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의 황새울'이 지나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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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여명의 황새울'이 지나간 자리


진재연| 정책편집부장



지금은 새벽5시 입니다. 사회진보연대에 보낼 이 글을 쓰기 위해 집에서 나와 평화바람숙소에 왔습니다. 초등학교가 무너진 이후 컴퓨터를 쓰는 일이 쉽지 않아 모두가 잠든 이 시간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영농단을 거쳐 황새울 쪽으로 걸어오는데 경찰들이 영농단 가는 길에 방패를 들고 서 있었고 라이트를 켠 포클레인 두대가 논을 파고 있었습니다. 저렇게 밤새 포클레인이 땅을 파 둑을 쌓고 철조망 치는 일을 합니다. 어제 밤 내리쪽에서는 한꺼번에 열대가 넘는 국방색 포클레인이 '작업'을 하고 있는 걸 보았습니다. 처음 이곳에 포클레인이 들어왔을 때처럼 날카로운 삽날에 몸을 던지지도 못하고 이제는 그저 안타까워하며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5월 4일 그날도 이 시간 즈음이었습니다. 4시 30분에 예정되었던 '여명의 황새울'작전은 동이 트기 시작하면서 모습을 드러내었고 초등학교 앞쪽에 미군기지철조망을 뚫고 경찰이 마을에 들어왔습니다. 하루 종일 아수라장이 되었던 마을은 해가 지고 초등학교가 그 형체를 잃어가면서 그렇게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그 날 이후 주민들의 마음은 학교의 잔해만큼이나 황량합니다. 논으로 나가지 못하는 주민들은 문화예술인들이 만든 파랑새 공원에서 너른 들판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냅니다. 폭풍이 지나간 마을을 청소하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 잡아 싸움을 이어가지만 아직도 눈물이 마르지 않는 주민들을 보고 있으면 걱정이 앞섭니다.

지금 대추리 도두리 논에서는 날마다 포클레인의 작업소리가 들리고 마을 곳곳의 진입로가 차단되었습니다. 경찰은 다리를 부수고 비닐하우스를 철거하고 사람들을 통제합니다. 도두리로 들어오는 15번 버스가 며칠 째 못 들어오고 아이들의 학교차량도 출입이 어렵습니다. 군부대는 논 한가운데에 철조망을 치고 숙영지를 만들었습니다. 경찰은 작은 충돌에도 연행지침을 내려 지킴이들을 잡아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경찰과 군대가 주둔하며 버리는 쓰레기로 논은 쓰레기장이 되어가고 있고 그들이 수도물을 끌어다 써 마을주민들의 집에는 물이 나오지 않기도 합니다.

주민들은 그들과 싸우고 몰래 들어오는 사복경찰, 국방부 직원들과도 싸웁니다. 요즘 부쩍 눈에 띄는, 전경들에게 배달되는 도시락 차량을 막기도 합니다. 매일 곳곳이 아수라장이고, 그렇게 하루종일 뛰어다니다보면 하루가 저뭅니다. 이제는 기자도 잘 들어오지 않는 이곳에, 주민들과 지킴이들 몇몇만이 있는 조용한 마을에 무슨 일이라도 날까 하루 종일 마음 졸이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 터널같은 시간이 주민들을 더욱 체념하게 하고 지치게 할 거라는 생각에 겁이 나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날마다 촛불집회를 하고 전국에서 이 싸움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주민들의 마음이 병이라도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하지만 아직 이곳에 산지 3개월밖에 안 되는 저를 일깨우는 것은 3년 넘게 싸우며 버텨온 주민들입니다. 이젠 드라마를 봐도 다르게 보인다고, '장길산'에서 민초들이 그렇게 저항하고 싸우려했던 게 뭘 의미하는지 이제야 알겠다며 끝까지 싸우자고 하십니다. 한국정부와 지배세력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목숨 걸고 싸우려는 사람들을, 그들의 역사를. 숱하게 당하고도 비밀투표를 통해 '계속 싸우자' 는 결정을 한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민들의 입에서 '반미'비슷한 말만 나와도 난리 법석입니다. 무식한 촌로들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리 없다고, 그럴 리 없다고, 외부세력들의 의식화의 결과라고 떠들어대는 것입니다. 주민들을 선동하는 외부세력만 축출하면, 마을을 점거하고 보상금 협상해 주민들을 내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보상금 따위는 바라지도 않았던 주민들은 마르지 않는 눈물을 부여잡고 힘든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지킴이들은 그런 주민들이 있기에 마음을 다 잡아 갑니다. 마을 곳곳에 야만적인 침탈의 흔적이 남아있고 포클레인 소리 멈추지 않고 있지만 반드시 승리하는 민중들의 역사를 기억하며 싸움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정부는 5월 14일 예정되어 있는 범국민대회를 불허하겠다고 합니다. 벌써부터 검문이 강화되고 출입통제가 심해졌습니다. 지난 5월 5일처럼 많은 동지들이 몰려와 저들을 뚫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600일을 훌쩍 넘는 주민들의 촛불행사에서 주민들은 항상 말했습니다. '질긴 놈이 이긴다'고. 지치지 않고 끈질기게 싸우기 위해서 더 많은 동지들의 연대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더 많은 사회진보연대 회원들을 만나기 바라며,
대추리에서 진재연
2006년05월15일 14:4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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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waits > [펌/평택범대위] 김지태위원장 두번째 편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김지태위원장 두번째편지] 고생많으셨습니다.
2006-05-15 17:48 | VIEW : 262

[두번째서신] 어려운 역경을 뚫고 범국민대회를 성사시킨
                                전국의 평택지킴이 여러분께 드립니다!

만물이 푸르름을 더해가고 우리들의 가슴속에는 민주에 대한 열망이 불길처럼 솟아오르는 열정의 계절 5월.
13일 국방부앞에서, 그리고 광화문으로 14일에는 생명과 평화의 땅 팽성에서 솟아오르는 정열을 미군기지확장반대투쟁으로 승화시켜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 동지들의 힘겨운 싸움에 함께하지 못한 안타까움에 저로써는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한편, 희생을 각오한 동지들의 투쟁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멀쩡한 농지에 거대한 철조망을 흉물스럽게 쳐놓고 군사시설보호구역이랍시고 선량한 집회를 아예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집회자체를 불허하는 만행!
사통팔달의 도로는 완전히 봉쇄하여 대추리로의 접근을 아예 엄두를 못내게하고, 심지어 집회에 참가하는 국회의원조차도 6-7번의 검문끝에 겨우 현장에 들어가게 하는 상황(여기서도 저는 법의 이중적 잣대를 또 느낍니다. 어쨌든 국회의원은 통과를 시켜주었으니..)에서 얼마나 황당하고 무력감을 느끼셨습니까?

천신만고끝에 물어물어 찾아간 본정리에서는 닥치는 대로 연행하는 묻지마식 연행이 자행되고(언론에 의하면 폭력시위혐의로 연행했다하지만 우리는 동영상을 통해 똑똑히 확인하였습니다), 방송차량마저 차단이 되어 수천의 군중을 통제할 수 없는 혼란속에서도 <군부대철수, 미군기지확장계획전면재검토, 평화농사실현 범국민대회>를 대중적으로 성사시킨 동지들께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저멀리 보이는 철조망과 그곳에 자라고 있을 우리들의 희망볍씨를 그저 바라만 보고 훗날을 기약하며 발을 동동굴러야했던 동지들. 눈앞에 보이는 그 평화의 땅에 결국 한발짝도 들여놓지 못하고 거대한 공권력앞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셨을 동지들의 마음을 알고있기에 가슴이 아픕니다.
비록 우리의 앞길을 막고있는 철조망을 걷어내고 도두리, 대추리로 달려가지 못했지만 이번 싸움이 끝이 아니기에 다시 서로를 추스리고 어깨를 걸고 앞으로 진군해야합니다.

이제 팽성 도두리, 대추리의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그리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국각지에 퍼져 나갈 것입니다.
그동안 잠자고 있던 양심이 불길처럼 타올라 독선과 아집으로 밀어붙이던 미군기지이전사업을 모든 민중들의 힘으로 밀물처럼 쓸어버리리라 확신합니다.
정부에서 군인과 경찰을 아무리 동원한다해도 우리에게는 피끓는 동지들이 있습니다.

동지들이 있기에 도두리, 대추리 주민들은 결코 외롭지않습니다.
우리는 승리를 믿습니다. 농사도 계속 지을것이구요.
하루속히 미군기지 문제를 매듭짓고, 대추초등학교운동장에서 막걸리를 건네며 그간 못나눈 이야기꽃을 피을 그날을 떠올리며 오늘은 이만 줄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힘찬 생활을 기원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2006년 5월 15일 미군기지확장반대팽성대책위원회 위원장 김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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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eacekorea.org/main/board/view.php?id=briefing&no=614

 

 

[자문위원칼럼 ] 평화적 생존권, 전쟁위험 속 꽃핀 대항담론

'평화롭게 살고 싶다!'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이경주(인하대 법대 교수)/2006년 4월 27일



신속기동군화 및 이를 위한 군사변환 등 이른바 미국의 군사전략의 변화로 말미암아 한반도가 전쟁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평택으로의 미군기지 이전이 용산기지의 수평 후방이동이 아니라 신속기동군화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적극적 확대이전이라는 점에서 평택 주민은 물론 전 국민적 항의가 거세어지고 있다. 나아가 이에 대한 대항담론으로 평화권 또는 평화적 생존권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평화적 생존, 모든 인권의 출발

평화적 생존권의 이념적 기초는 다름 아닌 현행 헌법의 평화주의 원리다. 평화주의란 헌법의 기본원리 중의 하나이며, 헌법의 이념적 기초, 지도원리를 의미한다. 현행 헌법의 경우 전문과 본문의 제5조(침략전쟁 부인, 국군의 사명으로서의 국토방위) 등에 표현되고 있다. 헌법원리로서의 평화주의는 다른 헌법 조항을 비롯한 모든 법령의 해석기준이 되며, 입법권의 범위와 한계 그리고 국가정책결정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어서 국가기관과 국민이 존중해야 할 최고의 가치규범이다.

평화적 생존권은 이러한 평화주의를 인권적 관점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평화주의에 기초하여 침략전쟁을 부인하지 않으면,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보는 것처럼 침략전쟁이 난무하여 인간의 평화적 생존이 위협받을 것이고, 평화적 생존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즉 사람이 죽거나 죽을 상황에 처한 상황에서는 사생활의 자유니 거주이전의 자유니 표현의 자유니 하는 자유와 권리는 제대로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가 전쟁을 하지 않도록 국가권력을 견제할 필요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평화적 생존권이다. 국가가 전쟁을 대외정책수단으로 삼지 않도록 평화적 생존권이라는 인권의 이름으로 견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평화적 생존권, 우리 헌법도 보장해

평화적 생존권이야말로 인권의 출발점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평화란 무엇이며 평화적 생존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우선 평화가 무엇이냐도 사실은 논쟁거리 중의 하나이다. 어떤 사람들은 '전쟁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좁게 해석하지만, 평화학이나 정치경제학 등에서는 '빈곤, 기아 등 구조적 폭력이 없는 상태'야말로 진정한 평화라고 넓고 근원적으로 해석한다. 넓은 의미의 평화 개념을 취하는 것이 근본적이긴 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인권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새로운 권리, 즉 제3세대의 권리로서의 평화적 생존권이 마치 모든 인권을 가리키는 포괄적 인권 개념으로 변할 우려도 없지 않다. 따라서 '평화적 생존'의 의미를 상대적으로 좁게 특정하여 보는 것도 단기적으로는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평화적 생존이란 일단 모든 전쟁과 공포로부터 벗어나서 생존하는 것으로 하되, 매우 좁게는 전쟁과 군대 없이 평화적으로 생존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러한 평화적 생존의 개념에 기초하게 되면 평화적 생존권은 징병거부권을 핵심으로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조금 넓게 해석하면 전쟁과 군대 없이 평화적으로 사는 것뿐만 아니라 군사적 목적을 위한 기본권 침해 없이 사는 것, 전쟁 위험에 처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생존할 권리까지 포함하게 될 것이다. 일본 헌법의 경우, 전문에서 "우리는 전세계의 국민이 평등하게 공포와 결핍으로부터 벗어나 평화롭게 생존할 권리를 갖고 있음을 확인한다"고 명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 헌법의 경우는 어떨까. 평화적 생존권이 헌법적 근거가 있는가,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있는가 하는 것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물론 현행 헌법에는 명문의 문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헌법의 권리가 아닌 것은 아니다. 생명권과 알권리 그리고 사상의 자유가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생래적 권리이듯이, 평화적 생존권 역시 헌법에 열거되지 않았지만 경시해서는 안 될 제3세대의 인권인 것이다. 그래서 현행 헌법 제37조 1항에서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평화적 생존권이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향상시키는 권리임을 생각한다면 비록 헌법에 열거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경시되어서는 안 될 인권인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지난 2월 23일 평택주민들이 낸 용산기지 이전협상 관련 헌법소원을 각하하면서도 헌법 제10조와 제37조 1항으로부터 평화적 생존권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그 기본 내용은 침략전쟁에 강제되지 않고 평화적 생존을 할 수 있도록 국가에 요청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하여 평화적 생존권의 권리성을 인정한 바 있다.

평화를 위협하는 모든 국가에 대한 방어권

평화와 평화적 생존의 개념을 어떻게 파악하는가에 따라서도 평화적 생존권의 내용이 많이 달라지겠지만, 개별 국가의 역사적, 국제관계적 특수성, 개별 국가의 국가와 국민의 관계 등에 따라서도 평화적 생존권의 의미내용은 큰 편차를 보인다. 비교헌법사적으로 보더라도 그렇다.

이를 종합하여 보면 평화적 생존권의 내용으로 포함될 수 있는 내용으로는 다음과 같은 내용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즉, 국가에 의한 침략전쟁의 부인, 집단적 자위권의 부인, 군비보유의 배제, 국가에 의한 평화 저해 행위(무기수출)의 배제, 국가에 의한 평화적 생존 저해 행위(징병제)의 배제, 군사적 목적의 기본권 제한(재산수용, 표현자유 제한) 금지, 전쟁 위험에 처하지 않을 권리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중 현행 우리 헌법의 규정과 체계를 고려하여 본다면, 현행 헌법 제5조는 37조 1항과 더불어 평화적 생존권의 헌법적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기초하여 평화적 생존권은 침략전쟁의 부인, 개별적 자위권의 인정과 문민통제권 등을 포함한다고 할 것이다. 이를 대내외적인 측면으로 표현하면, 대내적으로는 침략을 위한 군사적 목적의 기본권 제한과 본질내용 침해에 대해 금지를 요구할 권리, 타국에 대한 무력공격에 가담하지 않도록 요구할 권리, 군사외교정책이 전쟁위험을 유발하지 않도록 요구할 권리를 의미한다. 대외적으로는 타국에 대하여도 자국을 전쟁 위험에 끌어들이지 않도록 요구할 권리 등을 포함한다 할 것이다.

평화적 생존권 외침은 서울에서도 울려퍼지고 있다

평화적 생존권의 효력은 국가에 미친다. 즉 국가권력을 견제하고 국가권력의 간섭으로부터 개인을 방어하는 권리다. 평화적 생존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평택기지 건설을 위해 토지소유권을 제한하거나 수용하려 하는 경우 이러한 간섭의 배제를 국가에 대하여 요구하는 권리다.

또한 평화적 생존권은 타국에 의해 전쟁위험에 처할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거부할 대국제적인 방어권이기도 하다. 평택에 미군기지가 확장 이전되면서 평택 주민들 사이에서는 평택 미군기지가 중국 등 외국을 염두에 둔 신속기동군 기지로 사용될 것을 우려하고 그렇게 되면 우리 의사와 관계없이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휩쓸리게 될 위험성이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평화적 생존권의 침해라고 항의하고 있다.

평화로운 생존은 모든 인권의 출발점이라는 '공지의 사실'이 평택기지반대운동을 통해 다시금 환기되고 있는 4월이다.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 제1호(2006년 4월 26일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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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市場主義의 폐기가 고등교육의 살 길

2006년 05월 16일   박정원 상지대 이메일 보내기

교육은 일반 상품과는 달라서 그 공급과 수요를 시장에 맡길 때 ‘시장의 실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준)공공재이다. 따라서 “교육을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밀턴?프리드먼 등 교육시장주의자들의 주장은 미국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으며, 시장경제체제의 발상지인 영국을 포함하여 세계 어느 국가도 교육을 시장에 일임하는 정책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들은 물론 캐나다 호주 등 대부분의 교육선진국에서는 교육을 국가가 거의 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교육, 특히 고등교육은 대부분 시장에 의존하고 있어 고등교육의 시장방치도(?)가 가장 높은 실정이다. 다음 몇 가지 지표로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사립대학의 비중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고등교육부문에서 사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77.4%로서 OECD 평균 10.9%의 7배가 넘으며, 고등교육부문에서 사적공급이 공적공급을 압도하고 있다(<표 1> 참조). 영리기관화한 사학도 상당히 많아, 시장주의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둘째,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가장 낮으며 사적부담의 비중이 가장 높다.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지원비중이 15%에 지나지 않아 OECD 평균 78.1%의 1/5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 대신 민간부담은 81.5%로서 고등교육비의 대부분을 학생개인이 부담하고 있다. 그 결과, OECD평균 대학생1인당 공공부담 공교육비 수준이 1,042만원에 이르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그 1/10에도 미치지 못하는 90만1천원에 불과하다(<표 2> 참조). 이런 어처구니없는 재정지원으로 우리나라의 대학이 운영되고 있다.


셋째, 국민소득대비 민간부담 수업료수준이 세계최고 수준이다.
소득수준 대비 등록금수준이 가장 높다. 미국대학의 수업료가 더 높다고 하지만, 2004년 현재 미국의 일인당 GDP가 $39,700.인 상태에서 수업료와 기숙사비를 포함한 공립대학의 등록금은 평균 $13,833.이고, 사립평균은 $29,500.이다. 같은 해, 우리나라의 일인당 GDP는 $14,100.로 집계되고 있는데, 사립대학의 등록금은 연간 650만원이 넘고 국공립대학은 350만원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미국처럼 숙식비 등을 포함한다면 우리나라의 소득대비 등록금수준은 미국보다 결코 낮지 않다.


넷째, 대학교육에서 사교육비 부담이 엄청나게 높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생 가운데 55%가 취업을 위해 사교육을 받고 있으며, 그 비용으로 일인당 연평균 188만원을 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YTN News, 2006 3. 22). 대학생들이 취업과 진학 등의 목적으로 사교육비를 투입하는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현상이다.


다섯째, 저소득층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거의 없다.
저소득층의 대학교육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없는 거의 유일한 국가이다. 무상교육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유럽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도, 올해까지 수업료를 선불로 받는 영국의 대학생들 가운데 43%는 저소득층 지원규정에 따라 수업료를 전혀 부담하지 않고 대학에 다니고 있다. 또한 세계 각국의 장학금들이 대부분 소득을 기준으로 지급되는 need base이며 성적을 기준으로 지급되는 merit base 장학금이 평균 20% 정도에 그치는 반면,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장학금이 성적기준으로 지급되고 있다. 


여섯째, 전문대학원 설립을 통해 교육시장을 계속 확장하고 있다.
의학전문대학원, 약학전문대학원 설립에 이어 법학전문대학원도 4월중에 관련 법률이 통과될 예정으로 있으며, 이후 물류전문대학원 및 IT전문대학원 등도 속속 설립될 예정이다. 일년 수업료가 2천만원대에 이르는 이들 전문대학원의 도입으로 교육의 시장화가 가속화되면서 저소득계층출신의 전문직 진출은 사실상 봉쇄될 것이다.


일곱째, 국립대학의 법인화와 회계제도 통합을 통한 등록금 인상이 추진되고 있다.


국립대학의 법인화 그 자체가 교육민영화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교육비부담을 학생에게 전가시키고 운영책임을 각 대학에 넘기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교육부의 한 모임에서 “경쟁력 있는 대학부터 법인화를 실시하겠으며, 서울대의 경우 (법인화 후)등록금을 사립대 수준으로 높이면 재정상태가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한국일보, 2005. 9. 26).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교육시장주의 정책이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특수한 환경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질곡에서 벗어나 우리의 고등교육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바로 고등교육의 공공성 강화를 통한 시장주의정책의 폐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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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s 2006-05-17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맞는 말예요. 의무교육 과정은 아니지만 학자금 대출 상환 압박에 시달리는 입장에서, 더욱 공감!

balmas 2006-05-17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정말 ... 끄덕끄덕.

퍼그 2006-05-18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퍼갈게요ㅠ / 처음 뵙네요, 발마스님.^^ 맨날 눈팅만 하다가 오늘은 용기를 내어 이렇게, 퍼갑니다.[ㅋㅋ] 앞으로도 자주 올게요~

balmas 2006-05-18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세요. 반갑습니다. ^-^
 
 전출처 : 라주미힌 > 영원히 돌이킬 수 없으리 작전명 ‘여명의 황새울’

▣ 평택=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그날 저녁, 대추리 주민 엄팔복(70)씨가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초등학교 정문을 쇠사슬로 칭칭 걸어잠갔다. 그는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50년 전 이곳 대추리로 이사왔다. 노인은 “이래 봬도 젊은 놈들 서너 명은 끄떡없다”고 말했지만, 눈은 불안으로 충혈돼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 부친과 고생해 땅을 많이 사 모았지만, 1970년대 평택을 휘몰아친 대규모 토지 분쟁인 ‘동백흥농계’ 사건에 휘말려 가진 것을 모두 잃었다. 그는 “정말 내일 군대가 오느냐”고 물었다. 기자는 대답할 수 없었다.

최후통첩, 15시간의 고민

5월3일, 저녁 어스름을 타고 전국의 노동자·농민·학생·평화 활동가들이 대추초등학교로 몰려들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1천여 명의 시민들은 이날 밤 10시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여 ‘평화의 땅 사수 결의대회’에 참가해 “야만적인 행정대집행을 멈추라”고 외쳤다.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이 “노무현 당신! 누구 덕에 대통령이 됐는지 생각해보라”고 외쳤고, 방송 3사 기자들이 그 장면을 배경 삼아 뉴스를 내보내기 위해 초등학교 앞에서 자리 다툼을 벌였다. 학교 앞에 모인 학생들은 <농민가> <반전반핵가> <님을 위한 행진곡> 등을 부르며 밤을 새웠다.


△ 5월4일 대추초등학교는 지옥이었다. 그들은 총만 안 들었을 뿐 1980년 5월 광주에 투입된 특공부대와 다를 것이 없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초등학교를 찾은 많은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며 쓰려졌다(사진: <시민의 신문> 양계탁 기자).

김택균 ‘미군기지 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우리도 싸우고 싶진 않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침탈이 시작되기 6일 전에 주민 대책위 쪽에 대화 제의를 해왔다. 국방부는 주민들과 두 번의 만남 끝에 “농사를 중지하고, 국방부의 기지 건설사업에 협조하지 않으면 대화의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최후 통첩을 해왔다. 그들의 최후 통첩 날짜는 5월1일 저녁 9시였고, “회신을 해달라”는 날짜는 다음날 낮 12시였다. 그 15시간 동안 주민들의 머릿속을 오갔을 비참함을 기자는 헤아리지 못한다. 주민들은 “국방부와 싸우겠다”고 결심했다. 대추리 노인들은 이날 오후 1시 대추리 노인회관 2층에서 주민 총회를 열었다. 주민 65명이 종이를 찢어 무기명 투표를 벌였다. “끝까지 싸우자”는 주민이 54명, “싸우지 말자”는 주민이 9명, 무효표가 2표였다. 그로부터 3시간이 지난 오후 4시 문정현 신부는 초등학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어코 올 날이 왔다”며 “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는 “5월4일 새벽에 국방부와 경찰의 침탈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경찰의 애초 작전 개시 시간은 ‘새벽 4시30분’이었다. 경찰은 안전 사고를 걱정해 일정을 늦췄다. 경찰은 새벽 5시께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정부는 이날 ‘작전’을 위해 경찰 110개 중대 1만1500명, 수도군단·700특공연대 2개 연대 2800여 명, 용역업체 직원 600명을 동원했다. 작전명은 ‘여명의 황새울’이었다.


△ 젊은 학생들은 대추초등학교 2층 교실에 누워 “한반도를 미국의 군사기지로 만들려는 기지 확장을 백지화하라”고 외쳤다. 그들은 경찰에 끌려 하나씩 경찰서로 연행돼갔다.(사진/한겨레 김경호 기자)

첫 충돌은 대추초등학교 정문 앞에 뚫린 미군부대 쪽문에서 시작됐다.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학생들은 쪽문 앞에 차를 대놓고 경찰의 침탈을 막았다. 경찰이 방패로 사람들을 찍어누르며 맹렬히 돌진했다.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아침’의 이빨이 깨졌고, 울산에서 올라온 노동자 이상수(36)씨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부러졌다. 최철호(31)씨는 오른쪽 눈밑, 전남대 강아무개(26)씨는 경찰이 던진 돌에 이마를 정통으로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순식간에 스무 명 넘는 시민들이 다쳤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그 광경을 지켜보며 “20년 전과 어쩌면 저렇게 달라진 게 없냐”며 가슴을 쳤다. 마을 노인들은 “젊은이들을 때리지 말라”고 외쳤지만, 호소가 폭력을 막을 순 없었다. 경찰은 기자들의 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옥의 1층, 학생들이 피 흘리다

시민들을 몰아낸 뒤 경찰은 확성기를 통해 “대추분교를 점거하고 경찰의 출입을 방해하는 것은 엄연한 공무집행 방해”라고 말했다. 그 사이 저 멀리 도두리 벌판에는 국방부가 병력 2800여 명(보병 2천여 명·공병 600여 명·헌병 150여 명·의무병 60여 명 등)과 용역직원 700여 명을 투입해 주민들의 농사를 막기 위한 철조망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군대는 보트를 타고 안성천을 건넜고, UH-60 헬기에 철조망을 매달아 전달했다. 시민들을 밀어낸 경찰 1만여 명은 초등학교 주변을 둘러싼 채 빵과 우유로 허기를 달랬다.

국방부는 주민들과의 대화에서 “미군기지 이전사업이 한-미 간의 합의 사항이고, 국회 비준 동의를 받은 합법적인 것”이라고 앵무새처럼 되뇌어왔다. 그 말에 토를 달긴 힘들다. 그렇다면 국방부는 미국을 상대로 얼마나 훌륭한 협상을 했을까. 미국은 2002년 한-미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서 대추리 땅 24만 평을 달라고 했다가 2003년 4월 “해외주둔미군 재배치계획(GPR)을 추진 중”이라며 기지 제공 면적을 늘려달라고 요구했다. 애초 합의안은 312만 평이었다. 이후 미국은 합의를 일방적으로 깨뜨리고 땅 30만 평을 추가로 요구했다. 상식 밖의 행동이었지만 미국의 요구는 관철됐고, 용산 미군기지 이전 비용 모두는 우리 정부가 떠안게 됐다. 언론들은 “협상이 잘못됐다”고 대서특필했지만, 국방부는 말이 없었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5월3일 오후 5시 기자회견을 자청해 “팽성 대책위 주요 핵심간부들의 평균 보상금은 19억2천만원에 이르는 등 사실상 백만장자”라고 말했다.


빵을 다 먹은 경찰들이 곤봉과 방패를 들고 일어섰다. 그들은 초등학교 사방을 포위하고 서서히 거리를 좁혀왔다. 침탈은 아침 9시15분에 시작됐다. 학생·노동자·농민들이 대나무 막대기를 휘두르며 경찰에 저항했다. 그들의 막대기는 경찰의 곤봉과 방패를 당해내지 못했다. 저항은 쉽게 진압됐다. 경찰은 충돌 5분 만에 시민들의 방어망을 뚫고 초등학교 운동장을 접수했다. 학생과 노동자들은 개떼처럼 쫓겨나 초등학교 건물 안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아비규환이었다. 경찰들은 학생·노동자·평화활동가 600여 명이 몰려 있는 대추초등학교 건물 안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젊은 학생들이 방패에 머리를 찍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누군가 “여기 학생 손가락이 잘라졌다”고 외쳤다. 그는 경찰의 발길질 세례를 받으며 학교 밖으로 긴급 후송됐다. 경찰은 1층 복도 왼쪽 벽 합판을 방패로 때려 부수고 학교 안으로 난입했다. 안경을 쓴 학생 한 명이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며 “잘못했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를 둘러싸고 경찰의 발길질이 이어졌다.

옮겨간 아파트는 관리비만 30만원

경찰은 저항 능력을 잃은 학생들에게 철제 의자를 휘둘렀다. 보다 못한 기자들이 전경을 막아섰다. 경찰들은 기자들을 향해 방패를 휘둘렀다. 국가인권위원회 직원이 전경을 제지하러 다가섰지만, 경찰들은 “지금 나를 협박하냐”며 인권위 직원을 곤봉으로 위협했다. 경찰 간부들은 전경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들은 대추초등학교 접수를 위해 전경들의 분노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현장을 취재하던 일본인 모리 기쿠코(29)씨가 “일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박성호 <시민의 신문> 기자가 경찰 간부에게 “부상자가 있으니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말했지만, “자기네들이 알아서 할 것”이라는 답변을 듣고 물러났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쳐 쓰러졌는지 일일이 세지 못한다. 학생 400여 명이 경찰에 쫓겨 대추초등학교 2층으로 피신했다. 학생들은 책상으로 바리케이드를 쳤다.


김지태 대추리 이장은 “국방부가 자기 나라 국민들을 이렇게 다룰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국민들을 납득시키지 못한 정부의 공권력 행사를 지켜보는 일은 난감했다. 주민들이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모임을 만든 것은 2003년 7월이었고, 촛불집회가 시작된 것은 2004년 9월1일이다. 국방부가 주민들을 설득하고자 했다면, 시간은 부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3년 가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군대를 투입해 자국민들을 몰아세웠다. 사태를 이렇게 악화시킨 것은 국방부의 태만이거나, 무능력이거나, 업무 방기거나 그 모두를 합한 것이다. 국방부는 정책 실패의 책임을, 신념을 좇아 초등학교로 몰려든 젊은이들의 육신에 전가했다. 젊은이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보상을 받고 마을을 떠난 주민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이날 상황을 지켜봤다. 삶은 그들에게도 고난의 연속이다. 대추리에 살던 ‘이슬이네’ 할머니(65)는 국방부가 준 보상금을 곶감 빼내듯 쓰며 살고 있다. 그는 낡은 집 한 채를 보상받아, 1남 4녀 자식들에게 모두 빼앗겨버렸다. 그는 전세 6500만원을 주고 평택 객사리 우미아파트에 산다. 전세돈 가운데 5천만원은 국방부가 무이자로 융자해준 빚이다. 그는 “전세 자금을 그냥 주는 것으로 알았는데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대추리에서는 내 한몫하면서 편히 사는데, 여기서는 매달 관리비만 30만원이 나오니 어찌 살아요!” 정부는 농사짓는 주민들을 위해 충남 서산 간척지에 땅 150만 평을 준비했지만, 주민들의 호응은 높지 않다. 대추리 이장을 16년 동안 지낸 임정석(64)씨는 “그곳 땅은 척박하고 너무 멀어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직업을 잃은 농부들에게 일자리를 알아봐주겠다고 말했지만, 직업을 얻은 사람은 2명에 불과하다.

토끼몰이가 끝난 뒤 점심시간이 되자 경찰들은 초등학교 곳곳에 마련된 그늘을 찾아 밥을 먹었다. 냉동 밥차가 찾아와 경찰들에게 새미도시락·지리산천년수·오란씨가 담긴 상자를 내왔다. 전경들은 방패를 무릎에 얹어 도시락에 담긴 고추장·김치·시금치·풋고추·미역국·잡채·새우맛살튀김·방울토마토 두 알을 먹었다. 김기옥(37)씨는 노인정에서 하루 종일 쌀을 씻었다. 그는 “내가 할 일은 이것밖에 없다”며 하루 종일 울며 쌀을 씻었다. 그는 아침에는 김을 싸 주먹밥을 만들었고, 점심 때는 콩나물 비빔밥을 만들어 봉지에 담아 학생들에게 건넸다. 그는 중매 반 연애 반으로 대추리 새마을지도자 신종원씨와 결혼했다. 그는 ‘평화바람’ 활동가들과 솔부엉이 방송국의 아나운서를 맡아 재치 있는 입담을 과시했다. 그는 “처음에는 싸우는 게 두려웠지만, 많은 사람들이 옆에서 도와줘 힘든 줄 모르고 지금까지 왔다”고 말했다. 사복 경찰들이 다가와 김씨가 만든 주먹밥을 먹으며 전경들을 지휘했다.

“오늘 물러서면 내일 미군 땅이 되잖아요”

학생들이 밀려난 초등학교에서 용역업체 직원들이 포클레인을 몰아 학교 주변에 있던 콘크리트 이승복상·사자상·은행나무들을 뽑아냈다. 김금순(72) 할머니는 흙바닥에 주저앉아 “억울해서 못 산다. 당신들은 내 맘을 모른다”며 울었다. 학교 소사였던 할머니의 죽은 남편이 뽑힌 나무를 심고 평생 가꿔왔다. 그는 1968년 대추리로 이사와 11년 동안 남의 집 머슴을 살았다. 그의 남편은 객사리 부용초등학교로 임지가 바뀌어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다 사고로 숨을 거뒀다. “한창 저기할 땐 촛불집회하고 와서 아저씨 환갑 때 찍은 사진 보고 나 혼자 그러는겨. 여보 나 좀 데려가. 나 좀 데려가. 혼자 드러누워 있으면 뭐혀. 밤은 길고. 난 사람들 다 나가도 젤 끝까지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세상에 어디 가 못 살아.”


△ 사람들은 경찰의 안면 공격에 주로 얼굴을 많이 다쳤다. 이마와 얼굴이 찢어져 굵은 피를 뚝뚝 흘리는 사람들의 수를 세기 힘들었다.

오후 1시가 되자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과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이 대추초등학교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선 문정현 신부 등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최후 농성을 하고 있었다. 2층에 갇힌 학생들은 초코파이와 생수를 나눠마시며 ‘최후의 일전’을 준비했다. 공주교대에서 온 한 학생은 “곤봉 들고 쳐들어오는 전경들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약해져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가 여기서 물러서면 내일 이곳은 미군의 땅이 되잖아요.” 학생 대표들은 “오늘 연행되면 절대 묵비권을 행사하자”고 결의했다.

밥을 다 먹은 전경들이 2차 작전에 돌입했다. 경찰은 깨진 초등학교 창문을 통해 물대포를 발사하며 건물 난입을 시작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학생들의 저항은 1분이 못 돼 쉽게 진압됐다. 경찰들은 학생들을 하나하나 잡아 끌어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김인순(71) 할머니가 경찰들에게 달려들어 “저 애들이 무슨 죄가 있냐”며 울었다. 저 멀리 안성천 쪽으로 노을이 지고, 문정현 신부 등 옥상에서 농성 중인 사람들은 “잡혀간 시민들을 불구속한다”는 조건으로 오후 6시께 내려왔다. 신부가 건물을 떠나자 포클레인이 달려들어 초등학교 건물을 작살냈다. 범대위는 이날 경찰의 강제 침탈로 524명이 연행되고, 200여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고 밝혔다.

싸움은 이것으로 끝났을까. 주민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아직 끝이 아니다”고 말했다. 범대위는 “군사보호시설 구역 지정을 인정할 수 없다”며 불복종 운동을 벌여나가기로 했다. 주민들은 노인정 옆에 마련된 평화예술공원에서 610일째 계속된 촛불을 꺼뜨리지 않고 있다. 김지태 대추리 이장은 범대위 홈페이지(www.antigizi.or.kr)에 노무현 대통령에게 쓰는 편지를 띄워 “이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당신, 이제 치유의 길은 없습니다.


△  그들은 여의도의 3배가 넘는 평택 들판에 29km의 철조망을 세웠다.

더 이상 조롱하지 말고, 그리고 더 이상 고통 주지 말고 더 이상 기지 이전문제 지연되지 않게 모두를 죽이고 당신 뜻을 이루십시오”라고 적었다. 이제 대화의 가능성은 사라졌다. 국방부는 주민들에게 6월30일까지 집을 비우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대추초등학교에서 그랬듯,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집을 강제로 허물고 주민들을 길 밖으로 내쫓을 것이다.

마지막 마을 잔치의 아름다운 모습들

5월3일 대추초등학교에서 열린 마지막 촛불집회에서 주민들은 마지막이 될지 모를 마을 잔치를 열었다. 대추리로 이사온 지킴이들이 모여 만든 ‘대추리 중창단’ 멤버 미희·재연·민진씨는 시민단체 활동가 ‘돕헤드’가 만든 노래 <평화가 무엇이냐>를 불렀다. 노래는 2004년 5월29일 평택 평화축제 때 문정현 신부의 발언 내용을 곡으로 쓴 것이다.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 복직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맹꽁이·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더 이상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 5월4일 평택 대추리, 도두리 들판에 들어선 군인들은 철조망을 쳐 농민들의 출입을 막았다.

노래를 들으며 시민단체 활동가 차미경 ‘아시아의 친구들’ 대표가 아이를 안고 610일째 촛불 행사를 알리는 펼침막 앞에서 춤을 췄고, 도두2리 이상열 이장이 “한 번 더”를 외쳤다. “평생 죽도록 알만 했다”는 이민강(67) 아저씨가 ‘평화 그 먼 길 가다’라고 쓰인 펼침막에 기대어 졸며 박수를 쳤다. 610일 동안 계속된,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아름다운 하루가 저물었다.


[들이 운다]마지막으로 학교 한번 본다는데…

이놈들아 우리가 다 돈 내서 지은 겨, 왜 못 들어가게 해?

▣ 황필순(76)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69

포클레인이 대추초등학교를 부수기 시작했을 때 황필순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보고 싶다며 학교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경찰은 할머니를 막았고, 방패에 가로막힌 할머니는 가슴을 치며 눈물을 쏟아냈다.

부수기 전에 들어가서 한 번 보고 나온다는데 왜 못 들어가게 혀. 사람이 그래도 인정이 있으면 내가 잠깐 들어가서 보고 나온다는데 뵈어줄 수도 있는 거 아니여? 건물 부수기 전에 내 너무 아까우니께 얼굴이라도, 건물이라도 잠깐 보고 나온다고 했어. 그런데 이 염병할 새끼들이 못 들어가게 하는겨. 그러니 내가 얼마나 분통 터져. 아이고. 너무너무 억울혀. 아이구 이놈들아. 너희 사는 집을 때려부수면 좋겠냐. 이게 무슨 일이여. 청천벽력이지. 너희놈들은 눈물도 없냐. 내가 저 건물을 한 번 쳐다본다는데 왜 못 보게 혀. 왜 못 보게 혀. 왜.


나는 지금 80살이 다 됐어도 이런 꼴은 생전 처음이야. 내 정신으로 6·25사변을 겪었어도 이런 일은 생전 처음이여. 학교 짓는 것도 냈지, 노인정 짓는 것도 냈지. 다 대추리 사람들이 돈 내 가지고 지은 겨. 대추리 사람들이 얼마나 성실하게 살았는디. 그런데 지금 이 지랄을 하니. 아이고 어머니. 아이고 어머니. 우리 시어머니가 맨날 우리 며느리 같은 것도 없다고 그랬는데. 내가 점심도 거르고 일해서 모았는데. 한 끼라도 아껴가며 땅 사려고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디. 너무 아까워서 어떡해. 이놈들아. 자식들 파릇파릇 자랄 적에 목숨 자르는 거랑 똑같은 거여. 저 나무에서 가을에 은행이 얼마나 많이 쏟아지는데. 왜 나무를 저놈들이 죄 자르고 지랄이여. 가슴이 뛰어서 못 살겠어. 경철 할아버지가 옛날 이 학교 소사 볼 적에 나무 다 심은 겨. 얼매나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는디. 저 나무들 다 심느라고 얼마나 애를 썼는디. 말도 못해. 세상에 대추리가 이렇게 될 줄은 누가 알았어.

우리 큰아들은 계성국민학교 다니고 그 밑에 애들은 다 이 학교 다녔어. 우리 작은아들이 2회 졸업생이여. 내가 애들 어떻게 가르쳤는디. 농촌에 살아도 애들 가르치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디. 나는 못 배운 한으로. 나는 초등학교도 못 배웠어. 내가 못 배운 한으로 글을 제대로 못 봐서 속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어. 이제 다 늙었으니께 그만이지만 젊어서는 못 배운 게 얼마나 한이 되고 분통 터지는지 알아. 이 우라질 놈들아. 아이구 하느님도 무심하지. 설마 설마 했지. 내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 강제집행을 한대두 저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 아이고 분해여. 강도 잡으랬지 누가 사람 잡으랬어. 이놈들아, 야 이놈들아. 우리들은 다 한이 맺혀서 이러는 겨. 이 개 같은 놈들아.

*인터뷰·사진 사회진보연대 활동가 진재연



국방부와 대추리 주민, 어떻게 생각이 다른가?

#평택기지 확장 문제

국방부=국가 안보와 직결되고 한-미 간 협상이 요구되는 사업 성격상 국가 간 협의 완료 → 국회 비준 동의 → 주민 협의 순으로 진행

주민과 범대위=사전에 주민 동의 없이 국방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 법적 절차만 밟고 두세 차례씩 쫓겨난 주민들을 내쫓음

#보상금 및 대체농지 문제

국방부=토지 감정평가 평당 15만~18만원, 서산 간척지 57가구 83만 평 제공, 서산 땅은 옥토

주민(협의·미협의 포함)=대추리 주변 평균 농짓값 시세인 20만원 이상, 3시간 거리인 충남이 아니라 평택 인근 경기도 내에 대토. 서산은 대토 규정상으로도 편법이며 사실상의 자갈밭, 노인들은 농사 포기에 따른 생계대책 마련 필요

#이주단지 문제

국방부=평택 3곳에 올해 말 택지 공급 예정, 국제화 계획지구 내에 택지 공급

주민들(협의·미협의 포함)=국방부와 평택시 다툼으로 부지 매수조차 안 돼, 부지에 따라 입주 연도도 제각각 다르고, 협의매수에 따른 보상비용으로는 이주용지와 주택 건축 비용 자부담 어려워

#반대 주민과 대화 노력

국방부=찬성·반대 주민과 45회 간담회, 150차례 이상 정부 대책 설명

범대위·주민=반대 주민과 공식적 대화는 지난 4월30일 단 1회뿐. 협의매수에 응한 주민과 일부 반대 주민들을 사적으로 만난 것을 대화로 호도하는 등 절차적 정당성 확보에만 몰두

#영농행위 문제

국방부=법적 절차에 따라 국방부 소유, 일체 행위 불법, 영농행위 허용시 미국 쪽으로부터 기지이전 사업 추진 의지 의심받아

주민·범대위=토지 소유권 이전 불인정, 경작 보상금 수령한 적 없는 만큼 영농행위 정당

#평택 미군기지 종합실시계획(MP)과 미군 배치 정당성 문제

국방부=종합실시계획 6월에서 9월로 늦춰짐. 그러나 9월부터 본격 공사를 위해 이전에 측량과 지반조사 등 준비작업해야. 재배치 정당성 문제 제기는 기지 이전을 연기하려는 속셈이며 평택으로 이전하는 용산 미군기지는 범대위에서도 용산 철수를 주장한 사안으로 북한 견제 의도

범대위=2008년까지 미군 용산기지 평택 이전 물리적으로 불가능, 주한미군 쪽의 지상군 추가

감축 가능성이 제기된 만큼 평택 미군기지 확장 규모의 적정성 논의와 미군 재배치는 북한의 남침 저지가 아니라 미군의 동북아 패권을 유지하고 한반도 전쟁 위험 높이는 것



“오히려 홀가분하다”

질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승리라고 말하는 김지태 이장

▣ 평택=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대추분교 행정대집행 이튿날인 5월5일. 전국의 시민사회 단체와 학생들 1500명이 철책선을 뚫고 대추리 마을로 몰려들었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김지태(44) 이장은 마을에 나가 이들을 반길 수 없었다. 그는 이날 마을 모처에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쓰는 편지’를 쓰고 취재진과 만났다.

대추분교 행정대집행 때는 어디에 있었나.

=그때도 나가지도 못하고 오늘처럼 텔레비전과 인터넷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부르짖는 정부가 어떻게 그렇게 폭력적일 수 있나?

그렇게 하루 만에 강압적으로 해치울 것이라고 예상했나.

=이번은 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민들에게 얘기했다. 예상한 결과였지만 농토까지 쑥대밭으로 만들 줄은 몰랐다. 오히려 홀가분하다. 농토가 쓸모없게 됐으니, 이제는 농사지으랴 싸우랴 두 일 하느라 바쁘지 않을 것이다.

한나절 만에 무너진 학교 건물을 보고 충격이 컸을 텐데. 주민들의 동요는 없나.

=어제 행정대집행이 끝난 뒤 몇몇 주민을 만났다. 다들 힘이 빠져 있더라. 심리적 공황 상태다. 주민들의 얼굴에는 싸움에 대한 의지보다는 증오감이 읽힌다.

국방부는 충분한 보상금을 주고 이주 지원을 해주겠다는 입장인데.

=우리는 정부 정책 결정 과정이 잘못됐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2003~2004년 기지 이전 문제로 미국과 협상할 때 당사자인 우리가 계속 반대했지만,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정부의 행동이 정당했다면 기꺼이 마을을 떠나겠다. 주한미군을 인정한다고 치자. 주한미군은 북한의 위협 때문에 있는 것 아니냐? 그럼 휴전선 근처에 있어야지 왜 이곳으로 오겠다는 건가? 그러나 국방부나 언론은 그런 얘기는 듣지 않고 보상금 이야기만 한다. 우리는 보상금을 바라지 않는다. 보상금을 원했다면, 위장전입 세대가 나타났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마을엔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위장전입 세대가 있을 때 쫓아내기까지 했다.

앞으로 어떻게 싸울 것인가. 곧 대추리 마을로도 침탈이 들어올 텐데.

=물러설 데가 어디 있나. 마을과 집을 때려부수면 끝나겠지. 역사는 그렇게 정리될 것이다. 대응책은 없다. 당하는 수밖에. 우리가 억울해서 무기를 드는 순간 군인들은 더 큰 무기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 몸뚱이 하나하나가 무기다. 우리는 그렇게 지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승리할 것이다.



부상자 통계, 소가 웃을 일

어처구니 없는 경찰쪽 주장, 범대위는 “시민 200명 부상” 밝혀

5월4일 대추분교 유혈진압의 당사자인 경찰이 내놓은 부상자 통계를 보고 처음 나온 것은 헛웃음이었다. 경기경찰청은 이날 무력 충돌로 경찰에서는 26명이 중상, 111명이 경상을 입었다고 밝혔고, 시위대에서는 7명이 중상을 입고 86명이 경상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그날 현장 상황을 봤던 사람이면 경찰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알게 된다. 온몸을 방어 용구로 중무장하고 방패와 곤봉을 든 1만 명이 넘는 훈련된 전경이, 방어구 없이 대나무 막대기를 손에 든 1천 명의 오합지졸을 상대로 그렇게 많이 부상을 당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경기경찰청 경비 파트 간부들은 단체로 시말서를 써야 한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도 5월5일 발표한 자료에서 “시민 쪽에서 200명 가까운 부상자가 났다”며 “경찰이 자의적으로 경찰 부상자만 높게 계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시민 부상자들은 방패와 돌에 의해 머리를 비롯해 얼굴을 다친 사람이 많아 이날 경찰의 진압이 얼마나 잔혹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대추초등학교 진압 현장을 관찰한 박순희 경찰 인권위원도 기독교방송(CBS) 라디오에 출연해 “많은 사람들이 곤봉에 머리가 터지고, 방패로 찍히는 바람에 코뼈가 내려앉고, 안면 부상을 무척 많이 당했다. 피바다였다”고 말했다. 그는 “인권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소리를 지르고 야단을 쳤다”며 “인권위원들이 보는 앞에서 이런 진압이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경찰은 여전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자세다. 경찰은 5월5일치 내부 보고서에서 “일부 언론에 경찰의 과잉 진압이 강조돼 보도됐지만 어린이날 연휴로 (부정적인) 관련 보도가 더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부정적인 보도를 최소화하기 위해 부상 전·의경이 인터넷에 직접 댓글을 달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마크 트웨인의 말대로 세상의 3대 거짓말은,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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