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질문

안녕하세요. 저는 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영역본으로 보면서 궁금한 점이 들었습니다.

그가 4부에서 자연은 목적 없는 것을 위하여 존재한다(맞나?)라는 말을

했던 것이 문득 떠오르는데요. 몇몇 프랑스 철학자들이 스피노자를 목적론

을 제거한 선구라고 보는 것으로 압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해석을

어떻게 보시는 편인지 궁금해서 질문 드렸습니다. 과연 스피노자에게는

내재적 목적론조차도 전혀 없는 것인지..... 그가 보는 자연이나 인간은 어떠한 목적도 상정하고 있지 않는, 또는 않아야 하는 존재인지...

궁금합니다. 좋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첫 번째 답변

목적론이라는 말은 사실 좀 모호한 데가 있죠. 그래서 목적론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목적론이 지시하는 바가 무엇인지 좀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피노자가 목적론을 비판했다고 한다면, 그건 특히 [윤리학] 1부 [부록]에서 볼 수 있듯이 신이 어떤 목적을 염두에 두고 세계를 창조하고 행위한다는 식의 관점을 비판하기 위해서죠.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스피노자는 매우 신랄한 반목적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인간의 행위와 관련해서 본다면, 스피노자가 목적을 염두에 둔 행위를 부정한다고 볼 수는 없겠죠. 최근에 영미권에서 이를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지만, 목적지향적인 행위의 가능성을 부정하게 되면 윤리학이나 정치학이 성립하기 어렵겠죠. 개중에는 스피노자가 일관성이 없다(왜냐하면 신과 관련해서는 목적론을 비판하고, 인간에 대해서는 목적적인 행위의 가능성을 긍정하기 때문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좀 잘못된 이해방식이라고 봅니다.

"내재적 목적론"이라는 말은 무엇을 염두에 둔 표현인지 잘 모르겠네요. 좀더 생각을 분명히 표현해줄 수 있겠습니까?


두 번째 질문

인간 바깥의 초월적인 것을 상정하지 않고 자연이나 인간 안에서 적용될 수 있는 목적론을 얘기한 것이었습니다. 좋은 가르침 정말 감사합니다. 프랑스 철학자들의 해석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제가 잘 몰라서 그럽니다만.. 신 또는 자연은 목적이 없는데, 인간은 목적이 있다는 것이 어떤 점에서 일관성을 갖추는 논리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해요. 바쁘실텐데 자꾸 질문 드려서 죄송해요^^;;;


두 번째 답변

우선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군요.


먼저 내재적 목적론을 "인간 바깥의 초월적인 것을 상정하지 않고 자연이나 인간 안에서 적용될 수 있는 목적론"이라고 정의를 했는데, 이 정의도 사실은 모호하기는 마찬가집니다. 왜냐하면 김동규님이 정의한 의미의 초월적 목적론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거나 중세의 기독교 신학, 그것도 그 중 일부 분파에만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군요. 왜냐하면 신과 세계, 또는 신과 피조물 사이의 관계를 유비적으로 이해하거나 일의적으로 이해하는 관점에 대해서는, 사실 초월적 목적론이라고 말하기 어렵고 내재적 목적론이라고 불러야 하기 때문이죠.

반면 초월적인 관점, 또는 양의적인(equivocal) 관점을 택한다면, 이런 경우에는 목적론이라는 말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목적론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신이 설정한 목적이 이해 가능해야 하고, 자연의 법칙이나 인간의 행위를 통해 어떻게 그러한 목적이 달성되는지 인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엄격하게 초월적인 관점을 택하게 되면 신의 본질에 대한 인식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신의 목적 운운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게 되죠. 따라서 초월적 목적론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용어모순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더욱이 스피노자가 [윤리학] 1부 정리 33의 주석이나 [부록]에서 비판한 것은, 김동규님의 정의에 따르자면, 내재적 목적론입니다.


그 다음 두번째로, 아래에서 제가 이야기한 것은 "신 또는 자연은 목적이 없는데 인간은 목적이 있다"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말을 좀 모호하게 해서 그렇게 들린 것 같은데, 저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었습니다.


스피노자에서 목적론에 대한 비판은 이중적인 구도를 지니고 있죠. 첫째는 당대의 과학혁명과 일치하는 구도인데, 자연을 설명하는 원리로서 목적인(및 지료인, 형상인)을 배제하고 그 대신 작용인만을 인정하는 것이죠. 여기서 비판의 대상은 중세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연학입니다. 다시 말해 자연 안에 존재하는 실재들의 운동이 어떤 자연적 목적, 자연적 경향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보는 관점을 비판하고, 그 대신 관성 원리를 통해 자연 실재들, 물체들의 운동을 인과적으로 설명하는 게 과학혁명의 옹호자들의 공통적인 입장이었죠. 스피노자도 이러한 노선을 옹호하고 있구요.


그런데 스피노자는 다른 한편으로 목적론 비판에서 상상 이론 또는 요즘 표현대로 하면 이데올로기 이론을 지주로 삼고 있죠. 또는 계보학 이론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윤리학] 1부 [부록]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스피노자는 신이 어떤 목적에 따라 행위한다고 보는 편견(이게 바로 목적론이겠죠)이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는지 지적합니다. 스피노자가 보기에 그건 인간들이 "자신들의 욕구는 의식하지만, 자기가 왜 이런 욕구를 가지게 되었는지는 모른다"는 인간학적 사실에서 생겨납니다. 곧 욕구에 대한 의식과 욕구의 원인에 대한 무지의 불일치에서 목적론적 편견이 생겨나게 된다는 거죠. 이걸 인과론적으로 표현하면, 대개의 사람들은 자연적 현상들을 원인의 관점이 아니라 결과, 효과의 관점에서 생각한다/상상한다고 할 수 있겠죠.

이렇게 욕구를 의식하는 상태에서 사람들이 무엇보다 추구하는 것은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이 되겠죠. 그리고 인간을 제외한, 또는 인간의 욕구 충족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은 이것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수행하는 목적 지향적인 행위, 또는 목적론적 행위의 대표적인 형태가 되겠죠.


그런데 자연 사물들 중에는 우리가 만들어내지 않은 것, 하지만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아주 유용한 것들이 존재합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의, 또는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이처럼 좋은, 맛있는, 유용한 것을 만들어놓은 다른 존재자가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게 되겠죠. 게다가 이 존재자는 인간이 만들 수 없는 많은 것들을 해놓았기 때문에 인간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자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강력한 존재자는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처럼 유용한 많은 것을 만들어낸 존재자이며, 따라서 매우 선한 존재자(우리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게 되죠. 이처럼 스피노자가 보기에는 기초적인 인간학적 조건, 곧 욕구는 의식하지만 욕구를 생산해낸 원인은 무지하다는 것에서 인간의 맹목적인 목적지향적인 행동이 생겨나고 자연을 목적론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생겨나는 것이죠.

그러니까 제 이야기는 스피노자가 신에 대해서는 목적론을 부정했지만, 인간에 대해서는 목적론을 긍정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스피노자에게 인간은 상상적인 존재자입니다. 다시 말해 상상은 단순한 무지나 지적 열등함에서 생겨나는 가상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적인 존재 조건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상상적인 한에서 목적지향적인 행위를 합니다. 따라서 인간이 어떤 목적에 따라 행위를 하는 건 불가피한 인간학적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피노자가 설명의 원리로서 목적론을 받아들인 건 아니죠. 스피노자는 인간의 목적 지향적인 행위방식이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인식하고 설명하는 데 관심이 있고, 그러한 자연적 조건이 수동성을 강화하고, 더 나아가 미신과 결합함으로써 정치적 소외를 불러일으키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것을 이론적 목표로 삼고 있죠. 그래야 이런 부조리한 오류를 극복하고 정치적 소외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죠.


간단히 결론을 내리면 이렇습니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많은 행동, 어떻게 보면 대부분의 행동은 목적 지향적인 행동이라고 보지만, 목적론적인 설명 원리를 수용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스피노자에게는 무언가 내재적인 목적론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질문 자체가 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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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가 2005-07-30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꼼한 설명 감사합니다. 의문이 많이 풀렸습니다. 좋은 설명을 들으니 자주 선생님을 귀찮게 할 것 같은 욕구가 싹트는군요. 감사합니다.

balmas 2005-07-31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도움이 됐나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

비로그인 2005-08-11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학생들에게 친절히 답변해주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요즘 바쁘신가봐요. 날도 더운데 수고가 많으십니다.
저는 이번에 학부를 졸업하고 군대갑니다. 상급학교 진학 생각도 해봤는데, 일단 급한불부터 끄려구요. 그간 감사했고, 한 2년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휴가때 어중간히 인사드리는 것보단, 아예 제대하구요^^)
추신 : 방명록보다는 여기가 좋아서, 여기에 글 남깁니다.

balmas 2005-08-12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이 좀 늦었습니다.
juru님 군대가시는군요.
흠, 군대는 견디기 힘든 점들도 많긴 하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젊은 남자들이
경험해야 하는 곳이니까, 직접 부딪쳐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건강하게 지내다가 돌아오기 바랍니다. 틈틈이 공부도 하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