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에 이르면 예술가로서의 피카소의 생애 중 두번째이자 최후의 위대한 시기는

마감하게 된다. 그 시기 동안 그는 몇몇 졸작들을 그리기도 했지만 걸작 또한 몇 점을 남겼다.

1943년 이후 그는 그 전 시기에 비교될 만한 작품을 전혀 만들어내지 못했다. 왜 그는 그전처럼

계속할 수 없었을까? 1931년에서 1943년 사이에 그려진 피카소의 걸작 그림들은 모두,

<게르니카>를 포함하여-- 그리고 바로 그것이 많은 비평가들이 그토록 오판했던 대목이다--자전적이었다.

그것들은 고도로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경험의 고백들이다. 그것들은 보통 현대에서 쓰이는 의미로서의

사회적 상상력을 전혀 구현하고 있지 않다. 초기의 그림들은 성적인 쾌락에 관한 것들이었다. <게르니카>와

전쟁을 소재로 한 그 비극적인 그림들은 고통에 관한 것으로, 에로틱한 그림들의 정반대 면이었다.

에로틱한 그림들은 모두 감흥을 표현하는 것과 관계가 있었다. 그것들 모두는 부분들을 해체할 자유--큐비즘

에 의해 획득된 자유-- 이용하여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써버렸다.

 

  이러한 주제들을 찾기 위해서 피카소는 자신의 육체를 떠날 필요가 거의 없었다. 그가 에로틱한 그림들을

그린 것은 자기 육체의 경험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그가 전쟁 그림을 그렸던 것은, 성적 경험으로 고양된

자신의 육체적 상상력을 통해서였다. (전쟁 그림의 경우 등장 인물들의 거의 모두가 여자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그의 성공적인 주제의 선택은 매우 본질적인 차원에서 그에게 벌어지고 있는 것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 차원 -- 어느 유럽 출신 화가도 그 이전에 그토록 깊이 탐사한 적이 없는 차원 -- 에서 하나의 주제

가 갖는 특별한 중요성 혹은 의미는 문화적이라기보다는 생물학적으로 확인된다. 그 차원에서는 -- 우리가

그것을 수긍할 만한 용기가 있다면 --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는 것이다.

 

존 버거,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 김윤수 옮김, 미진사, 1984, p. 205.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balmas 2006-06-19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학년 때인가 3학년 때인가,

이 책을 아주 감명깊게 읽었다.

그 후 몇 년 뒤 이미지에 관한 그의 또다른 책을 읽었는데

(국내에는 [영상커뮤니케이션과 사회]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으로 번역된 책과

[이미지 : 視覺과 미디어]라는 제목으로 동문선에서 나온 책,

그리고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또다른 제목으로 번역된 책이 있는데,

나는 동문선에서 나온 책을 보았다. 번역은 별로 -_-;)

이 책 역시 감동적이었다.

그 뒤 나는 존 버거의 열렬한 독자가 되었는데,

알라딘을 검색해보니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가 증보판으로 나와 있다.

마침 큐비즘에 관한 내용이 보충되어 있다고 하니,

당장 구입해봐야겠다. :-)


비로그인 2006-06-1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민학교요? ㅋ 흠 죄송합니다..;;

balmas 2006-06-19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국민학교가 아니라 유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