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annerist > 과학기술 동맹의 전횡에 맞서는 비판적 이성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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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열광 - 황우석 사태 7년의 기록
한재각.강양구.김병수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6월
평점 :
또 황우석, 혹은 아직도 황우석이냐고, 다소 촌스러운 빛깔의 표지에 음산하게 박힌 황우석의 얼굴을 보고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러나, 서울대 조사위의 결과보고와 검찰 최종 수사발표로 일단락 된 것은 황우석을 중심으로 형성된 줄기세포 연구 관련 인사들의 몰락뿐이다. 책 제목대로 소수의 비판자들을 '침묵'시키고 다수의 국민들을 맹목적으로 '열광'시켰던, 황우석을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 동맹의 매커니즘에 대한 비판과 이를 가능케 한 사회 토양에 대한 자성은 보이지 않는다. '진실보다 국익이 우선'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언론은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반성하지도, 성찰하지도 않는다. 황우석 밀어주기에 여념이 없던 정부 관료와 정치인들, 황우석을 등에 없고 의료 산업화에 매진하던 재계 인사들은 자신들도 황우석에게 속은 피해자라고 강변하는것도 모자라, 아직도 황우석과 환자형 맞춤 줄기세포의 존재를 '믿고' 연구재개를 바라는 자들도 있다. 이 세력들이 잔존하는 한 황우석 사태는 마감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회적 토양에서는 비판에 대한 '침묵'과 무비판적 '열광'만을 강요하며 자기 집단의 이해 관계에 따라 정치, 경제, 언론, 학계 세력이 동맹을 형성하여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사회에 강요하며 공익을 훼손하는 일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요약하자면 '과학기술 동맹의 형성과 작용, 그리고 몰락과 그 영향'정도로 할 수 있겠다. 핵심 키워드 '과학기술 동맹'이란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기술 영역의 전문 집단이 중심이 되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정치, 경제, 언론 집단이 강력한 동맹을 형성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사회의 중요 의사 결정을 움직이는 연합체를 말한다. 이들이 왜 문제인가?
황우석 사태에서 이 연합체의 결성 과정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연구 자체보다 개인의 영달에 뜻이 있던 동물 복제 전문가 황우석이 배아줄기 세포 연구진과 학적 이해 관계에 따라 연합한다. 이들이 배아줄기 세포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난자 조달과 연구 개발에 따르는 막대한 재원과 윤리 문제가 해결되어야 했다. 재원 확충을 위해 황우석 연구팀이 제기한 논리가 의료산업화였고, 이는 의료/복지 체계에 시장논리를 적용하려는 거대 기업의 논리와 맞아떨어져, 대다수 기업 - 특히 제약 회사를 계열사로 거느린 - 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다. 또한 윤리 문제는 집권 기간 동안 전 정부의 IT산업 육성과 비교될만한 산업 정책을 찾던 참여정부 정치인들의 이해와 맞물려 그들의 지지를 업고 법적 제한마저 해결하게 된다. 과학계 역시 전체 파이의 크기를 키운다는 면에서 비판적 견해를 자제한다. 여기에 언론은 '영웅 만들기'로 대변되는 상업적 이해에 따라 별다른 검증 없이 무분별하게 황우석 연구진 띄우기에 발벗고 나서며 기존의 과학기술동맹을 공고히 다진다. 문제는 저 강고한 동맹 체계가 모든 비판을 무력화시키면서 자기 집단의 이익을 무분별하게 추구하여 사회 전체에 해악을 끼치는 데 있다. 그 구체적 실례가 어떠하였는지를, 사태 추이를 명료하게 요약한 이 책을 굳이 읽지 않더라도 반년 전 생생히 목격한 바 있다.
이 책은 단순히 황우석 사태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요약하고 정리하는 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앞에서 상술한 과학기술 동맹의 각각의 축을 이루는 집단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사안에 따라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하며 정보를 은폐하고 공익을 저해하였는지 하나하나 실례를 들어가며 서술하고 있다. 황우석 연구진만을 위해 사회 각 계층간의 심도깊은 논의를 통해 도출한 법안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연구 성과를 과대포장하고 그 위험성에는 눈을 감았을 뿐만 아니라 의료산업화를 통해 거대 기업의 이익을 추구하며 의료 공공성을 저해하려 한 사례들이 그것이다.
끝으로, 이 책에서 논의한 바를 뛰어넘지만 황우석 사태를 최악으로 이끈 사회적 공감대에 대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결과지상주의'와 '태도에 대한 과잉집착'이다. 제대로 된 연구노트 하나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실험실 운영하다 논문조작까지 저지른 '전직' 과학자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서조위 조사 중간 발표 이후에도 절반이 넘었다. 또한 YTN의 악의적 청부 취재 방영시, 대다수 사람들은 PD수첩 제작진의 '도를 넘어선 협박'에만 주목하여 진실보도를 추구한 프로그램을 사회적으로 매장시켰다. 그 '협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 협박으로 인해 PD수첩 제작진에게 털어놓은 사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말이다. 그 사실 확인 없이 PD수첩의 협박에만 포커스를 맞춘 YTN의 보도만 듣고, PD수첩을 맹목적으로 비난했던 모든 사람들 역시 비판 의식을 상실하고 암묵적으로 과학기술 동맹의 전횡에 협조한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개개인의 책임은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굳이 책임과 윤리에 대한 가라타니 고진의 논의를 끌어올 필요도 없다. 정확하게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의 추악한 모습을 속속들이 알고 기억하는 게 그 시발점이다. 이 사건을 기회 삼아 개개인의 비판적 이성의 날을 조금 더 세운다면, 황우석 사태의 끝이 그리 암담하지만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