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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권 없는 텍스트의 저자’로 유명한 자크 데리다는 말과 글의 경계에 대한 고민을 독자에게 ‘전이’한다. | 지난 6월9일, 프랑스 동북부 도시 스트라스부르의 마르크 블로흐 대학의 한 강의실. 강의실에 10여 분 늦게 나타난 강연자는 우선 급한 대로 문가에 놓인 책상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 한 교수가 이 날 수업 내용을 개괄적으로 소개하고 있던 터였다. 책상에 쭈그리고 앉은 이는 다름아닌 자크 데리다. 프랑스는 물론 전세계에 자신의 권위를 각인한 해체주의의 거장이다. 이 날 강연의 주제는 ‘자크 데리다 주변에서’였다.
곧바로 한 여학생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이 날 초청 강연자가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철학계의 거두인 만큼 거창한 소개가 있을 법한데 생략. 문간에 앉아 있던 데리다는 얼른 가방을 뒤져 수첩을 꺼낸 뒤 학생의 말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드나들어 정신 없고 옹색한 자리인데도 데리다는 의식조차 하지 않았다. 중간에 누군가 귓속말을 건넨 뒤에야 그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자리를 옮겨 앉았다. 그런데 하필 그가 앉을 자리는 여러 사람이 일어서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계단 강의실의 긴 의자 한 구석. 그는 훌쩍 의자 등받이를 뛰어넘어 빈자리에 착지했다. 순간 좌중에서 웃음이 일었다.
‘해체’는 그의 텍스트에서만 아니라 이미 그의 몸짓에서, 그가 참석한 수업 현장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거추장스런 의식과 절차를 해체한 것이다. 주최측도 마찬가지였다. 초대된 인사를 위해 굳이 따로 좋은 자리를 마련하거나 챙겨주지 않았다.
무신경은 자유로움이었다. 적어도 오늘날 프랑스 대학생이라면 데리다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의자 등받이를 뛰어넘었을 때, 1968년 이후 프랑스 사회에 스며든 ‘반권위’에 탄복해서 웃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아마도 젊은 날 한때 지네딘 지단 같은 축구 선수를 꿈꾸었던 73세 노인의 놀라운 운동 신경에 감탄하며 웃었을 것이다.
이 날 강연에는 학생과 선생이, 저자와 독자가 따로 없었다. 자크 데리다는 말하는 자가 아니라 듣는 자였다. 아니 듣기 위해 말하는 자였다. 오전 11시30분부터 시작해 저녁 7시30분까지 계속된 이 날 강연의 주요 발표자들은 그의 쟁쟁한 동료 철학자들이 아니라 데리다를 공부하고 데리다를 배우려는 학생들이었다.
석사 및 박사 과정 대학원생 4명이 높은 강단에 올라 서로 돌아가며 주제를 발표했고, 데리다는 이들의 발치 아래에서 그 어떤 학생보다 열심히 발표를 받아적었다. 그의 말마따나 ‘소유권 없는 텍스트’의 작가, ‘쓰되 내것이라고 굳이 서명하지 않는’ 작가 자크 데리다와 그의 철학이 있을 뿐이었다. ‘네가 데리다를 알아?’라고 누가 딴죽을 걸고 이죽거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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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보다 글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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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화 |
지난 6월 초순 자크 데리다를 초청해 ‘스트라스부르에서의 대화’라는 강연회를 개최한 작은 서점 클레베(맨 위). 위는 서점에 쌓여 있는 자크 데리다의 저술들. | 자크 데리다의 이 날 강연은 ‘스트라스부르에서의 대화’라는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였다. 첫날은 고등학교 학생·교사 들과 함께 ‘가르치다’와 ‘전수하다’ 개념을 놓고 토론했다. 데리다가 개인적으로 갖는 두 가지 고유한 경험, 즉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자 책으로써 무엇인가를 ‘전수’하는 저자로서의 경험을 토로하며, 말과 글의 경계에 관한 생각들을 털어놓았다.
일방적 전달 대신, 그는 ‘전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저자란 텍스트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개념이 도출되었다. 항상 무엇인가 벌려진 틈을 찾는 그의 철학적 변주는 ‘해체’의 가장 원천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데리다는 자신이 하는 강연의 대부분을 미리 글로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그가 행한 강연과 심포지엄은 현장에서 녹음되어 바로 출판된다. 그의 저서가 100 권이 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트라스부르 시와 클레베 서점이 함께 주관하는 ‘스트라스부르에서의 대화’는 몇몇 테마를 가지고 매달 다양한 작가들이 독자들과 대화하는 프로그램이다. 클레베 서점은 시골의 한 작은 서점이지만 단순한 서점은 아니다. 그다지 크지 않은 이 서점에는 50~60명이 앉을 수 있는 작은 방이 있다. 이 방을 르네 지라르·레지스 드브레·르 클레지오·아멜리 노통·줄리아 크리스테바·아시아 제바르·아민 말루프 등 프랑스 인문학을 대표하는 쟁쟁한 인사들이 다녀갔다.
자크 데리다는 사진 찍히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자신의 책에도 사진을 거의 넣지 않는다. 사진거부증에 대해 하도 많은 질문을 받은 터여서, 데리다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얼굴보다 글이 낫다는 판단에서다”라고 농을 친다. 사진 자체를 싫어한다기보다 ‘저자’ 개념에 대한 각별한 철학이 있는 것이다.
독일과 국경을 맞댄 스트라스부르는 인구 30만이 되지 않는 작은 도시이지만 유럽의 심장부 구실을 하고 있다. 유럽연합의 입법·사법 기관 및 유럽 인권위원회가 모두 스트라스부르에 있다. 자크 데리다가 결성한 작가국제회의와 철학자국제회의 사무실도 모두 스트라스부르에 있다. 스트라스부르 시가 내놓은 각종 안내 책자를 보면 네거리·교차로라는 뜻의 ‘스트라스부르’를 유난히 강조한다. 갖가지 이질적인 사고와 철학이 만나는 교차로 역할을 하고 있거나, 해야 한다는 뜻이다.
데리다는 스트라스부르가 ‘의회’의 도시라는 점을 부각한다. 그러나 데리다가 밑줄을 긋는 ‘의회(parlement)’란 의원들의 집무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의견이 서로 부딪치고 논박되는 ‘말하는(parler/parlementer)’ 공간이라는 의미다. 어떤 한 단어의 이면에서 철학적 주제를 곧잘 이끌어내곤 하는 자크 데리다는 일반 시민들과 가진 토론회에서도 스트라스부르를 은유해 자신이 최근 강조하는 ‘주도권(주권)’ 개념을 언급했다. 즉, 무엇인가 ‘교차’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도권이란 어느 누구의 일방적인 ‘주도권’이 아니라 상호의 적 혹은 상호 교섭자가 동시에 갖는 주도권을 뜻한다. 1인이 갖는 주도권이 아니라, 2인이 동시에 갖는 주도권이 현실 정치에서 가능할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 유럽과 미국 문제, 세계화 문제 등을 바라보는 그의 정치적 견해도 이 ‘주도권’ 개념을 중심으로 선회한다.
한동안 건강이 좋지 않아 활동이 뜸했던 자크 데리다가 최근 다시 바빠진 것은 9·11 테러 이후 세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듯하다. 독일의 석학 위르겐 하버마스와 나눈 대담집 <9·11이라는 개념>이 최근 프랑스어판으로 출간되었는데, 데리다는 9·11을 어떤 ‘사건’이 아니라 ‘개념’이라고 정의한다. 9·11 테러라는 재앙적 사건은 그것이 과거가 되면서 트로마티즘(외상)을 유발한다. 그러나 9·11은 미래에서 오는 트로마티즘이다. 무엇인가 더 오리라는 것이다.
불가능의 가능성 역설하는 ‘마지막 검객’
알제리계 유태인인 데리다는 반유태주의에 대해서도 예리하게 칼날을 들이댄다. “오늘날 가장 참아줄 수 없고,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일은 이스라엘 샤론의 정책을 더 이상 비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유태주의만 문제 삼지 반유태주의가 왜 생기는지 자성하지 않는 미국과 시나고그의 지지를 받아 이스라엘 정치는 더 공고해지고 있다”라고 그는 일갈한다.
최근 데리다는 ‘문화와 독립’이라는 프랑스 방송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심하게 말하면 냉전 시대가 오히려 나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오늘날의 세계는 최악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트랑작시옹(교섭·transaction)’이 사라지는 세계에 대한 반발인 것이다. 그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도권이란 단순화하면 교섭이라는 단어로 바꿀 수 있다”라고까지 말했다. 그가 말하는 트랑작시옹은 깃발을 내리고 투항하는 식의 교섭이 아니다.
아카데미즘과 권위 체계에 정면 공격을 가했던 1960년대의 ‘검객들’(라캉·알튀세르·푸코·바르트·들뢰즈 등)이 모두 사라진 지금, 자크 데리다는 그 마지막 생존자로서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시대적 예언자도, 메가폰을 들고 외치는 ‘사르트르’도 아니다. 다만 그는 회의하고, 주저하고, 우회하며 끝없이 ‘진실’을 찾아 나서고 있을 뿐이다. 불가능의 가능성을 역설하는 그는 학생들에게 더듬거리면서라도 끝없이 파고들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우리가 파야 하는 우물은 ‘바닥 없는 우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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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스부르·류재화 통신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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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7/08 767 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