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 타계
[한겨레 2004-10-10 19:00]
[한겨레] “권위에 맞서라” 한평생 실천적 삶
9일 지병으로 숨진 자크 데리다는 일체의 권위에 맞서 그 모순을 폭로하는 데 평생을 바친 실천적 철학자다. 해체주의로 대표되는 그의 난해한 사유체제는 인류문명 전반에 걸친 근본적이고 실천적인 관심을 표현한 것이다. 그의 이론이 지나치게 허무주의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생전의 다양하고도 정력적인 현실참여는 해체주의가 진정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웅변했다.

고인은 1930년 7월15일 프랑스령 알제리 엘비아르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2년 10월, 식민지와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과 관련된 법을 청원했다는 이유로 알제리의 벤 아크눈 국립고등학교에서 제적당했다. 사춘기의 혼란은 폭넓은 독서로 이어졌고, 몇년 뒤 파리로 간 그는 루이 르 그랑 고등학교를 거쳐 프랑스 인문학의 산실인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다. 1980년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한차례 낙방 끝에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해 소르본 대학 철학과에 재직했고, 알튀세르 등의 초청으로 1965년 모교인 고등사범학교로 자리를 옮겨 1984년까지 가르쳤다. 1983년엔 국제 철학학교를 만들어 초대 교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자명한 ‘진리’·위계질서 전복 시도
문학·영화 넘나들며 노벨상 후보로
미테랑 “당대 최고 철학자” 찬사도

1981년 체코의 저항 지식인들과 모임을 연 뒤 체코 당국에 체포·구금됐고, 이후에도 넬슨 만델라 구명운동과 인종차별 및 동성애자 차별 철폐운동에 참여하는 동시에 팔레스타인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아랍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최근에도 걸프전과 9·11 동시다발테러, 유럽통합 등에 대해 발언하며 실천적 지식인의 길을 걸었다. 그의 철학이 난해한 것으로 알려진 이유는 기존의 정돈된 철학적 체계나 용어, 고전적 문체 등을 스스로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데리다의 사유가 근대 인류문명이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진리’와 그로 인해 인간을 지배하는 모든 것에 대한 전복을 시도한 데서 비롯됐다. 이런 탈현대의 문제의식을 데리다는 ‘해체’라 이름 붙였다.

데리다는 서구적 근대의 밑바탕이 되는 저작과 학설들이 불안정한 언어와 모순되는 층위로 구성돼 있고 이로 인해 그 내부로부터 해체될 수밖에 없음을 드러냈다. 정신과 물질, 보편과 개별, 남성과 여성 등 합리주의의 기본개념인 대립항 구조는 여기에 들어맞지 않는 모든 것을 주변화하거나 억압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의 해체이론은 플라톤 이후 서양 지성사를 분해해 기존의 위계질서를 전복하는 동시에 인류의 새로운 인식지평을 개척한 선구자적인 것이었다.

데리다는 철학 외에도 문학과 건축, 영화, 회화 등 다양한 예술영역에 해체론을 적용하거나 스스로 예술작업에 참여했으며, 그 업적을 인정받아 올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마르지 않는 지적 열정과 자유로운 사유는 〈차이와 반복〉 〈그라마톨로지〉 〈마르크스의 유령들〉 등 수백편의 저술로 이어졌다. 프랑스의 미테랑 전 대통령은 그를 가리켜 ‘당대 최고의 철학자’라는 찬사를 바쳤지만, 데리다의 사유가 다다른 지평을 고려하자면 그 업적은 인류 역사의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기념비적인 것 가운데 하나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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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10-10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아래쪽 책제목 중에서 <차이와 반복>은 <기록과 차이>의 오기인 듯합니다.


갈대 2004-10-10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리다는 전혀 모르지만 또 하나의 큰 별이 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데리다의 철학을 정리하는 작업이 뒤따랐으면 좋겠네요.

balmas 2004-10-10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리다는 이름은 널리 알려졌는데, 그의 사상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대표적인 사람 중
하나죠. 우선 읽을 만한 그의 저서들이 좀더 많이 번역되어야겠죠.

바람구두 2004-10-11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업적은 인류 역사의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기념비적인 것 가운데 하나다." 란 말이 가시처럼 걸리네요. 죽은 이에 대한 헌사란 점에서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balmas 2004-10-11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사람에 따라서는 그 정도의 찬사도 보낼 법하다고 보지만,
문제는 우리가 무슨 권리로,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일 듯합니다. 거의 모든 신문들이 데리다 사망 기사를 속보로 내보내고, 상당한 지면들을 할애해서 추모 겸 해설 기사를 싣고 있습니다만, 국내의 맥락에서 본다면 좀 뜬금없는 일이죠. 읽을 만한 책들도 거의 없는 실정인 데다가 이미 대부분의 신문들은 데리다와 관련하여 원죄를 범하고 있거든요. 읽을 수도 없는 번역에 낯뜨거운 찬사를 늘어놓거나 여태 그의 철학(의 의의)을 소개하는 별다른 기사도 제대로 내보낸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어제 오늘 신문들에 난 데리다 기사를 읽으면서, 떠들썩한 술판(과 도박판)으로 흥이 오른 초상집 풍경을 떠올렸습니다만(내가, 무슨 권리로??), 어쨌든 이런 애도의 모습들이 앞으로 국내에서 데리다의 철학이 좀더 잘 수용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바람구두 2004-10-11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1992년 아직 맑스 원전 한 권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을 때, 갓 입학한 신입생 녀석이 입에 "데리다와 해체"를 달고 살더군요. 제 개인적으로 데리다에 대해 사실 거의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알지 못함에도 우리나라에서 데리다에 대한 열풍이 첫단추부터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고 느낀 계기가 그때부터라고 하면 너무 겁없는 말일까요? 발마스님이 퍼온 한겨레 기사를 보면서 제 기분이 묘했던 것은 죽은 사람을 조상하는 방식이 장자의 마누라 죽은 뒤에 푸닥거리하며 즐거워하는 장자를 이해 못하는 꼴 같아서 입니다. 제가 데리다를 읽으려면 아직도 십여년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balmas 2004-10-12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 말씀이 일리가 있군요. 데리다가 국내에 최초 소개되던 맥락은 국내의 데리다 수용의 또 하나의 원죄적인 장면이죠.

데리다가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던, 또는 오히려 하나의 붐(제 친구 하나가 군대에 있던 때인데, 잘 알고 지내던 장교 한 사람이 영역본 [그라마톨로지에 관하여]를 읽고 있던 이 친구에게 그랬다고 하더군요. 자기 부인이 요즘 데리다에 관심이 많아서 자기까지 시달리고 있다구요)을 이루던 90-92년 당시는 주지하다시피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연쇄적으로 몰락하던 시기였죠. 그러니 데리다는 사회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국내에 도입된 셈이고, 따라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운동으로부터의 도피에 하나의 알리바이를 제공해주고, 자본주의의 궁극적 승리에 대한 간접적인 변호, 또는 적어도 증언을 자청한 셈이 되었죠.

그런 만큼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데리다(및 소위 포스트모더니즘 일반)에 관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심지어 주적으로까지 간주하는 게 전혀 그릇된 일은 아닙니다.  따라서 제 생각에는 국내 데리다 수용의 이러한 맥락에 대한 검토 없이는, 데리다에 대한 "적절한" 수용, "올바른" 애도는, 불가능한 것까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매우 힘든 일이 될 듯합니다.


바람구두 2004-10-12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마스님의 이 코멘트 별점을 매기라면 최소한 별 다섯을 드리고 싶군요. 전면적인 끄덕끄덕...입니다.

MANN 2004-10-16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92년에도 데리다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니
'데리다가 그렇게 일찍 소개되었단 말인가?' 라는 놀라움과
'그런데 10년이 넘도록 동안 제대로 번역된 책도 거의 없었는데, 그동안 데리다에 대해 뭘 한 거지?'라는 당혹감이 들었는데
발마스님의 코멘트를 보니 이해가 가네요.

한국의 좌파들이 왜 데리다(그리고 소위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 대해
왜 그렇게 이를 박박 가는지도요.

balmas 2004-10-16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0-92년 쯤 데리다 붐이 있었지.
결국 읽을 만한 책들이 별로 없어서 얼마 못가 사그라들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