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문학, 그리고 맥주가 생활 속에…

 

동유럽 여행기 <1>체코 프라하

이상희 <ishtarfor@hanmail.net>
          
▲ 유람선에서 본 밤의 프라하.  ⓒ 이상희

석양이었습니다, 프라하는….

밤에 도착한 공항은 처음인가? 기분 탓인 지 프라하 공항은 애잔한 느낌을 주네요. 시설이나 디자인은 아주 세련됐는데….

위협적이거나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주변과 어울린, 보기 드문 공항 건물입니다. 공항 주차장 조명이 녹색 창과 아이보리색 벽에 부딪혀 따뜻하고 친근해 보이네요.

사실 공항들 다 비슷하고 거기서 거기지만 버스를 기다리고 앉아있으니 전에 김해공항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도 혼자 해지는 시간에 앉아 있었기 때문일까요….

참, 제가 비행기로 여행을 다니니 '웬 호사?'라고 생각할 분들이 있으실 듯합니다. 저도 와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저가 항공사들이 엄청 많습니다.
GO-FLY, EASYJET., RYANAIR….

물론 시시각각 요금이 달라지기 때문에 인터넷을 잘 두드리고 있어야 합니다. 여행 한 코스를 마치고 와서, 싼 표를 찾아서 돌아다니다, 좋은 조건을 찾으면 바로 떠나는 그런…. 아무튼 좀 황당한 방식으로 여행하고 있습니다. 여기 프라하도 영국까지 왕복항공료가 우리 돈으로 10만원 정도였습니다. 제가 있는 곳에서 런던까지 기차 타고 가는 것보다 싼 가격입니다.

▲ 유람선에서 본 프라하.  ⓒ 이상희

프라하는…. 너무 반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깨끗하고 이쁘고…. 근데 사람들이 저마다 가장 인상적인 도시로 꼽는 이유는 잘 모르겠네요. 오히려 부다페스트 쪽이 더 좋았거든요. 좀 더 아담하고 따뜻한 느낌, 관광객이 적어서 그런가…. 사람 사는 데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물론 프라하보다 좀 더 가난한 느낌이지만.

영어 식으로 프라그라고 부르는 게 듣기 싫데요. 도시들 이름 그 나라 식으로 제대로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이탈리아 쪽도…다 영어 식으로…. 오죽했으면 밀라노에서 나오는 가이드북 이름이 <밀란 이즈 밀라노>…. 거꾸로였나?

제가 아무리 방향치일지라도, 한 도시에서 이틀쯤 지나면 대강 윤곽이 잡히고, 다니는 데 별 문제가 없어집니다. 근데 프라하에서는 나흘이 넘어가도 계속 헤매고 다녔습니다. 작은 지역들은 익숙해지는데, 그것들이 결합이 안되는 겁니다. 심지어 가이드 투어까지 했는데 말이죠. 이유를 모르겠어요….

프라하를 가로지르는 블타바강에는 다리가 참 많습니다. 그 중에 제일 유명한 다리는 '카를 다리'입니다. 프라하성이랑 시내 쪽을 연결하는 다리지요. 이 다리에는 아주 근사한 조각들이 많이 있는데,게 중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조각이 있지요.

▲ 체코 성인 Jan Nepomucky의 조각상.  ⓒ 이상희
Jan Nepomucky라는 체코 성인의 조각상입니다. 조각상 아래 쪽에 조각되어 있는, 순교하는 성인의 모습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한가지는 들어주신다네요.

우리네 부처님들이랑 비슷하지요. 그 옆의 개의 조각을 붙잡고 기도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일생, 자신에게 충실할 것이라고 합니다.

저요? 그 얘기를 프라하 가기 전부터 들어서, 계속 고민하다 카를 다리를 한참 가지 못했습니다. 한 가지만 들어준다니까 뭘 원해야 되는지 도저히 고를 수가 없더라구요. 그냥 구경하고 다시 가면 될텐데 인간이 고지식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아주 비겁하게 두리뭉술한 소원을 만들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전에 남해 금산 보리암 갔을 때도 소원 하나 들어주신다고 해서 전날 밤부터 계속 고민했었는데…. 하여간 인간이 얄팍해요…하하.

프라하 성내의 성 비투스 성당의 스테인드 글래스가 독특합니다. 대부분의 창은 보통 스테인드 글래스 분위기인데 창 하나가 선명한 채색화의 느낌을 줍니다.

창 옆의 벽에도 그림이 인상적인데, 프레스코화도 아닌 것 같고 마치 판박이를 붙여놓은 느낌이었습니다. 성 조지 교회당은 천장이 나무로 격자무늬 모양으로 짜놓아서 독특해 보였습니다. 미사 의자도 이때까지 다녀본 중에 가장 질이 좋아보이더군요.

성내의 황금 소로는 예전에 연금술사들이 연구하던 집들이라네요. 카프카가 잠시 집필했던 집도 있구요. 지금은 공예품이나 기념품을 파는 작은 가게로 꾸며져 있는 집들을 구경했습니다.

그 집들 낮은 2층은 쭉 연결되어 갑옷이나 창들을 전시해 놓았더군요. 근데 그런 건 별로 재미없고 벽에 있는 창이 아주 독특하데요. 통나무를 잘라 중간에 사각으로 홈을 파서 끼워 놓은…잘 설명이 안되네요. 어쨌든 재미있는 창이었습니다.

프라하에는 카프카의 흔적이 참 많네요. 하긴 카프카 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음악, 조각들을 그냥 생활로 받아들이는구나 싶을 정도로 문화적인 분위기입니다.

▲ 프란츠 카프카가 살던 집.  ⓒ 이상희

전에 프라하를 다녀오신 분이 저더러 꼭 프라하 가야한다고 하셨는데 이유를 알겠더군요. 프라하는 맥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천국입니다. 오리지널 버드와이저를 비롯해…. 버드와이저나 미켈롭이 체코의 지방 이름이라네요.

다양한 종류의 맥주가 많습니다. 저는 부드러운 라거 보다 비터 쪽을 좋아하는 편이라 영국 쪽 맥주가 더 입에 맞지만 워낙 다양하고 맛있는 것들이 많으니 종류별로 맛보는 재미로 마시게 됩니다. 밥 먹으면서도 한잔, 길 가에 앉아 쉴 때도 한잔, 목마를 때도 맥주 한 캔…하루종일 맥주를 달고 다닙니다.

프라하에서 밥 먹고 물론 맥주도 마시고…숙소로 가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습니다. 웬만하면 그냥 맞고 가든지 기다려 보려고 하는데 제대로 비를 피할 곳도 마땅찮고 계속 더 심해지데요.

그 핑계 대고 가까운 펍으로 뛰어들었는데…이 집 참 좋더라구요. 테이블 다섯 개 정도의 작은 가게인데 아주 관록있는 느낌의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참 편하게 해주시더군요.
낯선 나라에서 처음 간 곳인데도 늘 다니던 익숙한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낮에는 웬만히 혼자 있어도 밤에 혼자 술집에 가는 건 아무래도 불편하지요.

체코 물가가 싸다고 하지만 서유럽 사람들 기준으로 그런 것 같고, 그냥 우리랑 비슷한 수준인 것 같습니다. 체코 음식들은 먹을 만 하구요. 전통 스프라는 건 스코틀랜드 홈메이드 스프랑 거의 흡사합디다.

▲ 프라하 성내의 황금 소로.  ⓒ 이상희

기름기가 약간 많은 게 차이랄까? 닭 같은 걸로 육수를 내는 것 같고 감자, 당근, 샐러리 같은 야채를 잘게 썰어서 푹 끓였는데 거기다 보리 비슷하게 생긴 곡식을 같이 넣었더군요. 국에 밥 말은 것 같은 식이었습니다.

체코는 웨이터들이 우리 1년치 영수증 모으는 지갑처럼 칸이 많이 나눠진 지갑을 들고 다니며 바로 계산을 해줍니다. 돈의 단위가 워낙 많아서 그런 걸 사용하나본데 볼 때마다 좀 우습더군요.

제가 워낙 수치에 약하다 보니 체코랑 헝가리에서는 화폐의 단위나 가치가 도저히 감이 안 잡혀서 고생하다가 그냥 환산하는 걸 포기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습니다. 도대체 유로화 전에는 어떻게 유럽 여행을 했는 지 존경스럽더군요. 그때 여행자들….

밤에 유람선을 탔습니다. 강을 따라 서너 시간 내려가는 코스였는데 좀 어설프지만 재즈를 연주하는 밴드도 있구요. The Girl From Ipanema, La Vie En Rose 같은 곡들을 연주하는데 공간이 넓으니 소리가 다 퍼져버리네요. 다리 밑을 지나갈 때는 소리가 울려 제법 들을만 합니다. 역시 울림판이 중요하군요.

이 많은 사람들 중 일행 없는 혼자는 또 저 하나네요. 이제 적응도 되어가지만 특히 이런 밤 유람선 같은 데는 워낙 다정한 사람들이 많아서 강바람이 더 춥게 느껴집니다..

강 중간쯤 갔다 다시 돌아오는데 요즘 해가 늦게 지니 프라하성 조명이 켜지는 걸 기다리느라 배가 일없이 빙빙 돌고 있네요.

▲ 성 비투스 성당.  ⓒ 이상희

마지막날은 온천도시 카를로비바리에 갔습니다. 이곳은 동화 속 마을 같았습니다. 처음 이 도시로 접어들 때, 숲 속에 작은 성 같은 호텔과 예쁜 집들이 군데군데 박혀있는 모습이 참 이쁘더군요.

마침 영화제가 한창이었는데 김기덕감독전이 있어서 거리에 영화를 소개하는 대형포스터 중에 '나쁜남자'도 보이더군요. 워낙 광적인 분위기의 부산국제영화제 밖에 영화제를 본 적이 없는지라, 영화제 때문에 복잡하다고 하는 데도 그냥 느긋한 관광지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작은 도시 곳곳에 크고 작은 온천수가 나오는 곳들이 있어서 도자기로 된 전용컵으로 오며가며 마시고 다닙니다. 거리 중간에 온천수가 나오는 곳이 많은 도로는 그 길에서 담배를 필 수도 없고 개를 데리고 다니지도 못하게 해놓았더군요.

모든 여행길에는 크고 작은 사고가 있기 마련이지만 들어나 봤습니까? 투어버스 운전사가 차 열쇠를 잃어버렸다는 얘기…. 황당하더군요. 프라하에서 다시 차가 와서 태우고 간다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냥 프라하로 돌아가는 일 밖에 없는 듯 느긋했지만 저는 그날 밤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를 타야했습니다.

사정을 설명하고 다른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어도 미안하다는 얘기만 하고…예정보다 세 시간쯤 늦게 출발해서 정말 열심히 달리는데… 세상에 우박이 쏟아지데요. 정말 차 지붕, 창에서 툭탁툭탁 소리가 나도록 큰 우박들이….

▲ 황금 소로의 통나무 창.  ⓒ 이상희

겨울에는 지름 2,3 cm의 우박들이 온다고 하네요. 와이퍼를 움직여도 시야가 잘 확보되지 않을 만큼 내리는 상황에서 당연히 거북이 걸음…어쨌든 기차 타기는 탔습니다. 진땀났지요.

프라하에서 부다페스트 가는 기차는 침대칸이었습니다. 3인용 객실이었는데 출발할 때까지 다른 손님이 없더군요. 마침 승무원아저씨도 너 혼자 쓰는 거라고 얘기하셔서 횡재다 생각하고 대강 싼 배낭 짐 풀고 세수하고 난리치고 있는데 누가 문을 막 두드립디다.

3중으로 잠궈놓은 자물쇠를 겨우 열었더니 아까 그 승무원아저씨 안면을 바꾸시고 딱딱한 표정으로 니 자리는 꼭대기라고 하시는데…. 그 뒤로 서너살된 꼬마랑 젖먹이 아기를 안고 산만한 배낭을 진 엄마가 들어옵니다.

부랴부랴 짐을 삼층으로 쓸어 올리고 인사를 하는데, 그 시끄럽고 답답한 침대칸에 갓난아이가 탔으니…애기 엄마는 미안해 하지만 어쩌겠어요. 다들 고생하고 가는 수밖에….

근데 이 열차가 체코에서 슬로바키아를 거쳐 헝가리로 들어가니 겨우 애 재울 만하면 국경 통과하는 검문소입니다. 나가고 들어가고 도합 4번의 여권검사로 다들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 프라하 전경.  ⓒ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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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0-29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 의외로 굉장히 섬세한 분이시군요.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조금 전 생각난 김에 따우님 방에 가서 알래스카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거든요. 따우님은 안 계셨지만......
그런데 프라하 기행문을 쓴 이상희 씨가 <잘 가라 내청춘>의
그 시인 이상희 씨는 아니겠죠?
담담한 여행기와 사진이 마음에 듭니다.
고마워요, 발마스님.^^

balmas 2004-10-29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의외라니요??
평소에 얼마나 둔감해 보였으면 ...(ㅋㅋ)
시인 이상희 씨인지는 확인이 안되는데요.

릴케 현상 2004-10-29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이 여행안내를 시작하셨네요^^

balmas 2004-10-29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라하는 저도 한번 가보고 싶더라구요.^^

balmas 2004-10-29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 마련하셔서 꼭 가보세요.
저도 언젠가는 ...^^
(헉, 원고청탁 거절했다는 소식이 따우님 귀에까지 들어갔군요.
저는 원래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인데, 바쁘기도 하고 데리다 추모글은
벌써 쓸 만큼 썼는지라 ...)

숨은아이 2004-10-29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를로비바리라면 베토벤도 애용했다는 온천지네요. 가보고 싶어라. 그렇게 먼 곳에서 김기덕 감독전을 하는군요!

balmas 2004-10-30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렇죠, 베토벤도 애용했던 곳이죠.
(마치 잘 안다는 듯이 ... ㅋㅋㅋ;;;)

딸기 2004-11-05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져요. 프라하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은데...

그런데 저 여행기는 퍼오신 것 같은데, 발마스님도 프라하에 가보셨던 거예요?

balmas 2004-11-06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스트롱베리님,

저 같이 게으르고 돈없는 촌놈이 프라하 같은 데 가봤을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언제 가봐야겠다, 벼르고 있을 따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