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개체성貫個體性transindividualité


2부 세 번째 논문 제목의 일부를 이루고 있고 발리바르의 스피노자 해석의 핵심 개념이기도 한 “transindividualité”, 곧 관개체성 개념은 프랑스의 철학자인 질베르 시몽동Glibert Simondon(1924-1989)이 철학적으로 체계화한 개념이다. 시몽동은 프랑스 바깥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철학자이지만, 구조주의 운동에 중요한 이론적 동력을 제공해준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생전에 국가박사학위 주논문의 일부인 󰡔개체와 그 물리ㆍ생물학적 발생L'individu et sa genèse physico-biologique󰡕(PUF, 1965), 그리고 부논문인 󰡔기술대상들의 실존양식에 관하여Du mode d'existence des objets techniques󰡕(Aubier-Montaigne, 1969) 두 권만을 출간했고, 그의 사후에도 국가박사학위 주논문의 나머지 부분인 󰡔심리ㆍ집합적 개체화L'individuation psychique et collective󰡕(Aubier, 1989)만 출간되었을 정도로 과작寡作의 철학자이지만, 그가 사망한 이후 이 세 권의 저작은 프랑스 철학계에 점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몽동 철학의 핵심 과제는 개체를 원초적인 실체로 간주하지 않고, 그 발생 과정 속에서, 곧 개체화 과정 속에서 파악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시몽동은 개체 및 개체화individuation를 사고하는 서양 철학의 두 전통, 곧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유래하는 질료형상론과 원자론을 비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 두 전통은 이미 형성된, 또는 더 이상 분해될 수 없는 원초적인 단위로서 개체에서 출발하여 한 개체가 시공간 상에서 변화를 겪는 양상들이나 다른 개체들과 맺는 관계(이것이 일반적인 의미의 개체화다)를 사고하려 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런 철학 전통에 맞서 그는 개체는 원초적 실체, 기원이 아니라 개체에 구조적으로 앞서 개체를 생산하는 과정, 곧 개체화 과정에 의해 생산된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개체화 과정에 의해 개체들로 산출되는 , 그것은 무엇인가, 곧 개체화되기 이전에 존재하는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불가피하게 제기된다. 시몽동은 이처럼 개체에 앞서는 이것을 “선先개체적 존재être préindividuel”라고 부른다. 시몽동에 따르면 이러한 선개체적 존재는 “하나 이상”, 곧 “통일성/단위 이상이자 동일성 이상”(Simondon, 1989a, p. 30)인 것이다. 왜냐하면 개체들에 대해서만 하나나 통일성 또는 정체성에 대해서 말할 수 있으므로, 개체화 이전에 존재하는 이 선개체적 존재는 정의상 하나, 통일성, 정체성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개체적 존재는 이처럼 부정적으로만 파악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선개체적 존재를 단순히 “하나 아님non-un”이 아니라 “하나 이상” 또는 “통일성/단위 이상이자 동일성 이상”으로 부를 수 있다면, 이는 선개체적 존재가 고정된 동일성을 갖는 개체들 이상의 어떤 것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곧 시몽동이 말하는 선개체적 존재는 이행/변화의 역량, 포텐셜 자체로서, 이는 개체화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일 뿐만 아니라, 개체화 과정을 통해 산출된 개체가 자기 차례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자신을 재생산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게 하는, 또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킴으로써 재생산하거나 일정한 임계점을 통과하면 스스로 변화되도록 하는 힘이다. (따라서 데리다 식으로 말한다면, 시몽동의 “하나 이상plus qu‘un”이라는 개념은 또한 동시에 “더 이상 하나 아님ne plus qu’un”이기도 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몽동은 열역학에서 빌려온 준안정성métastabilité이라는 개념을 통해 선개체적 존재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열역학 또는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준안정적인 상태란 체계의 변수들 중 하나(가령 압력, 온도 따위)가 최소한으로 변동되기만 해도 평형 상태가 깨지는 상태를 가리킨다. 쉬운 사례를 하나 든다면, 이른바 “과냉각액체supercooling liquid”로 남아 있는 물, 곧 0°C 이하에서도 얼지 않고 계속 액체 상태로 남아 있는 물 같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는데, 이 물은 약간의 충격만 가해도 바로 얼어버린다. 시몽동에 따르면 선개체적 존재는 바로 이처럼 준안정적인 상태에 있는 체계 일반을 가리킨다. 따라서 선개체적 존재는 서로 긴장상태에 있는 이질적인 포텐셜들(예컨대 액체와 고체)의 집합이라고 볼 수 있으며, 포텐셜들의 긴장이 해소되는 것, 곧 “위상변화déphasage”를 통해 포텐셜들이 서로 다른 수준, 서로 다른 위상의 체계로 해소되는 것이 바로 개체들의 생성이다.  

  따라서 선개체적 존재는 단순히 개체에 시간적으로 앞서는 상태가 아니라, 개체 안에서 개체의 존속 및 변화를 이끌어가는 포텐셜 또는 역량의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그리고 이 때문에 “préindividuel”은 前개체적이라고 해서는 안되며, 구조적으로 우선한다는 의미에서 先개체적이라고 번역하는 게 적합하다).   

  관개체성 개념은 󰡔심리ㆍ집합적 개체화󰡕에 등장하는 개념으로서, 원래는 심리적 개체화와 집합적 개체화라는 두 가지 개체화 사이의 관계, 또는 오히려 인간의 개체화의 두 측면 사이의 관계를 해명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다. 곧 이 개념은 정신 또는 심리활동은 인간의 내면을 이루고(심리주의), 사회 또는 다른 인간들과의 관계는 인간의 외면을 이룬다고 보는(사회학주의) 대개의 이원론적 관점을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발리바르는 2부 두 번째 논문인 「스피노자에서 개체성과 관개체성」에서 시몽동의 이 개념을 빌려와서 스피노자 철학, 특히 그의 ‘존재론’을 체계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발리바르는 이 개념을 시몽동이 원래 사용하던 맥락보다 좀 더 넓은 ‘존재론’ 일반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발리바르가 사용하는 관개체성 개념은 시몽동이 말하는 일차적 개체화/이차적 개체화(또는 발리바르의 용어법대로 하면 개체화/개성화)를 포괄하는 개체화 과정 전체를 지시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관개체성”의 원어는 “transindividualité”인데, 이를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윤소영 교수는 이 개념을 “초개인성”이라고 번역하는데, 이는 몇 가지 이유에서 부적합하다. 첫째, “individualité”는 “인간 개인”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일반적인 ‘존재론적’(또는 발리바르의 표현을 따르자면 “비非존재론적mé-ontologique”) 함축을 지닌 개념이기 때문에, “개인성”보다는 “개체성”으로 번역하는 게 옳을 것이다. 둘째, 이 개념의 접두어인 “trans-”는 “초월”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기보다는 오히려 “traverser”라는 단어처럼 “가로지다”, “관통하다”는 의미, 또는 “transformer”라는 단어처럼 “전환하다”, “형태가 변화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더욱이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trans-”는 선개체적인 준안정상태의 퍼텐셜이 나중에 성립된 개체들을 관통하여 존립하고 있고, 더 나아가 이 퍼텐셜이 개체의 형태들을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셋째, 더 나아가 이 접두어는 부분과 전체, 개체와 우주, 개인과 국가/사회 등과 같이 미리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적 항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추상적 관계 개념을 해체하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trans~”의 집합적 측면만을 강조하는 “초-”라는 번역은 다소 일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trans-”라는 접두어가 지닌 다의적 의미를 살리고, 무엇보다도 이 개념이 기계론 및 유기체론(또는 사회학주의와 심리학주의)에 맞서 관계의 우월성 내지는 원초성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우리는 이를 “관貫”이라는 단어로 번역했다. “trans-”가 갖고 있는 복합적 의미를 모두 담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개체를 관통하는 퍼텐셜 또는 역량의 흐름을 표현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초”나 “횡단” 등보다는 좀 더 적절한 역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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瑚璉 2005-05-10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통개체성은 어떠세요(이러다가 트랜스개체성을 지나 통닭성이라는 말까지 나오겠구만 -.-;).

balmas 2005-05-10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하, "통닭성" ...
저는 사실 이 단어를 어떻게 번역할 것이냐를 두고 꽤 생각을 많이 한 편입니다.
이 단어를 처음 접한 게 10년이 넘었으니까요.
처음에는 남들 하는 대로 그냥 "초개인성"이라고 따라 불렀는데,
암만 해도 이 번역어는 transindividuality라는
개념이 지닌 의미를 제대로 번역해주기 어려울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범개체성"이나 "통개체성" 같은 말도 생각해보고, "구를 전"자를 써서
"전개체성"이라고 써보기도 했는데, 다 좀 문제가 있더라구요.
"관개체성"이라는 번역어는 그래서 몇 개의 대안들 이후에 생각해본 말인데,
지금으로서는 그래도 제일 나은 번역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