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숨은아이 > 청각장애인 노동자를 만나다

청각장애인 노동자를 만나다2004/11/04 15:51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 사람들이 바로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아마 자기 목소리를 듣지 못해서라고 생각해서일 게다. 소리를 듣지 못하므로,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그는 모를 게다. 

 

작년에도, 올해도 받아야 할 임금의 절반도 못받았단다.

 

그는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자기 말을 계속했고, 나는 이면지에 글을 써서 그에게 보여 주었다.

 

대표이사는 에쿠스를 몰고 다니면서, 대여섯명 정도 되는 노동자의 임금은 제때 주지 않았단다. 그러고도 별로 해결할 노력도 보여주지 않은 모양이다.

 

회사 재산이 없는 경우를 예로 들어 그에게 때에 따라서는 전액을 다 받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개인회사가 아니라 법인체인 경우, 대표이사의 개인 재산에 대해서까지 책임이 확장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개인회사처럼 운영하면서도 책임을 피하려고 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되고, 그럴 경우 법인격 남용이라는 주장과 입증으로 개인 재산까지 책임을 확장해 볼 수도 있지만, 사실상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므로, 따라서, 회사 재산이 없으면 밀린 임금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개인회사라고 하더라도 개인재산의 명의를 타인으로 변경해 두는 경우도 많아 어려운 점이 많다. 그걸 원상태로 돌리려면, 사해행위 취소 소송도 해야 하고, 강제집행을 피할 의도를 찾아내어 형사처벌 요구해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긴 시간 동안 맘대로 휘갈긴 내 글씨를 잘 알아 보는 그와 나의 대화는, 20여장 종이만을 흔적으로 남기고 끝났다.

 

경험으로 보면, 사용자들은 임금을 주지 않는 것을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거래처에서 대금 결제를 제대로 해 주지 않으면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도, 노동자가 제때 임금을 달라고 하면 어찌 네가 감히 나한테 그럴 수가 있냐거나, 기껏 일 시켜주었더니 배은망덕하다거나 하는 말도 곧잘 하는 것을 종종 본다. 특히, 외국인노동자에게는 심하다(미국 등 영어권 노동자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노동자는 임금이 곧 유일한 생활 기반이다. 그 임금은 병원비도 될 수 있고, 등록금도 될 수 있고, 당장 일용할 식량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임금을 제때 주지 않는 것이 왜 큰 문제가 아닐까 ?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 관념적으로 전제하는 민법체계에서야 일반적인 거래관계에서 발생한 채권채무관계를 직접적인 이유로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민법과 노동법은 그 존재 의의 자체가 다르다. 경제적 사회적 예속관계에 있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동법'(좋게 말해 보호법이지, 법 자체가 강자를 위해 태어난 것이기에 노동법 역시 강자의 최대 양보치를 정한 법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게다)에서는 임금을 주지 않으면 형사처벌을 하도록 되어 있지만, 사용자의 배째라는 소리 앞에서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

 

임금을 주지 않으면서도 회사를 운영할 생각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시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솔직하게 말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해서 노동자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노동자들도 주는 대로 받고 무조건 기다리지 말고, 그 이유와 이후 일어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 고민도 했으면 좋겠다. 더불어, 정부는 밀린 임금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도록 늘 관심을 가져야 하고, 특히 그 지급 요건도 완화해야 하겠다. 또한 법인을 개인 회사처럼 이용하고, 개인 재산도 다 빼돌리는 파렴치한 짓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로 판단하여, 엄벌을 해야 하겠다.

 

이랬으면 좋겠고, 저렇게 하면 된다고 말하기는 쉬워도, 현실적으로는 너무 어려우니, 답답할 때가 많다.

 

더군다나 어제 온 그는 입을 통해 나오는 말에 실린 타인의 감정을 완전히 읽을 수 없으니, 더 힘들지 않을까 싶어 걱정이 많이 들지만, 모쪼록 그가 원하는 대로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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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좌파’는 노리개가 아니다

‘좌파’는 노리개가 아니다

이광호 <진보정치〉 편집위원장  


보수 정파들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사이비 좌파 논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좌파’ 그 자신이다. 피해자는 또 있다. 그것은 ‘진실’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최근 국회 연설을 통해 여권의 개혁 법안들이 좌파적이며 사회주의적이라고 공격했다. 극우와 수구세력들은 현 정권을 그렇게 공격하고 있다. 물론 이는 거짓말이다.
이런 거짓 싸움이 처음은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발호하는 이 색깔론의 약발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논쟁이 지속되면서 우리 사회에서 ‘좌파, 사회주의’는 용납될 수 없는 ‘악’이 되어버린다. 이는 특정 정파의 피해를 넘어서 사회 발전을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점에서 피해자는 사회 전체로 확대된다.

사이비 좌파 논쟁 와중에 급기야 여당 대표는 “우리 안에 좌파가 있다면 고발하라. 고문당해 주겠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수준 이하의 발언이다. 좌파는 고발 대상이 아니며 어느 누구도 고문 대상이 될 수 없다.

열린우리당은 스스로 고백하듯 ‘중도우파’ 정당이다. 극우적 색채를 포함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을 좌파로 몰아세우며 자신들을 보수 세력의 정치적 대표체로 행세하려 한다. 열린우리당의 386세대 의원들이 전경련 간부 앞에서 “우리는 철없는 좌파가 아니다”라며 자신들을 ‘성숙한 우파’로 봐달라고 사정할 때, 한나라당 의원은 그들을 주사파로 몰아친다. 오른쪽으로 심하게 삐딱한 우리 사회의 ‘슬픈 소극(笑劇)’이다.

행정수도 건설 특별법 위헌 결정 이전까지만 해도 정치권의 핵심 쟁점이었던 국가보안법 폐지는 민주주의의 지표일 뿐 좌우를 가르는 잣대가 될 수 없다. 좌파적 가치는 마르크스로부터 나오는 것도, 주체사상으로부터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 서민의 편에 서서 정책을 만들고 법을 만드는 데서 나온다. 보수 정당처럼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며 이는 진보정당의 몫이다.

혹자들은 좌우를 따지지 말고 민생과 국익을 먼저 생각하라고 일갈한다. 그러나 보수 정당 사이에서 민생과 국익에 관한 의미 있는 논쟁은 거의 불가능하다. 적어도 그 부분에 관한 한 그들 사이에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신용불량자 문제 등 민생의 핵심 현안에 대해 그들은 다른 정책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국익’을 위한 이라크 파병에는 한목소리다.

좌파를 제물로 삼는 비겁한 우파들의 허무한 논쟁을 넘어서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좌파적 가치와 그것을 구체화시킨 정책을 가지고 사회적 토론과 논쟁을 진행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그런 것들을 국회에 법안 형태로 내놓고 있다.

부유세 도입을 위한 사전 입법 성격을 가지고 있는 조세관련법 개정안, 2천만 명에 이르는, 비정규직과 그 가족들을 위한 노동관련 법안, 농민들 편에서 농협을 개혁하는 관련법 개정안 등, 그들의 눈으로 보면 정말로 ‘좌파적’인 법안들이 지금 국회 안에 수두룩하게 쌓여 있다.

전 국토의 기업도시화-경제특구화를 통해서 재벌에 토지수용권까지 헌납하고, 모든 월급쟁이의 비정규직화를 통해서 노동자들을 노예화하는 보수 정당들의 국가 경영 전략을 막아내는 것은 서민과 월급쟁이들의 시급한 당면 과제다.

이번 국회에서 정부 여당은 야당과 함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폭 양산하는 법을 만드는 데 합의할 것이며, 노무현 정권의 ‘뉴딜 정책’은 경기 부양이라는 이름으로 그 핵심적 내용은 보수 정당들의 합의를 기초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을 막아내기 위해 지금 노동자와 농민들이 힘든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최장집 교수는 노동자, 민중의 요구가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하는 보수 독점 정치구조를 한국민주주의의 중대한 결함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제 의회에 진출한 좌파정당이 이 결함을 고쳐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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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逆'의 횃불 든 전도사들...비전공자일 경우도 많아


전담번역의 세계

2004년 11월 08일   이은혜 기자 


▲전담번역은 때로 번역가의 한 생애를 건 저자와의 길고 지루한 대화다. 하지만 그런 내밀한 교감 속에서 진실한 번역의 언어가 탄생한다. 번역의 세계에서 길을 잃어버린 채 나오지 못하는 이들의 면면을 엿본다. © 

전담번역자는 한 저자의 책을 도맡다시피 해서 번역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알베르 까뮈 하면 김화영 교수, 베르나르 베르베르 하면 이세욱 씨 등이 떠오르듯, 전담번역이라는 키워드로 번역서의 세계를 엿볼 경우 우리는 번역문화에 깃든 어떤 새로운 풍경과 열정을 만나게 된다. 학술서의 경우 전공자가 전담번역자가 돼야 마땅하지만, 우리의 경우 비전공자가 순수하게 저자에 매혹돼 전담번역자로 깃발을 꽂을 경우도 많다. 학술서와 대중교양서로 나눠 전담번역자들의 면면과 특징, 해외사례 등을 살펴봤다. / 편집자주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프랑스인들이 접할 수 있었던 건 시인 보들레르 때문이었다. 파리에 가 온갖 정보를 수집해 번역할 정도로 그는 포에게 심취해 있었다. 앙드레 지드 역시 번역에 정력을 쏟았다. 세익스피어, 괴테, 타고르를 프랑스에 소개했던 게 그였다. 한국에선 ‘알베르 카뮈’ 하면 김화영 고려대 교수를 떠올릴 것이다. 카뮈 전집을 번역했는데, 정확한 미문으로 사랑받아왔다. 미셸 투르니에의 아름다운 지중해 문학을 접할 수 있는 것도 그의 덕이다. 이처럼 한 저자의 저서들을 꾸준히 번역하는 이른바 ‘전담번역’이 국내에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전담번역가가 된 사연들


서양철학전공자들 중 ‘전담번역가’의 길을 걷는 이들이 꽤 된다. 이기상 한국외대 교수(철학)는 하이데거 담당번역자로 꼽힌다. 1987년 ‘실존철학’을 첫 역서로 내놓은 후,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현상학의 근본문제들’에 이르기까지 10여권을 우리말로 옮겼다. “기존 번역들이 일본어판을 옮겨 왜곡이 심하다”라는 게 번역착수의 이유였다. 하이데거는 독일 일상용어로 ‘개념놀이’를 잘하는데, 이것을 일본식 한자로 맞바꾸면 하이데거는 반토막이 돼버린다.


이 교수는 하이데거의 핵심용어인 ‘Dasein’을 ‘현존재’가 아닌 ‘거기-있음’으로 옮겼다. 또 ‘본질-존재’는 ‘무엇-임’ 혹은 ‘무엇으로-있음’으로 바꿨다. 학부 때부터 독일에서 공부했기에 그는 독일어 뉘앙스를 살리는 데 좀더 정확할 수 있었다. 



에드문트 후설의 책 역시 까다롭긴 마찬가지다. 후설 전담번역자는 이종훈 춘천교대 교수(철학). 이 교수는 순수 국내파이어서 그런지 더욱 원전에 충실한 공부를 해왔다. 그런데 해외유학파들이 국내에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을 겉핥기식이나 2차 문헌에 의지해 소개하는 걸 보고, 번역을 결심하게 됐다. ‘현상학의 이념, 엄밀한 학으로서의 철학’에서 시작해 ‘시간의식’, ‘경험과 판단’, ‘데카르트적 성찰’까지 이어졌다. 지금은 ‘형식논리와 선험논리’ 등 두 권을 번역중이다. 하지만 그의 독주가 두드러지는 후설번역의 뒤를 누가 이어갈진 미지수다.



현대성의 명석한 해석자 장 보드리야르를 알린 건 배영달 경성대 교수(불문학)다. 1994년 ‘생산의 거울’을 내놓은 이래, ‘세계의 폭력’, ‘지옥의 힘’, ‘건축과 철학’, ‘테러리즘의 정신’ 등 보드리야르 후기 저서를 여러 권 소개했다. 보드리야르와 첫 인연을 맺은 건 출판사 의뢰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이후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배 교수는 “그의 급진적 사유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라며 앞으로도 ‘Cool memories’ 시리즈 등을 번역할 것이라 한다. 



한편, 한나 아렌트의 전담번역자는 둘이다. 홍원표 한국외대 교수(정치철학), 김선욱 숭실대 교수(윤리학)가 아렌트 연구자면서 번역자다. 홍원표 교수가 ‘정신의 삶 1’과 ‘혁명론’을, 김선욱 박사가 ‘칸트정치철학강의’를 각각 옮겼다. 두 사람은 현재 아렌트 전기와 저서를 번역중에 있다. 두 사람의 번역은 차이가 좀 있다. 예컨대 ‘공공영역’, ‘공론장’ 등 핵심단어가 달리 번역된다. “중요한 건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문장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홍원표 교수는 말한다. 어쨌든 역설과 반어법들이 많고, 또 서양철학 전반을 다루는 난해한 아렌트 사상의 전담번역자로 훗날 누가 꼽힐지는 두고 볼 일이다.


최근 빛보는 동양사상과 과학서



동양사상 쪽 번역도 활발하다. 가라타니 고진, 마루야마 마사오 등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사상가들. 김석근 연세대 교수(정치사상)는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충성과 반역’, ‘일본의 사상’ 등 마루야마의 책만 다섯 권 소개했다. 첫 번역을 시작한 1995년 당시는 국내 동양사상 연구기반이 매우 약했다. 그렇지만 김 교수가 마사오 책을 보니 연구방법론이나 시각 등 배울 것들이 꽤 있어 시작했다. “일본어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하고, 또 문헌들이 많이 나와 번역이 만만찮았다”라고 털어놓는데, 영역본을 참조하면서 그런 어려움을 해결했다고 한다. 곧 마사오의 ‘문명론의 개략을 읽다’도 내놓을 예정이다.



물리학 쪽에선 리처드 파인만의 책을 박병철 대진대 교수(물리학)가 열심히 번역중이다.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1’,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이야기’ 등이 그것으로 대우재단번역지원을 받은 게 계속 인연이 됐다. 그가 번역하면서 중점을 둔 건 두 가지다. 첫째, 파이만 책들은 강의를 옮겨놓은 것이라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구어체로 전달했다. 둘째, 파인만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다른 논의들로 점프하곤 하는데, 이런 부분엔 박 교수가 ‘슬쩍슬쩍’ 보충설명을 끼워 넣었다.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공자도 아닌데 전담번역?



전공자가 아닌데도, ‘어쩔 수 없는’ 사연으로 전담번역자가 된 경우도 있다. “더 이상 희망할 것이 없는 번역이 나왔다”라는 홍윤기 동국대 교수의 평을 받은 에른스트 블로흐 전집의 번역자 박설호 한신대 교수(독문학)가 그런 케이스. 마르크스주의적 비판과 메시아적 희망을 연결시킨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 5권을 10여년에 걸쳐 번역해 내놓은 건 ‘대단한’ 일이었다. 번역을 시작했던 건 ‘유토피아 문제’로 학위논문을 쓰던 중 유토피아사상의 ‘권위자’인 블로흐에 매력을 느껴서다. 1990년대 초에 착수해 올해에야 빛을 보게 됐는데 “하나하나 공부하면서 번역했다. 하루 9시간 투자해 고작 1페이지밖에 못 옮긴다”라고 비전공자로서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국내에 블로흐 전공자가 없고, 번역에 선뜻 나서지 않는다. 아직도 블로흐의 주저인 ‘주체와 객체’는 번역이 안됐는데, 박 교수는 “전공자가 좀 해줬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이런 사례는 우리 번역문화의 우울한 현주소다. 예컨대 자끄 라깡의 책도 영문학자에 의해 소개되기 시작했던 게 우리 현실이다. 배영달 교수는 “어문학자들이 철학서를 번역하는 게 특히 안타깝다”라고 지적한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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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1-09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같은 면에 난 같은 기사인데 이상하게 이 부분만 올라가지 않아서,

한글 문서로 옮겼다가 다시 올렸습니다.

릴케 현상 2004-11-09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이정우씨 글을 읽는데, 어느 사회학도가 프랑스철학이 김현류의 문학평론가들에 의해 처음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 말에 분개한 걸 봤어요. (저 같은)일반인들은 정말 그런 줄 알았는데^^

balmas 2004-11-09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분개할 것까지야 ... ^^

프랑스 철학이 그렇게 해서 대중화된 거야 사실이죠, 뭐.

로쟈 2004-11-09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드리야르 '전문가'의 번역이라?! 오늘의 넌센스라 할 만하네요. 그는 보드리야르의 '소설'을 번역한 걸까요?..
 

국내 대중교양서 전담번역의 풍경

직접 쓰는 기분으로…

학술서에 비해서 대중서들은 번역자가 누구인지 큰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렇지만 문학이나 인문학적 에세이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해외 저자의 문체와 삶을 잘 이해하는 전담번역가가 그 사람을 화젯거리로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작가의 매력에 빠져서 그 사람을 속속들이 소개하고 싶어하는 전담번역가들이 국내에도 꽤 여럿 있다.


소설 ‘개미’를 비롯해 ‘나무’, ‘뇌’ 등으로 국내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들은 모두 이세욱 씨가 번역했다. 우연히 베르베르의 책을 접하게 됐던 그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문학이며 문학시장과 문학에 대한 사유를 넓히는 데 많이 기여할 것”이란 생각에 출판사를 의뢰해서 번역을 시작했다. 첫 번역 때부터 그는 베르베르를 만나러 갈 정도로 열성적이었고, 책에 나오는 거리, 무대, 인물 등 작가가 느끼는 것은 모두 느끼기 위해 여행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읽었다. “마치 내가 쓴다는 기분으로” 그는 베르베르가 되어 번역하는 데 몰두해 한 권도 빠지지 않고 모조리 소개했다. 지금은 올 10월 출간된 ‘우리는 신’이란 3부작 번역에 착수했으며, 앞으로 3년간 이 작업을 할 예정이다. ‘하와이의 자식들’ 등 베르베르의 만화도 소설로 개작되고 있는데, 물론 이것도 이세욱 씨 몫이다.


시오노 나나미 만큼 관심을 모은 여류문필가도 없다. ‘로마인 이야기’를 위시해 수십권이 번역돼 나왔는데, 시오노 나나미의 전담번역가는 세 명이다. 한길사에서 먼저 시오노 나나미를 발굴했고, 이를 故 정도영 씨, 김석희 씨, 오정환 씨 세 번역가에게 맡긴 것. 정 씨는 ‘바다도시 이야기’를, 김 씨는 ‘로마인 이야기’를, 오 씨는 ‘나의 친구마키아벨리’ 등을 각각 맡게 됐다. 세 번역가 모두 시오노 나나미에게 완전히 매료됐다. 김 씨와 오 씨는 모두 “너무나 탁월한 작가다”라고 입을 모으면서,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계속해서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번역할 것이라 말한다. 김씨는 여태껏 ‘로마인 이야기’ 12권을 번역했는데, 향후 3년간은 나머지 3권 번역에 몰두할 것이라고 한다.


독일문학의 거장 슈테판 츠바이크도 많은 번역가들을 거느리지만 특히 안인희 씨를 첫손에 꼽을 만하다. 안 씨는 1995년 독일유학에서 우연히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집어 들었는데 지식인들의 광기어린 내면을 너무나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는 이 탁월한 복음술사에게 반해버렸다. “이미 여러권의 책을 번역해봤지만, 이 책을 옮기면서 처음으로 번역의 독특한 즐거움을 느꼈다”라는 게 그의 말이다. “베토벤의 전기를 쓴 로맹 롤랑의 전기를 쓴 츠바이크”는 매력덩어리였다. 그에게 숨가쁘게 말려들어간 안 씨는 그 외에도 ‘스코틀랜드의 여왕’,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등을 번역했다.


이것 말고도 모리스 르블랑 등 프랑스 추리 소설 분야에서 성귀수 씨가 전담번역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으며, 요시모토 바나나는 일본문학의 전문번역가로 명성을 굳힌 김난주 씨가 10여권을 독점하다시피 번역하고 있다. 무라카미 류는 양억관 씨가 주로 번역했는데, 김난주와 양억관은 일본문학을 맛깔스럽게 옮기는 양대 번역자로 명성을 누린다. 스페인의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가 마르케스를 비롯해 주요 작가들을 번역해온 송병선 울산대 교수는 작가들을 현지에서 작가들을 만나서 교유하고 수시로 메일을 주고받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전담번역가로 충분한 조명이 필요한 번역자다. 최근 돌풍을 일으킨 파울로 코엘료의 책은 불어 전문 번역가인 이상해 씨가 주목을 끈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2004 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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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4-11-09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번역자를 유심히 보는 편인데, 주로 과학서적 쪽 번역자들한테 관심이 많아요. 박병철 교수님(만나뵌 적은 없지만) 번역은 물리학 쪽에선 최고봉이라는 얘기를 들었고,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고 있는 김희봉 선생님도 아주 탁월하시거든요. '물리가 물렁물렁' 시리즈를 번역하신 이충호선생님도 끝내주는 번역가이시고... 반면에 생명과학 쪽 주로 번역하는 이한음씨 번역은, 관련분야 전문가다운 솜씨는 인정하지만 문장이 가끔 목에 걸려요.

일본어 소설 쪽에선 김난주씨가 워낙 탁월하니깐... 자기책 외국어번역본에 까다롭다는 요시모토 바나나도 만족스러워하고 있다더군요. 김난주씨랑 양억관씨는 부부 번역가로 유명하지만, 아무래도 김난주씨 쪽의 명성이 더 높지 않을까요.



얼마전 마루야마 마사오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이랑, 일본의 비판적 지성으로 꼽히는 후지따 쇼오조오의 '전체주의의 시대경험'을 읽었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영어체 일어체 번역체'라고들 하지만 실제로 일본의 저런 학자들이 쓴 책을 번역한 책에서는, 일본어의 독특한 표현을 제외하면, 목에 걸리는 어색한 문장들이 없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전반적인 우리나라와 일본의 학문 수준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해요. 마루야마 마사오도 그렇고 가라타니 고진도 그렇고, 이 사람들이 서양 학자들 글 인용해서 말하는 걸 보면 아주 자연스럽고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가 가거든요. '완전히 소화해서' 얘기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 번역돼 나오는 서양 책들은,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책 내용이 독창적이어서라기보다는 우리말로 적절한 개념을 찾지 못해서 이상하게 꼬아놨기 때문인 듯합니다. 저명한 과학자인 모씨가 그랬다죠. "전문용어를 써야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를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고요.



그것과 조금 다른 맥락에서 번역에 아쉬움을 느꼈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윤기선생이 번역한 조셉 캠벨의 '신화의 힘'을 읽을 때였어요. 이윤기 선생은 누가 뭐래도 훌륭한 번역자입니다만, 본인이 내용을 잘 안다고 자신했던 터인지, 글에서 캠벨보다 번역자가 더 부각이 되는 거예요. 설명하기 좀 애매하긴 하지만... 어떤 느낌이냐면, 번역자의 독특한 글투가 너무 많이 묻어난다는 것. 책은 굉장히 훌륭했고 번역도 그정도면 100점에 가깝지만 캠벨에 앞서 이윤기 냄새가 난다는 것은 좀 아쉬웠어요.



번역 얘기가 나와서 본의 아니게 주절거리게 되었네요.

릴케 현상 2004-11-09 0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혹한 글읽기'를 보니 이윤기님의 번역서에 유난히 잔혹하던데요

balmas 2004-11-09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허, 스트롱베리님, 이런 좋은 정보를 그냥 댓글에다 풀어버리시면 어떻게 해요???

마이 페이퍼라도 하나 쓰시지 ...



'잔혹한 글읽기'??

아하! 그 책이요 ...

저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는데, 그 분야의 전공자가 한 이야기이니,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겠죠. 이윤기님이 좀 오버하는 건 있죠.^^

딸기 2004-11-09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야겠어요. 페이퍼에 정리해봐야겠네요.
 

해외사례: 日本, 하이데거 전담번역자만 10명 넘어

2004년 11월 08일   이은혜 기자 이메일 보내기

국내와 달리, 해외학계에선 한 학자에 대한 ‘전담번역자’가 넘쳐날 정도로 많다. 하이데거의 주저 ‘존재와 시간’이 일본에는 무려 14종이 나와 있다. 미국에서는 2종에 그치고 있는데 이는 독일철학에 대한 양국의 ‘대접차이’ 때문이다. 미국에서 주로 활동해 명성을 얻은 프랑스 철학자인 데리다의 저서가 영미권에서 무려 70~80권이나 넘게 번역돼 있다는 점을 보면 그렇다. 데리다에 달려들어서 꾸준히 번역업적을 내놓는 학자들도 10여명이 넘어간다. 번역은 반역이고, 역자들 사이에서는 해석학적인 경쟁이다. 이런 문화 위에서 학문적 개념에 대한 토론이 일어날 수 있고 방향성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우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지 않다. 프랑스철학이든, 독일실존주의 철학이든 국내에 그 분야 권위자들은 몇 손가락 안에 꼽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전공자들 대부분이 근대 이전에 꽁꽁 묶여 있어서, 근대 이후의 철학자들은 번역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독특한 문화’도 한 몫 한다. 구연상 한국외대 강사(현상학)는 “선배교수가 번역한 것에 대해 후배교수들은 재번역하는 것을 꺼린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좀 오역이 있다 해도 그걸 굳이 지적하지 않는다는 게 한국의 관행이라는 것이다. 저작권 문제도 있다. 국내의 몇몇 특정 출판사들이 외국 유명출판사에서 나온 유명저자의 책을 수십권씩 독점계약을 해버리기 때문에 번역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동문선’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는데, 동문선 출판사의 출판예정도서목록을 한번 살펴본 사람이라면 로열티 선점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중소출판사 사장들은 민음사, 한길사 등 대형출판사들이 로열티 선점을 해놓고 몇 년이 지나도록 책을 안낸다면서 불만의 목소리를 높인다. 학자들은 기껏 혼자서 번역했다가 인쇄불가의 판정을 받으니, 안 그래도 번역에 돈 한푼 못받는 마당에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번역의 질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독점계약 자체가 심각한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번역지원 시스템이 동종번역 문화를 가로막는다는 지적들이 많다. 진태원 서울대 강사(철학)는 “일본과 미국은 연구소나 국가기관을 통한 번역지원활동이 활발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학술진흥재단과 대우학술재단에서 지원하고 있는 것이 전부”라며, 지원제도의 대폭 확충이 절실함을 지적한다.


©2004 Kyosu.net

국내와 달리, 해외학계에선 한 학자에 대한 ‘전담번역자’가 넘쳐날 정도로 많다. 하이데거의 주저 ‘존재와 시간’이 일본에는 무려 14종이 나와 있다. 미국에서는 2종에 그치고 있는데 이는 독일철학에 대한 양국의 ‘대접차이’ 때문이다. 미국에서 주로 활동해 명성을 얻은 프랑스 철학자인 데리다의 저서가 영미권에서 무려 70~80권이나 넘게 번역돼 있다는 점을 보면 그렇다. 데리다에 달려들어서 꾸준히 번역업적을 내놓는 학자들도 10여명이 넘어간다. 번역은 반역이고, 역자들 사이에서는 해석학적인 경쟁이다. 이런 문화 위에서 학문적 개념에 대한 토론이 일어날 수 있고 방향성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우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지 않다. 프랑스철학이든, 독일실존주의 철학이든 국내에 그 분야 권위자들은 몇 손가락 안에 꼽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전공자들 대부분이 근대 이전에 꽁꽁 묶여 있어서, 근대 이후의 철학자들은 번역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독특한 문화’도 한 몫 한다. 구연상 한국외대 강사(현상학)는 “선배교수가 번역한 것에 대해 후배교수들은 재번역하는 것을 꺼린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좀 오역이 있다 해도 그걸 굳이 지적하지 않는다는 게 한국의 관행이라는 것이다. 저작권 문제도 있다. 국내의 몇몇 특정 출판사들이 외국 유명출판사에서 나온 유명저자의 책을 수십권씩 독점계약을 해버리기 때문에 번역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동문선’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는데, 동문선 출판사의 출판예정도서목록을 한번 살펴본 사람이라면 로열티 선점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중소출판사 사장들은 민음사, 한길사 등 대형출판사들이 로열티 선점을 해놓고 몇 년이 지나도록 책을 안낸다면서 불만의 목소리를 높인다. 학자들은 기껏 혼자서 번역했다가 인쇄불가의 판정을 받으니, 안 그래도 번역에 돈 한푼 못받는 마당에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번역의 질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독점계약 자체가 심각한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번역지원 시스템이 동종번역 문화를 가로막는다는 지적들이 많다. 진태원 서울대 강사(철학)는 “일본과 미국은 연구소나 국가기관을 통한 번역지원활동이 활발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학술진흥재단과 대우학술재단에서 지원하고 있는 것이 전부”라며, 지원제도의 대폭 확충이 절실함을 지적한다.


©2004 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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