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모모 > [한겨레 왜냐면] 파견노동자가 본 파견법 확대안

파견노동자가 본 파견법 확대안


나는 용역근로자다. 현재 대기업의 공장에서 일한다. 그러나 소속은 용역업체다. 월급은 평균 110만원 정도이다. 더 힘들고 더 더러운 일, 게다가 공정상 빠질 수 없는 핵심적인 업무를 맡고 있지만, 같은 곳에서 유사한 수준의 업무를 하는 정사원들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고 있다. 특근이나 야근수당 같은 것도 없다. 그러나 돈 문제가 다는 아니다. 우리는 불만이 있어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밉보이면 다음해 재계약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업무상의 개선사항조차 전달되지 못하거나 무시되기 일쑤다. 대체 무엇이 이러한 차별과 불합리를 만들었을까

근로자 파견과 같은 간접고용은 중간착취와 노동3권 상실 등의 반가치적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직업안정법과 파견법 등을 통해 조건, 사유, 기간 등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이를 지키지 않는다. 아예 무시하는 수준이다. 형식적으로는 도급계약을 맺고 있지만 ‘제품생산의 상시 공정에 투입되어, 원청업체의 정사원들과 섞여서 일하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불법이다. 보통 ‘위장도급 형태의 불법파견’이라고 말한다.

최근 정부는 파견직을 전업종으로 확대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아무런 제재도 없이 불법파견을 자행 해 온
기업들에게 ‘확실한 면죄부’를 선물할 요량인가?

그동안 수많은 위장도급이 ‘만성화된 부패’ 덕에 유지될 수 있었다. 직업소개소와 하등의 차이가 없는 용역업체는 ‘거저먹는 돈벌이’를 잃을까에만 전전긍긍하며 원청업체 용역담당자의 이쁨을 받고자 별 ‘생쇼’를 다 한다. 원청업체와 용역업체는 로비로 얽힌 유착관계인 것이다. 사실 용역업체는 태생부터 대기업의 한 부서에 불과했다. 70~80%는 그렇다. 퇴직 임원들에게 선물 주듯 회사 하나 차려주면 대기업은 사용주로서의 갖가지 책임을 면할 수 있고, 용역업체는 별다른 투자 없이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부패는 노동부의 직무유기다. 해당 공무원들은 수십년간 잠만 잤는가.

불법근로자 파견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오랫동안 신음해 왔다. 노동법의 근간은 노사의 균형이며, 잘라 말해 ‘근로자의 말할 권리, 알 권리’이다. 용역근로자들은 불만을 말해선 안되는 사람들, 말하려면 계약 해지라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더구나 직접 고용해야 하는 제조업의 상시 공정에 투입된 사람들은 법에 의해, 기업들의 몰양심에 의해 두번 속고 두번 운다.

최근 정부는 파견직을 전업종으로 확대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개탄할 노릇이다. 그동안 아무런 제재도 없이 마음껏 불법파견을 자행해 온 기업들에게 ‘확실한 면죄부’를 선물할 요량인가 위장도급 아래서 갖은 차별과 저임금에 시달려 온 수많은 장기 임시근로자들의 절망을 깡그리 무시할 참인가 왜 ‘사용자 직접고용의 원칙’을 더욱 망가뜨리려 하는가

불법파견 문제는 경제적 사안이기 전에 우리나라가 온당한 법치국가인가 아닌가 하는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파견법을 확대하려거든 도둑놈을 먼저 잡아라. 정부와 대기업 그리고 다수의 용역업체는 공범자였다. 정부의 무사안일, 기업들의 부도덕, 근로기준법도 알지 못하는 영세 용역업체들의 무지, 정규직 사원들의 냉대 등이 버무려진 결과물은 많은 사람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왔다. 정부는 ‘전면적이고 정직한 조사’를 통해 곪은 상처에 빛을 비추어야 한다. 그리고 파견법 존속을 회의적으로 검토한 뒤, 그래도 추진해야겠다면 이율배반적인 관련법을 기초부터 다시 정비하라. 한편 기업들이 취해야 할 행동은 자명하다. 첫째는 공개 및 사죄, 둘째는 피해보상, 셋째는 정규직화, 넷째는 적법한 사법처리에 응하는 것이다.

이봉형/파견근로자

 

.. 파병 문제는 물론 중요하지만, 그 아래 이런 다른 문제들이 가리지 않을까 싶어 걱정스럽다. 좀 더 살만한 데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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