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처음 글을 올리는 데, 이렇게 부정적이고 답답한 글을 올려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며칠전 인터넷 서점에서 얼마전 출간된 데리다의 [불량배들]이라는 책을 구입했습니다. 저는 올해 초 파리에 있을 때 막 출간된 이 책을 사서 읽었는데, 현재의 세계정세에 관해 데리다가 체계적으로 논평하고 있는 점이 매우 흥미있었고, 또 책의 내용도 플라톤에서부터 20세기의 칼 슈미트나 벤야민, 장-뤽 낭시에 이르는 서양의 정치철학 전통에 관한 매우 중요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어서, 잘 번역해서 출간한다면 국내에 좋은 논의거리를 제공해 주겠구나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4월 경에 [휴머니스트]라는 출판사에서 전화를 해서, 이 책을 번역해 볼 생각이 없는지 물어 왔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3월경 문학과 지성사에서 이 책의 번역권을 얻으려고 갈릴레 출판사에 연락을 했더니 이미 저작권을 다른 출판사에서 사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느 출판사인지, 혹시 동문선 출판사가 아닌지 걱정했었는데,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재빨리 저작권을 사갔더군요.

어쨌든 저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만, 제가 논문 준비 때문에 당장은 겨를이 없으니, 내년까지 시간적인 여유를 좀 주면 해보겠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대번 난색을 표시하면서, 다른 역자를 좀 추천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서울대 불문과 강사로 계시는 박성창 선생을 추천했는데, 이전에 데리다 책도 한권 번역하고, 불어 능력이라든가 프랑스 문화에 대한 이해라든가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볼 때, 제일 적합한 역자 중 한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결국 박성창 선생도 시간이 없었는지, 들뢰즈의 [니체와 철학]을 번역한 이경신 씨가 이 책을 번역했더군요. 저는 사실 이 책을 인터넷 서점에 주문하면서 한편으로는 반가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당히 불안했습니다. 이경신 씨가 번역한 [니체와 철학]은---책 자체가 번역하기에 그리 까다롭지 않긴 하지만---꽤 읽을 만했기 때문에, 그래도 좀 믿을 만한 역자를 골랐구나하고 내심 안도했고 또 반가웠지요. 하지만 불안했던 이유는 번역이 너무 빨리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저한테 전화가 온 게 4월달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책의 번역은 빨라야 5월 중에나 시작되었을 텐데, 11월 말에 책이 나왔으니, 결국 5개월 안에 번역을 끝냈다는 이야기지요.

5개월 안에 번역을 끝내는 게 기술적으로는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문제는 데리다의 글쓰기가 상당히 미묘하다는 점입니다. 주지하다시피 데리다는 글쓰기 자체가 글의 철학적 내용을 수행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의적인 의미를 지니는 단어나 구절, 문장을 잘 구사하고, 논의의 전개 역시 수사학적 어법과 철학적 논증이 미묘하게 결합되어 있어서, 번역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더욱이 그의 저작들, 특히 나중에 나온 저작들은 이전 저작들에서 사용했던 개념들이나 논증, 문제들을 별다른 지시 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전의 작업들에 익숙하지 않을 경우, 논의가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불과 5개월 만에 출간된 이 번역본에 불안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 불안감은 그대로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한 마디로 이 번역본은 오역이 없는 페이지가 없다고 할 만큼 수많은 오역들 및 비문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정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동문선이나 인간사랑 같은 일부 출판사에서 최근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프랑스 철학자들이나 정신분석 관련 이론가들의 저작권을 모두 독점하고, 능력도 책임의식도 없는 역자들을 고용해서 대량으로 오역본들을 남발하고 있긴 하지만, 저는 그래도 능력과 책임의식을 갖춘 역자들이 여럿 있다고 생각해 왔고, 이경신 씨도 그 중 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건 너무 어이가 없고 실망스러운 번역이었습니다.

 최근 나온 권순모, 이진경이 번역한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도 같은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이 책의 번역이 잘 됐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 어떤 철학 사이트에 들러 봤더니 프랑스 철학을 전공하는 모 교수가 이 책의 번역을 칭찬하더군요. 불과 하룻만에 책의 절반 가까이를 읽었고, 원전을 읽는 것에 비해 많은 시간을 벌었다면서요. 저로서는 참 이해할 수 없는 게, 저는 이 책의 원전을 일주일 정도면 읽는데(4-5차례는 읽은 것 같습니다), 이 번역본은 하루에 20쪽을 읽기가 어려웠습니다. 매쪽마다 서너개의 작은 오역들이나 틀린 정보들이 나오고 있고, 거의 매쪽마다 심각한 오역이 하나씩 나와서, 원본과 대조해서 일일이 수정하다 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 책의 번역이 잘 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만큼 이 책에 많은 내용들이 담겨 있다는 의미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스피노자 철학에 관해 그만큼 무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책이 내용이나 논변이 매우 미묘한 데 반해, 들뢰즈의 문체가 매우 간결하면서 유려하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어쨌든 저는 이경신 씨나 이진경 씨 같이 제가 얼마간 신뢰하던 역자들이 이처럼 무책임하게 책을 번역해 놓는 걸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전에 김성도 교수나 양운덕 선생이 데리다 책을 형편없이 번역해서 내놓았을 때도 그랬지만, 한국의 지식인들(특히 프랑스 철학 관련)이 과연 지식인으로서 책임감이나 윤리의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데리다 책 한 권을 번역할 때, 20000원 정가에 2000부를 찍고 6% 정도의 인세를 지급한다면, 240만원 가량이 외국으로 지급됩니다. 이 정도의 돈이야 학습효과만 충분히 얻을 수 있다면, 큰 돈이라고 보기 어렵겠지요. 그런데 이처럼 엉망으로 번역되면,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책을 산 독자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게 될까요?

 1) 자신의 지적 능력을 한탄하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데리다는 무언가 심오한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가 능력이 없어서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따라서 이들은 프랑스 철학은 너무 어려워서 자기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는 거의 프랑스 철학 및 철학책들을 접하지 않을 겁니다.

2) 반대로 프랑스 철학자들은 제대로 논변을 구사할 줄도 모르는 형편없는 놈들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실제로 어떤 동양철학 전공 선생님은 어떤 프랑스 철학자의 책을 아예 갈기갈기 찢어버렸다고 하더군요). 문제는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학계나 문화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분들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프랑스 철학은 철학도 아니다>라는 말이 널리 유포되어 있는 게 전혀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3) 데리다를 비롯한 프랑스 철학에 강한 관심을 갖고 있고, 또 열심히 공부하려는, 하지만 아직 프랑스어나 외국어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이들은 어떻게든 이 책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겠지요.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現>이라는 경구를 믿으면서 몇번씩 읽고 공책에 옮겨적으면서, 골똘히 의미를 따져보려고 노력할 겁니다. 또 이렇게 해서 <나름대로> 이 책을 다 읽고 난후 뿌듯한 감정도 갖게 되겠지요. 그런데 이들이 이 책을 읽고서 뭔가 얻은 게 있을까요? 아마 이러저러한 단편적인 정보나, 이해될듯 말듯한, 그래서 더 오묘하게 보이는 문체(!)에 대한 알 수 없는 매력 정도겠지요.

저는 사실은 프랑스 철학이 국내에서 이렇게 큰 대중적인 관심을 유지하고 있는 게 좀 신기합니다. 이렇게 많은 오역들과 잘못된 정보들이 넘쳐나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이런 철학에 매력을 느끼고, 공부할 동기를 얻는지 이상할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들뢰즈에 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그래도 국내에 번역된 책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들뢰즈 책들의 번역상태가 낫고, 또 거의 모든 책들이 번역되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러니 결국 들뢰즈나 네그리의 (또는 이전의 알튀세르나 푸코의) 저서들만이 어느 정도 학습효과를 낳고 있는 셈이겠지요.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는데, 어쨌든 저는 이번 기회에 이렇게 프랑스 철학이나 다른 이론서들의 무책임한 번역과 출판의 행태를 그래서 수수방관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의 20여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록 이런 문제점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건, 우리 지식인 사회의 자정 능력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것, 또는 아직 그런 시스템이 제대로 자리잡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뜻하고, 이럴 경우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대다수의 선량한 독자들과 우리 지식계일 수밖에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되면 계간지 등에 프랑스 철학의 국내 수용 및 번역의 문제점들에 관해 좀더 체계적으로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보다 더 능력 있고 영향력 있는 분들이 직접 나서 주신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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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3-12-29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문제제기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데리다에 '갑작스런' 신간이 퍽 반가웠고, 한 카페에 소개도 했었는데, 좀 면목없게 돼 버렸네요. 저도 산발적으로 그런 작업을 하고는 있지만, "번역의 문제점들에 관한 좀더 체계적인 지적"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향력 있는 분들' 기다리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활동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03-12-31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3-12-31 0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본의아니게 실례를 저질렀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 글쎄요,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 번역의 문제점에 관해서는 좀더 체계적으로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마침 1월 초에 낼 번역책의 [해제]를 쓰고 있는 중이어서, 며칠 있다가, 가능하면 그 사이트에도 게재를 하겠습니다. 사실은 1월 초에 낼 책이 피에르 마슈레의 [헤겔 또는 스피노자]라는 책이고(이렇게 말하면 결국 제 신원이 드러나겠지요), 이 책의 [해제]에서도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가 지니고 있는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이는 주로 개념 번역의 문제여서 선생님께서 궁금해하시는 점에는 큰 도움이 안될 것 같습니다(전혀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요). 하지만 이 일이 끝나는 대로 좀 시간을 내서 제가 생각하는 문제점들을 몇 가지 지적해 보겠습니다.
위의 글들은 그냥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이트에 푸념삼아 올렸던 글들이고, 프랑스 철학책들의 번역의 문제점 및 이를 산출하는 원인들에 관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각해 보자는 뜻에서 [나의 서재]에 올려둔 건데, 일이 참 공교롭게 되어, 선생님께 피해를 드리게 되었군요.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호네트가 하버마스의 후계자라는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인정의 정치, 인정 투쟁의 문제가 미국에서 논의될 때 호네트의 책이 주요한 전거로 활용된다는 점을 지적하려고 했던 거지요. 어쨌든 관심을 기울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