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주장] "대통령은 물러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노무현 퇴진' 구호와 다시 부르는 '너흰 아니야'
이봉렬 기자
지난 탄핵 정국 당시 광화문에서 가장 널리 불렸던 노래는 노래 운동가 윤민석이 만든 '너흰 아니야' 였습니다.
'채권에 사과상자에 이제는 아예 트럭째 차떼기로 갈취하는 조폭들'과 '천황을 위해 죽으라 전두환이 영웅이라 선동하고 찬양했던 찌라시’를 향해 ‘나라를 걱정할 자격이 없다’고 일갈했던 그 노래는 당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하고픈 이야기를 온전히 담아 낸 가사와 익숙한 가락 덕분에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자격이 없는 자들에 의해 결정된 대통령 탄핵은 기각되었고, 대통령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은 거리에서 외친 '민주수호' 구호가 현실이 되었다며 박수를 쳤습니다.
그로부터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전 다시 이 노래를 부릅니다. 전에는 ‘그래도 너흰 아니야’로 시작하는 노래의 뒷부분을 말하고 싶어 이 노래를 불렀지만, 지금은 ‘너희들의 말’인 앞부분을 말하고 싶어 이 노래를 부릅니다. ‘너흰 아니야’를 이야기 하기 위해 내세운 역설 정도로 여겼던 노래의 앞 부분이 이제는 더 이상 역설로 여겨지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 너희들이 말하는대로 대통령은 물러나야 할지도 몰라 / 일가친척 측근 가리지 않고 검은돈 받아 챙겼을지도 모르지 / 노동자 농민은 죽음으로 외치고 서민은 카드빚 때문에 목을 매는 / 이 개같은 세상 거꾸로 된 이 나라 누군가는 바로 잡아야 하겠지만….'
서민들 스스로 제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목을 매는 현실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스스로 목을 매는 것을 못 막는 정도가 아니라 그토록 ‘살고 싶다’며 절규하던 제 나라 국민의 목숨도 챙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죽음의 땅에 우리 군인 3000명을 보내겠다는 주장도 꺾지 않고 있습니다.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 동안 ‘대통령은 물러나야 할지도 몰라’라는 가사가 자꾸만 목에 가시가 됩니다.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습니다.
전 한 때 노사모 회원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개혁당이 만들어 질 때 지역에서 당원으로 참여하기도 했고, 무슨 위원이라는 감투를 쓰고 당원들을 모으고 연락하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는 노란 티셔츠 차림에 회사에서, 거리에서 희망돼지를 나눠주는데 앞장을 서기도 했습니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게 어떻게 진보냐?"는 벗들의 질책에 "세상을 한 발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게 진보다"라는 변명을 늘어 놓으며 ‘국민참여운동본부’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제가 '대통령은 물러나야 할지도 몰라'라는 대목을 되뇌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광화문에서도 '노무현 퇴진'구호가 논란거리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논점을 흐린다'고도 합니다. 파병은 반대하지만 노무현 퇴진이라는 구호 때문에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김선일씨를 살릴 수 있고, 파병을 하지 않을 수 있고, 우리나라가 전범국이 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노무현 퇴진' 역시 고려의 대상에서 빠질 이유가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진퇴 여부보다는 이 나라 국민의 안위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논점을 흐리는 것은 '노무현 퇴진' 구호가 아니라, 그 구호에 시비를 거는 행위 그 자체입니다. 현실성 없는 것으로 치자면 파병을 통해 국익을 도모하겠다는 것만한 게 있겠습니까.
탄핵정국이나 총선기간 동안, 심지어 지자체장 보궐선거기간 동안에도 제 휴대폰에 수 많은 참가 독려 메시지가 날아들었습니다. 때론 노사모의 이름으로, 때론 열린우리당의 이름으로. 하지만 이번 파병반대 집회기간에는 단 한건도 날아들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그들이 보여준 열심은 이 나라를 위한 게 아니라, 서민들의 삶을 위한 게 아니라, 다만 노무현 개인을 위한 것이었던가요.
제가 노사모에 가입했던 것은 노무현 개인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노무현이 만들고자 한 이 나라의 모습이 제가 바라는 모습과 닮아서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집권 후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가 보여준 모습은 제가 바라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파병 결정은 제가 더 이상 그를 사랑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아프게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너흰' 아니지만, 우린 맞습니다. 우리는 제 나라 국민의 목숨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퇴진을 이야기 할 자격이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 섰던 사람들일수록 미국의 꼭두각시가 되어 버린 지금의 노무현을 부끄러워 해야 합니다.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주거나, 지금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하는 겁니다.
예전에는 역설로만 이해했던 ‘대통령은 물러나야 할 지도 몰라’라는 구절에, 이제는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파병결정이 철회되지 않으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퇴진’이라는 현실성 없는 구호에 공감하게 될 겁니다. 파병에는 반대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때문에 촛불을 들지 못한다는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전범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노무현 대통령을 위해서도, 이 나라를 위해서도, 우리 모두는 파병반대일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