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애도의 슬픔 때문에 이 영화의 중요한, 어쩌면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잊어먹을 뻔했다.

피노체트 기소를 처음 생각해낸 카스트레사나 검사는 자신에게 "왜 그런 귀찮은 일을 떠맡으려 하는가?"

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독재를 피해 50만명의 스페인 사람들이 국외로 탈출했습니다. 무려 50만명의

사람들이. 그 때 주스페인 칠레  영사가 배를 한 척 내주면서 <이 배에 태울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바로 파블로 네루다였습니다. 그는 연대의 표시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지만 영사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칠레 당국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었죠. 그 때 칠레의 보건장관이

그들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가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살바도르 아옌데였습니다.

내가 피노체트를 기소하려고 하는 건 바로 연대를 보여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살바도르 아옌데는 1970년 칠레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1973년 9월 11일 미국의 사주를

 받은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목숨을 잃고 실각했다.

피노체트와 그의 무리, 미국은 아옌데가 영원히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연대의 정신은 살아남아

30년뒤 피노체트를 기소하기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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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2-27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대의 정신...저도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urblue 2005-02-27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어느 분일까 둘러 봤는데, 음..잘 모르겠던걸요. ^^

balmas 2005-02-27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도 오셨었군요. 저는 조금 늦게 가서 맨 뒤에서 봤어요. :)
블루님과 산책님을 못뵈서 저도 좀 섭섭한데요.^^;
따우님, 언제 기회가 되면 한번 보세요. 가끔 고통받아보는 것도 정서적으로
좋은 것 같아요. ㅋ
카슬레이님, 예전에도 한번 했었군요. 증언자들의 증언은 정말 인상적이죠 ...

krinein 2005-02-28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의 소개 덕분에 영화도 잘 보았습니다.
30여년 이상을 싸워오는 구즈만의 의지에도 새삼 감탄했지요.

balmas 2005-02-28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네인님도 오셨었군요. 이런 ...
듣기로는 제가 아는 후배 하나도 왔었다는데
저는 만나지 못했어요.
그러고보니 몇 안되는 사람들 중에 제가 아는 분들이 여럿 계셨는데,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만 셈이네요.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있으면 그때는 꼭 만나서 인사드려야지 ... ㅋㅋ
 

오늘 오후 3시에 일민미술관 5층에서 있었던 2월 반딧불 인권영화제 [피노체트 재판]을 보고 왔다.

원래는 영화가 끝난 뒤 과거사 청산에 관한 강연이 있을 예정이었는데, 영화를 보고나니까 여러 생각들로

심란하고 착잡해져서 영화가 끝난 뒤 바로 빠져나왔다.

 

  영화는 먼저 피노체트 정권 당시 살해된 사람들의 시신을 찾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황량한 사막 같은 곳에

가족들 몇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찰과, 인류학자, 발굴조사단이 피해자의 유골을 조심스럽게 발굴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몇개의 뼛조각 이외에는 거의 흔적을 찾지 못해 낙담한 가족들의 한탄이 터져나온다.

노랫구절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한 아버지의 눈물젖은 말이 인상적이었다.

 

"너의 심장으로부터 봄이 온다네.

 너의 시신으로부터 꽃과 풀이 자라나

 너는 그 속에 있으리라." (대충 기억에 의존한 것이어서 부정확하다 ...) 

 

  그리고 나서 영화는 스페인으로 옮겨간다. 그 이유는 피노체트를 기소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던  스페인의

카스트레사나라는 젊은 검사 때문이다. 그는 스페인 헌법 체계를 검토하여 피노체트를 스페인 법정에 기소

수 있음을 알아낸다. 카스트레사나는 아옌데의 변호사였던 ****(이름을 까먹었음 ... -_-a)와 함께 피노

체트 당시 고문 피해자 및 실종자 가족들을 면담하면서 피노체트의 범죄사실에 대한 기록들을 확보한다.

그리고 가르손이라는 판사의 호응을 얻어낸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98년 신병치료차 피노체트가 영국을 방문한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가르손 판사는 

영국과 스페인이 체결한 범죄인 인도 협정과 유럽 테러 협약에 의거해 피노체트를 18명의 스페인

시민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하고 신병을 인도해 줄 것을 영국 검찰에 요청한다.  가르손의 생각은 적중

하여 피노체트는 영국경찰에 체포된다. 곧바로 피노체트 변호인들은 피노체트가 종신 상원의원이자

 칠레의 전직 국가수반으로서 면책특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체포는 불법이라고 항소하고

영국 고등법원은 이를 수용하여 피노체트 체포가 불법이라고 판결한다. 하지만 다시 영국 검찰이

항소하여 사건은 영국 대법원으로 넘어간다.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영국 대법원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다름아닌 피노체트의 생일날 3 : 2로 피노체트의 스페인 인도를 결정한다.  그 이후 대법관의 구

성에 이의를 제기한 피노체트 변호인단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새로 투표가 이루어지지만 여기에서도 역시

피노체트 인도라는 결정이 내려진다. 법원 바깥에서는 피노체트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는 칠레인들의 

환호성이 터지고 피노체트는 곧 스페인으로 인도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칠레 정부는 피노체트가 질병 때문에 재판을 받을 수 없는 처지라고 주장하면서 영국측에

피노체트를 본국으로 송환할 것을 요구한다. 정치적 부담을 피하려는 영국 정부의 결정으로 결국

피노체트는 칠레 공군기 편으로 칠레로 되돌아온다. 피노체트의 기소를 확신하던 시위대들의 낙담

한 표정과, 칠레 공항에 피노체트를 마중나온 군인들과 귀부인들의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대비된다.

  그러나 영국에서의 피노체트 재판과 유럽 각국의 피노체트 기소 이후 칠레의 여론도 변화하여 칠

레 법원은 피노체트의 면책 특권을 박탈하여 피노체트가 집권 시기에 자행한 인권유린에 대하여

기소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는다. 

 

  이렇게 본다면 이 영화는 하나의 승리에 관한 기록 영화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너무 가혹한 고통

과 시련, 인내와 저항 끝에 얻어진, 아주 작은 승리의 기록이다. 사실 이 영화의 많은 부분은 피노체트 통치

아래 실종된 수많은 사람들의 가족, 그들의 어머니와 아내의 인터뷰, 그리고 저항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되

어 가혹한 고문을 당해야 했던 여성 운동가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그러고 보니 인터뷰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여자들인 것 같다(한 사람만 빼고?). 그만큼 많은 남자들이 죽었다는 뜻이리라 ... ).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나즈막히 분노를 담아, 또 때로는 행복하게(젊어서 남편을 빼앗긴 한 여인은 실제로 이렇게 말한다.

그토록 가혹한 시련 이후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다른 사람들로서는(그리고 그 여인 자신도) 믿기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자신은 지금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그 행복은,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이야기를 마침내

털어놓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릴 수 있다는 데서 나오는 행복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경우에

깊은 슬픔을 바탕에 깔고서 이야기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 건, 매우 드문 경험이었다.

 

  특히 오래 기억에 남을 몇 가지 말들이 생각난다.

고문이 어떻게 인간성을 파괴하는가에 관한 이야기:

"그들의 고문은 특정한 자백을 받으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고문당하는 나의 인간성을 파괴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나는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되는 사물이나 다름없는 존재

였다." 

동료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

"가장 가슴아픈 일은 동료가, 친구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옆방에서 고문을 하면서 그들은

 크게 음악을 틀어놓았지만, 고문받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도 말을 듣지 않으면 그렇게 당한다

는 일종의 협박이었다."

용서에 관한 이야기:

"내가 고문을 당한 것보다 더 가슴아프고 괴로운 건 이 일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나더러 그들을 용서

하라고 충고하는 말이다. 이제 그만 잊을 때도 됐지 않았나, 그들을 이제 그만 용서해라. 잊는 게 낫지 않은

가 ...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족이 고문을 당하는 것을 겪어봐야 한다. 용서는, 용서받을 사

람이 용서를 구할 때에만,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칠 때에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피노체트가 잘

못한 건 빨갱이들을 모조리 없애지 못한 것이라고 말할 때마다 더 슬퍼진다."

희망에 관한 이야기: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들은 이런 고통을 겪지 말아야 한다고. 그리고 나는 믿습니다. 자라나는

세대는 다를 것이라고. 그들은 진실을 알려고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왜 죽임을 당하

고 실종되었는지."

 

  이 영화를 보면서, 또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면서 계속 마음이 착잡하고 심란했던 건, 결국 이들의 희생과

 고통, 싸움이 아직도 지구상 곳곳에서 계속, 어쩌면 더욱 더 큰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또 분명히 자각하고 있어야 할 사실 때문이었던 것 같다. 더욱이 우리는

피해자이자 가해자들이 아닌가? 그렇게 되기를 조장받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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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 2005-02-27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움, 전해 듣기만 해도 끔찍하고, 착잡해지네요.

balmas 2005-02-27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그럴 줄 알고 감상기 2를 써놨지. ^^v

릴케 현상 2005-02-27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놀라운 기억력...

balmas 2005-02-27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뭘요, 대충 기억나는 대로 적은 걸요 ...
 
 전출처 : 조선인 > 서울역 노숙자 대 회현역 노숙자

지금은 회사가 목동으로 이사왔지만, 그 전 4년간은 서울역과 회현역 딱 가운데 있었던 터라 노숙자 곁을 오가며 출퇴근했다. 그런데 노숙자의 수는 계절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데, 추석이 지나면 추위를 피해 지하철역에 급증하기 시작하고, 식목일을 전후로 하여 한산해지곤 한다. 한여름에야 열대야를 피해 일부러라도 공원에서 잠을 청한다지만, 일교차가 큰 봄가을에 노숙도 아닌 야숙을 자청할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단속 때문이다. 아무리 노숙자라도 동사자를 만들 수 없어 겨울에는 내버려두지만, 꽃피는 춘삼월만 되면 단속과 물청소를 강화해 내쫓는 것이다. 마태우스님의 말씀에 따르면 한여름에도 한뎃잠이 쉬운 것이 아니라는데, 노숙자들은 어디서 봄가을을 보낼까 마음이 쓰이곤 했다.

어쨌든 서울역이고 회현역이고 일년 열두달 노숙자들이 끊이지 않는데, 나를 비롯한 대개의 여직원들은 서울역보다는 회현역으로 출퇴근하는 것을 선호했다. 미묘한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서울역 지하도의 악취는 락스청소를 하고 노숙자 몸에 대고 소독약을 뿌려대도 사라지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였다. 반면 회현역은 그 수가 상대적으로 적기도 하지만, 노숙자들의 외양도 멀끔한 편이다.

또 서울역에는 추위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깡소주나 환각제에 취한 노숙자들이 많은 편이었다. 이들은 만만하다 싶은 행인이 지나면 불쑥 길을 가로막거나 발목을 붙잡고 늘어져 구걸을 하곤 해 공포의 대상이었다. 자기들끼리 패싸움이 벌어지기도 일쑤이고, 아무데나 용변을 보거나 토악질을 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게다가 끊이지 않는 고성방가와 술주정이라니.

하루종일 거지꼴로 지하도를 뒹구는 서울역 노숙자들과 달리 회현역에는 대개 저녁 8시 정도부터 노숙자들이 모여든다. 이들은 일단 화장실에 가서 세수도 하고 발도 씻은 뒤, 짊어지고 온 배낭과 종이상자를 풀어 잠잘 채비를 한다. 수건 겸 걸레로 구석구석 상자의 흙과 먼지를 닦아내는 모습이 꽤나 정성스럽다. 그나마 말짱하고 깨끗한 면을 골라 이리저리 상자를 끼워 맞춰 딱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관 모양을 만드는 재주도 가히 경이롭다. 사람크기만한 배낭에선 침낭이 나오고 여벌 옷이 나오고 베개까지 나오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다른 노숙자와 거의 말도 안 하며 잠자리 준비만 끝나면 바로 가지런히 누워 잠을 청한다. 가끔 추위를 다스리려고 소주와 꼬마김치를 나눠먹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쩌다 술주정이라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워있던 사람들에게서 고함이 터져나온다. "거, 좀 조용히 합시다. 잠 좀 자자."

철야를 하고 새벽에 퇴근할 때면 회현역 노숙자의 대부분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지하철을 타고 언 몸을 녹이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는 서울 곳곳의 새벽 인력시장으로 흩어진 것이다. 하루 일당으로 벌집에 들어가 잘 수도 있지만, 한푼이라도 더 모아야 친척집에, 혹은 고아원에 맡긴 아이를 찾을 수 있기에 그들은 손가락질을 받는 노숙자를 자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에게 왜 이분들이 노숙자 쉼터에 안 들어가냐고 여쭤봤더니 햇살보금자리처럼 새벽출근이 가능한 곳은 얼마 없고, 다른 기관은 일과(훈련)프로그램에 따라 운영되거나 아예 지방에 있어 일 다니기 힘들기 때문이란다. 또 대부분의 기관이 종교단체에서 운영되는 것이라 이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언젠가 회현역에서 노숙자가 지하철 역무원의 부인을 철로에 떨어뜨려 죽게 한 사건이 난 적 있었는데, 이로 인해 회현역 노숙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었다. 할 수 없이 이들은 서울역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시끄럽고 냄새가 나서 도저히 잘 수가 없고 그 바람에 다음날 일거리까지 놓쳤다며 회현역 역무실에 하소연을 하는 걸 보았다. 사고를 낸 노숙자는 회현역 노숙자가 아니라 뜨내기였다며 비분강개하는 모습을 보니 서글펐다. 그들은 일거리가 끊어져 서울역 노숙자로 '전락'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그보다 더 슬픈 광경은? 하루 3끼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노숙을 자청하며 돈을 아끼면서도 매일같이 500원짜리 복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선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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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대되는 한반도 위기,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 북 핵보유 성명과 미일 안보 공동선언에 부쳐

 


 

사회진보연대

2월10일 북한 외무성이 발표한 성명서는 핵무기의 보유를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그동안 무성했던 북핵에 관한 추측과 주장은 이로써 ‘공식화’되었고 한반도는 92년 미국의 전술핵 무기 철수 선언 이후 15년 만에 한반도는 다시 핵 지대가 되었다. 3월로 예정되어있던 제4차 6자 회담은 사실상 무산되었으며 위기의 한반도 호는 다시 한 번 폭풍과 마주하게 되었다. 성명 발표 이후 각 국의 언론들과 싱크탱크들은 성명서의 진의와 한-미-중 정부의 이후 대응을 중심으로 분석과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각 국 외교가의 반응을 초점으로 한 향후 행보를 묘사하거나 추측하는데 그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분석은 사태의 원인에 대한 적합한 인식이나 의미 있는 전망을 추출하는데 장애가 될 뿐이다. 우리는 지금의 한반도 위기가 어디서 연유하고 있으며 왜 반복되고 있는지를 몇 가지 질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북의 강경책이 문제의 원인인가?

주류 언론과 각 국의 싱크탱크들은 북의 핵무기 보유가 일본과 미국의 군비확충 정책을 가속화할 힘을 실어준다는 의미에서 북한 정부의 ‘실기(失機)’로 파악하는 견해를 피력한다. 더 나아가 여전히 현재의 사태를 한-미-일의 강경파와 북한 정권의 적대적 의존관계로 파악하고 있는 부류마저 존재한다. 물론 북한의 강경책이 한반도 위기를 심화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태 인식은 기본적인 인과관계를 외면하는 근본적인 결함을 지닌다. 소위 미국의 온건파 정부의 정책인 페리프로세스가 한반도 정책의 중심일 때에도 미국의 대북정책에서 한-미-일 삼각동맹은 그 핵심 축이었다. 즉 북한의 군사주의적 행보라는 선택을 결코 문제의 원인으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현재 동북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워싱턴을 중심으로 주도되었다는 점, 그러므로 군비감축의 신호와 성의 있는 협상 태도를 보여야할 선차적인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점을 도외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입장을 가진 이들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현실적인’ 상황이라는 알리바이를 등에 업고 미국 정권을 ‘상수’(常數)로 파악하는 종속적인 인식 틀을 밑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문제의 실질적 파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북한 외무성 성명은 92년도 비핵화 선언과 94년도 제네바 합의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한반도 문제의 심각성을 의미한다. 주지하다시피 90년대 클린턴 정부의 대북 정책은 봉쇄-고립 정책으로만 일관했던 (아버지)부시 정부와 달리 핵, 미사일로 상징되는 대량 살상 무기의 '완전한 제거'를 목표로 ‘협상과 군사력 증강’을 양면으로 한 페리프로세스였다. 페리프로세스는 협상을 첫 번째 경로로 상정하고 있지만 군사력 증강을 협상의 후순위에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병행(Two-Path Strategy)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리고 이를 승인한 DJ 정부의 햇볕 정책은 여기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적 제약을 가지고 있었다.
클린턴 정권이 군사주의적 압박을 주요한 카드로 사고한 것은 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게 상, 하원 모두를 패배한 이후 레이건적 전통을 일부 수렴하면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선거 이후 클린턴은 북한과의 협상 의제에 미사일 문제를 추가적으로 제기했다. 클린턴 정부의 한반도 정책을 무력하게 평가한 네오콘은 집권 초기 북에 대한 압박 정책에 보다 힘을 실음으로써 한반도 정책에 변화를 가져왔다. 물론 군비를 체계적으로 확장-강화하는 데에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의 일관성은 충실히 확보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10년을 보낸 미국의 대북정책이 사태를 어떻게 악화시켰는지는 모두들 아는 바와 같다.

현재 미국은 소위 리비아식 해법(a Libyan solution)과 같이 북한에게도 핵무기에 대하여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해체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할 것을 주문하고 있지만, 그와 연계된 다른 제안(보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주문은 리비아의 사례가 역설적으로 증명하듯이 북한이 선택지로 사고하기에는 불가능한 해법이다. 2003년 말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한 이후, 미국이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일부 풀기는 했지만, 별다른 경제적 보상을 약속하지도 않았으며 여전히 테러지원국의 명단에 포함시켜 일부 제재를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리비아 석유에 대한 통제권을 자본 진출이라는 명목으로 장악하려고 하고 있다. 리비아와 같이 무기를 선 포기하는 결단의 또 다른 어려움은 이라크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 이라크는 무기사찰단을 받아들였지만, 사찰단은 주권을 침탈하는 수준의 무리한 요구를 제기하여 지속적인 갈등을 빚었다. 미국은 이를 빌미로 이라크를 침공, 전쟁을 일으켜 후세인을 제거했다. 이는 북한이 미국의 주문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더욱이 부시와 공화당은 최근 의회에서 북한 인권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집권 2기를 맞이한 취임 연설에서도 폭정의 전초기지로 북한을 지목하는 등 북한에 대한 압박을 거론했지 대북문제의 실질적 해결에 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없는 상황이다.

2.19 미-일 안보 공동선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편 이번 북한의 성명이 일본에 관한 언급을 적시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성명에는 납북자 유골을 가짜라고 조작하면서 평양선언을 백지화한 일본에 대한 강한 이의제기가 짧지만 분명한 어조로 담겨 있다. 6자 회담의 한 주체로 나서고 있는 일본은 한-미-일 삼각동맹의 한 축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동북아의 미완된 교차승인의 한 당사자라는 점에서 동북아 평화체제에서 중요한 변수다. 현재 양국 간의 외교관계는 실체적 진실을 알 수 없는 납북자 유골문제로 악화일로에 놓인 상황이다. 사태를 더욱 비관적으로 만드는 것은 지난 2월 19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간의 안전보장협의위원회에서 미-일 동맹의 수준을 강화하는 공동전략 목표에 합의한 선언이다. 양국 간의 합의는 일본의 안보리 상임 이사국 지위 추구, 양자간 방위협력 수준을 극동지역을 넘어선 수준으로 추구하고 북핵 등 한반도 문제에 관해서도 긴밀한 공조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요지로 하고 있다. 또 미국과 일본이 대만 문제를 포함하여 대(對)중국 정책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미-일 안보 공동선언이 북한의 성명 직후에 발표되었다는 점에서 특히 시사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선언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수준에서 위기와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으며, 북의 외무성 성명과 견주어 볼 때 훨씬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금 드러난 노무현 정권의 무능

노무현 정부 역시 현 사태의 주범이다. 주지하다시피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이라크에 파병했다는 논리는 한반도 문제의 해결에 대한 대미 종속성을 가장 비극적으로 천명한 사례였다. 어디 그 뿐인가!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갈등의 재연,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 논란, 평택 기지문제 등 노무현 정부가 남북관계의 당사자로서 무엇을 했는가는 그의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에게조차 비난받고 있는 실정이다. 남북특사로서 DJ가 나설 수도 있다고 표명한 것은 노무현의 무능을 드러낸 가장 역설적인 희극이다. 그러나 남한 정부가 ‘자주’적인 외교력을 가지고 대중(對中), 대북(對北) 협상력을 높이고 미국의 유연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일각의 목소리가 가지는 한계 역시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질서 하에서 철저히 미국에 종속되어있는 노무현 정권에게는 독자적인 국방, 외교 정책의 수행이란 이 구조적 제약을 벗어나야 하는, 따라서 불가능한 문제다. 기껏 해야 노무현 정권에게 부여된 카드의 효능은 사태를 봉합하고 지연하여 그럭저럭 버티기 이상이 될 수 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외교적 술수에 의한 지연과 봉합이 아니라 남한을 비롯한 동아시아 수준에서의 대중운동의 활성화에 있다.

과연 지금과 같은 6자 회담이 의미가 있는가?

북의 성명 발표 이후 각 국은 한결같이 6자 회담으로 조속히 복귀할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북에 보내고 있다. 그러나 과연 다자 회담이 어떠한 성과물을 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설득력있는 근거들이 존재하는가? 2003년 북한의 NPT 탈퇴이후 열렸던 세 차례에 걸친 다자 회담은 여러 국제 정황으로 인하여 구성된 공간이지만 근본적인 한계를 내재하고 있었다. 기실 한반도 및 동아시아 문제에서 핵심적 축은 북핵과 주한미군의 문제인데, 이를 해결하고 논의할 수 있는 틀에는 실질적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미국과 북/남한 3국이면 족하다. 중, 러, 일 역시 지난 세기 동안 동북아 문제에서 모두 핵심적인 갈등의 당사자였던 것은 사실이나 현재의 구도에서 핵심 의제라고 할 수 있는 대북 문제를 풀 능력이나 권한을 갖고 있지는 않다. 물론 지난 세기 동안 동북아에서 벌어진 네 차례의 비극(청일전쟁, 러일전쟁, 태평양전쟁, 한국전쟁)을 떠올려 보면 동아시아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틀이 가질 의미는 존재할 수 있겠지만, 동북아 제국가들의 국가 팽창주의적 요소가 여전한 지금의 현실에서 6자 회담은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
두 번째로 지적해야 할 다자 회담의 한계는 미국이 이 틀을 고수한다는 역사적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냉전 이후 미국은 자국의 사활적인 이익이 걸린 곳이라고 판단하는 지역에서는 강력한 개입주의적 대외정책을 표방했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는 방관하거나 국제기구의 이름을 빌려 부분적으로 개입했을 뿐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북의 성명에 대해 백악관이 상대적으로 조용한 반응에 그치고 있는 것은 현재 미국의 대외정책의 핵심순위에 북핵 문제가 위치해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양자간의 대화는 부인한 채 막연하게 6자 회담 수준의 느슨한 틀을 유지만 할 뿐이었으며 북한과의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카드를 내놓지 않고 있다. 미국은 오히려 6자 회담 틀을 통해서 여타의 국가들에 행동반경을 제약하고 행여나 회담을 통해서 나올 수 있는 북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분담할 수 있는 안배를 획책했을 뿐이다. 미국이 6자 회담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사태의 해결이 아니라 대화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는 대외적 명분 그 자체일 뿐이다. 이것이 2년에 걸쳐 세 번이 열린 6자 회담에서 별다른 가시적 결과물을 산출할 수 없었던 이유다. 그러므로 단순히 북한에게 현재의 수준에서 조건 없는 6자 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것은 우스운 주문일 수밖에 없게 된다.

북한의 선군정치(군사 우선 정책)가 한반도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가?

한편 핵무기 보유 자체를 둘러싼 문제는 민중운동 내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다. 외무성 성명을 보면, 이북은 자신들의 핵이 자위적 핵으로만 남을 것이며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에는 변함이 없음을 천명하고 있다. 92년 비핵화선언에도 불구하고 지난 12년 동안 무책임한 협상 태도와 일관된 군사력 증강을 한반도에서 도모했던 미국의 행보는 북한으로 하여금 군사주의적 해결방식을 (병행하는)선택하도록 강제했다. 사실 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선언의 당사자가 남/북한에게만 국한되어 있기에 한반도 내에서의 미국(혹은 여타의 국가)의 핵무기 사용에 대한 일체의 구속력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절반의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행보가 한반도 주변의 위험을 증대시켰다는 것도 간과할 수는 없다는데 있다. 비록 북한의 선군정치가 제국주의 질서에 의해 강제된 선택이라 ‘항변’하더라도 그 형태가 ‘핵’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도 일부 운동진영의 주장처럼 북의 핵 보유 선언을 선군정치의 승리라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북의 핵 보유가 즉자적으로 동북아의 전쟁 억지력을 가져다온다고 보기에도 어려우며, 핵무기가 가지는 절멸의 위험성을 고려할 때 북 역시 한반도 비핵화 선언의 정신을 훼손한다는 평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핵이 가지는 파괴력은 ‘절멸’의 위험일진데 핵에게 자위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방어적 이유에 근거한다 하더라도 핵이 태생적으로 상호절멸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지금과 같은 북의 군사주의적 대응이 한반도 평화체제의 지렛대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게다가 핵무기 보유는 사태를 확실히 비가역적인 국면으로 만들어갈 수밖에 없기에 사태는 더욱 비극적이다. 주 유엔 북한 대표부 대사인 한성렬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CVID도 가능하지만 이는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이 확실히 이루어질 때만 가능하며 이 경우도 그 성격상 오랜 기간(10년 이상)을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한반도 위기에 맞선 단호한 태도와 실천이 필요하다.

이번 북한의 외무성 성명과 미-일 안보 공동선언은 제2차대전이 종전된 지 6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 여전히 민중의 평화가 도래하는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새삼 말해주고 있다. 현재 한반도 위기는 북한의 군사주의적 선택을 초래한 미국의 일방주의적 태도와 이에 안보 공동선언으로 호응하는 일본과 한미공조를 튼튼히 하는데 소홀함이 없는 남한 정권에게 그 책임이 있다. 한-미-일 삼각동맹이 굳건한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떠한 유형의 회담이라도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사태를 해결하는 경로로써 한-미-일 삼각동맹에 맞선 핵을 동반한 군사주의적 대응을 수긍하기도 어렵다. 같은 맥락에서 노무현 정권의 자주적 외교를 촉구하거나 북의 핵 보유를 선군정치의 개가라고 평가하는 태도 역시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위와 같은 입장들은 모두 대중의 운동을 사태의 해결에서 철저히 배제하거나 폄하시킨다는 면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민중의 평화에 대한 결정권을 국가기구의 외교적 기술, 군사적 능력에 위임하는 것이 가져올 결과는 기껏해야 한반도 위기가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것에 그칠 뿐이다.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되찾기 위한 전제조건은 대중운동을 하찮은 종속변수가 아니라 진정한 문제의 해결자의 위치에 놓는데 있다. 반전반미평화를 외치는 대중운동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결코 한반도 위기를 제대로 마주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 세계적인 차원의 반전평화운동이 베트남을 비롯한 곳곳에서 제국주의 질서를 패퇴시켰던 대중운동의 역능을 기억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반복하고 있는 한반도 절멸의 위기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그리고 이 위기가 신자유주의 경제통합에서 기원한 새로운 제국주의에 있다고 한다면 남한을 비롯한 동아시아 수준의 반전운동과 대안세계화운동이 활성화되고 결합되는데서 그 출발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2005년02월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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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부인들은 주식투자 선수들

[조선일보   2005-02-25 18:09:49]  

가족들이 투자해 2억 벌기도… 외국선 엄격한 규제

[조선일보 한윤재 기자]

재산을 불린 고위공직자의 경우 주식은 무시할 수 없는 주요 재테크 수단 중의 하나로 나타났다. 홍석조 인천지검장처럼 ‘타고난 주식부자’도 있지만 본인이나 배우자 명의로 수시로 주식을 사고팔아 짭짤한 수익을 올린 공직자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주식 재테크를 활발하게 한 공직자 중에는 경제관료들이 많아 눈길을 끌었다.

외국에서는 고위공직자의 주식거래 및 보유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은 물론 과장급 이상의 공무원과 연방의회의원, 사법부공무원 등의 주식보유 및 거래 행위를 일종의 ‘내부자 거래’로 간주해 규제하고 있다.

◆본인보다는 배우자가 더 적극적

정부 산하기관의 한 이사장의 경우 부인이 작년 한해 SKC·대우증권 등 11개사의 주식을 팔고 SBS·동성제약·두산 등 11개사의 주식을 샀다. 장남과 장녀도 모두 주식투자에 나서, 가족 전체의 주식보유 증가액이 2억여원에 달했다.

또 경제부처의 차관급 인사는 조흥은행 주식 7500주, 삼성SDI주식을 팔아 아시아나항공 5만주와 현대오토넷 1만주를 사는 등 대부분 재산을 예금보다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주식이 한주도 없었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크게 불린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경우도 주식투자는 하지 않았다.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 등 청와대 소속 공직자들도 지난해 보유주식이 많이 늘어났다. 대통령 비서실의 장관급 인사는 부인이 삼보컴퓨터 500주와 우리금융 200주를 팔고 한신공영 600주와 삼성전자 40주를 샀다고 신고했다.

보유주가 변동액 1위인 홍석조 인천지검장의 경우는 휘닉스피디이(옛 휘닉스디스플레이전자) 주식 28만5000주(11%)를 갖고 있는데 지난해 6월말 이 회사가 3만200원(액면가 5000원)의 공모가로 코스닥에 상장되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휘닉스피디이는 홍 검사장 일가가 오너로 있는 보광그룹의 계열사이다.

◆공직자 주식거래 규제 필요

공직자의 주식보유 및 거래는 업무상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하더라도 ‘정보접근’이 일반 투자자에 비해 월등히 유리하다는 점에서 ‘공직자 윤리’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국회에 계류중인 주식백지신탁제 법률안도 그런 의미에서 작년에 정부가 추진했던 것이다. 그러나 당초 작년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예정이던 이 법은 올 2월 임시국회에서도 처리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공직자의 보유 주식이 담당 업무와 이해충돌 소지가 있을 경우 주식을 처분하거나 백지신탁을 해야 한다. 그게 싫다면 사임하거나 전직·전보를 요구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 94년 샌디버거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석유기업 아모코 주식을 매각하라는 명령을 받고도 95년에 이를 매각 2만300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한윤재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yoonjae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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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02-26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어디 주식 투자뿐일까? 부동산 투자에도 귀재들이겠지.
어제 술자리에서 분당에 아파트 사서 몇 억을 벌었다고 자랑하는 한 교수의 얘기를 들었다. 같이 있던 몇몇 사람들(강사, 박사과정생들인데 ...)은 나도 좀 해보자고 열을 올리더군 ...
도대체 주식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뭘까? 부동산 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뭘까?
그런데 왜 노무현은 어떻게든 부동산 투기는 잡겠다고 열을 올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부동산 가격 폭등의 주범인 신도시 개발에 열을 올리는 걸까?
투기는 잡되 투자는 보장하겠다는 걸까? 부동산 로또를 좀더 공평하게 배분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