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學位 장사 … 학부보고서만 못한 논문 수두룩
동향 : 특수대학원 난립으로 제살 깎아먹는 대학

2006년 07월 19일   이민선 기자 이메일 보내기

“특수대학원 문제점이야 수두룩하죠. 그런데 그게 하루 이틀 된 문제는 아니잖아요.”


ㄷ대의 신 아무개 교수가 말하듯 특수대학원이 부실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짧은 기간 우후죽순처럼 설립되고, 그 강의실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보다보면 애초 존립 이유조차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지난 3월 교육인적자원부 대학원개선팀이 내놓은 ‘대학원 교육관련 참고자료’에 따르면 2000년도부터 2004년도까지 특수대학원의 수는 1백50개교가 늘어났다. 2000년 6백42곳, 2001년 6백87곳, 2002년 7백27곳, 2003년 7백70곳, 2004년 7백92곳이었다. 특수대학원의 대폭적인 증가는 사립대가 주도해, 2000년 사립대 특수대학원은 5백25개교였으나, 2004년에는 6백59개교로 모두 1백34개 증가했다. 즉, 지난 4년간 늘어난 특수대학원 중 89.3%가 사립대가 설립한 것이다.

특수대학원, 4년 동안 150개교 설립돼

특수대학원 학사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더 이상 숨길 일도 아니다. 예컨대 ㅅ대 행정대학원에 다니는 최 아무개 변호사처럼 한 학기에 두 번 출석하고서도 버젓이 B학점을 받아가는 사례는 양반에 속한다.


물론 최근 들어 수도권 일부 대학에서는 출석을 강화하고 상대평가제를 도입하는 등 강력하게 학사관리를 한다고 주장하지만, 교수가 대필 보고서를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주는 ‘관행’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예컨대 3년 전 50만원을 받고 ㄱ대 경영대학원에 재학 중인 어느 기업 임직원의 중간 보고서를 대필해준 적이 있다는 ㄱ대 김 아무개 씨는 “그 다음 학기에 또 다른 ‘고객’을 대신해 똑같은 보고서를 동일한 교수에게 제출했지만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ㅇ대 교육대학원에서는 논문 주심을 시간강사가 맡기도 한다. 이 대학에 지리학과가 없다는 이유로 ㄱ대 지리학과 시간강사가 논문 주심이 되는 것. 강사의 실력여부를 떠나 전임강사도 아닌 이가 논문 주심을 맡는 것에 대해 학생들은 불쾌하고 있었다.


이런 현실은 근본적으로는 특수대학원의 모호한 정체성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21조에 따르면 특수대학원은 ‘직업인 또는 일반 성인을 위한 계속 교육을 주된 교육 목적으로 하는 대학원’. 하지만 ‘전문직업분야 인력의 양성에 필요한 실천적 이론의 적용과 연구개발을 주된 교육목적으로 하는’ 전문대학원과는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특수대학원이 설립된 분야 대부분이 전문직업분야인 것을 감안한다면 말장난에 불과해 보인다. 또 각 대학에 설립된 평생교육원과도 별 차이가 없다.


특수대학원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교육인적자원부에서도 헷갈려한다. 차이를 물어보는 질문에 교육부 관계자는 머뭇거리며 ‘학위 과정의 차이’라고 답변했다. 특수대학원에서는 석사학위 과정밖에 없지만 전문대학원은 박사학위 과정까지 설치할 수 있다는 게 두 대학원의 정체성을 판가름 짓는 요소라는 것이다.


특수대학원이 전문대학원과 평생교육원 사이에 어정쩡하게 걸쳐있으면서 대학과 교육 수요자 사이에서는 묘한 거래가 성립됐다. 대학 입장에서는 전문대학원보다는 ‘쉽게’ 가르치면서도 돈을 벌 수 있고, 학생입장에서는 돈만 있다면 ‘쉽게’ 배우고 학위도 얻어갈 수 있다는 인식이 자연스레 생겨났다. ㅇ대 행정대학원에서 수업을 맡았던 김 아무개 교수는 “내 수업만 해도 청와대 사무관, 소규모 기업체 사장, 지역신문 사장, 경찰간부, 기초의회 의원 등이 있는데 전문지식에 대한 갈망도 있지만, 정계진출을 위한 학력세탁을 원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한다.

연예인 언론대학원 입학시켜 대학홍보

ㅈ대 언론대학원은 또 다른 사례. 언론인이나 기업체 홍보실 직원 정도만이 입학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인기 연예인이 자주 입학하는 대학원으로 유명하다. ㅈ대에서 강의를 했던 김 아무개 교수는 “인기 연예인이 입학해 대학을 홍보하려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지적한다. 수도권의 ㄱ대 언론대학원 역시 초창기에 당시 인기 영화배우였던 강 아무개 씨를 입학시키며 호텔에서 정기적으로 조찬강연회를 연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덧붙인다.


이런 상황에서 애초부터 ‘직업인의 재교육’이 들어 설 자리는 없고, ‘늙은 학생’들의 진학 이유가 불순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국내 굴지의 통신업체 홍보실에서 근무하는 어느 관계자는 “언론대학원이나 경영대학원 진학이유가 공부보다는 학생들 사이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결국 대학들이 특수대학원의 취지를 망각하면서 무책임한 학위 논문이 남발됐다. ㅈ대 교육대학원 논문 중 김 아무개 씨가 제출한 ‘도덕과 수업의 평가에 관한 연구’의 경우, 34편의 참고문헌 중 선행연구 정리 차 참조할 수밖에 없는 학위논문이 단 한편도 없었다. 문제는 학부생의 보고서만도 못한 이 같은 학위논문이 소수가 아닌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부수적인 영향이지만 특수대학원에 전임강사급 이상의 인력이 거의 배치되지 않은 채 부실하게 운영되면서 일반대학원 교육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ㅅ대 정 아무개 교수는 “교수 한 명이 일반대학원, 특수대학원까지 포함해 30명 정도의 학생을 지도하는 경우도 있는데, 일반대학원 학생까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대학 측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민선 기자 dreamer@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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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06-07-19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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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7-22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 대학원 뿐인가요... 대학도 마찬가지잖아요....
들어가긴 어려워도 졸업하기 쉬운 대학....

balmas 2006-07-24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런 측면이 있죠.
 

 

 

베끼기와 짜깁기의 미학(?) … 자기표절 용인 관행이 더 문제
특별취재 : 학술지 중복투고 및 자기표절 사례, 그 두번째

2006년 07월 22일   최장순 기자 이메일 보내기

교수신문이 지난호(제407호, ‘교내학술지 그대로 등재지 게재…심사기준 모호’)에 이어, 인문·사범·사회과학 계열의 논문을 살펴본 결과, 또 다시 자기표절을 통해 연구업적을 부풀리는 사례가 포착됐다. 계간지에 게재됐던 글이 연구소 논문으로 당당히 실리는가 하면, 교내 학술지에 실렸던 여러 편의 논문이 합성된 채 한편의 외부 학술 논문으로 둔갑한 사례도 있었다. 또 동일한 내용과 결론의 ‘도플갱어’ 논문이 다른 학술지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이 같은 글쓰기에 대한 학적·도덕적 몰이해는 정직하게 연구하는 학자들에게까지 여파를 미쳐 글쓰기 윤리에 대한 심각한 반성을 요한다. / 편집자주

포스트모던 담론 속에서 ‘몸의 정치학’을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데카르트, 들뢰즈, 푸코의 육체’라는 ㅇ 교수의 논문을 접해봤을 것이다. 이는 서울 소재 ㅅ대의 ㅇ 교수가 1997년 6월 ‘사회비평’(제 17호)를 통해 발표했던 논문이다.


이 논문은 8년 후 ‘데카르트, 푸코, 들뢰즈의 육체’라는 제목의 ‘특집논문’(‘성평등연구’ 9집)으로 등장한다. 원논문을 기준으로 볼 때, 각 절의 순서가 뒤바뀌어 있고, 몇 개의 구절이 변화된 후, 약간의 새로운 내용이 삽입돼 완성된 논문이다.


‘자기표절’ 의혹에 대해 ㅇ 교수는 “연구업적에 포함시키지도 않았으며, 가톨릭대성평등연구소에서 예전 것을 토대로 고쳐 발표해달라는 부탁에 개인적으로 발표만 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이영자 가톨릭대성평등연구소장(정치사회학)은 “우리 연구소에서 관례상 학술제 발표문을 제작했던 것”이며 “학술지로 나오는 것을 ㅇ 교수는 몰랐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이 소장은 “ㅇ 교수는 업적평가를 목적으로 한 게 아니어서 잘못이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담론의 생산성을 위한 건전한 과학 공동체 정신에 입각해 곱씹어 볼 때, 이러한 상황은 담론의 생산성을 떨어뜨려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했다.

본인 논문 베끼고 출처도 안 밝혀

또 다른 서울 소재 ㅅ대의 ㅇ 교수는 연구년 기간에 작성한 ‘우리나라 교육과정학 연구 동향에 관한 역사적 비판’을 2001년 6월, 등재후보지인 ‘교육과정연구’에 투고했다.


하지만, 이 논문에는 3개월 전 ‘한국의 학술연구’(논문모음 단행본)에 실렸던 ‘교육과정 및 교육공학’의 내용 중 2장 ‘교육과정 연구의 네 가지 패러다임’이 버젓이 게재돼 있었다.


이 부분은 앞 논문의 3장 ‘교육과정학 연구의 주요 접근들’에 그대로 들어가 있는데, 이 내용은 또 다시 2003년 8월 발표된 ‘교육과정학 이론 수립의 현황과 발전전망’(‘사회교육과학연구’ 제7권)에 무단 복제된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중복적으로 발견되는 이 내용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인용 표시도 없어 논문 작성자의 도덕 불감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자기 표절을 통해 업적을 부풀린 ㅇ 교수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나온 논문이라 아무 문제없다”고 호언했다.


이번에 살펴본 결과 많은 학자들이 기존 연구에서 한 챕터를 통째로 옮겨오거나, 논문화하지 않았지만 책에 이미 실었던 내용을 필요에 따라 두 개의 章을 뭉치는 방식으로 논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물론 출처를 밝히고 있었지만, 이런 식의 글쓰기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강원도 소재 ㅊ대의 ㅊ 교수는 ‘인문사회교육연구’(6권)에 실린 자신의 논문 ‘학교 통일교육의 평화교육적 접근’의 50% 이상을 ‘통일교육에서 평화교육적 접근의 타당성’(통일문제연구 제39호)에 중복 게재했다.


2장 1절 ‘평화의 개념’, 2절 ‘평화실현을 위한 전략’이 추가된 것과 몇 개의 바꿔쓰기(paraphrasing)를 제외하면 논리의 전개방식이나 결론에 있어서 동일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게다가 ㅊ 교수는 ‘학교 통일교육의 평화교육적 접근’ 102쪽에 담긴 내용을 113~114쪽과 122쪽(결론부)에 걸쳐 두 번이나 표절하고 있어, 논의의 생산성마저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조립형’, ‘통합형’ 자기복제도 적발돼

이러한 지적에 ㅊ 교수는 “첫 번째 것은 선배 교수의 정년퇴임 기념논문용으로 급하게 제출한 것이고, 두 번째는 앞의 논문을 수정·보완해 등재지에 게재한 것”이라며 “해당 학회지에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문제시된다면 업적 목록에서 삭제하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사례와 관련해 권오국 평화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주제와 내용이 서로 다른 다양한 논문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실질적으로 자기표절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인문사회계열의 경우 학술지 간의 교차 확인 시스템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고 애로사항을 털어놓았다. 이어 그는 “텍스트들이 지속적으로 DB화되고 있어, 다양한 학술지를 교차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넓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더해 여러 편의 연구논문을 한 편으로 묶어내는 ‘조립형’, ‘통합형’ 자기표절 사례도 적발됐다.

2주만에 3만원짜리 심사?

경북 소재 ㅇ대의 ㄱ 교수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3년에 걸쳐 ‘홉스의 인간관과 정치체제관과의 인과관계’(사회과학논총, 2000), ‘로크의 인간관과 정치체제관과의 인과관계’(사회과학논총, 2001), ‘루소의 인간관과 정치체제관과의 인과관계’(사회과학논총, 2002)를 발표한 바 있으며, 이후 이 세 논문의 교차편집을 통해 또 다른 논문을 발표한 것으로 밝혀졌다. ‘홉스, 로크, 루소의 인간관과 정치체제관과의 인과관계 비교연구’(사회과학연구, 2004)가 그것.


물론, ㄱ 교수 스스로 서론의 말미에서, 상기 세 편의 논문이 선행작업으로 이뤄졌다고 밝히고 있으나, 마지막 ‘종합’ 논문에는 그 세 편이 거의 동일하게 발췌·복제돼 있어, ‘업적 부풀리기용’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이에 대해 ㄱ 교수는 “내 논문을 인용했기에 인용표시를 하지 않았고, 단지 시리즈물로서 기획한 것일 뿐”이라고 언급했으나, 예전의 논문들을 90%이상 있는 그대로 발췌·합성한 것이 과연 시리즈의 원래 개념에 부합하는 지 의문이다.


해당 학술지의 한 관계자는 “일부 인용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상당 부분을 그대로 인용한다는 것은 문제”라고 말하면서도 “이런 사태가 있어도 별도의 제재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자기논문 복제 생산이 끊이지 않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지는 논문 심사제도와 논문수로 학자의 자질을 평가하는 정량적 업적평가제 탓이라는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이희재 안동대 교수(무역학)는 “논문 한 편을 심사하는데 2주의 시간이 주어지고 심사비도 3만원밖에 안되는 학술지가 더러 있다”고 말하는데, 상황이 이러하다면 심사위원들의 책임감 결여가 야기돼 엄밀한 심사가 어렵게 될 것이다. 심사과정 자체에 한계가 노정돼 있어 비양심적 논문 투고자들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진수 서경대 교수(유럽어학부)는 “이러한 정량평가가 학문별 특성과 차이를 무시하고 있으며, 등재지에 논문을 게재하지 못하면 게으른 교수로 낙인찍히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이어 김 교수는 “좋은 논문, 좋은 번역은 수년치 업적으로 인정해주는 식의 파격적 평가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최장순 기자 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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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06-07-22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랑 바르트의 문학 이론에 충실하군요.ㅋㅋㅋ 심오한 지적 탐구의 결과인 듯 합니다.

작가들이란 이미 씌어진 문장들을 뒤섞거나 재결합하거나 재배치시키는 능력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벼리 1] 춤추는 경찰폭력, 가속페달을 멈춰라

 

신자유주의시대 경찰폭력의 작동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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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 
우리 사회는 80년대의 투쟁을 통해 군사정권을 극복하고, 형식적이나마 민주적 진전을 이루어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 이후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져온 소위 문민정부들 하에서도 경찰의 폭력은 끊이질 않았다. 2001년 인천 부평의 대우노동자들에 대한 탄압, 2002년 롯데호텔 파업에 대한 폭력 진압, 2004년 부안 핵폐기장 반대운동에 대한 경찰폭력, 2005년 농민집회 당시 경찰에 의한 두 명의 농민 살해사건, 최근의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과 경북지역 건설 노동자 파업에 대한 탄압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파업과 집회/시위 현장에서 문민 정권들은 과거 군사정권과 다를 바 없이 폭력적으로 경찰력을 사용해 왔다.


잠들지 않은 경찰폭력

물론 경찰이 과거 군사정권 시절과 비교해 전혀 달라진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사람들을 납치/감금하고 고문을 하는 등 무소불위의 불법적 권력을 휘두르지는 못하게 되었으며, 공권력의 행사에 있어 최소한의 합법적 모양새는 갖추려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분명 진전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삶의 현장이나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폭력은 끊이질 않고 있으며,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경찰 폭력은 위험수위를 넘은 지 오래이다. <사진 출처: 노동자 미디어 광장>


2005년 쌀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 집회에서 경찰은 처음부터 작정한 듯 공격적인 진압 작전을 펼쳤고, 수백 명의 집회 참가자들에게 부상을 입히며 심지어 치료를 받던 부상자에게까지 방패를 내리찍는 등의 폭력을 휘두른 끝에, 두 명의 농민 참가자 전용철, 홍덕표 씨를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이 일로 경찰청장까지 사퇴를 했지만, 경찰의 폭력 진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결국 얼마 전 7월 16일에도 포항의 건설노동자 집회에서 한 노동자가 경찰의 방패에 머리를 맞아 심각한 뇌출혈로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7월 9일 평택에서는 미군기지에 공생하는 상인들의 테러를 방조하고, 불법 검문으로 사람들의 통행을 자의적으로 제한하는 경찰에게 항의하는 긴급집회를 가진 행진단에 대해, 아무도 보는 이가 없는 새벽임을 이용하여 이미 해산 중이던 이들에게 집단 린치를 가하고 머리채를 잡아 연행하는 등의 폭력을 행사하였다.

이러한 경찰의 폭력은 집회 현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4월 경찰은 순천 하이스코 노동자들의 농성장에 대테러 작전에나 투입되어야 할 경찰특공대를 투입하였고, 이 과정에서 경찰은 노동자를 향해 전기충격으로 사람을 무력화시키는 전자총까지 사용하였다. 경북지역 건설 노동자들이 파업을 조직하자, 노조 지도부에 대해 ‘협박공갈죄’ 등 말도 안되는 혐의를 적용하여 검거하는 등 노조에 대한 탄압을 가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인권경찰, 뒤로는 인권탄압

위의 사례들에서 보듯, 경찰폭력은 주로 강압적인 정부정책에 저항하는 사회적 약자들과 불안정 노동과 착취에 저항하는 노동자들, 그리고 이에 연대하는 인권, 사회단체들을 겨냥하고 있다. 부안 핵폐기장 유치 반대, 농민들의 쌀개방 반대, 평택미군기지의 토지강제수용 반대, 최근의 한미 FTA 저지 등에서, 그리고 울산 건설플랜트, 청주 하이닉스, 기륭전자, 코오롱, KTX 여승무원, 경북 건설 노동자 등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서 경찰은 늘 공격적인 진압 작전과 함께 폭력을 휘둘러왔다.

'인권경찰'의 전시장에서 인권단체들이 연 경찰폭력 규탄 기자회견


그런데 이러한 경찰의 폭력은 과거와는 달리 합법성을 가장하고 있다. 오늘날 이른바 문민정부들은 민중의 삶에 적대적인 정책들을 수립하고 추진하면서도, 형식적으로나마 획득한 절차적 정당성을 활용하고 있다. 쌀 개방이나 평택미군기지 확장 등은 형식적이나마 국회의 동의를 얻은 것이다. 상시적인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확대 등 더욱더 불안정해진 노동 역시 97년 국회에서 통과된 노동법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형식적인 민주성을 앞세우고, 경찰은 정부 정책과 노동 착취에 반발하는 민중들의 저항을 진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으로, 경찰은 인권을 내세우며 자신들을 ‘인권 경찰’로 포장하고 있다. 2005년 10월 4일 경찰은 ‘과거의 잘못된 모습을 바로잡아 인권 경찰로 거듭나겠다’며 남영동 대공분실을 폐지하고 경찰청 인권센터로 만드는 ‘인권경찰 비전선포식’을 가졌다.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허구적인 선전에 불과하다는 것은, 실제론 남영동 대공분실은 폐지된 것이 아니라 다른 부서로 통합 이전되었을 뿐이며, 심지어 이 행사가 있고나서 불과 한달 후에 전용철/홍덕표 살인 진압 사건이 발생했다는 데서 잘 알 수 있다.

또한 경찰이 인권을 내세우는 것은 단지 자신들의 폭력적 실체를 가리려는 의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에는 생존을 걸고 저항하는 민중들의 투쟁을 폭력 시위로 매도하여 탄압을 정당화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대표적인 예가 폴리스 라인이다. 경찰은 집회에 폴리스 라인을 설치한 뒤, 그 선을 넘어오지만 않으면 진압하지 않겠다고 주장한다. 이로써 경찰은 합법적인 집회 시위를 보장한다는 인권 친화적 모양새와 함께, 이를 지키지 않는 시위대를 불법 폭력 시위대로 탄압할 명분까지 얻는 것이다.


교묘해지는 경찰 폭력 - 사적 폭력의 방조와 묵인

경찰이 용역 깡패들의 폭력과 평화 행진에 가해진 상인들의 테러 등 사적 폭력을 묵인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최근 레이크사이드CC 골프장에서는 사측 구사대와 용역이 노동자들에게 초산이 담긴 비닐봉지를 투척하여 한 노동자가 실명위기에 처해있는 실정이다. 평택에서는 미군기지를 위한 토지강제수용에 반대해 평화롭게 행진하던 '평화야 걷자‘ 행진단이, 기지 확장에 찬성하는 상인들에게 각목과 돌멩이 등으로 한밤중에 테러를 당했다. 두 사례 모두 경찰은 현장에 있었으나 폭력 사태를 방관하기만 했을 뿐, 현행범 체포는커녕 이들을 제지하거나 해산 명령조차 내리지 않았다.

지난 1월 병원측에서 동원한 용역업체 직원들이 현관에서 세종병원 조합원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사진 출처: 보건의료노조 부천세종병원지부>


이렇게 경찰은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사적 폭력을 용인함으로써, 자신들 스스로는 부담을 덜고 ‘인권경찰’이라는 세련된 이미지를 구기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저항 세력에게는 더욱 악랄한 폭력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적 폭력은 경찰이 직접 수행하거나 지시한 것은 아닐지라도, 경찰 폭력이 교묘해지고 세련화되는 경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사회 협약’의 탈을 쓴 기만적 선전

이렇게 허구적인 합법적/인권적 이미지를 구축하고 활용해온 경찰은, 최근에는 소위 ‘평화적 집회시위 문화 정착을 위한 민관공동위원회’(아래 민관공동위원회)를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이 민관공동위원회는 농민 집회에서 농민 참가자가 사망하는 등 집회/시위에서의 폭력 충돌이 사회문제가 되자 정부와 몇몇 시민단체 인사들이 이를 일종의 “사회적 협약”을 통해 해결해보겠다며 꾸린 국무총리실 산하의 조직이다.

그러나 애초에 갈등의 근본 원인인 수탈적인 정부 정책은 젖혀놓고, 시위대에게만 폭력 사용의 책임을 묻는 이 위원회의 접근 방식은 그 자체로 기만적이고 폭력적이다. 실제로 이 위원회는 경찰청 내의 태스크 포스 팀이 만든 방안들을 민간위원들이 제대로 검토해보지도 못한 채 승인해서 발표하는 식으로 운영되며, 이곳에서 발표한 대책안을 살펴보면 △강화된 소음기준과 폴리스라인의 엄격한 적용 △특정인에 대한 집회 참가 차단 △형벌의 상향 조정 △민사상 배상 청구 활용 등 철저히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약하고, 정부 정책에 저항하는 이들의 합법적 공간을 줄이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있으며, 경찰의 폭력을 통제하는 방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식으로 추진되는 정부와 경찰의 “사회적 협약”은 갈등과 충돌의 책임을 사회적 약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선전 도구로서, 이를 빌미로 저항하는 이들을 더욱 탄압하려는 정부와 경찰의 수법에 불과하다.


경찰폭력 없는 세상을 위하여

이렇듯 날이 갈수록 세련화되고 교묘해지는 국가와 경찰의 폭력은 제도적으로 견제될 필요가 있다. 우선 경찰이 진압작전을 수행할 때는 반드시 개인 식별 표지를 부착하고,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진압작전의 세부 내용을 공개하여 공권력 행사에 책임이 뒤따르도록 해야 한다. 한 집회에서 농민이 두 명이나 사망했는데도 아무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현실은 분명 잘못된 것으로,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막강한 공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에게 그만큼 엄격한 책임을 지워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시위진압만을 전담으로 맡는 준군사조직인 경찰기동대가 축소 내지 폐지되어야 하며, 위헌 논란과 함께 그 자체로 인권침해의 소지가 많은 전의경의 시위 진압 동원이 금지되어야 한다. ‘대간첩작전’이라는 전투경찰설치법의 목적이 사실상 불필요해진 상황에서, 과거 민주화투쟁을 탄압하기 위해 전의경들을 동원하던 일을 아직도 계속하는 것은 아무런 명분이 없다.

또한 날로 심해져가는 구사대와 용역 깡패들의 폭력과, 이를 방조하는 경찰의 직무유기를 견제하기 위해 용역경비업법이나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집회나 파업 현장에는 국가인권위 등의 인권 감시 기구에서 상시적으로 감시단을 파견하여 공권력의 폭력적인 행사를 감시하고 견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결국은 문제해결의 뿌리까지, 곧 정부로 하여금 민중들에게 강요되고 있는 적대적인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인권오름 제 13 호 [입력] 2006년07월19일 5: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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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일본 반(反)기지운동으로부터 배운다 ②] 미사일기지 위에 꽃핀 평화적 생존권

 

나가누마 미사일기지 사건,

평화적 생존권 법정에서 인정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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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주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으로 온 세상이 떠들썩하다. 바야흐로 시엔엔(CNN)의 계절이다. 언제 적 모습인지 불분명하지만 살기 넘치는 북한군의 퍼레이드, 길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주어먹는 남루한 옷차림의 굶주린 사람들, 비밀리에 입수하였다고 하면서 끊임없이 돌려대는 공개처형 장면들…. 구태의연한 레퍼토리이긴 하지만, 이런 장면들을 보고 있자면 북한은 두말 할 나위없는 ‘불량국가’(rogue state)이다. 그런 시엔엔(CNN)이 이번에 새로이 개발한 메뉴도 있다. 북한 미사일에 대한 요격가능성과 관련한 언급이다. 부시는 이 미사일방어시스템이 아직 만족스럽지는 못하다고 하였지만, 뉴스의 행간을 읽어보자면 “위험스런 ‘공공의 적’을 공중에서 격파하는 공익의 수호자를 상상하여 보라.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뭐 이런 식이다.

그런데 적을 공중에서 요격하는 환상적 논리도, 또한 알고 보면 미국의 군비증강을 위한 오랜 애창곡 중의 하나이다. 미국은 냉전이 한참일 무렵, 웨스턴 일렉트릭 컴퍼니(Western Electric Co.)라는 무기개발회사를 통하여 공중에서 소련의 폭격기를 요격할 수 있는 무기개발에 열을 올린 적이 있다. 급기야 이를 실전배치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나이키(Nike) 미사일이다.


작은 시골마을에 미사일기지 날벼락

그런데 이러한 개념의 미사일이 배치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공익이 수호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쟁에 휩쓸려 공익이 송두리째 뽑혀나갈 가능성이 증대되기 때문이다. 폭격기나 미사일로 공격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요격미사일기지는 공격목표 제1호로 격상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미사일기지 주변에 사는 범부중생의 평화적 생존이 송두리째 날아가리라는 것은 말해 무엇하랴. 나아가 아무리 방어를 명목으로 건설되는 것이라고는 해도 미사일기지는 그 자체로 주변국을 위협할 수 있는 군사기지임에 분명하다. 나가누마 미사일기지 사건은 미국이 규정한, 1960년대의 이른바 불량국가 소련의 폭격기에 대비하는 요격미사일 나이키를 나가누마(長沼)에 배치하려는 데서 시작되었다.

일본 홋카이도에 위치한 나가누마현
나가누마는 일본 열도 최북단 홋카이도(北海道)에 위치한, 인구 2만을 넘어본 적이 없는 우리의 군 단위쯤에 해당하는 조그만 시골이다. 그나마 요즘은 삿포로시가 넓어지면서 전원생활을 하며 출퇴근하려는 사람이 늘었지만, 고원평야의 쌀농사가 전부이고 수해방지 등을 위한 숲(보안림)의 일종인 수원(水源) 함양림(涵養林) 마오이(馬追)산이 한 켠에 버티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조그만 촌동네에 미국과 일본정부는 대소련 방공(防空)기지로서의 ‘역사적 책무’를 맡기려고 하였다. 이에 일본정부는 방위력증강계획을 세우고 그 일환으로 이곳에 항공자위대의 기지를 설치, 이곳에 나이키 미사일을 배치하고자 하였다.

미사일기지 건설을 위해서는 막대한 토지가 필요하였는데, 일본정부는 이를 위하여 나가누마 내에 있는 마오이산 일대 약10만평(35헥타르)을 제공키로 하였다. 이를 위해 보안림 지정을 해제하고자 하였고, 해제 처분을 위한 법리상의 명분으로 들고 나온 것이 다름 아닌 ‘공익상의 이익’이었다.


‘강요된 공익’에 반기 든 주민들

그러나 지역주민 173명(이후 소송인단은 359명으로 늘어났다)은 기지건설을 위한 보안림 지정 해제 처분이 공익을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익을 해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보안림 해제 처분이 이루어진 1969년 7월 7일, 즉각 이를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것이 나가누마 나이키미사일기지 사건의 시작이다.

사실 법을 접하다 보면 일반인은 물론이고 법률전문가조차도 아무 생각없이 넘어가는 추상적인 개념들, 괜히 주눅이 드는 개념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공익, 국가안보, 뭐 이런 개념들이다. 이런 개념들은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첫째, 누구의 공익인지, 무엇을 위한 공익인지, 누가 판단하는 안보인지가 불분명하다. 둘째, 이런 개념에 시비를 걸면 괜히 공익보다는 사리사욕을 앞세우는 인간 같고, 안보는 도외시한 채 한가한 소리만 하는 사람으로 도매금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은 개념이라는 점이다. 셋째, 그런 탓인지 법률전문가조차도 그냥 넘어가기 때문에 대부분 정부가 생각하는 공익과 안보가 국민의 공익과 안보로 둔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나가누마 주민들은 이에 대하여 NO라고 선언했다. 요격미사일기지가 설치되면 농사짓고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이 깨지고 전쟁에 휩쓸릴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기 때문에 공익이 증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익을 해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사일기지 설치를 위해 ‘공익’을 이유로 보안림지정을 해제하는 것은 정부의 행정편의이자 정부가 생각하는 공익일 뿐이지 주민들의 공익, 곧 평화적 생존에 대한 배려와 증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나이키미사일기지 사건은, 그 시작은 비록 조촐하였지만 같은 해인 1969년에는 산리즈카(三里塚) 공항 분쇄 투쟁, 동경대학의 야스다강당 점거사태 등으로 이어지면서 일본 사회를 평화와 인권 함성의 격랑으로 밀어넣었다.


후쿠시마 판사, “미사일기지는 평화적 생존권 침해”

이 격랑의 와중에 주민들의 소박한 생각에 손을 들어 준 것은 후쿠시마 시게오라는 젊은 판사였다. 우리나라로 보면 386세대의 판사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실제 후쿠시마 판사는 사법개혁을 추동하기 위하여 결성된 청년법률가협회의 회원이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그가 청년법률가협회의 지시나 시책에 따라 판결을 내린 것은 아니고, 판사로서의 양심과 법리에 따라서 재판하였을 뿐이었다.

아무튼 후쿠시마 판사는 1973년 9월7일, ‘일본 헌법에 비무장평화주의를 규정하고 있는데도 그 규모로 보나 장비로 보나 군대에 해당하는 자위대를 두는 것은 헌법 원리에 반하며, 따라서 자위대의 일부인 항공자위대의 미사일기지 건설을 위한 보안림 지정해제는 공익과 무관하다’고 판결하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정부의 보안림해제처분이 일본국 헌법 전문에서 규정하고 있는 평화적 생존권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했다는 점이다. 곧 나이키미사일 발사기지가 설치되면 유사시 상대국의 첫 번째 공격목표가 되는 바, 이는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의 권리를 침해하는 공권력 행사’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청년법률가협회와 같은 많은 법률가단체, 노동조합, 지역주민, 각종 정당과 사회단체의 지지 속에 14년이나 계속된 나가누마 미사일기지 사건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었다.

요즘 평택에서도 평화적 생존의 권리가 주창되고 있다. 평택 미군기지가 북한지역은 물론 아시아전역을 상대로 한 신속기동군기지로 재편되면 유사시 상대국의 첫 번째 공격목표가 되는 바, 이는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의 권리를 침해하고 침략전쟁을 부인한 우리 헌법의 평화주의원리에도 반한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판사의 판결과 궤를 같이 하는 주장임을 알 수 있다.


재판규범으로서의 가능성 발견해

평화적 생존권 함성을 짓밟고 배치된 나이키 미사일 <사진 출처: www.naxnet.or.jp>
다시 1970년대의 일본으로 눈을 돌려보면, 용기있는 지역주민과 헌법원리에 충실한 재판을 하고자 했던 판사의 양식이 어우러져 헌법학자뿐만 아니라 평화애호세력을 흥분시키고, 전국민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나가누마 미사일기지 사건 1심판결은 이후 무참히도 뒤집혔다. 특히 고등재판소는 1976년 8월5일, 자위대설치와 같은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갖는 국가적 행위는 위헌무효로 명백히 확신할 수 없는 이상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른바 ‘통치행위론’이라는 궤변으로 평화적 생존에 대한 전국민적 기대를 뒤집은 것이다. 그 후 1982년 9월 최고재판소가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14년에 결친 재판은 종결되었고, 결국 나가누마에는 항공자위대의 미사일 기지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나이키미사일 대신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배치되어 오늘도 정체모를 가상의 적(아마도 북한)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고된 반대운동에도 불구하고 미사일기지가 결국에는 설치되고 현재까지 엄존한다고 하여, 고등재판소와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했다고 하여 실망만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간 추상적으로만 논의되던 평화적 생존권, 평화와 인권을 연결해주는 평화적 생존권이 재판규범으로도 기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법정을 넘어 인간의 함성으로

사실 요즘 우리 사회의 새로운 관심은 평화와 인권이다. 그런데 이 평화와 인권은 별개의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평화는 정책의 문제이고 인권은 그저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평화적 생존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는 신체의 자유나 언론출판의 자유와 같은 인권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평화적 생존권은 인권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이다. 평화적 생존권은 평화적 생존을 저해하는 국가적 행위에 저항하는 권리이며, 무기수출과 같은 국가에 의한 평화저해행위를 견제하는 권리이며, 분쟁에 휩쓸리기 쉬운 정책을 취하지 않도록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평화적 생존권은 자기가 사는 나라에 대해서만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다른 다라, 예를 들어 미국에 대해서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이러한 인권을 어려운 말 쓰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제3세대의 인권’이라고 한다. 제3세대의 인권은 연대의 권리이기도 하다. 평택의 평화적 생존은 평택주민만의 분투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민과 미국민, 그리고 평화를 애호하는 모든 사람이 연대하여 한국정부와 미국정부의 신속기동군화전략을 견제하여야 하는 온전히 지켜질 수 있는 권리이다.

따라서 평화적 생존권이 우리 법원에서 재판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낙담할 필요는 없다. 인권은 재판규범이면서 동시에 정치 규범이다. 재판의 기준이 되기 위해서는 소의 이익, 입증책임 문제 등 복잡한 소송기술로 인하여 그 당위성은 인정받으면서도 승소할 수 없는 경우가 있지만, 정치규범으로서의 인권은 국가의 정책결정이나 입법과정을 통하여서 반영될 수 있는, 보다 진면목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평화적 생존을 저해하는 국가적 행위를 인권의 이름으로 반대함으로서 민초들의 목소리가 국가정책 결정에 반영되도록 하고, 평화적 생존을 저해하는 입법이나 조약을 개폐하도록 하는 것도 인권의 책무이다.

나가누마 미사일 기지 사건은 평화적 생존권이 재판규범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면서 동시에 평화적 생존의 권리는 법정에 가두어 둘 인권이 아니라, 국민들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의 함성 속에 꽃피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평화적 생존의 권리, 한국 사회에서도 과연 주권자인 국민의 함성으로 메아리 칠 것인가.
이경주 님은 인하대 법학교수입니다.
인권오름 제 13 호 [입력] 2006년07월18일 16:4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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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적 저항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

 

'평화야, 걷자!' 행진단장, 20일 구속적부 심사

 

  2006-07-19 오후 7:49:11

  지난 11일 구속영장이 발부된 '평화야, 걷자!'의 행진단장 박래군 씨에 대한 구속적부 심사가 20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박래군(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씨는 9일 새벽 평택경찰서 앞에서 경찰에 항의하는 농성을 하던 중 행진단원 45명과 함께 연행됐다. 그 후 박래군 씨에게만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으며 나머지 연행자들은 풀려났다.
  
  "검찰의 구속사유는 사실과 다르다"
  
  검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한 이유로 "(박래군 씨가) 평택경찰서 앞에서 불법집회를 진행하고 집회 참가자들과 함께 경찰서 중앙 현관까지 무단으로 침입했으며, 3회에 걸친 해산명령에 불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현장에 있던 '평화야, 걷자!' 행진단원들은 검찰의 구속사유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행진 참여자 20~30명 정도가 평택경찰서 마당 현관 앞쪽까지 들어갔다가 약 10분 후 스스로 경찰서 밖으로 나왔다"며 이는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이용하기 위해서였고 경찰서를 무단으로 '침입'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평택경찰서 정문 앞에서 30분 정도 항의집회를 가진 뒤 자진해서 해산을 시작할 때 경찰이 갑자기 행진단원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했다"며 해산명령에 불응한 것 또한 사실과 다른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이들은 "당시 집회는 대법원의 판례로도 정당성이 증명되어 있는 '긴급집회'였고 더군다나 평화적으로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즉 신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회를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참가자들을 연행한 것은 법의 조문을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기계적으로 해석하고 집행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비폭력 항의집회는 '평화적 저항권'의 행사"
  
  한편 박래군 씨의 구속에 대해 인권운동사랑방 측은 "현행 형사소송법에서는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일정한 주소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는 때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에만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다"며 "이는 인권운동가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박래군 씨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사유"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인권운동사랑방은 "경찰의 직무유기와 인권침해에 항의하기 위해 비폭력적으로 항의집회를 가진 것은 '평화적 저항권'의 행사이며 이는 우리 헌법뿐 아니라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국제 인권기준에서도 인정되고 있는 '불복종의 권리'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평화야, 걷자!'는 지난 5~9일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와 한미 FTA 협상 반대를 내세우며 200여 명의 시민들이 서울에서 평택까지 도보로 행진한 행사다.

   
 
  강이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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