부터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 말 속에, 심지어는 다양한 이미지들에 깊이 뿌리내려 온 것이다. 그리고 특히 이러한 인식은 9.11 이후 더욱 확고해졌다. 사실 이번 12장의 그림 중 가장 문제가 되었던 시한폭탄 형태의 터번을 쓴 마호멧 그림이 상징하는 테러리즘으로서의 이슬람이라는 표상은 세계정세에 어두운 우리에게조차도 너무 익숙한 것이다. 결국 지난 11월 우리를 놀라게 한 프랑스 소요사태 역시 무엇보다도 국가의 작품이었듯이, 이번 만평 파문 역시 다소 사소하고, 그리 새로울 것 없고 국지적인 사안이 위로부터, 즉 이번 경우에는 이슬람국가들에 의해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아랍정권들이 이렇게 한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우리는 그 배경으로 최근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고 상당수 아랍국가들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의회에 대거 진출하는 등 아랍정치권력이 구가해 온 그간의 장기집권을 위협할 수 있는 최근의 정치변동을 떠올릴 수 있다. 즉 유럽 대 이슬람이라는 대립구도에 대중의 민족주의적인 정서를 동원하여 정권의 안정을 도모한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권유지 전략에 '유럽'이라는 요인이 동원되었다는 것은, 역으로 이번 사태에서의 아랍진영의 과도한 대응의 이면에는 점증하는 유럽의 중동개입이라는 현실적 배경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번 만평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자신들에게 희생과 모욕을 준 미국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던 아랍 국가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유럽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의아하고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 원인을 이번 사태에서 눈에 띄게 적극적인 대응을 한 나라들이 공히 최근 유럽과 갈등관계에 있는 나라들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이번 사태의 본질 중 하나는 3년 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와 달리 중동, 동유럽,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점차 미국에 협력하고 미국을 대체해가고 있는 유럽의 존재에 대한 거부감의 표현인 것이다.

예를 들어 이란의 주도적인 대응은 시아파의 예외적인 신앙심때문이라기보다 이란 핵문제에서 유럽이 오히려 미국보다 더 적극적이 된데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이란의 핵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부당한 의심을 막아왔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005년 9월 갑자기 이란에 대한 불신을 표명하면서 이란 핵문제가 유엔 안보리 상정 등 급박하게 진행되었다. 이란은 이 의심을 풀기 위한 많은 노력을 했지만 “이란의 핵관련 기술은 언젠가는 핵무기개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라는 미국의 억지를 이겨낼 수 없었고 그 와중에 2005년 9월 만평 게재문제가 덴마크에서 불거진 것이다. 결국 미국에 더해 유럽까지 가세한 최근의 압력으로 인해 매우 곤란한 입장에 놓여 있던 이란의 입장에서 보면 만평사건은 유럽의 압력이 이란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과 무슬림 모두를 향한 것이라는 유용한 논리를 준 천재일우의 기회였던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나토군의 유럽병력이 점차 미군을 대체하고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와 직접 싸우게 되는 것은 미국이기보다는 유럽이 된 것이다. 탈레반을 후원해 온 파키스탄이 이번 만평 사건에서 두드러진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지역에서 유럽 대 탈레반이라는 구도가 형성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시리아의 다마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의 격렬한 시위 역시 최근 프랑스가 시리아의 레바논 간섭에 대해 적극적인 공세를 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이슬람을 모독한 자들에 죽음을 달라고 부르짖을 때 이슬람인들의 머리 속엔 만평의 작가보다는 유럽국가의 정부들, 그리고 아랍세계에 평화유지군으로, 엔지오로, 성직자로, 기업가로 와 있는 유럽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제는 너무도 명백한 지배자가 된 미국과 오버랩되면서 말이다. 좀더 오래 전 일들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제국주의 유럽의 악몽이 떠올랐을 수도 있다.

‘이슬람 문제’가 두려운 유럽의 무슬림들

이번 사태와 연관된 사람들은 유럽 외부의 무슬림들만이 아니다. 지난 프랑스의 소요사태에서처럼 보다 직접적으로 만평과 만평이 대변하는 편견의 표적이 되었던 것은 오히려 유럽 사회 내의 무슬림들이다. 그런데 거의 같은 시기에 발생한 이 두 사건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히 세를 불리고 있는 유럽의 극우세력 문제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그것은 유럽의 경우 극우정당의 주된 자원이 반이민정서이며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에서 주된 이민집단은 이슬람권에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슬람권 출신자들과 연관된 이민문제를 핵심적인 사회문제로 부각시키는 것이 성공의 열쇠인 유럽의 극우세력에게 이번 사건은 이슬람이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력 확장의 호기인 셈이다.

일찍이 만평이 게재되었던 노르웨이의 경우 지난 2005년 9월 총선에서 극우정당인 진보당이 22%의 득표로 제1야당이 되었는데 이번 사건에서의 노르웨이를 겨냥한 시위와 폭력은 극우주의의 기반인 반이슬람 정서를 한층 강화시키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극우세력들은 만평 게재지인 프랑스 수아(France Soir)와의 연대를 표시하고 이번 사건을 외부 이슬람인들에 의한 자국의 표현의 자유 침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번 프랑스 소요사태에서도 그러했듯이 서유럽의 이슬람신자들은 이슬람국가들의 신자들에 비해 매우 조심스럽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다. 이슬람공동체는 평화의 공동체다“. 이민문제, 이슬람문제가 중요한 사회문제로 제기되는 것은 그것이 어떤 성격의 것이든 이슬람문화권 출신의 유럽인들에게는 위협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그들은 유럽의 주류 백인사회가 자신들을 이슬람이나 아랍으로 규정하는 것이 지니는 해악적인 효과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무슬림, 아랍인보다는 프랑스시민, 덴마크시민으로 남과 다름없이 대접받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시민으로 평등하게 대접해 주지 않으려는 주류사회가 그들을 아랍인, 이슬람인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너희들은 본질적으로 다르니까 우리와 절대 같아질 수 없다. 즉 진정한 프랑스인, 독일인이 될 수 없으며, 너희들은 다르니까 다른 대접을 하는 것이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한편 유럽의 무슬림들을 주류사회와 구별되는 존재로 규정하는 것은 유럽사회뿐이 아니다. 알제리, 파키스탄, 터키, 이란 등 자신들의 모국 역시 대유럽 전략에 유럽에 있는 자국동포들을 이용하려 한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이슬람이나 아랍과 관련된 논의를 매개로 유럽-이슬람 관계에 이용되는데 반감을 느끼고 있다. 유럽의 이슬람문화권 출신 후예들은 더 이상 유럽과 오리엔트, 중동의 갈등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들의 대부분은 우리의 재중동포들의 경우처럼 유럽에 온지 매우 오래되었거나 유럽에서 태어나 유럽의 문화와 사회에 익숙한 유럽인들인 것이다.

신앙의 존중 대 표현의 자유

“이번 사건에서 게재 당사자들이나 이들 편에 선 지식인, 언론이 주창하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사실상 그들의 반이슬람적, 인종차별적 태도를 정당화하는 변명에 불과한 것이다”라는 것이 이 사건에 대한 대표적인 설명이다. 다시 말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빌미로 신앙이 다른 집단, 특히 그간 강대국의 미움을 사온 무슬림들을 모독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다소 의아한 것은 이슬람을 그 무엇보다도 적대시해 온 유럽과 미국의 정부들이 이번 사건에서는 종교적 신념에 대한 존중, 종교적 사안에 대한 언론의 신중함, 책임성을 강조하면서 아랍세계에서의 폭력적인 대응에 대한 비판보다는 만평을 게재한 서방언론들에 대한 비판에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만평 게재를 비판하며 언론에 책임성과 분별력을 요구한 코피 아난의 논평(2월 9일)이나 “표현의 자유의 실현이기보다는 점증하는 유럽사회의 다양성에 대한 그들의 무감각, 그들의 거부감을 표현한 것“(2006년 2월 8일자)이라는 워싱턴 포스트의 일견 진보적인 해석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여론 역시 크게 다를 바 없다. 2005년 가을 프랑스 소요사태 당시 국민의 68%가 자극적인 언사와 강경대응으로 이번 사태를 악화시킨 내무장관 사르코지(N. Sarkozy)의 행동을 지지(Le Monde 2005년 11월 17일자)했던 프랑스의 경우, 이번 경우에는 국민의 54%가 만평을 게재한 미디어들을 비판하고 있다.(Le Monde 2006년 2월 9일자)

이러한 태도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사회통제의 강화, 그 속에서의 표현의 자유의 약화라는 최근의 전지구적 경향이 놓여 있다. 즉 매우 폭력적인, 따라서 매우 격렬한 사회적 저항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특히 9.11테러 이후 노골화된 사회통제 강화의 일환으로, 최근 세계 여러 지역에서 표현의 자유가 이해 당사자들의 압력이나 여론을 빌미로 약화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종교의 경우에도 전통적으로 금기시되어 온 유대인 문제에 대한 견해표명 뿐 아니라 다른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도 새로이 억압을 당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진원지인 유럽에서 이번 사건은 무엇보다도 최근 들어 사회적 논의나 글, 영화, 광고, 만평 등에서 종교적인 사안에 대한 비판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추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즉 교황을 풍자한 꼭두각시 인형에 대한 제재,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선정적으로 패러디한 광고에 대한 제재 등 최근 크게 논란이 되었던 ‘모독’ 사건들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만평사건을 설명할 수 있다.

최근 유럽과 미국을 보면 기독교든, 유대교든, 이슬람교이든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는 길에 동참하고 있다. 낙태문제, 동성애자 결혼문제, 생명윤리, 신성모독 등의 문제가 잘 보여주듯이 현 세계는 종교간 갈등만큼이나 종교와 사회의 힘겨루기가 한창인 것이다. 이번 사안의 당사자인 유럽도 유럽연합 차원에서 ‘개인의 자유’와 ‘차이의 존중’, ‘표현의 자유’와 ‘신앙의 존중’이라는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가치들을 조화시킬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유럽연합에 속한 나라들의 주류사회 자신들도 심각하게 겪고 있는 정체성 문제가 놓여 있는 것이다. 즉 단일한 유럽이라는 이상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는데 유럽연합 내부에는 무수한 경제적, 종교적, 종족적 차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가 종교적 신념을 저해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로 이번 만평을 비판한 교황을 비롯해 각 종교의 대표자들이 이번 만평사건에 한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이러한 중요한 경향이 저변에 깔려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매우 종교적인 부시가 이번 만평사건과 관련해 무엇보다도 언론에 대한 비판을 강조한 것은 형식적인 제스처만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에서 볼 때 이번 사건은 비록 그 시발점이나 전개과정에 유럽국가들과 이슬람국가들간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크게 작용했지만, 단지 정치적 현상만은 아닌 것이다.

전망

아직 진행중이지만 이번 사태가 초래할 결과를 예견해 보면, 우선 ‘이슬람’이라는 요인의 중요성,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이슬람과 서양, 이슬람과 민주주의, 이슬람과 인권과 같은 이분법이 다시금 활력소를 찾을 것이다. 이번 만평과 흡사했던 살만 루쉬디 사건이 초래한 결과를 되새겨 보면 이러한 유형의 현상이 해당 사회집단에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함을 알 수 있다. 살만 루쉬디 사건 이전에 영국의 파키스탄 이민자들 내에는 자신들의 종교를 중시하는 만큼이나 주류사회에 통합하려는 노력들이 존재했었다. 그러다가 살만 루쉬디 사건이 초래한 무슬림에 대한 낙인은 이 집단의 많은 사람들을 게토에 갇힌 폐쇄적인 존재가 되게 하였다.

이 점과 관련해 아쉬운 것은, 불가능했던 것일 순 있지만 아랍세계 역시 이번 사태에 냉정하게 대응함으로써 ‘이슬람’과 ‘민주주의’라는 오랫동안 상호모순적인 것으로 여겨져 온 두 가치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를 잃고, 반대로 언제나 그러했듯이 서양이 끌고 가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세계해석을 더 강화시키는데 협력한 꼴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 사건과 직접적 연관은 없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지난 9.11이 우리에게 이슬람을 미국, 제국, 테러리즘, 세계화 및 반세계화와 연관지어 생각하게 했다면, 이번 사건은 이슬람 과 아랍을 유럽, 종교 일반, 시민권, 이민문제, 극우주의 등 또 다른 개념들과 연관해 생각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
엄한진 님은 성균관대학교 서베이리서치센터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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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좌우파 지식인의 역사 정리 … “대중사회 등장은 위기요인 아니다”
화제의 책: 『지식인의 탄생』 파스칼 오리 외 지음, 한택수 옮김, 당대 刊, 400쪽, 2005

2006년 02월 19일   신정민 기자 이메일 보내기

“드레퓌스 사건은 더 이상 지식인이 직업이 아닌, 정치적 문제의 참여로 정의되며, 여기서는 지식인이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표명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도출해 낼 수 있다.”


1898년 덮혀질 뻔했던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군부에 맞서 ‘로로르’지에 게재한 에밀 졸라의 항의서와 이를 지지하는 교수, 강사, 대학생, 의사 등이 결집됨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이 사건 이후 프랑스의 이데올로기 지형은 우파에서 좌파로 주도권이 넘어가게 되었고, 이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전역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났던 19세기 말부터 지식인의 위기로 여겨지는 포스트모던의 20세기말까지 모두 10장으로 구성돼 있다. 프랑스 정치문화사의 격동적인 흐름 속에서 지식인의 등장과 퇴진을 면밀하게 검토하고, 그들의 사회적 역할과 본질적 변화에 대해 살피고 있다.


사실 20세기 프랑스의 지식인들이 이데올로기 지형을 형성하는 데는 프랑스의 내적인 영향보다는 외적인 영향이 크게 작용한다. 즉 프랑스에 국한됐다기보다 타의에 의해서건 개입할 수밖에 없었던 양차 대전과 알제리 전쟁, 그리고 캄보디아의 비극인 크메르 루즈 대학살 등은 세계사적 흐름 속에서 프랑스 지식인들의 정체성과 정치적 역할 변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저자인 파스칼 오리와 장 프랑수아 시리넬리는 지식인의 정치적 활동이 가장 많았던 시기를 2차 대전 직후부터 1970년대 말까지 설정하고 있다. 이 시기는 이미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비보수주의자들과 반파시즘적 지식인이 연합하면서 서서히 계몽주의적 기반이 무너져가는 귀결점이었다. 이에 새로운 가치 정립의 필요성이 요구됨에 따라 좌파 지식인 참여가 대거 이뤄진다.


하지만 30년간 굳건하게 쌓여왔던 마르크스주의가 후퇴하고, 이전까지의 혁명적 모델의 대안들이 침식하고, 전체주의 현상에 대한 고찰이 이뤄짐에 따라 좌파는 침묵하고, 대신 주변에 머물던 우파가 정치적 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1970년대 이후 미디어의 발달은 대중문화를 급격히 확산시키며,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던 지식인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대해 저자는 낙관한다. 이를 소명이 다한 지식인의 황혼기로 보기보다는 지적 변화와 이데올로기 재구성의 시기로 내다보기 때문이다.


저자의 개념으로 볼 때 한국은 식민지와 분단체제의 역사 속에서 프랑스의 지식인과는 달리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 ‘뉴’라는 접두어를 달고 나타난 좌우 지식인의 헤게모니 투쟁은 미디어와 자본의 확대 속에 처한 70년대 이후 프랑스 지식인의 위기가 보여준 문제와 본질적으로는 같지 않을까.
 신정민 기자 jm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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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재미있겠는 걸 ... 그런데 역자 이름을 "현택수"로 잘못 보고 순간 "헉!"하고 질겁.

다행히 역자 이름은 "택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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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월 2006-02-25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핫핫핫! 저도 '현'택수인 줄 알고 깜짝 놀랬었습니다.

balmas 2006-02-25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가슴이 철렁!!
 

295호 2006년 2월 15일(수)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맞서 연대를 확장하자!
- 다중심 세계사회포럼으로 본 대안세계화 운동의 과제


세계사회포럼이 6회를 맞이하여 '다중심 포럼'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 1월 19일~23일에는 서아프리카 말리의 수도 바마코에서 10,000명 가량이 모인 가운데 2006년 다중심 포럼의 첫 번째 행사가 진행되었고, 바로 뒤를 이어 1월 24일~29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린 두 번째 행사에는 십만 명 가량이 참석했다. 세계사회포럼은 전 세계의 다양한 사회운동들이 오늘날 세계 민중이 처한 삶의 위기의 원인에 대한 공동의 인식을 넓히고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개방적인 토론의 장'을 제공해왔다. 세계사회포럼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여기에 결합한 여러 사회운동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롯한 각 지역에서의 군사적 개입으로 인한 폭력의 확산, ▶WTO 혹은 지역/양국 간 자유무역협정 체결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민의 권리 축소, ▶남반구의 외채- 경제위기를 매개로 한 구조조정과 이에 따른 약탈체계의 강화, ▶의료·교육 등 기초서비스, 에너지·물과 같은 공유물의 상품화, ▶이주의 상업화와 불법화로 인한 이주자의 권리 박탈 등'금융-군사세계화'에 따른 빈곤과 폭력의 현실을 분석하고, 이를 사회운동의 의제로 제기해왔다. 이 과정에서 세계 민중이 경험하고 있는 거듭되는 위기의 해법은 각종 초국적 기구와 각 국 정부가 추동 하는'신자유주의적 처방'이 아닌'인민의 자율성-자기통치를 바탕으로 권리를 실현하고, 사회·경제적인 변혁을 지향하며, 사회운동과 공동체 사이의 교통과 연대를 확장하려는 운동'이라는 문제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한 편, 올해는 지난 6년 동안의 성과를 세계 곳곳으로 확산하고 더 많은 이들의 참여로 그 토대를 굳건히 다진다는 취지에서 개최지를 분산하여 진행하는 '다중심 포럼'의 형식을 채택했다. 이러한 다중심 포럼은 해당 지역 사회운동의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여, 규모와 내용을 비롯한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불균등한 형태를 띠고 있다. 각 지역에서 열리는 포럼의 면면을 통해 해당 지역/대륙의 사회운동이 안고 있는 고유한 의제 및 해당 지역/대륙 민중들의 요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006년 세계사회포럼은 앞선 두 행사에 이어 파키스탄 카라치(3.24~29)와 그리스 아테네(5.3~7)에서, 그리고 소지역별, 나라별, 주제별 포럼의 형태로 계속될 예정이다.

 

대안 형성, 공동 행동 조직: 세계사회포럼의 의미

세계사회포럼이 거듭되는 동안 세계사회포럼의 위상과 전망을 둘러싼 갖가지 논쟁이 제기되었다.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슬로건 속의'또 다른 세계'는 과연 무엇인가?", "세계사회포럼이 '조직'이 아닌 '공간'이라면 전국적이고 국제적인 차원의 행동 계획을 수립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정당과 무장조직의 참여를 배제하고 있는 원리헌장이 세계사회포럼의 힘을 약화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문제들은 거듭 제기되는 논쟁거리다. 이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5년 동안 세계사회포럼에 결합한 사회운동들은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전망을 꾸준히 제출해왔다. 또한 이를 통해 스스로를 '신자유주의 금융-군사 세계화'를 넘어설 대안으로 표상해왔다. 이러한 성과는 2006년 다중심 사회포럼의 첫 번째 행사가 시작되기 전 날 발표된 '바마코 호소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50년 전의 '반둥회의'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미 제국주의에 맞선 남반구-북반구 민중의 연대를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회의를 개최하고 이 호소문을 작성했는데, 이 호소문은 지난 5년 동안 진행된 여러 사회포럼에서 제출된 '대안'을 둘러싼 원칙을 다음과 같이 집약하고 있다. ① 경쟁이 아닌 연대를 바탕으로 함, ② 시민권과 양성의 평등을 전적으로 옹호, ③ 모든 다양한 구성원에게 창조적인 발전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보편적인 문명의 구축, ④ 민주주의를 통한 생산과 재생산의 사회화 ⑤ 자연·자원 및 농지의 시장화 거부 ⑥문화적 산물, 과학적 지식, 교육, 의료의 상품화 저지 ⑦ 제한 없는 민주주의, 사회진보, 각 나라와 개인의 자율성을 포함하는 정책의 촉진 ⑧ 반-제국주의에 기초한 국제주의와 남-북반구 민중의 연대 강화. 이 호소문은 세계 곳곳의 민중들이 제기해 온 요구를 모아, 이를 사회운동이 시급하게 진행해야 할 과제로 제안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과 군사적 점령에 반대하는 운동 및 분쟁 지역의 저항하는 민중들과의 연대를 강화할 것, WTO 도하개발의제 협상 중단을 요구하는 투쟁 및 남반구 외채의 즉각적이고 조건 없는 탕감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지속할 것,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지역통합을 중단하고 지역 내 민중의 연대와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통합을 촉진할 것 등을 과제로 제출했다. 이를 실현하려는 사회운동이 꾸준히 출현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와 같은 원칙이 단지'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안적인 세계를 추동할 힘으로 작동할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사회포럼은 전 지구적인 차원의 공동행동을 제안하고 이를 추동하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국제위원회'와 같은 세계사회포럼의 공식기구와는 독자적으로 진행되지만 매년 세계사회포럼을 계기로 비아 캄페시나, 세계여성행진 등과 같은 대중조직이 주도해 온'세계사회운동총회'는 1년 간 세계의 사회운동이 집중해야 할 운동의 의제와 행동의 계기를 제시해왔고, 이를 바탕으로 전 지구적인 공동행동이 조직되어왔다. 올 해 역시 카라카스 사회포럼의 마지막 행사로 진행된 '세계사회운동총회'에서는 2006년 세계사회운동이 집중해야 하는 공동행동 계획을 담은'사회운동 호소문'을 발표했다.'바마코 호소문'의 제안을 반영하여'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 중단','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중단',' 대량살상무기와 핵무기 사용 중단','베네수엘라, 쿠바 등 미국의 군사적 개입에 저항하는 민중과의 연대 강화','도하개발의제 협상 저지',' 남반구 외채의 즉각적이고 조건 없는 탕감'을 주요 요구로 하여 3월 18/19일 국제반전공동행동, 5월 경 제네바에서 열릴 WTO 일반이사회 대응 행동, 6월 러시아 성 뻬쩨르부르크에서 열리는 G-8 정상회담 반대투쟁, 9월 IMF-세계은행 연차총회 반대행동을 다양하게 조직하고 이러한 행동들을 결합시켜 내자는 호소를 담고 있다. 사회운동총회에 참석한 여성운동, 농민운동, 원주민운동 등은'여성 신체의 상품화 중단',' 식량주권(토지, 종자, 농업지식에 대한 농민의 통제권, 민중의 식량에 대한 보편적 접근권)'강화,'원주민의 자치 실현'고유한 의제와 이를 중심으로 한 각자의 행동계획을 공유했다.'세계사회운동총회'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분출한 다양한 사회운동들이 발견한 공동의 인식을 확보하고 연대를 실현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2006년 다중심 포럼을 통해 드러난 각 지역 사회운동의 현재

2006년 '다중심포럼'은 그동안의 세계사회포럼이 주 개최지였던 남미 사회운동에 치중되어 있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바마코 행사에 참가한 인원이 카라카스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바마코 행사 참가자들은 세계사회포럼 장소가 분산되어 더 많은 아프리카 민중들이 세계사회포럼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이전에는 활발하게 제기되지 못했던 아프리카의 고유한 의제들이 세계사회포럼의 주제로 다루어지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바마코 사회포럼에서는 수단-콩고의 분쟁, 오랫동안 아프리카 여성들의 권리를 침해해 온 성기절단 및 조혼과 같은 문제들이 다루어졌다. 아프리카 사회운동들은 각 국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아프리카 발전을 위한 새로운 파트너십(NEPAD)'와 같은 프로그램이 IMF와 세계은행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구조조정프로그램(SAPs), 빈곤감축전략계획서(PRSPs)와 같은 맥락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 프로그램임을 분명히 하고 이에 맞서 싸울 것을 호소하고 있다. 또한 그동안 여러 비정부기구(NGO)가 진행해 온 IMF, 세계은행의 개혁을 위한 개입이 결국은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을 수용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사회운동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프리카 사회운동들에게 던져진 시급한 과제는 '내전' 및 '지역분쟁'을 종식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는 것이라는 인식을 확인했다.

카라카스 사회포럼에서는 이 지역에서 '금융-군사세계화'에 대항하여 분출하는 사회운동과, 이 지역에 잇따라 등장하고 있는 좌파정권의 관계가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남미 지역의 사회운동들은 세계사회포럼 프로세스의 중심적인 역할을 차지하며 '신자유주의 금융-군사세계화'에 반대하는 대륙 차원의 연대를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 지난 해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Mar del Plata)에서 열린'미주지역정상회의'에 즈음하여 사회운동들이 미주지역자유무역협정(FTAA) 체결 논의를 효과적으로 중단시킨 사례는 이를 보여준다. 포럼의 마지막 날 행사로 열린'세계사회운동총회'에는 최근 들어 각 국에서 좌파 정권이 줄을 이어 등장하고 있는 현상은 남미 대륙에서 폭발하고 있는 자유무역, 군사주의, 사유화 정책에 반대하고, 자연자원과 식량주권을 지켜내기 위한 사회운동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러한 좌파정권의 등장과 함께 남미 각 국의 좌파정부와 사회운동이 미 제국주의에 대한 대항블록을 구축하자는 제안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는데, 이러한 제안은 카라카스 사회포럼에서도 중요한 의제였다. 특히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은 주요 행사에 직접 참석하여 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남미 각 국의 좌파정부와 사회운동이 연대를 강화할 것을 호소했다. 또한'미주지역자유무역협정'에 맞서 민중의 권리를 바탕에 둔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리안 대안(ALBA)'를 중심으로 단결을 강화할 것을 호소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번 포럼을 진행하는 데 직접 나서서 지원했으며 차베스 대통령이 상당한 주목을 끌었던 상황에서, 사회운동의 자율성에 관한 쟁점은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이제 세계사회포럼 원리헌장이 제시하고 있는 '정당과 무장조직 배제의 원칙'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쟁점은'남미 각 국의 좌파정권과 사회운동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라는 쟁점으로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세계사회운동총회'에 모인 사회운동들은 스스로가 내리고 있는데, 이들은 '사회운동은 좌파정권에 대해 정치적 자율성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며, 우리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운동의 조직화에 복무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각 국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수용하지 않도록 압박하는 것이 사회운동의 임무'라고 밝히고 있다. 금융-군사 세계화가 파괴하는 민중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이를 연대와 자율성을 바탕으로 운동을 통해 실현하려고 노력해 온 사회운동들의 활동과 역할이 축소되지 않고 , 스스로 '대안'에 대한 전망과 역량을 더욱 확장해 나아가는 것이 사회운동들이 실현해야 할 지난한 과제이다.

 

2006년 다중심 포럼과 한국 사회운동의 과제

2006년 다중심 포럼은 한국의 사회운동에 몇 가지 과제를 제시한다. 우선 지난 홍콩 각료회의에 이은 도하개발의제 협상, 한미 FTA 체결 등에 맞서는 투쟁을 '대안세계화'의 관점에서 조직해야 한다. 초민족 자본의 이해를 위해 민중의 권리를 축소하는 이러한 협상에 '자발적'으로 선두에 나서고 있는 노무현 정권의 반민중성을 폭로해내야 한다. 특히 이러한 투쟁이 노무현 정부가 제시하는 '피해산업보호대책'에 갇히지 않고 '노동권', '식량주권', '공공서비스에 대한 접근권' 등 민중의 보편적 권리를 제기하고 이를 세계 민중의 연대를 통해 실현하려는 운동으로 확대해가야 한다. 한 편, '군사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적인 반전운동의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 중단을 위한 3.18/19 국제 반전공동행동을 적극 조직해야 한다. 또한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를 위한 주민들의 투쟁에 적극 연대하고, 이를 통해 전략적 유연성-평택미군기지 확장- PSI참여로 이어지는 한미군사동맹의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반전운동을 확장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초민족 자본의 한국지배와 한국경제의 장기불황이라는 조건 속에서 계속되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맞서는 다양한 운동이 활성화되고 상호 연대가 확장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오는 3월 24일~29일 파키스탄 카라치 사회포럼을 앞두고 아시아 차원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적극 모색하는 것 또한 우리에게 던져진 과제이다. '미주지역자유무역협정' 체결 저지를 위한 공동행동으로 대륙 차원의 사회운동의 연대를 꾸준히 강화해 온 미주 대륙이나, '신자유주의적 원리에 따른 유럽통합'에 맞서 '다른 유럽'을 건설하기 위한 공동의 과제를 형성해 온 유럽 대륙과 비교해 볼 때 아시아 지역 사회운동들 간의 연대는 취약한 편이며, 지역 차원의 이슈를 발굴해 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 군사전략에 따른 인민의 자결권의 파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이주의 확산과 이에 대한 불법화로 인한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박탈, 초민족 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각종 무역협정에 따른 인민의 권리 축소 등 공동의 이슈를 제기하고 이에 맞서는 연대의 흐름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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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2-20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간만에 발마스님의 컴백, 그런데 55555 이벤트는?

balmas 2006-02-21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말예요. 그게, 벌써 지나가버렸네 ... -_-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