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라열씨 보도…언론은 '벌떼'인가

[기고] 정영찬·서울대 인터넷뉴스 스누나우 편집장

2006년 06월 01일 (목) 23:10:55 정영찬·스누나우 편집장

'벌떼 같다.' 창공을 가르는 벌떼를 본 적이 있는가. 벌떼는 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날아가 꿀을 찾아온다. 또한 그들은 동족의 신호를 전혀 '의심'하지 않고 꿀이 있는 장소로 달려든다. 서울대 2006년(49대) 총학생회장 황라열 씨에 대한 기성 언론의 태도는 마치 벌떼와 같아서, 꿀이 있는 곳이라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게다가 그들은 꿀이 있는지 없는지 의심조차 하지 않은 채 그 꿀(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사정없이 빨아댄다.

총학생회장 당선 때부터 시작된 언론의 집중 보도

   
  ▲ 황라열 서울대 총학생회장 ⓒ노컷뉴스  
 
'먹을 것 앞에서 참기 힘들다'는 생리적인 점까지 곤충과 닮았는지에 대해선 모르겠지만, 총학생회장 당선이 확정된 지난 4월13일 오전부터, 조선일보와 MBC를 비롯한 기성 언론들은 '이색 경력 총학생회장'을 주 기사거리로 보도했다. 문화일보는 4월13일자 기사에서 "황라열 씨의 이력서는 말 그대로 자리가 모자랄 지경"이라며 황 씨의 화려한 경력을 강조했고, 같은 날 경향신문은 "마치 한편의 인생역전 드라마를 연상케 하는 다양한 이력을 가진 늦깎이 대학생이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며 흐름에 따랐다.

중요 이슈에 집중하는 언론의 태도는 비판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중요 이슈'였는가에 대한 사유가 없었다는 점이 문제다. 또한 '다양한 이력'과 '서울대 총학생회장'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경력 중심의 보도는 '사실 확인'이 뒷받침되지 않은 '선정적 보도'였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황 씨의 경력의 일부가 '허위 또는 조작’이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사실 확인 미비로 빚어진 '한총련 탈퇴' 보도 소동

벌떼 언론의 행태는 여기서 끊이지 않았다. 황 씨가 한총련 탈퇴 기자회견을 했을 당시, 기자회견장엔 30여명이 넘는 기자로 붐볐다. 의심 없는 벌떼와 같이, '그들'은 황 씨의 말을 받아 적고 그 말을 그대로 보도했다. 마치 '서울대 전체'가 황 씨의 의견에 동조라도 하는 듯 '굿바이 투쟁의 시대(조선일보 5월10일)'라는 자극적 표제를 쓰거나, "사상으로 뭉친 소수의 집단이 이끄는 학생운동은 저물고 있다(국민일보 5월10일)"라는 교수의 말을 통해 '이제 서울대에 운동은 없다'란 주장을 폈다. 하지만 '그 때'는 평택 미군기지 문제로 인해 연행된 50여명의 서울대 학생들이 풀려난 직후였다.

편향된 시각을 통해 거시적 논점이 결여된 채 양산된 당시 기사들은 서울대 총학생회와 한총련의 관계에 대한 과거사적 서술이 없다는, 그 내용적 공통점에서 맥락을 완전히 일탈하고 있다. '용기있는 서울대의 한총련 결별(세계일보 5월11일)'과 "이번 선언은 학생 자치활동 역사에서 구시대의 종언(終焉)과 새 시대의 개막을 동시에 보여 주고 있다(동아일보 5월11일)" 식의 보도는 학생들조차 당황하게 만들었다. 한총련과 서울대 총학생회의 관계가 소원했던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계없는 단체를 탈퇴했다는 점에서 이는 마치 열린우리당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퇴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이와 같은 문제가 생긴 것은 80년~90년대 초반과 다르게 현재는 한총련(전신 포함)이 학생운동의 주류에서  밀려나있고, 학생운동이 총학생회와 별개로 진행되는 측면이 있다는 '현장 변화'에 대한 취재가 미숙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서울신문은 이에 대해 "한총련과 서울대 총학생회는 1998년 이후 사실상 단절된 사이, 의미 없는 것을 갖고 서울대 총학생회가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5월12일)"는 한총련 측의 입장을 전했다.

반성없는 기성 언론…허위 경력 파문에도 '맹신' 또는 '외면'

언론의 집중이 벌떼와 같은 무작정 '집착'이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 것은 근래의 황 씨의 '허위 경력' 파문을 통해서다. 당선 직후, 황 씨의 화려한 경력을 보도했던 수많은 언론들은 말 그대로 '뒷통수'를 맞은 꼴이 된 것이다. 황 씨의 '고대 입학'과 한겨레21 수습기자 경력이 사실무근으로 밝혀지면서 그들은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됐다. 팩트 중심의 기사'란 가장 기본적 보도 윤리가 무시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기성 언론은 '반성'이 아닌 '맹신'과 '외면'의 한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황 씨의 경력 조작이 밝혀진 후 일부 언론은 "그는 '고려대 의예과에는 특차로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어 등록을 포기했던 것이 본의와 다르게 입학한 것으로 잘못 알려졌다'고 말했다. 또 '한겨레21의 기고문 요청에 응한 사실이 다른 잡지사 수습기자 경력과 묶여서 표현되는 과정에서 수습기자인 것으로 잘못 전달됐다'고 덧붙였다(경향신문 5월27일)"는 식의 보도를 통해 이러한 발언을 '그대로 믿는' 태도를 보였다.

실수란 성공을 위한 어머니가 아니라, 또 다른 실수를 위한 도약인가. 왜, 황 씨의 해명에 대해선 사실 확인의 노력이 없는가. 또한 스누나우에서 '대마초 판매 경력' 관련 보도를 한 것에 대해 황 씨가 해명하자, 그에 대해서도 "코믹해 보이는 게 우려되지만 나프탈렌, 소위 말하는 좀약을 판 것이라고고 해명했다(세계일보 5월29일)"는 보도를 통해 황 씨를 맹신하는 태도를 보였다. 한총련 탈퇴 선언 당시 선정적 제목을 통해 보도했던 조선일보 등은 이번 경력 조작 사태를 보도하지 않는 '외면'의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황 씨의 말이 '거짓일 수도 있다'라는 반성적 보도 태도는 언제쯤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집중이 집착이 되고 그것이 맹신이 되면 그것은 이미 '기사'가 아니다. 그것은 팬레터일 뿐이다. 기성 언론의 올바른 보도 행태를 촉구한다.


정영찬 / 서울대 인터넷뉴스 '스누나우'(www.snunow.com)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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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6-03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

balmas 2006-06-03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그러세요. :-)

승주나무 2006-06-04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신문이어서 그런지, 문체가 좀 속상하군요. 논술로 따지면 빨간줄이 수십개는 걸려 있을 거에요. 칼럼이니까 감정을 싣는 것은 상관 없겠지만, 기성일보나 다름없이 고발형으로만 쓰는 게 되지 않나요. 내 학생이 쓴 글이라면 "기성 언론의 올바른 보도 행태를 촉구한다"을 핵심에 놓고 다시 쓰라고 주문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글이 주는 '팩트'에 대해서는 인정합니다.^^;;;;

balmas 2006-06-04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역시 승주나무님답습니다.
스누나우에 가셔서 따끔한 지적을 좀 해주시죠. ^^;;

승주나무 2006-06-06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한 가지 고딩스러운 실수를 했네요. '행태'라는 말은 주로 부정적인 행위에 쓰는데, '올바른 행태'라는 말은 스누나우가 고차원적인 의도가 아니라면, 정말 바보 행태로군요.

아잇! 내가 대딩 편집자를 두고 무슨 짓이지^^ 무료해서 그랬어요.

행태(行態)
「명」행동하는 양상.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쓴다. ¶음주 행태/사재기 행태(국어대사전)

balmas 2006-06-06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승주나무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