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 출간될 {스피노자와 정치}의 역자 해제입니다.

사실은 좀 "허접"해서 올리기가 부끄러운데, 어차피 인쇄돼서 나올 글이니까, 미리 매맞는다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스피노자와 정치}에 수록된 발리바르의 글들을 간단하게(그런데 사실 분량이

많은 편이죠 ... -_-a) 개괄해본 글입니다.

원래는 알튀세르의 스피노자 해석과의 관련성과 차이점을 중심으로 글을 쓸 생각이었는데, 분량도

너무 많아지고 시간도 더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 알튀세르와의 관계에 대한 부분은 한 부분만

제외하고는 모두 뺐습니다. 언제 이 점에 관한 논의를 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군요.

그리고 해제를 보시면 알겠지만, 지난 번에 문제가 됐던 [스피노자, 반오웰: 대중들의 공포]는 번역본에

수록하기로 했습니다. 저보다는 사실 출판사 사장님의 열정이 더 큰 계기가 됐는데, 여러 군데 문의해본

결과 법적으로 전혀(또는 거의)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어서 수록하기로 했습니다. 어찌 됐든 독자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까 합니다.

 

관개체성의 철학자 스피노자: 에티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론에 대하여



  이 책은 국내에 잘 알려진 프랑스의 철학자 에티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에 관한 주요 연구를 묶은 책이다. 이 책에는 한 권의 단행본과 세 편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글들은 지난 20여년 동안 발리바르가 발표한 스피노자에 관한 연구들 중에서 역자가 보기에 국내에 소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들을 선별한 것이다1).

  1부에 수록된 {스피노자와 정치Spinoza et la politique}는 1985년 프랑스대학출판부PUF에서 내는 “철학들Philosophies”이라는 총서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된 저작이다. 문고본 판형의 작은 책자이지만, 이미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스피노자 정치철학에 관한 권위 있는 해설서로 널리 인정받아 온 책이다(우리가 번역 대본으로 삼은 것은 1996년에 나온 제 3판이다).

  2부에 수록된 글들 중 첫 번째 논문인 「스피노자, 반오웰: 대중들의 공포」는 발리바르가 1982년 이탈리아의 우르비노Urbino에서 열린 스피노자 탄생 350주년 기념 국제 학술회의에서 발표했다가 1985년 유명한 {현대Les Temps modernes}에 수정ㆍ보완하여 실은 글이다(우리가 번역 대본으로 사용한 것은, 약간의 수정을 거쳐 1997년 {대중들의 공포. 마르크스 전후의 철학과 정치La Crainte des masses. Philosophie et politique avant et après Marx}에 수록된 완결본이다). 이 논문은 발리바르가 발표한 스피노자에 관한 첫 번째 논문일 뿐만 아니라 현대 스피노자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논문이기도 하다.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이 논문의 중요성은 안토니오 네그리의 {야생의 별종}(1981)과 더불어 스피노자 철학에서 대중들multitudo이라는 개념의 위치를 체계적으로 해명한 최초의 작업이라는 점에서, 더욱이 네그리와는 여러 가지 점에서 대비되는 관점에서 대중들이라는 개념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스피노자에서 개체성과 관개체성」이라는 글은 알렉상드르 마트롱 기념 논문집인 {이성의 건축Architectures de la raison}(1996)에 수록된 글로서, 스피노자의 철학, 특히 그의 “존재론”을 관개체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체계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는 논문이다. 이 글은 비교적 적은 분량임에도 현대의 스피노자 연구, 더 나아가 구조주의 철학의 이론적 진전을 위해 매우 풍부한 시사점을 제시해 주는 글이다.

  마지막 세 번째 논문인 「스피노자, 루소, 마르크스: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에서 정치의 타율성으로」는 국제 스피노자 학회에서 내는 {스피노자 연구Studia Spinozana} 제 9호(1993)에 수록된 글로서, 스피노자에서 루소를 거쳐 마르크스 또는 20세기 후반에 이르는 근대 정치학의 역사를 조감하면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이론적 해결책의 실마리를 스피노자의 정치학에서 찾고 있다2).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과 스피노자의 이데올로기 비판의 결합을 이론적 과제로 제시하고 있는 이 글은 우리에게 90년대 이후 발리바르의 이론적 작업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사실 발리바르는 별도의 소개가 필요 없을 만큼 국내 인문사회과학계에 널리 알려진 철학자다. 발리바르는 80년대 한국사회성격논쟁 당시 이른바 PD파의 이론적 작업의 중요한 철학적 전거가 되었고, 90년대 초에 마르크스주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모색 작업에서도 막대한 이론적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 발리바르의 저작들은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못했는데, 제일 마지막으로 번역된 발리바르의 저서가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balibar 1995)인 점을 생각하면, 10년 동안 거의 소개가 되지 못한 셈이다3). 사실 발리바르가 국내 사회과학계에 미친 영향을 감안한다면, 그의 저작들의 번역이나 소개는 상당히 단편적ㆍ선별적으로 이루어져온 편이다. 예컨대 발리바르(및 알튀세리엥)의 연구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을 수 있는 {“자본”을 읽자}는 아직까지도 국내에 소개되지 못하고 있으며4),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과 공동으로 저술한 {계급, 민족, 인종. 애매한 동일성들Classe, nation, race. Les identités ambiquës}(1988) 역시 일부만 소개되었을 뿐 책 전체가 번역되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90년대 중반 이후 발리바르가 매우 체계적이고 집약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반폭력의 정치와 유럽 구성에 관한 작업들도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5).

  이는 그의 스피노자 연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발리바르는 국내에서는 주로 알튀세르의 제자로서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주목할 만한 이론가로 알려져 있지만, 스피노자에 관한 탁월한 연구자로서도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실제로 지난 80년대 이후 발리바르는 집약적인 연구를 통해 스피노자 철학 및 정치학의 새로운 면모를 밝혀줌으로써 스피노자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개척해왔지만, 국내에는 고작 그의 논문 한편만이 번역되었을 만큼(발리바르 1996)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발리바르의 이론 체계에서 스피노자 철학이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을 고려해볼 때, 또 발리바르의 스피노자 연구의 독창성과 영향력을 감안할 때 이는 매우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여기 우리가 묶어서 펴내는 이 책은 그동안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던 발리바르의 최근 작업, 특히 그의 스피노자 연구의 중요한 일부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본다. 


마르크스주의의 일반화를 위하여: 발리바르의 최근의 이론 작업


  발리바르의 최근 작업이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스피노자론을 소개하기에 앞서 먼저 지난 10여년 간 수행된 발리바르의 연구 작업에 대해 간단히 개괄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발리바르의 철학 연구는 알튀세르의 이른바 ‘구조적 마르크스주의’에서 출발한다. 알튀세르는 1965년 {마르크스를 위하여}와 {“자본”을 읽자}를 출간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를 개조하기 위한 이론적 작업을 시작했다. 알튀세르의 작업은 마르크스주의의 철학 범주들을 이론적으로 쇄신함으로써 헤겔 변증법과 구분되는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의 독자성을 밝히고, 이를 기반으로 1950년대 이후 소련과 중국의 갈등으로 표출된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자 운동의 융합)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발리바르는 알튀세르, 피에르 마슈레, 자크 랑시에르Jacque Rancière, 로제 에스타블레Roger Establet와 함께 {“자본”을 읽자}를 공동 저술ㆍ발표함으로써, 알튀세르의 작업에 동참한다. 그 이후 그는 80년대 중반까지 알튀세르의 문제설정을 기반으로 역사 유물론에 관한 깊이 있고 독창적인 연구를 수행했는데, 이 시기의 작업들은 {역사유물론 연구}(1974)나 {민주주의와 독재}(1976) 같은 저작들, 또는 {마르크스주의의 역사}(1991)와 {역사유물론의 전화}(1993) 같은 논문 선집을 통해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일종의 해체 작업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이러한 연구는 현실 사회주의(또는 역사적 공산주의)가 몰락한 90년대 들어 좀더 광범위한 역사적ㆍ이론적 전망 아래 마르크스주의의 일반화라는 폭넓은 주제의 연구로 심화ㆍ발전되고 있다. 곧 80년대 까지 발리바르가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범주들(잉여가치, 계급투쟁, 이행, 이데올로기, 당, 대중,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할 등과 같은)의 아포리아를 분석하면서 마르크스의 이론적 독창성과 한계를 해명하는 데 치중했다면, 90년대 이후에는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의 아포리아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 근대성의 철학적 기초에 관한 연구에서 세계화와 유럽의 구성이라는 현실 정세에 이르기까지 작업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그리고 80년대 이후 발리바르가 본격적인 스피노자 연구를 시작하게 된 것도 이러한 일반 구도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90년대 이후 발리바르의 마르크스주의의 일반화 작업은 크게 세 가지 소주제로, 곧 근대의 철학적 인간학에 대한 계보학적 탐구, 구조주의 운동에 대한 철학적 평가, 자본주의의 세계화 및 유럽의 구성이라는 정세에 대한 이론적ㆍ정치적 분석 등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중에서 근대의 철학적 인간학에 대한 탐구는 다시 세 가지 분야로 구분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스피노자의 철학에 대한 연구를 들 수 있고6), 둘째는 근대철학에서 의식과 정신, 주체 같은 범주들이 발명되고 전개되어온 과정에 대한 계보학적 탐색이고, 셋째는 근대 정치철학의 범주들에 대한 재고찰이다. 첫 번째 스피노자에 관한 연구는 뒤에서 좀더 자세하게 논의할 생각이니까 논외로 한다면, 두 번째와 세 번째 연구는 발리바르의 이론적 독창성을 잘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연구들이다.

  근대의 철학적 인간학에 관한 연구는 구조적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축 가운데 하나를 이루고 있던 이론적 반인간주의를 이론적으로 정교화하기 위한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이론 혁명의 공통점 중 하나는 사고와 활동의 중심으로서 주체라는 관점을 비판한 데 있다고 지적했다. 프로이트의 경우는 의식을 인간의 사고 활동의 한 부분으로 국지화시키고, 무의식 개념을 정신 장치의 핵심으로 파악함으로써 탈주체적인 문제설정을 제시했다면7), 마르크스의 경우는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라는 근대의 정치적(또는 자유주의적) 이념을 경제과정의 착취를 위해 필수적인 이데올로기적 보충물로 간주함으로써 근대 주체 개념을 해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그 이후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1970)에서 이데올로기론의 관점에서 이러한 이론적 반인간주의를 좀더 정교하게 전개하고 있다(Althusser 1991/1995 참조).   

  발리바르는 알튀세르의 문제설정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그의 문제설정의 난점을 보완ㆍ정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발리바르는 하이데거 이래 현대 철학의 논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른바 “주관성의 형이상학”이라는 통념이 주체에 관한 칸트주의적 관점을 데카르트로 투사한 데서 비롯한 것이라는 점을 해명하고 있다(Balibar 1989). 곧 그에 따르면 이는 프랑스 혁명과 독일 관념론이라는 이중적인 전환점을 통해 등장한 “시민 주체”라는 개념 및 그것의 아포리아, 곧 능동 시민과 수동 시민으로 또는 봉기적 주체와 예속적 주체로의 분할을 얼마간 (상상적으로) 은폐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발리바르의 주체 개념의 계보학적 재고찰은 한편으로는 하이데거의 관점과는 다른 시각에서 근대의 주체 철학의 주요 개념들(의식, 영혼/정신, 주체 등)의 전개 과정을 탐색하는 작업8)과 프랑스 혁명을 통해 등장한 “시민 주체” 또는 “인권과 시민권의 주체”라는 통념에 내재한 개념적ㆍ제도적 쟁점들을 주체화subjectivation 양식에 대한 분석의 관점에서 수행하는 작업9)으로 분화되어 이루어지고 있다. 

  발리바르 작업의 두 번째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의 세계화 및 유럽의 구성이라는 정세에 대한 이론적ㆍ정치적 분석이다. 사실 이 분야는 발리바르 연구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따라서 가장 많은 업적들을 배출하고 있는 분야다. 발리바르의 연구의 초점은 민주주의라는 서양 근대 정치의 가장 일반적인 제도에 대한 개념적ㆍ정치적 분석에 맞춰져 있다.

  개념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 분야의 연구는 근대 정치철학의 범주들에 대한 재고찰과 상당 부분 중첩된다. 발리바르의 연구는 근대 민주주의의 기초로서 프랑스 혁명기의 「인권선언」, 특히 거기에서 공표된 인간과 시민의 동일성, 평등-자유egaliberté 명제에서 출발한다. 우선 발리바르는 인간과 시민의 동일성은 모든 사람이 이러저러한 인간적ㆍ제도적 차이 이전에 인간 자체로서 시민의 권리, 따라서 정치의 보편적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확립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는 근본적으로 봉기적인 언표행위이며, 역사 속에서 나타나는 여러 유형의 차별에 맞서 저항할 수 있는 원리로서 기능한다. 또한 발리바르는 이러한 명제와 쌍을 이루는 평등-자유 명제, 곧 평등과 자유의 상호 전제, 상호 구성이라는 명제가 인권의 정치의 근거를 제공하면서 근대의 정치적 담론과 제도의 모형을 이루고 있다고 간주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이것이 근본적으로 부정적인 명제이기 때문에, 제도적인 갈등과 분화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발리바르는 이러한 제도적인 갈등과 분화는 두 개의 축, 소유라는 축과 공동체라는 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곧 공동체의 축을 중심으로 인민의 평등한 연합이라는 관점과 민족 공동체라는 관념이 대립하는 것처럼 소유의 축을 중심으로 해서 노동의 소유와 자본의 소유가 대립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근대의 정치적 제도와 담론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축에 따라 전개된 역사적 형태들을 고찰하는 게 필요하다.

  더 나아가 발리바르는 성의 분할(또는 성적 차이)과 육체와 정신의 분할(또는 지적 차이)이러한 평등-자유 명제로 환원될 수 없는 ‘탈근대적인’ 정치적 모순으로서 제시하고 있다. 곧 성의 분할은 근대 공동체가 성립하기 위한 현실적ㆍ상상적 전제를 이루고 있으며, 반대로 지적 차이는 개인과 집단이 소유자가 되기 위한 전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처럼 두 가지 정치적 매개의 전제를 이루기 때문에 이러한 인간학적 차이들은 근대의 정치적 제도의 경계에 위치해 있으며, 고유하게 탈근대적인 정치적 과제들을 제기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발리바르는 민족 형태와 주권 같은 공동체 개념과 소유 개념의 전개 과정에 대한 이론적ㆍ역사적 분석을 수행하고 있다10).

  아울러 발리바르는 「정치의 세 가지 개념: 해방, 변혁, 시빌리테」(1995)라는 논문에서 근대 정치의 세 가지 유형을 분류한 이후, 반폭력의 정치 또는 시빌리테의 정치라는 문제설정에 따라, 해방과 변혁의 정치에 고유한 아포리아에 대한 분석 및 새로운 진보 정치의 공간을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반폭력의 정치를 구체화하고 확장할 수 있는 이론적ㆍ정치적 쟁점으로서 유럽의 구성을 둘러싼 정치적, 법적, 제도적 문제들 및 유럽과 미국의 관계에 대한 분석에 몰두하고 있다11).

  마지막으로 구조주의 운동의 이론적 쟁점에 대한 재고찰은 발리바르 연구의 세 번째 축을 이루고 있다. 사실 발리바르는 이전부터 알튀세르를 비롯해서 라캉과 푸코 또는 캉귈렘에 관한 몇 편의 논문을 발표했지만12), 최근에는 알랭 바디우와의 논쟁을 거쳐13) 구조주의 운동 전체에 관한 이론적 분석으로 연구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14). 이 분야에서 발리바르의 이론적 관심은 “구조주의/후기구조주의structuralism/poststructuralism”라는 전형적인 영미식 구분법에서 벗어나 구조주의 운동의 전개와 분화 과정을 좀더 내재적으로 분류하고 평가하는 데 맞춰져 있다. 주제상으로 본다면 이는 “구조 대 주체(인간)”, 또는 “구조 대 역사”라는 불모의 이분법15)에서 벗어나, 구조 안에서 주체의 발생과 재생산을 구조주의의 핵심적인 이론적 쟁점으로 제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16).

  지금까지 간단히 윤곽을 묘사해본 90년대 이후 발리바르의 작업은 (탈)마르크스주의와 (탈)근대성에 대한, 더 나아가 세계화의 정세에 대한 중요한 철학적ㆍ정치적 고찰들로 간주될 수 있다. 내가 보기에 발리바르의 작업의 중요성은 무엇보다도 포스트모더니즘(또는 문화이론) 계열의 일부 “이론가들”에게서 볼 수 있는 허망한 언어유희라든가 대중문화와의 거울놀이와 달리, 현실 정세(탈공산주의라고 하든 세계화라고 하든 또는 유럽의 구성이라고 하든 간에)에 대한 구체적 분석에 기초하여 이 정세를 구조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근대 정치제도의 아포리아를 밝혀내고, 또 이 정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의 이데올로기적ㆍ이론적 틀을 이루고 있는 근대의 철학적 개념들의 흐름을 계보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발리바르의 작업은 비단 철학자들만이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자들 및 활동가들에게도 현재의 정세에 대한 분석과 정치적 실천을 위해서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주고 있으며, 그만큼 체계적으로 수용되고 학습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발리바르의 이러한 작업은 그가 지난 80년대 이후부터 수행해온 스피노자에 관한 연구들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으며 상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여기에 묶어서 펴내는 이 책은 발리바르의 최근의 작업을 좀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번 읽고 공부해볼 만한 연구서라고 할 수 있다.  

  발리바르의 이론 작업의 일반 구도와 관련해서 본다면, 이 책에 실려 있는 글들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1) 정치(학)으로서 스피노자 철학

(2) 스피노자 정치학의 아포리아로서 대중들에 대한/대중들의 공포

(3) 관개체성의 “존재론”

(4) 스피노자 철학의 현재성


이제 이 주제들을 간략하게 고찰하면서 발리바르의 스피노자 해석의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기로 하자.



1) 이 글들의 출전은 각 글의 앞에 표시해 두었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2) {스피노자 연구}9호의 주제는 “스피노자와 근대성”이었다.

3) 그 이후 논문 두어 편 정도가 번역되었지만, 수용의 공백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4) 이 책(사실은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글만 수록되어 있는 영역본)은 지난 90년대에 번역된 적이 있으나, 심한 오역 때문에 사실상 국내의 논의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5) 하지만 올해 안에 최원 씨의 번역으로 도서출판 b에서 발리바르의 대작인 {대중들의 공포: 마르크스 전후의 정치와 철학}(1997)이 출간될 예정이고, 세계화와 유럽의 구성이라는 정세에 대한 발리바르의 철학적ㆍ정치적 고찰을 집약하고 있는 {세계화와 반폭력의 정치}(원제는 {우리, 유럽의 시민들? 국경들, 국가, 인민Nous, Citoyens d'Europe? Les Frontières, l'Etat, le peuple}(2001)인데, 책 내용의 이론적 함의를 좀더 분명히 표현하기 위해 국역본 제목을 약간 바꾸어봤다)도 조만간 출간될 예정이어서, 국내 독자들도 머지 않아 발리바르의 최근 작업의 면모를 파악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6) 스피노자에 관한 발리바르의 저술 목록은 책 뒤에 붙은 「참고문헌」을 보기 바란다.

7) 근대 주체철학의 핵심은 의식과 자기의식을 주체의 본질적인 속성 또는 활동으로 간주하는 데 있음을 고려해볼 때, 프로이트의 관점은 한편으로 의식을 부차적인 정신 활동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한편으로 정신의 심급들(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보든 이드, 자아, 초자아로 보든) 사이의 분할과 갈등, 왜곡이 정신 장치에 내재적이라고 보았다는 점에서, 프로이트 자신이 스스로 평가하듯 주체 개념과 관련하여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이룩했다고 할 만하다. 

8) 특히  Identité et différence. L'invention de la conscience. Seuil, 1998(이 책은 존 로크의 {인간 지성에 관한 시론} 중 「동일성과 차이」 장을 번역한 뒤, 여기에 매우 긴 해설과 용어 해설, 주석 등을 붙인 책이다); “âme”, “conscience”, “praxis”, “sujet”, in Cassin 2004 등 참조.

9) Balibar 「'인권'과 '시민권': 평등과 자유의 현대적 변증법」, 윤소영 옮김, {인권의 정치와 성적 차이}. 공감, 2004(원본은 Balibar 1992에 수록); “Trois concepts de la politique: Emancipation, transformation, civilité”, in La Crainte des masses. Galilée, 1997; “Homo nationalis”, “Prolégomènes à la souveraineté”, in Nous, citoyens d'Europe? Découverte, 2001; “Is a Philosophy of Human Civic Rights Possible?”, The South Atlantic Quarterly 103. 2/3, 2004; “Le renversement de l'individualisme possessif”, in Hervé Guineret et al. eds., La Propriété: Le propre, l'appropriation. Ellipses, 2004. 등.

10) Balibar 1992; Nous, citoyens d'Europe? 앞의 책; Droit de cité. PUF, 2002.

11) L'Europe, l'Amérique, la guerre. Découvrte, 2003 이외에 최근의 여러 논문, 대담 등을 참조.

12) Ecrits pour Althusser. Décourvete, 1991;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 윤소영 옮김, 이론, 1993; 「푸코와 마르크스: 명목론이라는 쟁점」, 「라캉과 철학: 주체성과 상징성의 이론이라는 쟁점」, 윤소영 옮김, {알튀세르와 라캉}. 공감, 1995 등 참조.

13) “Les universels”, in La Crainte des masses; “Équivocité de l'universel?”, in Le temps philosophique. no.3, 1998 등 참조.

14) 이러한 연구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발리바르가 미국의 철학자 존 라이크만John Rajchman과 미국의 뉴프레스New Press 출판사에서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이라는 논문 선집의 편집 책임을 맡게 된 일이었다고 한다.

15) 이는 사실 구조주의 전성기에 독일과 영미권에서 구조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제시했던 전형적인 대립항들이다. 최근에는 지젝이 자신의 일부 저작에서 이러한 대립항으로 유희를 벌이고 있기도 하다. 

16) 여기에 관해서는 특히 “Le structuralisme: une destitution du sujet?”, Revue de Métaphysique et de Morale. no.1/200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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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05-18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놀라운 알라딘!!
이제 드디어 각주(미주?) 기능도 추가됐군 ...

瑚璉 2005-05-19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 하지만 올해 안에 최원 씩의 번역으로 : 씨의 오자이겠지요.
6) 스피노자에 관한 발리바르의 저술 목록은 책 뒤에 붙은 「참고문헌」을 보기 바란다. : 참고문헌 부분을 보기 바란다가 적절한 표현이 아닐런지요.

aporia 2005-05-19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 책이 드디어 나오는군요!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이 원고는 이제 인쇄소에 넘어갔나요? 몇 가지 눈에 띄는 게 있어서요. 발리바르 작업의 두 번째 축에서 보면, '탈근대'라는 말과 '탈현대'라는 말을 혼용해 쓰고 계시는데, 'modernity'를 '근대성'으로 번역하신 듯 하니 뒤의 말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또 'equaliberte'라 쓰시고 이를 '자유-평등'이라 옮기셨는데, 우선 egaliberte나 equaliberty가 아닐지요? 영어와 불어가 섞여 있어서. ^^ 그리고 '자유-평등'의 경우 '더 나아가'로 시작하는 문단에서는 '평등-자유'로 옮기셨는데, 이 역시 통일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관련해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전 '평등-자유'가 더 좋은 것 같아요. 발리바르가 다른 곳에서 이 말이 신조어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로마 등에서 유래한 '평등한 자유' 등을 이은 것이라고 말했고, 또 (아마 [Citizen Subject]였던 것 같은데) 'egaliberte'의 핵심은 자유 개념에 평등 개념을 '단락'(이걸 '대체보충'이라고 부르고 싶은 유혹을 느끼네요...)한 것이며 그 역은 아니라고 말한 기억이 있어서요(사실 '평등한 자유'는 자연스럽게 말이 되는데 '자유로운 평등'은 좀 이상하게 들리는 게 사실이에요). 즉 egalite와 liberte의 순서가 알파벳 순서는 아닌 듯 하고, 따라서 자유와 평등도 가나다 순보다는 의미의 순서를 지켜주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어요.
감사합니다. 이번 책 나오면 또 사인 받으러 갈께요!

가을산 2005-05-19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balmas 2005-05-19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호정무진님~, 콕 집어내셨군요. 이거 참 창피해서 원 ...
주 5)의 "씩"은 "씨"로 고쳤습니다. 그런데 주 6)은 그냥 넘어가도 될 것 같아서
고치지 않았습니다. 고맙습니다, 호정무진님. ^^;;
아포리아님, ㅋㅋ 해제를 몇 번 읽어봤는데도 눈에 뭐가 씌었는지 그게
안보였네요. 지적하신 부분은 다 고쳤습니다. ^_________^
하마터면 또 한 소리 들을 뻔 했군요.
ㅎㅎ 가을산님, 예, 드디어 ...
고맙습니다. :-)

NA 2005-05-19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대중들의 공포'가 나오게 되었군요. 잘 됐습니다. 도서출판 b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는 모르겠으나, 저 개인적으로는 그냥 이해하고 넘어갔으면 싶군요. 뭐 다른 번역이 두 개 나오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지요. 번역도 해석의 문제가 배제되는 것은 아니니 독자들로서도 도움이 될테고 말이지요. 그나저나 저도 서둘러서 이 번역일을 마무리지어야 할텐데 큰일 입니다. 이번 방학은 꼼짝없이 여기에 매달리게 생겼군요. 벌써부터 무지 덥군요.^^

balmas 2005-05-19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예, 결국 수록했습니다.
도서출판 b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어서, 더 이상 여기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여튼 최원 님의 관심이나 배려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여기도 벌써 더위 소식이 들려오지만 미국은 훨씬 더울 것 같은데,
고생 좀 하시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