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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아래 내내 웅크리고 앉아 있는 아프리카인. 그에게는 시간도 정지돼 있는 듯하다. 출처 www.allafrica.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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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에서 현지인들과 어떤 일을 하기 위해 약속을 하면 제시간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만난 외국인들 대부분은 아프리카인들이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특히 시골지역으로 가면 정도가 더욱 심해진다.
아프리카인들은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보다는 ‘해시계’와 ‘달시계’를 신뢰한다. 그리고 토막 난 시간들보다 ‘동 트고, 해 지는’ 하루라는 '묶음'을 더 중요시한다.
아프리카인들에 대해, 정말 시간개념이 없는 구제불능의 존재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왜 이리 늦었느냐?", "약속시간 도대체 언제인데!", "빨리 하자!"라며 따지고 재촉하면, 그들은 천연덕스럽게 웃음 짓는다.
그러고는 점잖게 한마디를 던진다. “하라카 하라카 하이나 바라카(Haraka haraka haina baraka).”
‘서두름에는 축복이 깃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말을 하면서, 귀가 빨개질 정도로 화가 치민 상대방에게 오히려 한 수 가르친다. ‘오늘 못한 일이 있으면, 내일 하면 되지’...‘인생을 왜 그리 팍팍하게 살아가느냐‘며.
그 말 뒤에 흔히 덧붙이는 또 한마디. “폴레 폴레 은디오 무웬도(Pole Pole ndio mwendo).” ‘천천히 해도 결국은 간다’는 말이다.
되레 측은하게 바라보며 던지는 그 말 앞에서, 정작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묘한 ‘최면’에 걸린 듯한 느낌에 빠지기도 한다. ‘내가 뭘 잘못했나...’
때론 아프리카어를 아는 외국인이 단어 하나를 살짝 바꿔 반박할 때가 있다. “하라카 하라카 ‘이나’ 바라카(Haraka haraka ina baraka, 서두름 속에 축복이 있다)”라고. 그럴라치면, 아프리카인의 눈동자에는 또 다시 ‘연민’이 스친다. ‘거참, 딱한 사람이로고...’
서구인들이 ‘시간을 지킨’다면, 아프리카인들은 ‘때를 맞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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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도 말도 한가롭게 보이는 풍경. 출처 www.allafrica.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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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의 시간개념에는 서구사회의 시계와 전통사회의 시계가 혼재한다. 정확한 시간 개념을 추구하기 보다는 상황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늦을 수는 있지만 반드시 가기는 간다’라는 말에 아프리카인들의 삶의 철학이 함축돼있다.
아프리카인들 사이에서 ‘늦다’는 것은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아프리카에 발을 디딘 외국인이라면, 우선 그 사고방식부터 존중하는 게 낫다. 그렇지 않으면 내내 화만 내고 다닐테니까.
물론 서구식 교육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리고 공공기관 그리고 비즈니스 분야에서는 비교적 시간이 잘 지켜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인관계 속에서는 시간과 약속에 대해 관대한 정서가 큰 흐름이다.
이 같은 정서에 대한 외국인의 거부감은 자칫 인종차별적인 생각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또한 아프리카인들에게 ‘함께 어우러질 사람’으로 인식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서두르는 사람은 아프리카인들로부터 '천박하다'는 평가를 받기 십상이다.
훌륭한 비즈니스를 하고자 한다면 공식적 관계도 중요하지만 비공식적 관계도 그에 못지않다. 특히 공동체의식과, 개인이 맺는 ‘관계’를 중시하는 아프리카 사회에서는 비공식적 관계가 일을 아주 쉽게 풀어가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방법은 그리 힘든 게 아니다. 아프리카인들의 삶의 철학을 존중하는 것이다.
물론 아프리카인들의 시간 개념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단선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서구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낯설다.
서구적 시각에서 시간은 생산성과 떼어놓을 수 없다. 24시간의 시간은 생산적으로 활용되어야 하며 쪼개고 또 쪼개서 효율적으로 이용되어야 하며 늘 어떤 목적을 갖게 된다. 그러기에 '시간의 노예'라는 자조마저 나오지 않던가. 하지만 아프리카인에게 시간은 고무줄과도 같다. 자신의 주관으로 늘였다가 줄였다가 하는 것이다.
24시간, 그리고 시, 분, 초는 그 스스로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 시간은 ‘인위적 변화’와 ‘목적 달성’을 위한 준거 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누군가와 어울려, ‘그냥’ 보낸 시간은 왠지 허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범주에 속하게 된다.
서구인들이, 또는 현대인들이 시간을 '지킨’다면, 아프리카인들은 ‘때를 맞아들인’다. 동 트면 아침을 맞아들이고, 해 지면 저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만날 사람이 있으면, 그가 있는 곳으로 길을 나서는 것이다. 딱히 ‘몇 시까지’랄 것 없이.
아프리카인들의 시간개념은 자연현상을 중시하고, ‘사람’을 모든 활동의 근본으로 생각하는 철학적 종교적 의식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을 거스르고 거부하며 바꿀 수 있다는 인식의 대척점에 아프리카인들의 시간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시간을 대하는 입장이 어떤 게 온당한지 단정 짓기란 쉽지 않을 터이다. 하지만 이런 의문은 때때로 떠올려 봄 직할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삶 속에서 이용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 우리를 만들고 이끌어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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