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미국 중심 외교, 이제 그 장막을 걷어야 한다

 

김보영 기자

김선일씨가 결국 죽임을 당했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의 바람과 달리 '파병방침 불변'이라는 정부의 꿋꿋한 방침 아래 희생된 첫 민간인으로 기록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테러범들이 한국 정부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를 읽는 동안 공포의 가쁜 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었던 김선일씨에게 조국, 대한민국은 무엇이었는가. 무고한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존재 이상, 이하도 아니었음을 우리는 모두 확인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김선일씨의 죽음을 보면서 생각난 것은 우습게도 고등학교시절 국사 수업 시간이다. 그 때 우리는 '우리 민족은 매번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을지언정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고 배웠다. 이를 듣고 어떤 친구는 "우리 민족은 바보 같다"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 덕에 그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테러 뉴스는 단지 '국제' 뉴스에 지나지 않았다. 누가 그것이 국내 뉴스가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국민을 죽음으로 내몬, '대한민국'

세계 3위 규모의 파병을 결정하면서 정부는 줄곧 '평화와 재건'을 위한 파병이라고 주장한다. '평화와 재건을 위한 파병'인 만큼 김선일씨의 죽음으로 파병 입장에 어떠한 변화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라크 사람들에게는 외국 군대의 주둔 자체가 치욕스러운 것이라고, 이라크를 접해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데도, 정부는 귀를 막은 듯 오로지 '평화와 재건을 위한 파병'이라는 공허한 외침을 반복할 뿐이다.

정부의 말대로 '재건'을 위해서라면 건설 인력을 보낼 일이지, 왜 군대를 보내는가. 또 '평화'를 위해서라면 이라크 국민들의 요청이 있을 경우, 군대를 보내야 맞는 것 아닌가. 정작 해당 국가는 우리를 반기지 않는데, 오히려 그들을 매주 수십 명씩 희생시키는 등 갖은 만행을 일삼고 있는 미국의 요청에 의해 군대를 보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만으로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물론 테러범들의 만행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테러 위협이 날로 증가하는 미국에게 "스스로 무덤을 팠다"고 비판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 스스로 무덤을 팠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파병 찬성론자들은 여전히 '국익'을 논할 것이다. 파병으로 미국의 비위를 맞춰주면 북한 핵 문제를 원만히 풀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햇볕정책을 이끌었던 김대중 대통령은 핵문제의 해법은 미국과의 동맹보다 오히려 북한과의 대화에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리가 파병으로 미국의 비위를 맞춰준다 해도 핵 문제의 해법은 고도로 계산된 그들의 손익계산서 아래 이뤄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코 자신들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우리와의 의리를 지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러워지는이 현실로….

실익 없는 '미국중심 외교'

이것은 우리 정부의 '미국중심외교' 태도가 초래한 결과이다. 파병 찬성론자들이 말하는 국익도 미국중심외교라는 틀 안에서만 국익일 뿐이다. 세계는 점점 다극화하고 있으나 우리는 여전히 미국중심의 외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외교통들은 미국중심의 외교에 길들여진 사람들로 가득하다. 정부뿐만 아니라 언론도 마찬가지다.

"미국에는 각종 언론사의 특파원이 바글거려도 세계 최대 규모의 국가연합체인 유럽연합 사무국에는 상주하는 특파원 하나 없다"는 우리나라 유럽연합 대사의 하소연이 미국중심 외교의 단면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비단 이라크전뿐만이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 계획(MD, Missile Defence)에 편입되면서 중국의 군사적 1차 공격대상국이 됐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 계획은 중국을 가상적대국으로 삼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은 중국에 가장 인접해 있는 남한을 미사일 방어 체제의 최일선 전진기지로 고려해 왔고, 김대중 정부에서 이를 거부하려 했으나 결국 받아들임으로써 현실화됐다. 이로써 중국과 미국 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 경우, 우리 나라는 중국의 제1차 공격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는 북한만이 우리 군사 경계의 대상이었던 범위를 넘어선 것이지만, 그런데도 정부의 외교정책은 여전히 미국중심 외교에서 벗어날 줄 모른다. 우리나라가 아무 이유 없이 중국의 제1차 공격 대상이 되고 있음에도 말이다.

'미국중심 외교'는 '국익'은커녕 우리의 목숨을 점점 죄어오고 있다. 김선일씨의 희생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첫 사례이다.

정부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김선일씨의 희생 및 테러범들의 위협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 오히려 '미국중심의 외교'라는 우리 외교의 한계가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난 일이 이번 김선일씨 사건이다.

이렇게 사건의 본질이 명백한데, 유독 정부여당과 조중동은 여전히 '미국중심 외교'에 집착하고 있다. 그 곳에 더 이상 국익은 없다. 국민을 죽음의 위협 속에 빠뜨리는 정부는 더 이상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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