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성 위기' 직면한 노무현 정부"

홍기빈의 '현미경과 망원경' <17> 파병의 성격과 대가를 제시해야

   

김선일 씨 피살 이후 현재 한국의 국가가 처한 상황은 '정당성 위기'이다. 이를 풀기 위해 정권은 다음의 문제에 대해 명시적인 입장을 우선 밝히고 다시 국민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 이라크 파병은 전투병 파병인가 비전투병 파병인가.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국민들의 가능한 희생과 위험은 정확하게 무엇인가.
  
  
노무현 정부, '정당성 위기'에 직면해
  
  "주권자"란 무슨 의미인가. 독일의 법철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대답은 이러하다. "주권자란 예외적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는자이다." 보통의 일상에서 국가 권력이란 철저하게 규정과 법에 따라 규정되고 집행되는 기계적 절차적 과정이다. 그런데 혁명이나 쿠데타 등의 '예외적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국가 정책의 정당성이란 그러한 법전이나 행정 절차가 아니라 오로지 나라의 진정한 주인 즉 주권자가 명시적인 의사를 표시할 때에만 확보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고 비상 사태에 대한 정책 결정에서 주권자의 명시적 의지 표명이 결핍된다면 이는 즉각 '정당성 위기'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민주 공화제인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또 3천명 규모의 '참전'이라는 행위가 바로 그러한 보통의 법과 절차를 넘어선 주권자의 의지 표명이 필요한 '예외적 상황'의 대표적인 예라는 것도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누누히 지적된 바와 같이, 그 파병 결정의 과정에서 주권자인 국민들의 의지 표명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를 정부는 조직적 체계적으로 차단하였고, 의회는 예산도 파병지도 법적 근거도 모호한 전대미문의 '백지 파병안'을 통과시켰음을 우리는 목도하였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노무현 정부는 선거를 통해 정당한 절차로 로 만들어진 정부이다. 따라서 그 정부의 파병 결정은 당연히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이다"라고. 그렇지 않다. '파병'이란 행정부와 입법부의 독단과 파격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상의 사안이 아니라, 충분한 심사숙고를 거친 주권자 국민들의 명시적 의사 수렴이 반드시 필요한 '예외적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독단과 파격이라는 점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치명적 오류가 정부와 의회에게 있다. 파병의 성격과 그 댓가에 대해 국민들에게 모호하거나 그릇된 정보를 주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라크 상황이 '안정되어' 있으며, 여기에 보내는 한국 군대는 건설과 의료를 주로하는 "평화적 비전투병"이라고 강조하였다. 따라서 국민들은 파병의 성격이 갈등과 분쟁이 가라앉은 지역의 복구를 위해 "다리 지어주고 예방 주사 놓아주는" 평화적인 우호 사절단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라크 파병을 놓고 주권자인 국민들이 심사숙고와 명시적 의사 표명의 기회를 빼앗기고도 정부의 결정에 피동적으로 침묵하고 있었던 이유는 정부가 내놓았던 그런 정보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최근의 상황 진전은 그러한 전제를 모두 뒤집고 있다. 첫째, 이라크 전황은 전혀 안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둘째, 한국군의 파병의 성격은 김선일씨와 같은 민간인의 생명조차 앗아가는 대단히 위험한 것임이 밝혀졌고, 여당의 유시민 의원은 지금 와서는 이라크 파병으로 인해 국민 전체가 "콜레라와 같은 질병"을 앓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셋째, 정부와 여당이 추진해온 한국의 파병이란 순수한 평화적 지원 재건 부대도 아니었으며 또 국민들에게는 김선일씨 피살과 같은 위협이 계속 따라오게 되는 성격의 것이었다는 점 또한 안영근 의원의 "파병 증강론"과 "국민들은 테러 위협을 감수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칼 슈미트의 지적대로 정당성 위기가 발생하는 현재의 상황은 필연적인 귀결이라 하겠다.
  
  정당성 위기의 대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정부와 여당은 이러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하여 늦은 감이 있지만 시급히 다음을 시행해야 한다.
  
  첫째, 지금이라도 이라크 파병 부대의 정확한 성격과 그로 인해 국민들이 감수하고 준비해야 할 대가와 비용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다. 그를 통해 국민들이 심사숙고할 만한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 둘째, 그러한 심사숙고의 시간을 가진 후 국민들이 이 파병이라는 '예외적 상황'에 대하여 명시적인 의사 표명을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상적인 형태로는 정책에 대한 국민 투표(referendum)도 있을 수 있겠으나, 그 심사숙고의 과정 속에서 적절한 방식은 찾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위기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정부와 여당이 파병을 강행한다면 현재의 정당성 위기는 계속 심화될 것이다.
  
  근대 국가를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괴물 [레비아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홉스조차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주권자가 전쟁에 출전할 것을 명할 경우, 본인이 전쟁에 나가고 싶지 안다면 뇌물을 써서 면제를 받거나 아니면 국외로 도망쳐도 무방할 것이다." 하물며 주권자가 아닌 정부 여당의 독단으로 생명과 위험을 감수하라고 한다면 누가 따를 것인가. 그 정당성 위기의 궁극적인 대가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이며 그 크기가 어떨 것인가야말로 위정자들이 '심사숙고'해 보아야 할 몫이다.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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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6-29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무현 씨를 지지하는 분들 중에는 파병동의안이 국회에서 합법적으로 처리되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라고 이 난리냐고 반론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불과 석달 전에는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들이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국회에서 탄핵결의안이 합법적으로 처리되었는데, 노사모를 비롯한 일부 불순분자들이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이지요.
홍기빈 씨의 글은 현재의 문제가 지니고 있는 심각성을 법학적, 정치학적 차원에서 "중립적으로" 잘 분석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