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는 분들도 있을 텐데,  최원 씨의 제안들입니다. 한번 읽어보시길.

 

[ 탄핵정국에서 민중진영이 해야 할 일]-3/12

지금 현재의 상황은 그렇게 느긋한 상황이 아닙니다. 계속 말하지만, 헌재에서의 결정은 노무현 말마따나 "법률적 결정"일 뿐입니다. 법률이 정치를 대신해 주지도 않고, 권력 찬탈을 막아주지도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가르쳐주는 교훈 가운데 하나입니다. 특히 반주변부의 남한과 같이 정치적 불안정성이 극단적으로 나타나곤 하는 곳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헌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총선에서 민주, 한나라가 참패를 한다고 해도, 이 사태는 결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아직은 쿠데타가 아니지만, 쿠데타까지도 '가능성'으로 고려하기 시작해야 할 위기가 도래했습니다(양진영 사이의 대타협이 성사될 가능성도 있지만, 그것 속에서 대중정치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질식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친노 반노의 극단적인 대립이 야만적인 사태로도 흘러갈 수 있고, 따라서 진보세력의 일차적인 과제는 대중을 보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중을 보호하는 것은 단 하나의 방식, 즉 대중들의 힘의 결집을 통해서만 가능해집니다. 대중들이 갖기 쉬운 친노반노의 허구적 대립구도의 환상을 깨고 새로운 대립구도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르주아 대 민중의 대립구도를 대중적으로 각인시켜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대중들이 스스로 갈라져서 서로 싸우는 사태, 혹은 국가적 비국가적 폭력의 희생양이 되는 사태를 막아야 합니다.

또 더 나아가서, 현재의 국면은 단순히 한나라, 민주로 대변되는 부도덕한 집단의 일시적인 미친짓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부르주아 정치가 어느 곳으로도 나아갈 수 없는 한계에 봉착했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미친짓은 제정신이 들면 사그러들일이지만, 이것은 남한 자본주의의 위기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단순히 사그러들지 않을 것입니다. 물질적인 모순들이 하나도 해결이 안되는데, 그냥 이게 눈감고 며칠 있다보면 없어지고 이제껏 지내던 대로 세상도 제자리로 돌아오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철저한 관념적 사고일 뿐이고 진정 주관적인 희망을 현실로 착각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진보세력은 이 사태의 본질이 신자유주의 하에서 부르주아 정치의 파탄에 기인하며, 따라서 한나라, 민주당, 우리당, 노무현 등 부르주아지들 전체의 연대책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민중적 대안들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민중적 대안을 중심으로 대중을 결집해 나가야 합니다.

민노당 총선에서 눈 띠어 주세요! 지금 한가롭게 극장표 몇장 팔았나 세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대중들이 불난 극장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지금 극장표 계산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장석준 동지도 '탄핵취소, 노동자 농민의 평화 국회'라는 식으로 타협하던데, 그러면 안됩니다. 지금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부르주아 정치 자체가 붕괴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국회에 노동자 농민이라는 말만 달면은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대중들의 직접 행동들을 조직해 나가야 합니다. 부르주아 전체를 비판하는 싸움들을 조직해 나가야 합니다. 새로운 민중민주주의의 대안을 제시해야만 합니다.

총선에 들어가서 어떻게 반노-친노의 허구적인 대립을 깰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대중의 공분을 반노-친노 대립 구도 안에 그냥 가두어버리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총선 보이콧! 신자유주의 하의 부르주아, 의회정치 파탄 선언! 민중에 의한 새로운 민주주의의 건설!

이것이 우리의 구호가 되어야 합니다.

 

[탄핵정국 요점정리 노트]-3/12


1. 현 탄핵정국 사태는 단순히 한나라-민주당의 당리당략 때문에 일어난 사태가 아니다. 노무현도 못지않게 올인을 하고, 도박을 해왔다. 유시민이 오늘 국회의사당에서 절규를 했단다. "이건 정치가 아냐!" 정확히! 그렇다. 의회 안에 더이상의 정치는 없어진지 오래다. 민중의 의사들을 관철시킬 수 있는 그 어떤 정치도 없다.

2.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초민족적 금융자본에 주도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민족국가의 위기, 민족적 공동체의 위기가 가시화되고 있는 것은 여러분들도 잘 안다. 그것이 결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인민주권이 더 이상 의회를 통해서 관철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운신의 폭이 너무나 제약되어 있고, 사실상 개혁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너무나 제약되어 있기 때문에, 당들 사이의 차별성도 내용적 차별성이 아니라, 이미지 조작, 과거의 망령을 불러내기(그것이 지역주의이던, 아니면 80년대의 망령이든, 후자는 386이데올로기로 나타난다)에만 의존하고 민중들의 권리와 삶 등의 문제는 정치에서 유리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3. 어떤 진중권스런 사람은 노통의 개인적인 도박사 기질과 한나라민주당의 당리당략 등이 이 사태를 몰고왔다고 본다. 그러나 노통이라는 인물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현재의 부르주아 정치가 내용 없는 인민주의적 동원체계에만 기댈 수밖에 없을 정도로 형해화되었다는 걸 보여준다. 거기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인간이 노무현이라서 노무현이 뜬 거지, 반대로 노무현의 도박기질이라는 것이 포퓰리즘적 동원정치를 지배적인 정치적 모델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물론자와 관념론자는 정확히 여기서 갈라진다. 이게 차라리 철학의 문제라면 철학의 문제다. 영웅은 (진중권도 전에 얘기 했듯이) 시대를 잘못타고 나면 동키호테일 뿐이다. 영웅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시대고 그 시대의 모순이고 그 정세적 조건들이다.

4. 신자유주의하에서 인민주권이 배제되기 시작하고 의회가 단순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입안하고 관철시키는 장소로 전락되고, 사실상의 계급대립 계급대의의 어떤 간접적인 기능도 할 수 없게 되니까, 남은 건 뭔가? 깜짝쇼를 벌려서 대중을 수동적으로 동원시키는 것 뿐이다. 생각해보라. 한나라 민주당의 탄핵이 노무현의 재신임 깜짝쇼하고 본질적으로 뭐가 다른가? 노무현 재신임 깜짝쇼도 국민에 대한 위협이었고, 니네들이 더 이상 까불면, 국정을 혼란으로 몰고가겠다는 것 아니었나? 동시에 사조직인 노사모, 국민의 힘 등을 다시 조직해서 총선을 장악하겠다는 잔꾀아니었나?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것인가? 다른 점은 없다. 둘다 실체적인 내용적인 차이가 없기 때문에, 온갖 국가 장치들을 전부 사적 정쟁의 도구로 활용할 수밖에 없는 물질적 필연성이 생기고 지네도 어쩔 수 없이 그럴수밖에 없어진거다.

5. 그렇다면, 민중진영은 현재의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점을 선전선동하고, 이번 16대 국회 뿐 아니라, 국회를 통한 정치 일반으로서의 의회정치가 파탄났음을 선언하면서, 민중발의권 등의 제도화를 요구하고 인민주권을 다시 보다 직접적으로 관철시킬 수 있는 경로들을 요구하고, 새로운 민중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를 선전해 나가야 한다.

6. 총선에 참여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의회정치의 파탄을 선언할 수 있나?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다. 따라서 적어도 이번 총선만큼은 보이콧을 하고, 의회정치의 파탄을 선언하고, 민중발의권을 비롯한 직접적인 인민주권 관철경로의 제도화 없는 총선은 그나물에 그밥으로 다시 가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는 점을 대중적으로 알려나가면서, 민주주의의 문제를 새롭게 제기해야 하는 것이다.

7. 국회의원 전원소환은 노무현의 동시 소환 없이는 노무현에 손들어주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그것이 의도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 효과는 그럴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노무현 동시 소환 없는 국회의원 전원소환에 명확하게 반대한다.

8. 그러나 노무현의 동시소환도 여전히 문제를 갖는다. 이는 국회 그 자체, 의회정치 파탄 그 자체를 이슈로 삼는것이 아니라, 현 국회만을 이슈로 삼는 것이고 기껏해야 노무현까지를 이슈로 삼는 것이다. 따라서 민중발의권의 명확한 제도화가 없는 국회의원전원소환 및 노무현 동시 소환도 나는 반대한다.

9. 이 두가지, 즉 노무현 소환과 민중발의권의 중심적인 이슈화를 조건으로 해서만, 나는 국회의원 전원소환투쟁이 의미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10.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가 친노 대 반노의 그 대립구도의 허구성과 반민중성을 고발하는 것이다. 이 점이 전제가 되어야만 모든 정치적 행동이 효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민중발의권과 소환권의 기본적인 방향, 그리고 부탁]-3/15

 민중발의권과 소환권은 의회의 파괴가 아니라 의회의 해체를 목표로 한다. 나는 그 권리들을 의회정치에 대한 '보충물'로 표현하는데, 여기서 '보충물'이란 영어로 말하면, complement가 아니라 supplement이다. complement는 서로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지칭한다면, 오히려 supplement는 그 양자가 모순되고 갈등적인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민중발의권은 '일차적으로는' 인민의 특정 수 이상의 결의로 발의하여 국민투표나 주민투표 등에 의해 의사를 관철시킴으로써 새로운 입법을 할 수도 있고, 국회가 이미 결정한 것을 폐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국민투표나 주민투표 등에 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다른 한 편 소환권은 국회가 특정한 입법을 하려고 할 경우, 국회의원들에 대해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수단을 이룰 것이다. 이는 의회를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또 반대로 '단순히'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탈구성하고 혁신할 수 있다. 당연히 민중발의와 소환은 의회에 대한 견제의 의미를 갖겠지만, 거기에서 멈추는 것은 아니며, 사회운동들이 자신의 주장들을 관철시키고 국가장치의 개조를 통한 국가의 민주화를 강제할 수 있는 효과적인 경로를 이루며, 동시에 사회운동 자신의 역능을 강화시킬 수 있는 기제를 이룬다.

단적으로 말해서 내가 사고하는 민중발의권, 소환권은 사회적 합의를 제도화시키는 것이 아니며, 계급 코퍼러티즘(혹은 사회적 협조주의, 사회적 합의주의)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갈등'을 제도화시킴으로써 계급적이거나 비계급적인 적대들에 입각한 집단성들을 국가장치들을 통해 충돌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바꿔 말하자면, 신자유주의 하에서 자행되고 있는 반정치(anti-politics)를 비판하고, 이에 따른 대중들의 정치적 사기저하를 극복하며, 대항-권력으로서의 사회운동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대항-권력이라는 표현은 권력의 외부라기 보다는 갈등적 내부이며 권력과의 투쟁의 영속화로서의 정치의 장소를 지칭하기 위해 채택된 표현이다. 즉 그것은 권력-외부에서 사회운동을 구축하려는 것이 아니며, 계급투쟁과 기타 다른 투쟁들을 국가적 제도들, 국가장치들에 관통시키는 방식으로 싸움을 조직해 내는 것이다.

아직, 국외의 사례들을 제대로 점검하지 못하고 있지만, 유럽의 몇몇 국가들에서 민중발의권과 소환권은 제도화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이 부분에 대한 점검을 해나가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전공분야와는 조금 거리가 있기 때문에, 다른 분들의 지적인 협조들이 요구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분야에 대한 다른 분들의 많은 조사와 의견들을 볼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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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4-03-15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총선 보이콧! 신자유주의 하의 부르주아, 의회정치 파탄 선언! 민중에 의한 새로운 민주주의의 건설!" 이런 '관념적인' 구호들을 다시 보게 되는군요. 가뜩이나 수세에 몰려 있는 한나라나 민주당이 가장 반길 만한 구호가 아닙니까?(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친북좌파들의 책동!) 극과 극은 통한다는 걸 신물나게 보아왔건만. 문제는 (무책임한) 구호의 선명성을 좌파의 특권처럼 내세우면서 (억압받는)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는 태도입니다. 도나 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총선을 보이콧하자는 주장은 총선일만 되면 유유히 해외여행을 나가는 태도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aporia 2004-03-15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초면에, 그것도 진태원 선생님 개인 게시판에서, 이런 식으로 첫 대화를 하기 시작하는 게 좀 안타깝군요... 제가 어리기 때문에 위의 저 구호들이 과거의 그 '관념적인' 구호들과 얼마나 닮아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떤 반복에도 차이가 새겨져 있는 것처럼, 위의 구호가 과거의 단순반복은 아닐 뿐더러, 한-민당이나 반길 구호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의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aporia 2004-03-15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선 위의 구호에서는 '부르주아, 의회정치' 일반의 위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하에서 그렇다고 말하고 있고, 그 이유는 부족하지만 앞의 글에서 밝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중)민주주의'의 경우에도, 이를 이른바 '일반민주주의'적인 것으로 국한시키자거나, 87년으로 끝이 난 민주/반민주 전선을 지양하는 개혁(또는 진보)/보수 전선(이는 우파도 좌파도 마찬가지였습니다)를 구축해야 한다는 식의 90년대 사고를 나름대로 비판하면서, '민주주의'의 문제를 '사라지는 매개자' 정도로 폄하하지 말고 '갈등적 보편성'의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토론 하에 '재영유'된 것입니다(물론 '민중민주주의'가 동어반복이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고, 실제로 제안자도 그냥 '진정한 민주주의' 정도면 된다고 입장을 선회했지요).

aporia 2004-03-15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으로 '총선 보이콧'의 경우도, '총선 일반'을 문제삼은 게 아니라 정확히 이번 총선에 국한시켜 얘기한 것입니다. 혹자가 지금을 '제2의 6월항쟁'이라고 말하는데, 지금은 6월항쟁에도 미달하는 것이, 왜냐하면 당시에 문제가 되었던 제도개혁(이를 위해서 최소한 '헌법'을 건드려야 하는) 논의는 전혀 거론되지 않은 채, 기존 세력들 중 어느 한 분파의 손을 들어주는 것 정도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손을 들어주려 하는 분파가 '신자유주의적 개혁분파'(지난 IMF 이후 대중들을 가장 괴롭혔던)이기 때문에, 이는 87년 당시의 '자유bg'의 손을 들어주는 것보다 더 퇴행적인 면을 갖는 것입니다. 따라서 87년 6월항쟁을 반복하는 수준을 위해서라도, 총선에 갇히지 말고 발본적인 제도개혁 및 (그것이 좋은 안을 내는 문제는 아닐 것이기에) 그를 위한 대중적 역량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물론 이는 각자가 '전술적으로' 이견을 가질 수 있는 문제겠지요.

aporia 2004-03-15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이 길어졌네요. 제가 말하려 했던 것은 이 입장이 맞다 틀리다 가 아니라 최소한 이것이 과거의 '관념적' 구호(저는 거기에도 진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만)를 단순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현 사태를 분석하면서 거기에 개입하려는 시도 중 하나로 대우받을 권리 정도는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책임한 입장의 선명함'만을 주장하는 좌파의 고질병... 확실히 위의 구호는 지금 정세에서 '그대로' 실행하기 위해 제기된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좌익소아병이라기보다 '막대구부리기'로 얘기해 볼 수도 있겠지요. 솔직히 무슨 '혁명' 하자는 얘기 한 마디도 없고 기껏해야 오늘날 민주주의를 지속/확장하기 위한 조건을 사고하고 확보하자는 얘기를 한 것 뿐인데도 이 정도의 (제가 느끼기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걸 볼 때, 오늘날 민주화가 됐다지만 실제로는 지젝 등이 말하는 '좌표를 문제삼는' 사고가 얼마나 불리한 역관계 안에 놓여 있는지를 우리에게 다시금 상기시켜 주는 효과가 충분히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군요. 글쎄요, 지젝이라면 뭐라고 했을까요. 물론 그가 자유주의자들과의 전술적 연대를 말하지만, 그가 연대했던 사회주의 국가의 (중도좌파적) 자유주의자들과 남한의 신자유주의자들을 '자유주의'라는 이름만으로 동급에 놓을 수는 없을 테고, 더구나 위의 요구가 (민주주의라는) '대타자와의 과잉-동일화'라는 노선 위에 있는만큼, 위의 입장을 최소한 '유물론적'인 것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을까요?

aporia 2004-03-15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길어져서 두 분께 다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비단 이 문제만 아니더라도, 항상 선배님들께 '너희들은 왜 그리 변한 게 없냐?'란 얘기를 들어서, 우리도 사고하지 않는 게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운동 다 망한 후에 그래도 한번 뭣좀 해보겠다고 끙끙대는 후배들에게, 비판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절대 아니라, 좀만 더 애정어린 눈길을 보내주십사 하는 'acting out'으로 너그럽게 봐 주시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감사합니다.

balmas 2004-03-15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올려놓고 한참 뒤에 와보니 두 가지 의견들이 붙어 있군요. 어정쩡한 입장인 것 같아서(부끄럽긴 하지만, 또 사실이 그렇긴 합니다) 뭣하긴 하지만, 로쟈님이나 아포리아님 이야기 둘 다 경청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데리다가 [에코그라피]에서 좌파와 극우파의 <객관적 동맹>에 관해 말했던 게 생각나는데, 로쟈님은 이 점을 우려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반면 아포리아님의 논평은 현재 좌파들이 이론적, 실천적으로 직면해 있는 어려움을 잘 대변해준다고 생각하고, 최원 씨의 글을 이러한 난점을 돌파하기 위한 의미있는 시도로 보고 싶다는 생각에도 공감이 갑니다. 아무튼 저로서는 논평을 달아준 분들 덕분에 조금 눈이 트이는 것 같아서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제가 별로 도움이 못되는 게 미안하고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조만간 발리바르의 글들을 비롯한 몇 개의 글을 번역해서 실을 생각인데, 그게 얼마간 면피의 구실을 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