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이툰 부대, 왜 이라크에 있나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영국 〈비비시방송〉과의 회견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유엔 헌장을 위반한 것으로 불법”이라고 말했다.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유엔의 책임자가 미국에 대해 ‘불법’이라는 말을 쓴 것은 이례적이다. 더 험악해진 이라크 상황에 대해 경고하고, 새로 떠도는 미국의 이란내 핵 의심시설 공격설을 잠재우려 했을 것이다. 우리로선 자이툰 부대 철수가 급선무다.
미국의 불법 침공은 이라크인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 있다. 민간단체인 ‘이라크보디카운트’가 세계 언론의 보도 내용을 분석해 집계한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 수만 해도 1만5천명에 이른다. 침공 명분으로 삼았던 대량살상 무기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미국 정부조차 이라크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미국내 고위 정보 당국자들의 모임인 국가정보위원회가 최근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제출한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 내년 말까지의 이라크 상황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경우가 기껏 “정치·경제·안보 면에서 (지금처럼) 불안정한 상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내전이다.
미군의 대규모 주둔이 계속되는 한 이라크에는 지금도, 앞으로도 평화는 없다. 재건을 얘기할 수도 없다. 이는 지난해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184억달러의 전후 복구 예산이 지금까지 6%밖에 집행되지 못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 자이툰 부대 병력 수천명이 평화·재건을 명목으로 이라크에 가 있다. 미국이 수송기 지원 약속을 지키지 않아 국방부가 서둘러 항공수송단을 보내기로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수송단은 필요할 경우 다국적군의 수송작전에도 투입된다고 한다. 불법 침공에 들러리를 서는 것도 모자라 전투행위에도 참여하겠다는 것인지, 갈수록 태산이다.
미국이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라크인과 국제사회에 협력을 구하지 않는 한 해법은 나오지 않는다. 이는 자이툰 부대를 하루빨리 철수시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