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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생산 ㅣ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 번역총서 3
앙리 르페브르 지음, 양영란 옮김 / 에코리브르 / 2011년 4월
평점 :
경향신문 1월 7일자 [명저 새로 읽기] 코너에 실릴 서평 하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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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자들의 책을 유심히 살펴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졌을 법하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나 베르그손의 {창조적 진화}, 또는 바디우의 {존재와 사건} 같은 책들은 한결같이 시간의 문제를 철학의 중심에 놓고 있다. 왜 이들은 시간의 문제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할까? 반면 왜 이들은 공간의 문제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것일까?
20세기 프랑스 철학자인 앙리 르페브르는 서양철학의 이러한 경향에서 아주 예외적인 인물이다. 그는 공간의 문제야말로 우리 시대의 지배와 저항, 억압과 혁명의 핵심 쟁점이라고 간주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공간의 생산}은 그의 공간에 대한 사유를 집약하고 있는 대표적인 저작이다. 오랫동안 풍문으로만 전해지던 이 대작을 한글로 술술 읽으면서 문외한인 필자가 서평의 욕심까지 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역자의 값진 노고 덕분이다.
“공간 분석” 내지 “공간학”(549쪽)이라는 조심스러운 명칭이 붙은 르페브르 작업의 출발점은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분석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기획이다. 마르크스주의는 토대와 상부구조로 이루어진 생산양식에 따라 역사를 구분하며, 토대의 모순이 역사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라고 파악한다. 르페브르는 이러한 원칙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그것의 한계를 지적한다. 이러한 역사유물론의 관점에는 “각각의 사회는 저 마다의 공간을 생산한다”(77쪽)는 전제가 빠져 있다. 이것은 각각의 사회, 곧 각각의 생산양식은 생산수단의 소유 관계에 의해 규정될 뿐만 아니라 공간에 대한 집단적 생산에 의해서도 구별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새로운 생산양식의 출현, 다시 말해 기존 생산양식의 변혁은 기존의 공간 질서에 대한 전복과 새로운 공간 관계의 생산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르페브르는 공간 생산의 세 가지 계기를 구별한다. 공간적 실천과 공간 재현, 재현 공간이 그것들이다. 공간적 실천이란 지각된 공간을 뜻하는 것으로, 사람들이 일상적인 반복된 활동을 통해 공간을 물리적으로 생산하고 지배하고 전유하는 작용을 가리킨다. 일하고 걷고 공부하고 놀이하는 등과 같은 개인의 일상적인 활동과 이러한 활동을 연결하는 사회적 관계망들이 공간적 실천이다.
반면 공간 재현이란 인지된 공간을 의미하며, 공간에 관한 다양한 종류의 이론적 담론에 따라 규정되는 공간을 가리킨다. 이것은 데카르트와 같은 철학자들이 이론화한 기하학적 공간이고 도시계획자들이 설계하는 공간이며, 그에 따라 실제의 공간을 구획짓고 배열하는 기술관료들의 공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재현 공간이란 이미지와 상징을 통해서 체험된 공간이다. 우리는 어떤 공간이나 장소에 대해 상징적으로 이러저러한 의미를 부여한다.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의 장소라든가 조상의 넋이 살아 있는 선산, 독립선언의 기억이 아로새겨진 성소, 젊음의 거리 등이 단순한 물리적 공간과 구별되는 재현 공간의 예들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개념적인 구별을 통해 르페브르가 보여주려는 것은 공간이 지니고 있는 중층성과 복합성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은 자본의 높은 수익을 보장하기 위한 장이며, 저항과 전복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위계적으로 재편되는 곳이다. 강남과 비강남, 수도권과 지방 같은 간단한 구도를 상기하는 것으로 족하다. 하지만 르페브르에 따르면 공간은 단순히 지배의 공간만이 아니며 전면적으로 통제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19세기에 파리 외곽으로 밀려났던 파리의 빈민들이 파리 코뮌을 통해 다시 파리의 주체로 재등장했던 것처럼, 도시는 연대와 소통, 차이와 횡단의 가능성이 구현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르페브르는 공간을 단순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생산물로서, 더 나아가 생산 작용 자체로 파악함으로써, 공간이 지닌 복합성과 활력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공간의 생산}은 기묘한 모순을 담고 있는 책이다. 한 편으로 이 책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할 만큼 꽤 복잡한 논의와 독창적인 가설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책의 여러 대목에서 르페브르는 논의의 흐름에서 벗어나 분방한 상상력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충분히 음미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한 손에 펜을 들고 줄을 그으며 꼼꼼히 읽어가면서도 때로는 한 대목에 멈춰서 자유롭게 이런저런 상상을 해가면서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어야 한다는 것, 그것을 나는 이 책의 페이지들을 꽤 넘긴 뒤에야 깨달았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마치 오래된 도시와 같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