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그러니깐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생각에 불과한데요..
사실 우리 같은 학부생들이 '푸코'라는 사람을 그나마 개괄적이고 평이한 수준에서 접하게 되는 계기는 아무래도 푸코의 원전을 읽는 방식보다는 일종의 철학 개괄서를 통해서 많이 접하게 되지 않겠어요?
그 개괄서로 가장 유명한 것은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철학과 굴뚝 청소부'라고 할 수 있지요. 저 역시 아직 푸코의 원전을 찬찬히 읽어본 적은 없거든요. (그래서 더욱 이번 수업이 기대됨!)
그리고 뭐 더 덧붙여 보자면, 적어도 저의 독서 경험 안에서는 과학사를 가르치는 홍성욱 선생이 정보감시와 관련하여 책세상 우리문고에서 출판한 '판옵티콘'관련 서적 정도? 벤담의 판옵티콘을 푸코가 어떻게 현재로 이끌어와 재해석 하는지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죠. 적어도, 제가 접한 푸코에 대한 해설들은 이 정도가 전부일텐데요...
이러한 기본정보만을 보고 선생님의 강의 계획서를 봤는데, 사실 상 강의 계획서를 이해하는데 굉장한 무리가 뒤따르고 그러진 않았거든요... 즉, 제가 푸코에 대해서 갖고 있는 (혹은 갖게 된) 문제 설정이라는 것이 사실 이번 수업에서 다룰 그것과 전혀 예상하기 힘든 영 딴 판인 얘기는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이지요. (아, 제가 너무 제 자신을 과신한건가요? 혹여나 건방지게 보였다면 용서해주세요)
그런데, 이렇게 '감시' 내지는 '비정상인' 등에 대한 테마로 푸코를 주로 접근하는 방식들이 저는 개인적으로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에 대해 언급한 것들과 푸코와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거든요. 이진경씨도 어느 인터뷰에서 이를 아주 명시적으로 밝힌 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리고 푸코를 이런 식으로 접근 하는 게 아무래도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지배적인 독해법인 것 같구요.. 이런 시도들이 푸코의 여러 연구 성과들을 '사회화'라는 테마로 회귀시키는 듯한 인상도 받습니다. 그리고 이런 독해법이 아무래도 푸코에 대한 '지배적'인 독해인 것 같구요. 이런 시도 속에서 사실 나오는 푸코의 주요 저작들이 이번 강의 계획서에 있는 것 같구요...
그런데 푸코의 '말과 사물'같은 저작을 보면 오히려 이 사회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고 하더라구요. 이 부분은 제가 직접 읽어보지 못하고 들은 얘기라서 확신은 못하지만요..
문득 카프카의 학술원에서의 보고가 떠오릅니다..
아, 길고 재미없고 영양가 없는 저의 리플..ㅠㅠ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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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푸코에 대한 "지배적 해석"이 그런 뜻이었군.
내가 보기에는 한편으로는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약간의 혼동도 있는 것 같은데.
우선 일리가 있다는 건, 국내의 푸코 연구가 사회학적 또는 정치학적인 관점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지. 사실 푸코에 대한 이런저런 석사 논문들이나 연구 논문들을 살펴 보면
아마 사회학도나 정치학도들이 쓴 것들이 제일 많을 거야.
그리고 이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푸코는 대개 1970년대 초, 중반의 푸코, 곧 [감시와 처벌]이나
[성의 역사 1권]으로 대표되는 계보학 시기의 푸코지. 이 시기의 연구들에 권력이나 지배,
감시, 규율과 같이 사회과학적인 주제들이 많이 담겨 있기 때문이지.
철학 분야에서 푸코에 주목했던 사람은 이정우씨인데, 그는 푸코의 고고학,
그것도 [지식의 고고학]을 중심으로 푸코를 읽으려고 했지. 그래서 "담론학"이라는 이름도 만들고
'동아시아 담론의 고고학'이라든가 기타 나름대로 두어 가지 계획을 밝힌 적이 있는데, 박사 논문
낸 이후로는 더 이상 푸코에 관해서는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더라구. 주로 들뢰즈를 원용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걸 보면.
이렇게 계보학 시기의 푸코에 관한 연구가 활발한 이유 중 하나는 이 시기에 나온
푸코 저작들이 국내에 많이 소개가 되어 있고, 또 번역이 그래도 제일 무난하기 때문인 것 같아.
사실 [말과 사물] 같은 책은 번역이 좋지 않아서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지.
[지식의 고고학]은 상당히 추상적인 책이기 때문에 관련된 분야의 논의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기가 어렵고. 반면에 [광기의 역사]는 전체적으로는 무난한
번역인데, 철학적인 논의를 다루는 부분은 오역이 상당히 많은 편인 데다가
매우 현학적이고 과시적인 문체로 씌어 있어서 이해가 쉽지 않지.
분량이 너무 많다는 부담도 있고. 또 사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정신의학의 역사
(대부분 17세기 말에서 18세기 말에 이르는 프랑스 정신의학의 역사지)에 관한 배경 지식도
상당히 필요하기 때문에, 독자들로서는 조금 부담스럽지.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건 국내에는 푸코의 유작에 대한 연구가 거의 부재하다는 점이지.
사실 지난 1997년에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가 출간되고 난 후, 푸코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이 계속 출간되면서 서구 학계에서는 푸코에 대한 새로운 연구 붐이 일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특이하게도 이 강의록에 대한 연구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지.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약간 혼동이 있는 것 같아. 무슨 혼동이냐 하면, 이런 경향은
사실 "해석"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지. 그냥 국내 연구자들이 계보학적 작업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 또는 갖고 있었다(요즘은 사실 눈에 띄는 연구가 별로 없으니까 이렇게
말하는 게 더 적절하겠지) 그렇게 말할 수는 있어도, 푸코의 저작을 해석해냈다고
말할 수는 없지.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독자적인 시각에서 푸코의 저작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해야 하는데, 사실 그런 작업이 있(었)다고 하기는 어렵지. 이런저런 점에서 특징적인
개별 논문들이야 좀 있었긴 하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푸코 연구에서 문제는 지배적인 해석에 대해 어떻게 도전해볼까 그런 게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푸코에 관한 해석을 한번 해볼까 하는 거지.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푸코의
계보학 작업에는 아직도 연구해봐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고 할 수 있지. 그걸 볼 수
있느냐, 그게 일단 문제지만.
결론적으로, 아직 국내에는 푸코에 대한 지배적인 해석은커녕 해석이라고 할 만한 연구도
사실 없는 것 아니냐, 이게 내 생각이야. 농담삼아 말하자면, 그 많던 푸코 연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다 들뢰즈에게 갔나?? ㅋㅋㅋ
끝으로 한 마디 더 하자면, 나는 역사학자들의 푸코를 연구하고 응용하면 훨씬 더
생산적인 작업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 물론 역사가들은 주로 사회사나 미시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긴 하지만, 푸코의 작업도 역사가들이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개념적 도구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지.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들도(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모르지만) 푸코를 좀더 열심히 읽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절대 제기하지 못하는
질문들을 푸코는 제기했고, 또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하기 힘든 조사, 연구를 직접
수행하기도 했으니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